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학생 활동

 (2) 특별 활동

 학생들의 특별 활동은 매우 알차게 이루어졌다. 특히 주산반, 농구반, 웅변반, 미술반, 연극반, 음악반, 문예반, 배구반, 탁구반, 종교반, 생물반 등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1954년도에 활동한 특활 부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미술반>

 미술반은 이철이 선생의 지도 하에 반원들이 매우 열심히 활동하였다. 당시에는 1인 1기 교육이 강조되었던 때라 지도 교사와 학생들의 특활에 대한 마음가짐은 남달랐다. 또한 매년 교내 전람회를 개최하였고, 학생들의 호응도 좋았다.

 그리고 각종 대회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었다. 1954년도 교지에 소개된 입상 실적을 보면 아래와 같다.

 "지난 5월 학원사 주최 미술대회에서 13품 출품하여 8품이 입선 되었는데, 고 3 김순길의 장물과 풍경화가 각각 가작을 차지했고, 중 3 김정현 군의 '분'도 역시 가작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교육주간 행사로 국제학생전람회에 14점 출품하여 13점이 입선 되었는데 그 중 중3의 조기환이 3등을 하였다. 그리고 홍익대학 주최 미술대회에서는 12점 중 7점이 입선되었고, 김순길군이 장려상을 받았다.."

<연극반>

 6.25 직후 연극반은 박동근 지도 교사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오랜 연극반의 전통을 이은 50년대의 본교 연극반 활동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교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본교 연극반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1954년도에는 연극반 창설 기념으로 '서광(曙光)'을 무대에 올리려고 준비했다가 불가피한 사정으로 하지 못하고, 그 후 동양극장에서 '이층무공'을 공연하여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본교 22주년 기념 행사 때는 '간도의 달밤'이라는 극을 공연하였다.

 한편 1956년도에는 전국남녀고등학교 연극경연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는 극단 "신협"과 KBS방송국의 연출가였던 박동근 교사의 지도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의 본교 연극반의 연출은 전 국립극단 단장이었던 장민호 선생이 맡아 수고를 하였다. 아무런 보수도 받지 못하고 오직 우리나라 연극의 저변 확대를 위한 헌신이었다. "사육신"이란 작품으로 경연대회에 참가한 연극반은 3등을 하였고, 당시 2학년에 재학중이던 문오장 동문은 특별 연기상을 받아 학교의 명예를 높였다. "사육신" 공연에 참여했던 오해영 동문은 KBS 성우로 활동하다가 후에 이민을 떠났다.

 1957년에는 22회 문오장 동문이 연극부장을 맡아 학교 지원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줄리어스 시저"를 공연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였다. 일일이 대본을 필경하고 취지문을 가지고 다니며 졸업한 선배들의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서도 공연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연습을 계속하였다. 본교를 졸업하고 서라벌 예대에 재학 중이던 이필석 동문("사육신" 공연 당시 성삼문 역을 맡았음)에게 연출 의뢰를 하고, 주위에서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연습에 몰두하였다. 그러나 의상, 조명, 음향, 소품 등을 마련할 수 있는 여건은 끝내 조성되지 않았다. 결국  2~3 개월에 걸친 공연 연습은 무위로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연극부원들의 연극에 대한 애정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이 때 활동했던 많은 동문들이 끝까지 연극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연극에 몰두하여 이 분야에서 대성한 동문들이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 후배 연극부원들에게는 그것이 큰 희망이 되고 있다.

<음악반>

 음악반은 밴드부를 말하는 것이다. 당시 반원은 37명이었고, 그 활동은 조금도 다른 부서에 뒤떨어지지 않았다. 전국 대회에서 계속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각 학교의 초청을 받아 많은 환영을 받기도 하였다.

 1954년도에는 전국음악콩쿨대회에서 당당히 2등을 하여 경향 각지에 대동의 명성을 드날렸다.

 당시의 음악반도 선배들의 휼륭한 전통을 이어받아 대동의 역사를 빛냈다.

<문예반>

 문예반은 60여명의 반원으로 구성되어 문예반 소개지였던 '상록수'를 발간하였고, 교지를 발간하는 일도 하였다. 또한 대외적으로 미국 하버드대학 작품 모집에 시 '호수의 밤'을 출품하였고, 서울 학도 창간호에도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그리고 매년 교내 문예현상모집이 있었고, 다른 학교의 문예반을 방문하여 상호 교류의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문예반 야외 실습은 주로 남한산성, 창경원, 삼청공원, 관악산, 천축사 등으로 다녀왔다. 집회는 매주 4회씩 있었는데, 월요일엔 시, 화요일엔 산문, 수요일엔 소설 등을 공부하였고 토요일엔 전원 집회가 있었다.

 1954년도 학예부장 겸 문예반장이었던 박수영의 시 중에는 '대동'을 노래한 것이 있다.

 .....   헌   사   .....

 당시 문예반 총무로 활동했던 윤석범 동문은 연세대 경상대 학장으로 재직 하고 있었다.

<배구반>

 당시의 배구반은 비록 짧은 전통이었지만 반원들의 하고자하는 의욕은 대단했다. 진갑순 교사의 지도하에 학생들은 매우 열성적으로 연습에 임했고 전국대회에서도 만만치 않은 실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1954년도에 본교의 배구반은 전국대회에서 당당히 2등이라는 영예를 차지하여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탁구반>

  탁구반의 활동도 다른 부서의 활동에 뒤지지 않았다. 신만섭 교사의 의욕적인 지도와 학생들의 열성이 한데 어우러져 대동의 탁구반은 나날이 발전하였다. 그 결과 짧은 전통에도 불구하고 영등포 체육회 주최 제 2회 기호 탁구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단체전에서는 준우승, 개인전에서는 3등의 영예를 안았다.

 이밖에 종교반, 생물반, 주산반, 웅변반 등의 활동도 적극적이었다. 이렇게 학생들의 활동이 다양하게 그리고 내실있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열성적인 자세와 무엇인가 해보겠다는 진취적인 삶의 자세를 아루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