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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신앙간증

나의소개

  나는 지금으로부터 45年전에 아버지와 어머니사이에서 큰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부터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그러나 웃음꽃도 몇 해를 가지 못했습니다 나는 앉을 때가 되어도 앉지 못하고 설 때가 되어도 서지 못하고 매일 누워서 울기만 합니다. 맨 처음 어머니는 아이가 조금 늦되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났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변화가 없자 어머니는 전국에 유명한 병원은 말할 것도 없고 좋다는 약은 다 먹였으나 아무소용이 없습니다 그 당시 내가 태어난 때만 해도 장애자란 말이 없었습니다 장애인이 있는 집에는 온 가족이 나쁜 전염병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손가락질하며 동물원에 원숭이처럼 대하는 시대 였습니다 나는 그런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아무리 해봐야 소용없음을 알자 방구석에 내 팽게쳐 버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밑에는 동생이 4명이나 되다보니 더 이상 나만 바라볼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때부터 사람 아닌 짐짝처럼 다락방에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그 당시 내가 살던 집은 문현3동 12평 남짖한 집에 다락이 하나 있었는데 그 다락방이  내방 이였습니다 그 당시 부모님은 모두 교회집사 였습니다만 아버지는 매일 술로 세월을 보냅니다 그러니 우리집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다락에 올라오시면 내게 또 야단을 치십니다 "너 아버지가 누구 때문에 저러케 되셨는지 아니 다 너 때문이다 너가 빨리 죽어야 되지 동내 에서 기를 펴고 살수가 있나 그렇다고 너 때문에 앞으로 동생들 시집,장가는 어떻게 보낸단 말이냐" 라고 할 때면 나는 혼자 울기 시작합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내 하나 죽으면 여러 사람이 행복 할텐데  그 당시 내나이 18살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부모를 원망하고 세상을 아니 나자신을 원망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내가 할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가 없습니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내 나이 20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 가셨습니다. 아버지가 안계신 우리 집은 앞길이 캄캄합니다 그 당시 동생들은 초등학교 2,3학년 막내 동생이 7살 이 어린 동생4명 나까지 5명을 어머니혼자서 꾸려 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큰아들인 나는 조금도 보탬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짐이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때 어머니는 호떡장사를 했습니다 리어커를 밀고 다니며 호떡을 구워 파는 것입니다 호떡을 팔려면 새벽부터 시작하여 밤12시 까지 고생을 해야 합니다 어머니는 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바쁜 가운데도 새벽기도 한번 빠져 본적이 없습니다 그 시절 나는 밥을 배불리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밥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손으로 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새벽에 호떡 재료를 사오면 아침밥을 지어야 하고 동생들 학교 보낼 준비를 해주고 나면 어머니 밥드실 시간도 없이 밥 한 그릇을 들고 다락방으로 와서 나에게 밥을 먹여 주십니다 어머니는 밥을 먹여 주면서  야단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바쁜 시간에 밥을 먹여주고 있으니 이게 될 말이냐 일초가 아까운 시간에 너에게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면 돈이 나오냐 네가 죽는 것이나를 돕고 동생들도 돕는 것이다 이렇게 야단을 하시면 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러나 그 말을 듣는 나는 밥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밥맛이 없다고 해버립니다 밥을 안 먹겠다고 한 것은 야단을 들어서가 아닙니다 어머니는 아침밥을 먹지 못하고 어찌 나만 먹을 수가 있겠습니다 나는 미안해서 도저히 밥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준비를 해가지고 오전9시정도 나가면 밤12시가 넘어야 들어오기 때문에 저녁밥은 팔다 남은 호떡 몇 개로 해결을 해야합니다 나는 매일 다락방에 숨어서 십년을 하루 같이 지냈습니다 그 시절은 내 생활이 바로 지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겨울이면 손, 발이 얼어 터져 피가 나는 일이 한 두 번 아니고 배고픈 것은 만성이 될 정도 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배고픔도 발이 얼어터지는 것도 참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가지 견디기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외로움입니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하고 진정한 대화를 해본 적이 없어서니까요 나는 혼자 기도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지옥이 따로 없는 세상 어머니께 짐이 되기 실습니다 차라리 나를 대려 가소서" 나는 그때만 해도 믿음이 없습니다만 어머니가 매일 시간을 정해 기도해라 너 소원을 들어주실  분은 오직 한분 하나님뿐이시다 나는 어머니말씀대로 기도를 합니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88년 초 나는 갑자기 아랫배가 아프기 시작합니다 몇날 몇일을 아프더니 아랫배 밑에 탁구공만한 혹이 생겼습니다  그 혹이 차차 자라 나중에는 야구공만 해졌습니다  나는 그 혹 때문에 옷도 입기가 불편하고 또 아프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께 병원에 한번만 가보자고 졸랐습니다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리어커에 나를 실고 작은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가 나를 보더니 이것은 수술을 해야 하는 큰 병이니 우리 병원에서는 고칠 수가 없으니 큰 병원에 가보세요 하는 것이다 그 날은 일단 돌아왔다 그리고 한달이 흘러갔다 내 배에 혹은 점점 커졌다 나는 매일 어머니께 큰 병원에 가자고 졸라 됬다 그렇지만 병원에 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였다  몇 달이 지나고 나서 교회에 장로님차를 타고 초량 성분도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선생님은 내 배에 진찰을 하더니 어머니께 "이 사람이 지금까지 산것도 많이 살았습니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안았으니 맛있는 것이나 많이 사주고 한이나 없게 해주세요 보아하니 돈도 없어신가 본데 큰 돈들여 수술을 해봐야 걸어다닐 것도 아닌데 뭣하러 수술을 하려 하십니까 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의사선생님의 발을 붓들고 울기 시작합니다 안됩니다 저 자식이 어떤 자식인데 저대로 죽일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 저 자식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배도 많이 골리고 고생만 시켰는데 이대로 죽게 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내가 죽으면 죽었지 내 앞에서 자식죽음을 어찌 봅니까 그날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정말 기가 찹니다 내가 태어나 지금까지 30년간 살면서 하루도 웃는 날이 없이 살았습니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이 있습니다 나는 어제까지만 해도 기도 할 때 지옥이 따로 없는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 이제 나는 죽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절망입니다 나는 근 한 달을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울기만 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지옥 같은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간다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욕심인지 믿음이 부족해선지 몰라도 나는 눈물만 나옵니다 내가 하도 우니까 어머니께서 "인간의 죽고 사는 것이 어찌 의사 말에 달렸겠니 우리 열심히 기도하는 수밖에 " 나는 얼마나 교회에 나가고 목청 끝 찬송을 부르고 싶었던지 그러나 이런 일 다 하지 못하고 죽게되다니 나는 그날부터 금식기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저를 뜻이 계셔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줄 믿습니다 저를 살려 주신다면 사는 날 동안 주님을 증거하며 살겠습니다" 이런 기도를 몇 달을 했는지 모릅니다 내만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는 교회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그 당시 동생들은 대학교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학비가 많이 들어갑니다 어머니는 자신이 배우지 못하셨기에 자식들은 대학까지 가르쳐야 한다고 결심했기에 어머니 고생이야말로 표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대다가 큰자식인 내까지 방에 누워있으니 어머니는 오로지 믿음하나로 지금까지 사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러니 어머니믿음이야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턴 나는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수술이라도 한번 받아보자고 나는 졸라댑니다 동생들도 마찬가지 형님 한이나 없게 수술 시켜주자고 말합니다 어머니는 한번 알아보자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수술 할 려면 돈이 한 두 푼 드는게 아닙니다 그 당시 돈으로 백오십만원이 든다고 합니다 그 큰돈이 어디 있습니까 어머니는 구청으로 동사무소로 뛰어다니시며 호소합니다 "우리아들이 죽어간다고 한이나 없게 수술 한번 시킬 돈이 없다고" 울며 호소하고 다닙니다 그러나 집이 있다는 핑계로 영세민이 될 수 없다고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12평 짜리 집 때문에 수술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교회로 아는 데는 다 알아봅니다 그후 몇 달을 수소문 끝에 돈을 구해 88年 가을 수술을 하게 됬습니다 성분도 병원에 일주일 입원하여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의사는 "수술은 잘되었습니다만 앞으로 일년 넘기기가 어려울 것 같군요 그러니 맛있는 것이나 사주고 한이나 없게 잘해주세요"라고 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나에게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는 것이 아니겠니 그러니 너무 슬퍼 말고 기도나 열심히 해라 하나님께서 다 뜻이 계시니 우리는 그 뜻을 어떻게 알겠니 나는 매일 기도를 합니다 그후 일년이 지났습니다 나는 동생의 소개로 천사같은 여자와 결혼까지 하게 됬습니다 그리고 일년밖에 못산다던 나는 싶년이 넘어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것은 나의 기도 아니 어머니의 기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한평생을 이 못난 자식을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로 기도를 하셨겠습니까 나는 지금까지 어머니기도 덕분에 사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후 나는 그리도 가고 싶었던 교회도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문서부도 내가 맡아 주보도 찍고 다른 서류들도 내가 했습니다 전에 기도 한 대로 큰 교회에 간증도 많이 했습니다 제일먼저 울산 무교동 교회, 연산동 브니엘 교회 삼천포 갈릴리 기도원 창원 극동방송 기독교 방송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하여 간증한 것을 비롯하여 화명 샛길교회에 간증했습니다 그후 나는 내 이름으로 임대 아파트가 나와서 다대포로 이사를 하게 되어 그 교회를 관두고 신평로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밀알 선교회 단원이 되어 나 같은 외로움에 울고있는 장애인이 없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그후 우리 집은 어머니기도의 열매로 동생들은 모두 훌륭하게 자라 전도사를 비롯하여 치과의사, 중학교 교사, 막내 동생은 박사과정을 공부하러 미국에 가 있습니다 이렇게 다 잘된 뒤에는 숨어서 기도하시는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지금 성동 교회 권사님으로 계십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수 없덧이 우리는 하나님말씀 떠나서는 살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도는 천하를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기도는 산을 옮기고 바다를 매우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어찌 내가 지금까지 살수 있겠습니까 내가 전에 기도한대로 이 목숨 다하는 날까지 하나님을 증거하며 살겠습니다 그런데 내가 한번씩 교회 갈려면 너무나 힘이 듭니다 왜냐하면 흴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는데 흴체어로는 버스도 타지 못하고 그렇다고 택시를 탈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내 사정을 아시고 자가용을 주셨습니다 지금은 내 아내가 면허를 타서 교회는 물론 가고싶은 곳은 다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초보라 먼곳은 못가지만 세월이 가면 하나님을 증거하러 어디든지 갈것입니다

                                               SON, YOUNG, 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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