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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ish란 단어를 이기적인 행동이요 결과만을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또한, voluntary 란 단어 역시 자원하는 정신 혹은 행동이란 결과와 연관 시켜 생각하면 좋은 의미를 동반하게 된다. 그러나 이 두 단어는 앞과 뒤에 따라오는 문장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과가 반대가 될 수도 있다. Selfish & voluntary의 의미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개념을 뛰어 넘어 적용한 인물이 우리 인류 역사상에 많이 있는데, 그 중에 최근에 유명을 달리한 테레사 수녀가 있다. 테레사 수녀는 자기 인생에 대하여는 voluntary 정신으로 살았고, 자신의 사명에 대하여는 selfish 정신으로 살아가신 인류의 여걸이시다. Voluntary 가 무엇인가? 이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다. 반드시 해야 한다는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것이 아니다. 한 개인이 자원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자신이 희생하고 싶은 분야에 자기 시간과 은사와 정력을 투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한 개인의 인생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정신이요, 쉽지 않은 행동임에는 분명하다. 사람들이 태어나서 결혼하고 자녀 낳고 사회활동하는 모든 이유 중에 중신이 바로 자신의 성장이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오늘도 내일도 삶의 현장에서 경쟁하며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인데 테레사 수녀는 자신의 인생을 성장시키고 가꾸는 일에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된다는 정신으로 살아가셨다. 그 한 예가 자신의 몸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암 덩어리가 있음을 알고도 치료하는데 Voluntary 정신으로 대하셨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우리가 암 이란 진단을 받으면 어떤 생각이 먼저 들까? 당연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우선이다. 치료해야겠다는 생각이 우선이다.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데 아주 이기적으로 변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런데 여기 한 사람, 테레사 수녀는 자신의 건강을 아주 자원하는 행동으로 대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 팽겨치다시피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다. Voluntary 란 단어는 abondonment(내 팽겨쳐 두다)와는 전혀 다른 성질이다. Voluntary 란 단어는 일단 주어진 일에 자신이 자원한다고 하였으면 최선을 다해 그 일을 수행하는 것인데, 그 일을 수행하는데 무슨 보상을 바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인생을 voluntary 정신으로 살았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하나님이 주신 건강을 스스로 해치지 않는 선 안에서 자신의 건강을 돌보았다는 말이다. 자신의 건강이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 보다는 제 2차 순위에 있었다는 말이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가난한 어린이들의 건강이요, 보살핌이었다. 그것에 그녀는 아주 냉혹하리 만치 selfish 하였다는 것이다. 과연, professional minister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테레사 수녀의 삶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거꾸로 적용해 보자는 것이다. 자기 인생에 selfish 해 지자는 것이다. 자기 가정에 selfish 하자는 것이다. 가정생활에 이기적으로 충실하자는 것이다. 가정외에 교회나, 직장이나,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는 Voluntary 정신으로 대하고 자기 가정에 대해서는 selfish 한 자세로 꾸러 나가자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서 무슨 행사 한다고 하면 자기 가정에서 지켜야 할 중요한 행사도 교회 행사로 대체 해 버리는 voluntary 정신이 팽배한 것 같다. 자녀의 생일은 교회의 그 어떤 행사 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찮은 것 같지만, 자녀의 생일, 가족 구성원의 각종 행사는 다른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하다. 성경은 교회의 출발을 예고하기 전에 가정을 먼저 만들어 주셨음을 기억해 보자.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가정을 소홀히 한 채 교회 가서 성도들과 예배 드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는 할 순 없다. 가정에서 먼저 드려지는 예배는 예배가 되지 못하는가? 그 예배가 신앙공동체로 모여 드리는 예배 만큼이나 중요하다. 또, 자기 성장에 selfish 해 지자는 것이다. 공부 하는 학생이면 공부 하는데 이기적인 자세로 공부에만 전념해야 하고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오늘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selfish 해야 하고, 가정을보살피는 가정주부는 가정의 온화함에 selfish 해 지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예수 믿는 신앙생활에 selfish 해 지자. 성경 읽는 것이 voluntary 정신으로 해서는 안되겠다. 기도가 무슨 엑서서리 정도의 voluntary 정신으로 해서도 안되겠다. 교회 생활에 있어서 직분자들이 맡은 사역을 voluntary 정신으로 해서는 안되겠다. 자기에게 주어진 분야에서 selfish하게 일을 마무리 지을 줄 아는 정신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외에 대인관계는 voluntary정신으로 해도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는다. 그 정도만 하면최상급이다. 자기
성장에 selfish 못하면서 어찌 내 이웃에게 구제의 손길을
보낸다고 할 수 있으며, 이 사회가 정상화 되기를 바라며
기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가화만사성이란 고사성어는
가정에 우리가 selfish 해질 것을 요구하고 있고, 여기에서
발전하여 각 그룹으로, 각 공동체로, 각 사회로, 각 나라의
평안과 안정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자기 성장의
selfish의 바탕은 예수 임을 잊지 말자. 예수 믿는
신앙생활을 voluntary 정도로 여기는 그리스도인에게 기대할
것은 혼탁한 사회 환경을 조장하는 것에 다른 아무 것도
기대 할 수 없음을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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