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사랑 : 가톨릭메신저 ; 가라반달의 성모 발현
 

가라반달의 성모 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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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치따의 일기

 
본서를 집필한 것은 어떤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리고 본서가 가라반달(Garabandal) 사건에 대한 결정적인 작품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일은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이루어질 것이다. 다만 필자가 기도하는 것은 발현(發現)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진실한 방법으로 말하려는 것 뿐이다. 본서를 [콘치따의 일기(Conchita's Diary)]와 이 일기의 후속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문헌을 바탕으로 하여 집필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기록들은 항상 가라반달 이야기의 근본적이요 주요한 원천으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콘치따의 일기'와 기타 초기의 기록들이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콘치따는 하느님이 가라반달에서 예수의 어머니를 통해 이 세상에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선택하신 네 소녀들 중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이 기록들은 기록된 사건이 일어나고 있던 기간 중이나 일어난 직후에 쓰여졌거나, 아니면 이 사건들이 소녀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을 때 쓰여졌다. 이 기록들이 지닌 역사적 가치도 바로 이러한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또한 콘치따나 이 사건과 직접 관련을 맺고 있는 증인들에게 실시된 인터뷰와 질문을 통해 추가된 정보를 수록하였기에 이 책이 더욱 신빙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다행이도 콘치따에게 직접 질문을 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다. 필자는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라반달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원-인물과 기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라반달 이야기에 나오는 여러 중요한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다.

    가라반달의 메시지는 중요한 것이다. 콘치따는 끊임없이 이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성모님께서 푸에블로(Pueblo)산에 오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발현 또는 탈혼상태(脫魂狀態. ecstasy), 그리고 부르심이나 무아경(無我境) 속의 행진과 같은 경이로운 현상들은 단지 우리의 주의를 끌기 위한 것으로써, 실제로는 우리를 메시지로 인도하고 그 진실성을 입증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가라반달 메시지의 중요성은 사건 그 자체의 특이한 성격, 즉 수많은 발현과 여기에 수반된 그 많은 경이로운 이적(理蹟)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필자는 여러번 콘치따에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필자는 1968년 처음 가라반달을 방문했을 때 콘치따에게 프랑스어로 간단하게 말을 했다. 필자는 콘치따의 이해하는 능력과 특히 프랑스어로 대답하는 능력을 보고 놀랐다. 콘치따는 부르고스와 팜플로나의 수도원 학교에 다녔지만 수학한 기간은 비교적 짧았다.
유명한 신경정신과 의사요 바르셀로나 의과대학의 조교수였던 리카르도 푼세르나우(Ricardo Puncernau) 박사는 콘치따에게 검사를 실시한 후 아주 정상이라고 진단하였다.
    필자는 1968년 여름부터 스페인어를 정식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라반달(4회 방문)과 롱 아일랜드의 린덴후스트에서 여러차례 콘치따에게 상세하게 질문할 수 있었고, 인터뷰 내용을 녹음할 수 있었다. 또한 콘치따의 어머니와 형제 미구엘, 히야친따의 어머니와 아버지 및 호세 라몬 가르시아 데 라 리바 신부 등 발현을 목격한 주요 인물들과의 인터뷰 내용도 녹음하였다. 이러한 인터뷰 내용은 본문에 실었고, 그 때는 꼭 인터뷰한 사람과 날짜를 밝혀두었다. 모든 것을 분명하게 확인하는 것은 가라반달 사건의 역사상 현 시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정보를 다룰 때 날짜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어떤 사건에 대해 시간이 경과할수록 망각하기 쉽다. 콘치따와의 대화와 인터뷰에서도 이러한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콘치따는 어떤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겠다고 말한 일이 잦았다. 세월이 흐를수록 콘치따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사실과 대화, 심지어 성모님과의 대화까지도 점차 잊어가게 될 것이다.

                가라반달 성모님의 메시지          미래사건에 대한 예언
               성모 발현 목격자의 일기, 편지, 발현기록, 내적담화()
 

가라반달의 중요성

 

가라반달의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흥미진진하다. 흥미진진한 만큼 위험도 많다. 즉 흥미진진한 사실만 보고, 여기에만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서는 안된다. 이러한 사실들은 하나의 수단이요, 도구로써 가라반달 사건의 진정한 이유요 목적인 메시지로 이끄는 관문에 지나지 않는다... 콘치따가 간단한 말에서 두 번이나 언급했다는 것은 그 중요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우리가 메시지를 따르지 않는다면 발현을 믿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메시지를 따르면 발현을 믿든 믿지 않든 상관이 없다."

가라반달 메시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비추어, 다시말해 교회가 처해 있는 위기에 비추어 살펴 보아야 한다. 모든 진정한 발현에서 제시된 메시지는 복음 메시지의 재진술 또는 그 적용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교회는 이러한 메시지에 대한 재음미를 요구하는 영적인 위기를 맞아 이러한 메시지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우리의 각성 자료로 삼아야한다. 문제는 메시지의 적시성(適時性)에 있다. 이러한 메시지들은 교회 역사 속의 특정 시기에 필요로 하는 하느님의 지시요 명령이다. 메시지의 기본적 내용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메시지가 바로 필요한 때에 감동적이요 매혹적인 발현이라는 도구를 통해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다시말해 메시지의 진정한 의의는 필요한 때에 맞추어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가라반달의 메시지도 분명히 필요한 시기에 맞추어 주어졌다. 우리의 신앙과 신심행사 중 중요한 많은 것들이 시련에 봉착해 왔다. 이러한 일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일어났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나온 문헌에서는 이러한 사건의 전환을 합리화시키거나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부터 교리와 신심에 대한 논란이 점점 심화되어 오다가 공의회를 맞이하여 터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교회의 권위, 사제직과 성체, 성체성사와 성모님께 대한 신심, 그리고 성인, 죄, 지옥, 참회 및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반성, 특히 묵주기도와 스카풀라의 착용 등은 각기 그 비중은 다르지만 모두 가라반달 메시지의 일부로서,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도전받아 온 것이다. 어떤 것들은 공공연한 배척과 거부를 받았는가 하면, 어떤 것들은 열기가 식어서 망각 속에 묻혀 버렸고, 어떤 것들은 지금도 그저 무시되고 방치되고 있다. 따라서 이 모든 것들은 신앙과 기도생활, 그리고 신앙을 살찌울 신심행사들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1970년 9월 13일, 콘치따는 몇 명의 아일랜드 순례자와 월터 J. 큐션으로부터 "오늘날 왜 교회를 떠나는 사제들이 많은가" 라는 질문을 받고, "그것은 복되신 동정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 이라고 대답하였다. 물론 이 대답은 콘치따 자신의 대답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이라고 해서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성모님과 자주 대화를 했던 그녀에게서 나온 말이기에 의미심장하게 들어야 한다. 아직 우리에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콘치따가 성모님과 수없이 나눈 대화에서 우러나온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모님께 대한 우리의 태도를 진지하게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 우리에게는 루르드와 파티마가 있기 때문에 가라반달은 필요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대답이 있다. 즉 루르드와 파티마의 메시지는 지금도 중요하지만, 오랜 세월의 경과로 인해 그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었으며 그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에 주는 효과도 희미해졌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이따금 새로운 깨우침이 필요한 듯하다. 루르드(1858)와 파티마 발현(1916-1917)사이의 기간과 파티마와 가라반달 발현(1961-1966) 사이의 기간이 거의 50년이 된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진정한 기도

그러나 가라반달의 메시지가 중요하다는 것은 그것이 시기적절하게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묵주기도와 일반 개인기도를 천천히 묵상하면서 바치라는 요구와 성체와 사제직에 대한 강조-가라반달 메시지의 일부를 이룸-는 오늘날의 필요성을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다.
메시지의 가장 중요하고 시기적절한 점은-직접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기도를 강조하고 나아가 올바르게 기도를 바치라는 지적이었다. 즉 메시지는 기도와 올바른 기도 방법을 강조하고 있다. 성모님께서는 가라반달에 2,000회나 발현하시어, 그 때마다 소녀들에게 묵주기도를 바치라고 말씀하셨다. 성모님께서는 소녀들에게 묵주기도를 바치게 하시고, 때때로 발현 중 오래 머무실 때에는 한 번 이상 바치게 하셨다. 소녀들은 무아경 속에서도 묵주기도를 바쳤고, 길을 갈 때나 병자의 집을 방문했을 때나 무덤을 찾아갔을 때나 교회 주위를 산책할 때에도 묵주기도를 바쳤다. 성모님께서는 일요일 뿐만 아니라, 아침에도 저녁에도, 걷거나 일할 때에도 항상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성모님께서 가장 큰 관심을 보이신 것은 기도의 질(質)이다. 성모님께서는 소녀들에게 묵주기도 뿐만 아니라 모든 기도를 천천히 깊이 묵상하며 바치라고 가르치셨다. 소녀들이 무아경 속에서 바친 기도를 녹음한 테이프를 들으면, 성모님께서 소녀들과 우리에게 원하시는 기도의 방법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녹음한 테이프에서 소녀들은 두 마디 또는 세 마디씩 묶어 천천히 또박또박 기도를 바쳤다.
은-총-이-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주-께-서- 함-께-계-시-니
여-인-중-에...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 또-한
복-되-시-도-다.
이와 같이 성모송 전반부를 바치는데 여섯 번 쉬었고 이를 바치는데 20초 이상이 걸렸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기도를 우물우물 바치는 데 습관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것은 제대로 기도를 바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혀와 입으로만 기도해 왔지. 마음과 정신으로는 하지 않았다. 성모님께서 소녀들에게 표현하신 대로 "우리가 기도하면서 생각하기" 위해서는, 천천히 기도를 바치고 단어 하나하나를 분명하고 명확하게 발음하며 몇 마디마다 쉬어가며 해야 한다. 즉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따라갈 수 있도록 우리의 혀와 입술과 보조를 맞추어 가며 해야 한다. 빨리 기도하면 말마디의 의미를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깊이 생각하며 기도를 하기 위해 각자 자기에게 맞는 정확한 속도를 찾아야 한다. 이는 묵주나 다른 기도 뿐 아니라 성무일도(星務日禱)를 바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마음과 정신으로 기도를 바칠 때 진정한 기도가 되고, 하느님께 흡족하고 우리에게 의미있고 만족스러운 기도가 될 것이다.

가라반달은 마리아의 발현이다. 예수님의 어머니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아래에서 마리아께서 맡으신 역할이 독특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성모님은 단순한 성인(聖人)이 아니시다. 따라서 성모님께 대한 신심은 단순히 어느 성인에 대한 신심과 같이 우리의 선택에 달린 것이 아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계신다. 우리는 무엇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성모님께서 가라반달에 파견되신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마리아께 관해 진지하게 탐구하기를 원하신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성모님을 만드신 대로 우리가 인정하기를 원하신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계획에서 성모님께 맡기신 역할을 우리가 인정하기를 원하신다.
어떤 의미에서 모두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마리아를 재발견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사소한 좋고 싫음에 따라, 아니면 우리의 차갑고 지적이거나 따뜻한 정서적 성격에 맞추어 상상적인 마리아를 창조해 낼 수 는 없는 것이다. 문제는 교회와 우리 개인의 생활에서 마리아를 통한 하느님의 계획을 발견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마리아, 진정한 마리아, 하느님의 마리아, 새로운 하와, 예수의 어머니요 동반자(同伴者)이신 마리아를 발견하고 또 재발견할 수 있도록 겸손하게 기도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 신비체의 한 지체로서, 하느님의 모든 백성과 온 교회가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실현시키는데 마리아의 것은 마리아께 바치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스카풀라를 착용하고 가라반달에서 가르쳐준대로 매일 천천히 묵주기도를 바치면, 멀지않아 하느님께서 계획하고 뜻하신 대로 진정한 마리아를 찾게 될 것이다.

... 교회의 교도권에 의해 여러 세기 동안 권장되어온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신심행사를 중히 여기십시오. 그리고 신심행위들 중 특히 상기할 만한 것은 마리아의 묵주기도와 가르멜 산의 스카풀라 착용입니다. -교황 바오로 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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