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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로 진행되는 영어 공교육과
공용론에 관한 주장
“정말 나라를 망치려고 드는가?”
각 언론매체에서 나오는 영어
공용화론 주장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나는 말이다. 얼마전 우리나라의
경제위기 이후 영어(미국식)가 마치
전세계적인 추세이고 모두가 그것을
해야만 한다는 이상한 논리에
사로잡힌 소위 지식인들에 대해
생각을 할 때마다 참으로
순진하면서도 철이 없다는 생각 밖에
들 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러한 시류에
편승한 행정부 관리 및 정치인들은
급기야 어린아이들에게도 영어를
의무적으로 배우게끔 만들었는데 이
역시 정말 나라를 망치려고 하는 지에
대한 의구심만 들 뿐이다.
사회가 점점 민주화 되어 가면서
다양한 가치관의 목소리가 들리고
이들의 요구가 반영되어 지는 것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지한 고민없이 책상 끄트머리의
허무맹랑한 공상까지도 하나의
가치관으로 받아 들여져야 하고
건강한 시민의 요구로서 국가정책에
반영된다는 것은 우리가 어서 떨쳐
버려야될 어처구니 없는
비극인것이다.
공교육에서의 영어교육
정부는 앞으로 초등학교 영어
교사들에게 모두 영어로 수업을 할
것을 지시하고 이에 대한 대비를
하라고 지시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영어 교사는 물론 학부모들도
반발하였는데 그 문제인 즉 슨 영어로
수업이 가능한 영어 교사의 비율이 체
10%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동안 끊임없이
문제제기 해 온 7년동안(중/고/대학)
영어를 공부해도 외국인 앞에 서면 단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우리 나라의
영어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리라는 순진한
기대감에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회화는 일주일에 서너 시간
하고 잊어버리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학교 교육의
절반이 영어 교육이라고 해도 그것을
담당할 교사의 부족과(해결 불가능한
문제) 교문 밖을 벗어남과 동시에
시작되는 잊어먹기는 더더욱 해결
불가능한 문제일 것이다.
나는 얼마 전 조카(초등학교
2학년이며 지난 1년간 사교육으로
영어를 배움)가 영어로 대화를 하기
원해 응해주었지만 이내 그가 하는
말을 한마디도 알아 들을 수
없음(물론 전혀 불가능한 대화는
아니었다)을 깨닫고 중단한 기억이
있다.
완전히 익숙해져 버린 한국식 영어
발음과 몇가지 단어 나열로는 대화가
불가능함을 진작에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이 아이는 앞으로 1년후면
보다 심도(?)있게 학교에서 영어를
배울 것이지만 조카의 친구 부모들을
비롯한 나의 누나는 동일한 고민을
하고 있다. 바로 사교육의 현장으로
아이를 내몰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공교육에서 담당하지 못하는
문제는 사교육에서 훌륭히(보이기에)
해결해주고 있는데 그 원천은 부모의
경제적인 능력에 좌우된다. 이것은
근본적인 문제인 교육에서 있어서
‘왜?’라는 의문이 빠진 채 진행되고
있는 슬픈 교육의 현장인 것이다.
이것을 쉽게 설명 해보면,
1.영어교육필요
2.회화 교육이 중요함
3.어릴때 교육이 중요함으로
초등학교에서 교육을 시작함
4.공교육에서 담당이 불가능하므로
사교육 시장으로 진출해야함
5.부모의 제정적인 능력에 따라 회화
수준이 달라짐
6.결국에는 교육이민이라는 극단적인
수단까지 올라감 혹은 영어 공용화
주장
이러한 순서가 될것이지만 가장
처음의 문제인 1번인 ‘왜?’
영어교육이 그렇게 필요한 지에 대한
의문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이러한 고민은 앞에
언급하였던 대로 진지한 고민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한낱 몽상이
검증절차 없이 국가의 정책으로
규정되고 모두가 이를 따라야 한다는
비극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정말 영어 교육이 문제인가?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이 정말 엉터리
이고 거의 10년 가까이 학교에서
영어를 배워 왔지만 외국인(미국인)
앞에서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우리의
영어 교육은 외국으로 떠난
이민자들의 입에서도 현장의 목소리로
나오는 것을 보면 정말 그러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그러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영어는
말 그대로 언어이고 따라서 문화이다.
글로서만 표현할 수 없고 반드시
회화라는 것이 수반되어야만 한다.
손쉽게 생각하면 언어이기 때문에
그러한 언어 환경에 가면 짧은 시간
안에(어릴수록 빠름) 그 언어 환경에
익숙해지는 것은 자명한 결과다.
그러나 그 회화라는 것이 국제화가
상당히 진행되었다는 한반도에서 정말
얼마만큼의 유용성이 있는지는 고민해
볼만한 일이다.
오히려 영어는 언어이기 때문에
대화보다는 쓰고 읽는 문제가 더욱
절실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왜 말
못하는 꿀먹은 벙어리 한인
유학생들이 미국 대학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좋은 평가를 받는지
생각은 해보았는가?
나는 오히려 읽고 쓰는 것을 교육시켜
준 기존의 교육방식에 감히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상당부분 억지이긴
하지만). 10-20대 청년을 미국의 어느
도시에 2년만 살게 하면 영어 잘한다.
물건도 사고 전화로 서비스 신청도
하고… 그리고는?
어떤 것이 꼭 필요한 것이고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지는 자명하다. 유학간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당장 상점에서 물건을
사는것도 있지만 책을 읽고 에세이를
쓰는 고급영어이다. 이것은 회화처럼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학교에서 영어회화 교육을
강화한다고 해도 '오스틴 파워'라는
영화를 보면서 왜 거기에
제리스피링거 쇼가 나와서 웃긴지
이해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반드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우리가 미국의 어느 한 주에
편입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할것이다. 정말 그것을 원하는가?
시장 원리에 따른 차별
영어 교육 공용론자들이 흔히 드는
논리는 당연지사 외국의 사례이다.
그러나 과연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나라중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들 중 성공한 사례가 몇이나
될까? 필리핀, 인도, 파키스탄 등등
이들에게 있어서 영어는 국제화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식민지 국가들의
비참한 결과였다. 이들에게 있어서
영어는 차별의 수단이며 또 다른 계층
분화의 한 전형이다.
마치 21세기가 되어도 컴퓨터를
모르고 시골에서 소로 논 갈고 달구지
타고 다니는 촌로가 있으리라 예상
했듯이 어느 누구나 자유롭게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인구는 우리가 영어를
공용화 하여도 절반을 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 절반은
나머지 절반에 비해 심화되어간
계층간 차별을 누리고 삶이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가 보아오는 저들 나라도
마찬가지다.
90%의 절대빈곤층과 10%의 절대부를
원하는 것인가? 비약이 심하지만
이처럼 영어라는 것은 이러한 계층간
부의 분배 문제를 더욱 가중시킬
것이다. 여기서 싱가폴이나 홍콩의
사례를 들 수도 있지만 너무도 작은
도시(국가)들이고 우리와 같은 비교의
대상과는 차원이 틀린 것이다. 물론
여기서 유럽국가들도 차이는
매한가지다. 가장 영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독일어권 국가들의 경우
워낙 영어와 차이가 없으므로 논외로
해야 함은 당연지사 일것이다.
결국은 영어를 잘할 수 있는 우리의
어린이들은 부모의 부의 정도에 따라
이미 그 출발선상이 다른 것은 자명한
일이다.
무슨 해괴한 몽상인가?
영어공용론자들과
조기영어교육론자들은 하나 같이
전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세계화’라는 얼토당토 않은 현상을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한자병용 문제와 동일선상에서 놓고
보아도 충분한 이해가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오늘 아침
중앙일보에 기고한 엉뚱한 중국인
교수의 한자병용론과 같이 한글은
소리 글자 이기 때문에 그
글로만으로는 해독이 어렵고 반드시
한자와 병용해야만 한다는 주장을
실어주는 매국적인 언론에서
기인한다.
퇴계로가 퇴계 이황 선생의 호를 딴
길이름이지만 한자와 병용하지 않아서
아무도 그 뜻을 모르고 있다는
주장이지만 어느 누가 모른다는지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설령 모를
수가 있다. 하지만 나는 이나라에
살면서 적어도 미국에서 살 때와는
달리 전화하면서 ‘S like Super, E
like Echo, C like Computer’ 라는
말을 해본적이 없다. 이러한 문제는
이미 한겨레신문에서 좋은 본보기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이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또 다른 하나는 기업간의 경쟁에서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꼭
필요한 사람들이 하면 되지, 왜 엄한
국민들을 볼모로 잡아서 혼동스럽게
하는가.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한자가
싫어서 모두 낙제점수를 받으면서
살아왔지만 사회생활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음은 물론 이려거니와
특별히 책을 좋아하는 나의 독서
생활에도 커다란 불편을 못느끼고
살아왔다. 멀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 좋은 본보기 일 것이다.
용가리 영화를 영어로 제작하건
대학교제를 영어로 하건 나와는
상관도 없지만 관심조차 없다. 다만
관심 가는 것은 그 수많은
대학교제들이 일본책을 표절하고서
팔리고 있다는 점이다. 창피한 줄
알고 그러한 주장을 하길 바란다.
미국과 무역을 하는 업체라면 영어를
할줄 아는 사람을 고용하고 영어로
대화하길 원하는 사람은 그러한
사람을 찾으면 그만이다. 혹은
몽상적인 공교육에서의 영어 교육을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그냥 자신의
몽상 단계에서 끝내고 자제들을 유학
보내던지 같이 떠나면 그만이다.
영어가 포용력이 강해서 다른 나라의
언어를 잡아먹기 때문에 잡아 먹히기
전에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엉뚱한
생각을 말하지 마시라.
왜냐하면 유감스럽게도 전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세계화가 필요로 하는 것은
언어인 영어가 아니라 정당한(!)
규칙과 법 그리고 견제이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학교에서 영어회화를 교육하고
회화의 중요성을 강조해도 이것이
해결 불가능한 문제이고 쉽지만은
않은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나라를 망친 전력이 여러 번 있던
지식인과 위정자들에게 한번 묻고
싶다. 정말 이것이 유용한 선택인
지를...
우리 어느 누구도 미국의 힘이라는
우산아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비참한
삶을 사는 프에로토리코나 괌과 같은
나라가 되길 원치 않지만 그대들이
정녕 원한다면 떠나시길 정중히 권해
드립니다.
더불어 개인적으로 한가지 이에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들
언론이나 지식인들의 말도 안되는
엉터리 영어나 보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제발 부탁이지만
영어를 사용하기 전에 그것이 맞는
것인지 확인이나 하고 사용하기
바란다) 노래 가사를 빌리자면 ‘너나
잘해’라고 쉽게 풀이할 수 있는
것이다.
2001/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