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장(序 障)
一月 一日
원단(元旦).
일년의 시작을알리는 날인 동시에 사람들이 맞는 가장 성대한 축제의 날이었다. 거리에는 저마다 온통 기쁨에 들뜬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아이들은 제각기 어른들의 손을 잡고 주위를 둘러보기 바빴다.
하지만 오늘은 무림인들에게는 결코 잊지 못할 날이었다.
바로 일년 전 오늘 제 삼차 마백대전에서 마도의 수많은 고수들을 물리치고 백도가 승리한 날이기도 하고 백도맹의 초대 맹주의 생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후에 무림인들은 이 날을 '흑엽(黑葉)의 공포'로 부르게 되었다.
흑강권 천협의(黑强拳 天俠義).
그 누가 모르랴! 일년 전 제 삼차 마백대전에서 마도 장주 이하 많은 마도인들을 어둠으로 다시 돌려보낸 백도의 고수를.
하지만 그런 그에게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그것은 전 무림을 경악에 물들게 하였고 마침내 조용하던 백도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천협의와 무림제일미(武林第一美)이자 그의 딸인 천월화(天月花)가 백도맹의 맹주 생일에 가던 도중 느닷없이 복면의 괴한을 만나 단 일초만에 자신이 그렇게 자랑하던 흑강권이 무너지는 것과 동시에 무공이 전페당하는 일생일대의 치욕을 당한 것이었다. 더구나 천월화는 더 이상 무림제일미라고 말하지 못할 정도로 얼굴이 추악하게 변해 얼굴을 들지 못하고 살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옆에는 '獨夜狂'이라고 쓰여진 검은 낙엽 한장이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一月 三日
백도맹의 추적이 시작된지 삼일 후.
백도의 경악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또 다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천협의와 함께 백도 쌍협이라고 불리워지던 지살공 (地殺功) 지협의(地俠義)가 그의 처소에서 천협의와 비슷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것이 그의 딸에게 발견된 것이었다. 역시 그의 옆에는 獨夜狂이라고 쓰여진 검은 낙엽 하나가 조용히 누워있었다. 그리고 평생 은거하겠다는 공언을 깨고 마침내 지협의가 흉수를 찾기 위해 무림으로 나오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어느 누구도 흉수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당사자인 천협의나 지협의 역시 흉수의
얼굴을 미처 보기도 전에 당한 것이었다.
이제는 백도맹에서도 전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맹주의 호위무사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맹내의 고수들이 그를 추적하게 되었고 그는 곧 무림인들에게 흑엽의 공포로 불리게 되었다.
一月 五日
흑엽 추적 오일째.
도무지 그는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단서라고는 독야광이라고 쓰여진 검은 낙엽뿐.
그러던 중 무림인들은 충격적인 소문에 전율했다.
현 무림 최고의 무공을 가진자가 누구인가를 물어 보아라.
아마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단 한사람을 말할 것이다.
무적미군자(無敵美君子) 김용인(金容仁).
현 백도 맹주이자 과거 제 삼차 마백대전에서 마도 장주 비천행과 부장주 전궁을 만길 낭떠러지로 떨어뜨린
백도 최고의 고수로 현재 나이 이십 삼세. 막강한 무공과 절대적인 멋을 지닌 무림 제일의 쾌남아로 한때 무림제일미였던 천월화의 청혼을 거절할 정도로 색을 멀리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일설에 의하면 이미 장래를 약속한 연인이 있는데 사정상 헤어져서 아직 그녀를 잊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라고 백도맹의 사람들은 부인했다. 왜냐하면 그 상대가 죽은 마도 부장주의 사촌여동생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그가 백도 최고의 무공을 지녔다는 그가 웬 복면 괴한과의 대결에서 참혹한 패배를 하였다. 그리고 백도 맹주의 옆에는 역시 獨夜狂이라는 검은 낙엽만 뒹굴고 있었다. 이제 독야광은 백도의 척살 특급호가 되었고 그에게 엄청난 상금이 걸리게 되었다. 하지만 숨어 있는 마도인들에게는 최고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一月 七日
어느새 마도의 우상이 된 독야광.
하지만 이날부터 그는 마도의 척살 일호로 돌변했다.
잔인마(殘人魔) 혜운(慧雲)
비록 일년 전 삼차 마백대전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잠적한 마도의 부장주였지만 그의 백발혈염공(白髮血艶功)은 아직도 백도인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마도의 부활을
외치며 무림에 등장할 것을 예감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관심은 정말 대단했다.
하지만 그는 더이상 무림인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오늘 오시 정각부터 그의 무공은 완전히 사라졌다. 바로 백도의 공적이 된 독야광이라는 괴인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일 각만에 무공이 전폐된 것이었다.
그의 옆에는 어김없이 獨夜狂이라고 쓰여진 검은 낙엽 하나가 있었고.
더구나 무적미군자 김용인 역시 최고의 진이라고 감탄했던 마도의 검봉곤계진(劍奉昆桂陳)을 단 한 시진만에 돌파하고 유유이 사라진 괴인의 모습에 마도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그를 추적하는 것마저 잊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는 평범한 노인이 된 잔인마 혜운은 이상한 글귀를 남기고 자살하였다.
" 주인님의 은혜를 잊고 자네를 배반한 못난 나를 용서하길 바라네."
이것이 혜운이 남긴 마지막 글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지하로 잠적해 있던 마도인들은 일제히 위험을 무릅쓰고 나오게 되었다. 오로지 독야광이란 미친 놈을 죽여 마도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이제 독야광이라는 괴인은 백도뿐만 아니라 마도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찾는 천하공적이 되었다. 그리고 그 동안 독야광을 마도의 고수라고 믿었던 백도인들은 더더욱 의문에 빠지기 시작했다.
二月 七日
역사상 마도와 백도가 한 인물을 죽이기 위해 이렇게 한달 동안 추적하기가 과연 몇번 이었을까?
하지만 그의 종적은 잔인마의 죽음 이후 더 이상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삼일이 멀다하고 일을 벌렸던 그가 갑자기 한 달 동안 잠잠하자 무림은 조용히 숨을 죽였다. 마치 조금만 일이라도 벌어지기를 바라는 듯이.
하지만 그는 여전히 침묵했고 마침내 천하가 일시에 독야광을 찾는 일을 그만 두었다. 이미 그는 전 무림인들의 공적이 되었고 언제 어디에서든지 흑엽만 나타난다면 그는 도저히 빠져 나갈 길이 없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마도와 백도의 고수들이 동시에 무림을 돌아다니다가는 언제 제 사차 마백대전이 일어날지 모르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보 후퇴한 것이었다.
하지만 은밀하게 조사는 계속 되고 있었다. 바로 혜운이 남긴 마지막 글을 단서로..........
그리고 그에 대한 상금 역시 금 백냥으로 올라갔다. 더구나 그의 위치만 알려 주어도 은 백냥이 지불되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얼굴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은 백냥을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죽은 혜운이 살아
돌아오면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