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그림 (上)
1.
겨울 느낌 ...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공포에 떨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발을 내 딛고 있었다.
가끔, 발에 무언가가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얼마쯤 걸었을까 ...
앞에 커다란 벽이 나타났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단념을 하고, 그만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그때 였다.
벽에 있던 무슨 스위치를
건드렸는지, 갑자기 전기가 들어오면서,
시야가 밝아졌다.
' 후 ~~~~
'
안도의 한 숨을 쉬고, 내가 걸어온 길을 살펴 봤다.
그 길 한복판엔, ' 영문법
', ' 정석 ' ,' ' 물리 ', ' 고문 ' 등,
그동안 공부해왔던 책들이 줄지어 늘어져
있었다.
신기한 듯, 그 책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왼쪽에서 두런두런 얘기 소리가
들렸다.
막다른 줄 알았던, 벽 왼쪽으로 길이 나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쪽으로 뛰어
갔다.
창문이 높게 위치한 큰 방이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너무나
깨끗한 교실 ....
칠판도 새것, 책상과 의자도 새것들이었다.
그 교실안에서, 많은 학생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때, 귓가에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네가 공부할
곳이란다 .... "
그 목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렸던지, 난 그만 깜짝 놀라 잠을 깨고
말았다.
' 하 ~~ 꿈이 었구나 ..... '
나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은 후, 다시 침대에
누워 꿈을 정리해 보기 시작했다.
' 그래, 그 깨끗한 교실, 밝은 표정의 많은 남녀
학생들..
야호 ~ 난 대학에 들어가는 거야, 내가 공부할
곳이라구.....'
' 뚜우 ~~ 뚜 ~~~ 뚜
~~~~'
이번에도 통화중이다.
벌써 20분 째 ........
" 건우야 !
어떻게 됐니 ? "
누나가 궁금증을 못 참았는지, 방문을 열며 물었다.
" 아직 통화중이야..
이건 붙었는지, 떨어졌는지,
빨리 알기라도 해야지, 영 불안해서 못
견디겠네....."
" 걱정마.. 아침에 꿈도 잘 꾸었다며? 붙을꺼야 ...."
" 후
~~~ 그럴까 ? "
누나가 나가자, 나는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
때르르릉 ~~ '
' 앗 !! 드디어 걸렸다 ... '
나는 심장박동이 점점 빨라지는
걸 느꼈다.
" 예.. KBC 입니다.. 무슨 대학이죠 ? "
" 저... K 대학인데요
..."
" 수험 번호는요 ? "
" 이 칠 영 영 일 사 "
" 이칠영영일사 맞아요
? "
" 예.. "
나는 너무나 떨려 그만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 명단에 없습니다 ... "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 예 ?
"
" 합격자 명단에 없어요 ..."
" 다시 말씀해 주세요 ..... "
" 죄송하지만
떨어지셨어요 ..."
" 다시 ..... 다시 한 번만 ... "
울음 소리를
들었는지, 식구들이 우르르 방으로 달려 왔다.
침대에 엎어져 울고 있던 나의 등을 두드려주며 누나가
말했다.
" 괜찮아 ... 운이 나빴나 보다.....
까짓것 남자가 재수 한
번 하는 것도 괜찮지..... "
아빠가 옆에서 거들었다.
" 맞다..재수 한 번 해보는 것도 큰 사회
경험이라 더라....."
길고 긴 겨울이 이렇게
찾아왔다.......
2.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
......
오랜만에 집밖으로 나왔다.
같은 반 친구 현수를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에 실패하고도,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것은,
고3때 같이 공부하며 친하게 지내던 친구 7명
중에서,
1명을 제외한, 6명 모두 대학에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현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 오랜만이야 ... "
현수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 너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살이 빠진걸 보니.... "
" 하하 ~~ 내가 빠질 살이 어디 있다고 ....
"
현수와 나는 J 학원에 등록을 하러 갔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죄수생들로 학원 로비는 그야말로 시장
바닥이었다.
접수를 마치고 나온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 이상하다 ...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
학원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기 않았기 때문이다.
' 에이..
아니겠지... 이 동네는 처음인데.... '
학원 개강일은 2월 14일...
아직 보름이상 남았다.
난 그동안 먹구놀기가 눈치 보여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집 앞에 있는 '써클 Q' 라는 편의점이었다.
언젠가 옆집 아주머니께서 가게에 오신
적이 있었다.
" 니 3호집 건우 아이가 ? "
" 예.. 안녕하세요...
"
" 하하 .. 자슥 다 컸네... 이리 일도 하고.. "
" 예....
"
" 맞다.. 건우 니, 이번에 대학 시험 봤다드니 붙었나 ? "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 아파트내에 니 공부 잘한다고 소문이 쫙 퍼졌는디..
당연히 붙었겠재 ? "
" 저..... 떨어졌어요..... "
편의점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고 비웃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다행이 현수와
나는 같은 반이 되었다.
우리반은 5층이었다.
현수와 나는 교실을 찾아갔다.
홀에서 모퉁이를
돌아 맨 끝 반이었다.
나는 복도를 걸으면서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 언제 한 번 와 본 것도
같은데 ..... '
교실문을 열었을 때, 소름이 쫙 끼쳤다.
꿈에서 봤던, 그 교실 ... 그
광경 ....
' 후후 ...이게 하늘이 주신 운명이라면 달게
받겠습니다......'
학원 원장님이 모니터를 통해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있었다.
근데 그
오리엔테이션이란 게 참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구를 치다가 걸리면 벌점 20점, 흡연을 하면 역시
20점...
학원내에서 폭행을 하면 10점, 결석을 하면 10점,
여학생을 괴롭히면 5점, 지각을 하면
2점 등등...
또한 벌점 합계가 22점이 되면 제적 ....
정말 감방에 갇힌 죄수가 된 기분이
었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담임선생님이 학번 작성 요령을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
지루했기에, 교실을 한 번 둘러 보기로 했다.
100명씩 꽉꽉 차있는 비좁은 교실...
가끔 나이 많은
아저씨들도 눈에 띄었고,
아직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학생들도 있었다.
' 하 ~
제는 분명 시골에서 올라왔을 꺼야... '
물리지학반이라 그런지 여학생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한 예닐곱 명의 여학생들이 앞쪽에 모여 앉아 있을 뿐이었다.
내 시선이 교실 반대편의 맨 뒤쪽으로
옮겨 졌다.
어떤 긴 머리 여학생이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내 주위를 둘러봤다.
다른 학생들은 모두 담임선생님의 말에 귀를 귀울이고 있었다.
' 나를 쳐다 보고 있나 ?
'
나도 그녀를 빤히 바라다 봤다.
그녀의 눈이 꽤 친근해 보였다.
그녀는 약간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 제는 재수생인데도 뭐가 좋다고 저리 웃고 있을까 ?
'
학원을 다니면서도 당분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계속하기로 했다.
최소한
용돈과 책값은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밤 8시부터 12시까지 일하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아침 9시
등교시간에 맞춰 일어나기도 힘들 정도였다.
학원은 2호선 ***역에 있었다.
2호선은 스쿨버스기 때문에,
아침에는 많은 대학생들이 탄다.
2호선에 적을 두고 있는 학교만 해도 8개가 넘기 때문이다.
나도 사복을
입고, 머리를 길렀기 때문에 대학생처럼 보였다.
따라서, 처음엔 ' 모두들 나를 대학생으로 보겠지
.. '
라는 착각에 빠져있기도 했다.
한쪽 손에 든 보온 도시락통을 의식하기
전까지는...
나의 하루하루는 거의 변함이 없었다.
아침에 졸린 눈으로 9시에
등교해서, 현수가 맡아놓은 뒷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도시락 먹고, 4시에 수업이
끝나면
집에 와서 조금 쉬다가, 편의점으로 .....
그렇게 어려운일도, 그렇게 재미있는 일도
없었다.
정말 따분한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한가지....
아침에 등교를 할 때, 언제나 교실
앞에서
긴머리 여학생과 마주칠 수가 있었다.
그녀는 친구인 듯한 옆반 여학생과 창가에 서서
얘기하다가
내가 지나가면, 미소를 지며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처음엔 무심코 그 앞을 지나쳤지만,
날이 갈수록 조금씩 그녀를 의식하게 되었다.
조금씩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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