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 아빠가 지원이를 데리고
은선이랑 4/4 왔다.
 용산 가게를 정리하고
강남 터미날 부근에
새로운 가게를 
시작 할 의향을 비췄다.
난 유림 엄마랑
잘 상의해서
결정 하라고 했다.
동생네 가게는 하루 매출이 팔백에서 천인데
자기 가게의 매출은 
한 달 해봐야
팔백도 안된다며
이미 마음을 굳힌 듯 내게 말했다.

저녁을 먹고
은숙이네로 갔다.
그 날 저녁에
종석씨가
술 한잔 하자고 전화 왔으나
난 유림아빠랑 조카 얘기를 하며
사양했다.
 그 날따라
황 여사도 지압 한번 받겠노라
전화 왔는데
역시 같은 이유로 다음에 오시라 사양했다.
유림아빠랑 노무현 대통령 얘길하다가
그가 읽는 책에 대해서
화제가 이어졌다.

    2004 4/6 화요일 

 노 통은
자신의 직을 정지 당하는 수모를 겪고 있다.
그 와중에 
매스컴은 간혹 
그의 정황을 흘리는데
나의 시선이
청와대 뒷산을 등반한다든가는 귀에 들어오지 않고
그가 요새 읽는 책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직접
읽는 계기는 오질 않고 있었다.
그러나 난 시간을 내 본다고 하다
잊고 있었는데
유림 아빠가 읽어 보았고
또 한 번 읽어 볼만하다 해서
넓마를 뒤져
그것을 찾아내
드림보이스 2.0으로 읽었다.
 
김훈이 쓴 칼의 노래이다.

임진왜란 중에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와
선조실록 , 징비록 등을 참고로 하여
충무공 이순신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내가 사람의 몸을 치료하는 입장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그 때 역시 질병과 전염병이 창궐 했다는 사실이다.
몸이 병들면
움직일 수 없고
움직이지 못하면 먹을 수 없고
먹을 수 없으니
병을 더욱 더 극복하지 못한다.
그 당시의 선조 때와
광해군 시대까지이던가,
유명한 허준 선생이 살았을 텐데,
그래도,
배고프고 헐벗은 군사로
눈 앞의 적을 무찌를 수 없듯이
기아와 추위에 처한 환자에게
비싼 보약은
화중지병이고 설사
복용시켜도 생명을 회복 한다는 것 보다는
죽기 쉽상 일게다.
춥고 굶주리면 더 빨리 염라대왕을
만날 수 있다. 

 어쨋든 그 당시에도
대포와 총 그리고 창 검을 만드느라
쇠란 쇠는 다 징발되었을텐데
그래도 사람의 질병 치료에
탁효를 보이는 침은
살아 남았다.
그 침은 요즈음
현 정부가 시각장애인의
하나의 전통 직종을
단속하고 불법이라는 침술에 쓰이는
가늘고 뾰족한 쇠붙이.
또한 검살하는 칼도 살아 남았다.
그 칼의 노래를
독서하시는 권여사의 남편.
노 통은 현재 칼의 어느 부분을 잡고 있는가?
무엇을 희구하고 있는 걸까?
권력은 칼 자루에서 나오는가?
마음에서 나온는 것일까?

 17대에전국구 후보로 나선 어느 장애인이
경력 중 하나가 침사 협회를 지칭하고 있다.
그가 시각장애인의 
침술업 자활을 위해
앞장 서 줄 것을 
기대한다.
칼의 노래는 애닯다.
노래는 듣는 귀가 있어야 살아 있을 것이다. 
이 충무공의 수영지가 있었던
그 바닷바람에 
실려오는 짜고 비릿한
내음을 깊게
흡입하고 싶다.

 http://www.oocities.org/kr/hmac62

diary3  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