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PHIAD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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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Gott und Die Weltanschauung III
둘째로

변증학(신국원역 CLC)에서 기독교 실재론에 대한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에서 특히 두번째에서는 계층설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계층설(Tow-layrs theory)에서 곡해하는 경향이 많이 있음을 지적해둡니다.

'Tow-layrs theory'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창조물과 피조물의 구분이라는 개념은 그 상태만 생각한다면 불가지론적 입장이 되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자존의 하나님 자신의 절대 주권적 정당함을 가지고 상대적인 것의 정체성을 말하게 될 때에 즉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상대적인 것을 가지고도 절대재가 가운데 절대적으로 절대를 나타내실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재가라는 가운데서 즉 기름부으심 즉 그리스도 즉 메시아적인 입장을 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종교적 성별이라는 개념으로서의 실재를 말할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재론이라고 함 즉 메시아 안에서 우리 성도들이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되어지는 것과 같이 믿음으로 행하는 것의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의 재가가 있게 되어지는 실재의 분리가 아닌 실재의 구별로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불가지론적 입장에서는 재가라는 개념을 말할 수 없으며 또한 그리스도 예수님과의 상관성을 말하지 못하게 됩니다. 형식적인 표현은 있지만 구별할 수 있는 근거라는 것은 성별이 있지 않고 분리(saparate)에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보스와 반틸의 실재론적인 입장에 대한 정리

기독교 실재론은 여호와 하나님 이름에 있으며 또한 이것은 실재의 분리라는 상대적 개념에 비로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메시아 안에서 기름부음이라는 성별을 통한 실재의 구별이라는 점에서 말하게 되어지는 것으로서의 실재를 말하는 것을 말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칸트이후에 윤리신학이 성립되어지는 것은 불가지론적 입장에서 특히 버틀란트 러셀의 지식론이라고 함에 따른 개념에서 실천이성에 따른 요청적신과 기술적 개념의 신관이 있을 뿐이라는 개념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진리의 본성을 알 수 없다는 것과 같이 불가지론적 입장이면서 사물의 '직접지'라는 그러한 것의 확실성으로 인식의 한계를 설정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과 달리 기독교 실재론은 기독교 유신론적 정당함 속에서 이루어지며 또한 여호와 하나님 자존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의 실재론에서 그 정체성의 실존의 정당함을 입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Die Weltanschauung



1. 세계관이라고 함의 정의를 분석함에 있어서..

세계관이라고 하는 것의 원어를 전광식 교수님은 독일어에서 'Die Weltanschauung'로 찾고 있습니다.(전광식 학문의 숲길을 걷는 기쁨 CUP
12p)

그런데 전교수님은 그 원어분석은 시도하지 않으시고 시대별 인식에 따른 개념의 변천사 개념사에 대한 것으로 시작하시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서 저는 이 세계관이라고 함의 원어라고 함을 분석하면서 구체적인 언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Die Weltanschauung'이란 말은 합성어로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우주라는 말로써 'Die Welt'말과 본다는 동사도 되면서 '직관'이라는 말로써 'Das anschauen'이란 말로 쓰입니다.

이러한 것은 '우주를 직관함에 따른 것으로서의 지혜'라고 함을 말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이라고 하는 곳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재론을 찾게 되어지는데 자연이라고 하는 개념이 보편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스스로의 원리'라는 것을 지닌 것으로서의 우주라는 개념을 상정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자연인식이 그의 실재론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세계관이라고 함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에 비교되어질 수 있다는 것에서 철학과 그 상관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언어가 바로 세계관이라고 하는 언어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플라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비교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함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 시간의 담론을 말하게 되어지는 가운데서 변하지 않는 그러한 것에 대한 상념이라고 함이 '이데아'를 상정하게 되었음에 대한 것을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세계관이라고 함이 플라톤 철학적 개념과 그 상관성을 말하게 된다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더욱 마음에 두게 되어지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공통적인 개념에서의 언급이 가능한 것은 인간론으로써 두 영혼설을 말함에 있어서 공통적임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후에 세계관에 대한 것을 말하는 철학자 '딜타이'가 심리학으로서의 세계관을 말하는 중심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말하게 되어지는 것은 세계관이라고 하는 것이 철학적으로 상대적 보편이라고함에 따른 상대적 현상학적 실존에 따른 것으로 자리매김되어지는 언어라는 개념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말하게 되어지는 것은 불가지론적 입장에서 상대적인 인식의 기본적인 지식론을 따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때에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의 실재론을 따르고 있지 않다는 것으로서 구별되어질 수 있는 체계로서의 정체성을 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현대신학에서는 우주론적인 또는 종교철학적 개념에서 또 상황화 신학에서 불가지론적 철학에서 언급되어질 수 있는 상대적 보편실재론에서 기반하고 있다고 할 때에 결코 기독교 실재론으로써 기독교 유신론으로써 대체할 수도 없고 또한 정당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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