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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하다보면, 상담의뢰인들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현재 고난을 경험하고 있으며, 고난으로 인한 고통을 어떻게 해결해 볼 수 없을까 하여 상담인을 찾는 공통점입니다. 이런 현상은
크리스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물어오는 질문들입니다. 이럴때 상담인으로 고난은 선택과목, 고난으로 인한 고통은 필수과목 그리고 그 고난과
고통은 사랑을 재확인하는 길 이라 일러 줍니다.
사람에겐 감정이 있습니다. 두려움, 불안감, 초조함, 근심, 분노, 기쁨,
애정, 등등 감정이 있는데 만약 이런 감정들이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적적하고 삭막해 질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많은
크리스챤들 중에는 분노 하는 것이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화내지 말라>고 하지 않고
<화를 내되 하루를 넘기지 말라>고 권고해 주고 있습니다. <화내지 말라>는 것은 감정을 억제하라는 말입니다. 속에서
끓어 오르는 감정을 강압적으로 억제하게 되면 <스트레스>가 되어 신체에 이상이 생깁니다.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려면
적당한
발산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현명하시게도 감정을 강압적으로 억제하지 말고 <적당히 화를 내라>고 권고하셨습니다. 그래야
건강하니까요. 그러나 <하루를 넘기지 말라>는 단서를 붙였는데 그 이유는 ,하루를 넘기면>사단이 틈타 우리로 넘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원인을 제공하기 보다는 이미 제공되어진
원인을 더 왕성하게 활동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파괴적인
열매를 맺게 하는데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화를 내게 된 원인은 우리 자신에게 있기도 하고 환경이 우리로 화를 내게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원인이었건 사단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루를 넘기지 말라는 예수님의 교훈은 귀담아 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과 같이 고난도 그 원인을 우리 각자가 제공하고 있습니다. 상담의뢰인들의 하소연 내용의 공통점은 <왜
내게 이런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까?, 저 사람한테는 안 주고 왜 하필이면 나 한테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입니다.
이런
하소연들에 대하여 야고보사도는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신다(약1:12)>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원인 제공자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 진 것입니다.
그러면 고난의 출발은 어디서 부터 시작되는 것입니까?
야고보서 1:14 이하에 보면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난의 출발은
결국 자신에게서 부터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야고보사도의 기르침입니다. 욕심입니다. 욕심이 우리를 고난으로 치닫게 합니다. 결국
선택사항입니다. 우리의 욕심이 정도를 벗어나게 되면 고난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 들어서게 되면 고난으로 인한
고통을 수반하게 되는데 이 고통은 욕심을 죽이기 전에는 사그라 들지 않습니다. 마음의 병을 줍니다. 마음의 병은
육체의 병을
동반하고 육체의 병은 곧 정신적인 병으로 정신적인 병은 결국 하나님과 거리를 멀리 하게 끔 사단이
개입합니다. 고로 고난으로 인한 고통은
필수사항이 됩니다.
하나님을 신앙하게 되면 <축복>을 얻게 됩니다. 경제적이든, 정신적이든, 영적이든 ,축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앙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절대 의지할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신앙하면서 받은 축복이
있다면 하나님으로서 인간이 되어 우리로 죄에서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고난에 우리가 참여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축복이 있으면 고난도
있으며, 축복을 누리게 되면 고난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난 축복만 누리고 고난은 누리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려면 <좁은 길로> 가라고 권고합니다. 이 <좁은
길>에는 장미꽃이 만발한 그런 길이 아니라 <가시밭길>입니다. 고난이 있는 길입니다. 고난이 있는 길에 고통이
있습니다. 고난을 줄이는 길이 있다면 고통으로 욕심을 줄이는 길 밖에 없습니다. 고통이 진해지면 질 수록 우리의 욕심은
줄어 들게
되어 있습니다. 나를 의지하던 욕심에서 주님을 의지하려는 욕심으로 변화될 때 우리는 고통을 받아도 아픔이라 여기지 않게 됩니다. 고난을
받아도 고난이라 여기지 않게 됩니다. 왜요? 고통은 우리에게 나의 욕심으로 인한 이런 고난을 경험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동기유발>의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행복해 지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왜 행복은 주시지 않고
고난을 주십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이미 행복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한다는 것에서 부터 행복은 우리 옆에 와 살포시 무릎을
포개고 앉아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고난이란 환경 땜에 행복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입니다. 우리가 고난 받을 때 고통 할 때 우리를 사랑해 주시던 분들을 연상합니다. 그리고
그 분들의 사랑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고난과 고난으로 얻어지는 고통은
결국 사랑이신 하나님께로 귀의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제의 고난과 오늘의 고난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어제의 고난에서는 왜 이런 문제가 일어 났는지 자기 자신에
의지하여 찾으려고 하니 고통만 더해 지지만 오늘의 고난에서 이런 문제가 왜 일어 났는지를 주님에 의지하여
찾으려 하니 고통의 짐이
가벼웁게 됨을 느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고난 중에 있는
우리에게 찾아올 내일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고난과 고난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재확인하는 것이고,
재발견 하는 것으로 기도함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상담의뢰인들은 행복을 많이 갈구합니다. <행복>의
출발은 우리 가까이 있는 주변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에서 부터 출발합니다. 그들에게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조건 없이 사랑함을 실천함으로 행복은 출발합니다. 사랑의 실천은 매일
그들의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기도 드리는 것이고, 그 기도는 또 다른 사람에게 행복의 향기를 퍼뜨리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우리로 동기를 유발시켜 줍니다. 결국 그
행동은 하나님의 사랑에 좀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만끽하도록 성령께서 인도해 주십니다. 이것이 우리 삶에
있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축복입니다.
고난으로 힘들어 하십니까? 고난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난은 거울이 되어 우리들의 현재 상황을 돌아 보게 합니다. 또 우리가 살아왔던 삶을 되 돌아 보게 합니다. 고난으로 인하여 우리가 주님을
향한 믿음을 점검하게 해 줍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나약한 믿음이 나를 의지하는 집념에서 주님을 의지하는
환경으로 변화 받게
성령께서 인도해 주십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느끼는 그 순간 부터 우리는 우리 내면에서 콸콸 솟아나는 기쁨과 평안을 맛보게 됩니다.
고난으로 인한 고통을 통하여 우리의 약한 믿음에 인내가 생기고 이는 곧 주님을 향하여 우리의 마음을 열어 보이는 기회로 주어지게 되는
축복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오늘 부터 라도 우리 자신에게 집착하는 마음의 등불을 점등하시고 주님을 향하여 열려진 창문에 등불
환하게 켜고 주님으로 오는 평안의 축복을 만끽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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