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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자마자 모옴은 숨이 거칠어지며 무안한 기색이 눈에 퍼졌다.
"돌아가 줘!"
헉스톤이 딱 잘라 말했다.
"자네가 뭘 말하러 왔는지 모르지만,"
모옴이 말했다.
"나는 듣고 싶지 않아."
그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나는 짐을 안은 채 두 사람의 테이블로 다가갔다.
"미안합니다, 모옴 선생. 전날은 아무래도 쓸데 없는 짓을 한 것 같아서. 그때는 좀 불끈해 있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나도 생각했네."
모옴이 말했다.
"내 가짜 따윈 태워 버려야만 한다는 그 생각만으로 머리가 가득 차 있었어요. 하지만 모옴 선생, 오늘은 당신이 기뻐하실 것을 여기에 가지고 왔습니다."
"보고 싶지 않아."
"유리문입니다, 선생. 전에 내가 무심코 깨 버린 그것과 아주 비슷한 놈으로."
내가 낡은 신문을 벗기자, 두 사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부탁이네, 자네. 부디 가지고 돌아가 주게."
"하지만 왜입니까, 선생?"
"왜라니, 만약 내가 그저 조금이라도 그것에―― 흥미를 나타내면, 자네는 그것을 아래로 떨어트려 깨 버릴 게 틀림없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미쳐서 유리를 발로 차고 산산조각으로 만들겠지. 이제 자네에게는 넌더리가 났어. 더 이상 나는 그런 감정의 대격동은 참을 수 없어."
(주=대단하다, 모옴!)
헉스터가 물었다.
"자네는 이것을 모옴 선생에게 팔고 싶은가?"
"아니, 틀립니다, 당치도 않아요. 나는 선생에게 이것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내가 그 문을 깨 버렸으니, 비록 보잘 것 없지만 사례를 하고 싶어서요."
모옴은 찬찬히 문을 바라보았다.
"설마 이것도 자네가 혼자서 그린 건가?"
"그렇습니다. 그렇고말고요. 내가 그린 겁니다. 어느 정도 장래성은 있습니까?"
"자넨 이걸 언제 그렸나?"
"네, 바로 2, 3일 전입니다. 어떻습니까, 장래성은 있습니까?"
"2, 3일 전!"
헉스톤은 나를 거짓말장이로 몰아세우는 듯했다. 정말로 어리석은 남자다.
"그럼 그것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낡았지?"
모옴은 눈짓을 하며 자꾸만 헉스톤에게 이런 의미를 전하려고 했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마. 잠깐 빠져! 하지만 헉스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 나는…… 그, 결국…… ."
"이 그림에는 상당한 장래성이 있네."
모옴이 날카롭게 끼어들었다.
"감사합니다."
얼간이 헉스톤은 그래도 아직 공격의 화살을 느슨하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네는 여기에 'PGO'라고 사인을 했군. 그렇다면 그것도 부숴 버려야만 한다는 핑계를 대지 않을까?"
"헉스톤!"
모옴이 격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가 뉴질랜드까지 수영해서 갈 가능성을 검토하고 싶네."
"뉴질랜드까지……?"
겨우 헉스톤도 정신이 든 것 같다.
"그래요. 알았습니다."
나는 헉스톤을 좀더 괴롭혀 주기로 했다.
"당신이 말한 대로입니다. 물론 이 문도 부숴 버려야만 합니다. 즉시 그렇게 하기로 하지요. 아니, 나는 바보일 겁니다."
나는 문을 들어올렸다.
"기다리게."
모옴이 말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전날 자네가 저…… 가짜를 태워 버린 것은 정말로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네. 그 그림은 전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지만 이 문은 이야기가 달라. 고갱이 그림을 그린 유리문은 운 나쁘게 자네가 그것을 깨 버리고 이 세상에서 그 아름다움을 빼앗기까지 확실히 존재하고 있었네. 하지만 지금 자네는 이 문으로 고갱의 것 이상의 아름다운 유리문으로 그 보충을 한 걸세."
"과연! 그것도 그렇습니다, 선생."
분명히 모옴이 말하는 것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니까 자네의 더할 수 없이…… 정중한 선물을 받게 해주게. 나는 이것을 프랑스에 있는 별장으로 가지고 돌아가서 방에 끼워 두고 싶네. 이곳으로 비쳐드는 태양으로 꼭 방안에 아름다움이 가득 찰거야. 자네의 평판을 지키기 위해서."
"네, 네, 물론입니다."
"나는 이것이 진짜 고갱의 것인 척하고 싶네. 진상은 영원히 우리 세 사람 사이의 비밀이야. 어때, 자네의 의견은?"
"명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
"그럼, 미안하지만 헉스톤에게 그 문을 건네주지 않겠나?"
나는 문을 가지고 헉스톤 쪽으로 가다가 장난으로 발이 걸려 넘어진 체하고 두 사람을 놀라게 해주었다. 하지만 결국 문을 무사히 헉스톤의 양 손에 건네주었다.
"내일 마르케사스 제도로 떠나기 때문에 여기서 두 사람에게 작별을 고하겠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사실이었다.
"아아, 그래 물론."
모옴은 미소를 띄웠다.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네."
나는 두 사람을 그곳에 남겨두고 나왔다. 한번 뒤돌아보니, 두 사람은 유리문을 앞에 놓고 기쁨에 가득 찬 웃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마르케사스 제도를 보기 위해서 북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타히티의 단조로운 생활에 싫증이 났기 때문이었다.
고갱이 말년을 보낸 아투아나 마을에서, 나는 그의 묘를 방문했다. 콘크리트의 추악한 비석이 잡초로 둘러싸여 있을 뿐이었다. 클라렛을 한 병 가지고 왔기 때문에 나는 홀짝홀짝 그것을 마시고 생각에 잠기면서 1시간 정도 그곳에 있었다.
다음 10년간 나는 직업을 전전하며 마을에서 마을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타스마니아로, 뉴질랜드로 떠돌아다녔다. 공교롭게도 나에게는 야심이라는 것이 결여돼 있었다. 나의 바램은 인생의 모든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며, 일은 단순한 필요악일 수밖에 없었다.
나의 일가에서 나간 미국의 친척 중에서 내가 언제나 소식을 끊지 않았던 것은 이모형제인 하트랜드뿐이었다.
(주=나의 할아버지다.)
1928년에는 나는 최악의 상태까지 빠져 있었다. 뉴질랜드의 웨링톤에서 구세군의 신세를 지는 처지였다. 대체 뭘 하면 좋을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곳에서 갑자기 생각해 낸 것은 그 다섯 장의 고갱 그림이었다. 다섯 장 모두 깔끔히 포장한 채로 아직 내 수중에 남아 있었다. 나는 런던의 타임즈지를 통해서 바깥 세계와의 접촉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고갱의 예술에 대한 평가가 점점 높아지고, 지금은 그의 걸작에 1천 파운드의 가치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절망 속에서 나는 수중의 고갱을 한 장 팔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꾸러미를 열어 신중히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팔아야 한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생각이었지만, 결국은 그 중 하나를 택해서 웨링톤의 유일한 그림가게로 가지고 갔다.
문을 밀자 찌링 하고 종이 울렸다. 나는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감상적인 그림이 들어서 있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뚱뚱하고 작은 남자가 안에서 나와 내 초라한 복장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죠?"
"안녕하십니까. 실은 여기에 가지고 온 그림을 팔고 싶은데요. 고갱입니다."
"뭐요?"
"폴 고갱. 그의 이름은 아시겠죠?"
"아아, 그럼요. 타히티에 살았던 남자. 이름은 들은 일이 있지만 그림은 본 적이 없어요."
감겨 있는 그림을 내가 펼치자, 그는 한번 보고 말했다.
"아니, 이건! 잡동사니잖아! 푸른 말이나 녹색 바다 따위가 이 세상에 어디 있어? 놈은 눈뜬 장님 아니야! 그리고 그림 그리는 방법도 모르잖아!"
나는 다른 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타임즈지에서 오려낸 고갱에 관한 기사를 그에게 보여주기만 했다.
"이걸 좀 읽어 보시지 않겠습니까?"
그 기사에는 고갱의 그림 중 몇 개가 흑백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는 그 기사의 마지막까지 죽 훑었다. 그리고 나서 마지못해 이렇게 말했다.
"그렇군요, 내 눈에는 형편없는 잡동사니라도 그것을 원하는 멍청한 손님도 없지는 않군요. 좋아요, 20파운드로 사 드리죠."
"20파운드! 이 그림에는 1천 달러의 가치가 있는데도!"
"나에게는 없어요."
"유감이지만 그 값이면 팔 수 없습니다."
"그럼 50파운드. 그 이상은 안 돼요."
"유감이지만 안 되겠습니다."
나는 그 가게를 나왔다. 누가 고갱을 50파운드에 팔겠는가. 그렇다면 차라리 네 발로 기어다니면서 구걸을 하는 게 낫겠다.
그날 밤 구세군이 매트리스라고 부르고 있는 기복지도 위에서 그럭저럭 자려고 애쓰고 있는 동안에, 나는 모옴이 그 유리문에 관해서 말한 것을 생각해 냈다. 내가 고갱의 유리문을 깨 버린 이상, 이 세상에서 그 아름다움을 보충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말한 것이다. 이 논법은 틀린 전제를 기초로 하고 있지만 분명히 논리정연했다. 옛날 때때로 보일러실의 불을 피우기 위해서 다섯 장의 고갱을 사용한 일이 기억에 되살아났다. 그것들을 보충하는 것이 세계에 대한 나의 의무가 아닐까? 특히 주위의 상황으로 내가 그 일에 숙달되고 있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신이 한 마리의 참새가 떨어지는 것도 마음으로 감싸올린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다. 어쩌면 신은 피조물인 인간의 무지 때문에 파괴해 버린 예술품을 어떻게 해서든 보충시키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신은 그 한없는 지혜로 그런 일련의 사건을 만들어내고, 이런 나를 선택해서 그 일을 대행하도록 한 것은 아닐까? 이것은 너무나도 거대한 상상이기 때문에, 나는 그저 놀라며 부르르 떨 뿐이었다. 그날 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아침이 올 때까지 나의 결심은 변함없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나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웨링톤 거리를 뛰어다녔다. 친구나 아는 사람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 누구 할 것 없이 소리를 지르고는 사정사정해서 돈을 달라고 했다. 겨우 모인 3파운드도 안 되는 돈으로 필요한 그림 재료와 식료품을 샀다―― 소고기 통조림과 크래커, 그리고 값싼 와인을 조금씩 샀다. 감자 마대와 캔버스 테두리로 할 나무 조각은 주워 올 수밖에 없었다.
웨링톤의 마을을 벗어나 인기척이 없는 항구를 발견하고, 나는 그곳에 허술한 판자집을 지었다. 그리고 타히티에서 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고갱의 모작에 착수했다.
내가 그 재창조를 자신의 의무라고 정한 다섯 장에 이번 그림을 포함시킬 생각은 없었다. 더 본격적인 방법으로 그 일에 착수할 수 있을만큼 자금이 모아지면 그걸로 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고갱을 과감히 '개량'하기로 했다.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도저히 그의 이름을 그곳에 적어넣을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고 보면 고갱은 작품에 서명하는 데 상당히 무관심했던 것 같다. 때로는 'PGO'(어떤 의미인지 모르지만)를 사용했고, 때로는 'P. 고갱', 때로는 '고갱'만으로 서명하는 일도 있었다. 또 때로는 전혀 서명을 하지 않은 일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