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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여름, "야후!"라는 조금은 생소하고 코믹컬한 이름을 탄생시킨 이 둘은 그야말로 풀타임 이상으로 야후! 디렉토리를 보완하고 유지하는 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새로운 사이트"(What's New)나 "추천 사이트" (What's Cool)와 같은 버튼을 추가 하면서 유저들로부터 더욱 더 각광을 받고 있을 무렵, 제리와 데이빗이 일을 하고 있는 트레일러 밖에서는 경쟁자들이 하나 둘씩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워싱턴 주립 대학에서는 WebCrawler라는, 그리고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는 Lycos라는 서치 엔진 제작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으며, InfoSeek라는 회사는 자사의 웹사이트를 유료화 하기 시작하였다. 대개 이 서치 엔진들은 유저가 키워드를 입력하면 스파이더(spider) 라는 프로그램이 인터넷을 뒤져 키워드가 들어간 사이트를 찾아 주는 새로운 알고리듬을 사용하였다. 한 개의 키워드를 입력하기만 하면 수 십만개 검색 결과 사이트를 제공하는 막강한 서치 엔진이라 처음에는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냈으나, 곧 한계에 이르고 만다. 즉 시간이 점차 지남에 따라 유저들은 많은 양의 정보를 공급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빠른 시간 내에 정확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느냐가 훨씬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야후!의 또 다른 창시자인 데이빗의 감각은 적중하게 된다. 데이빗은 아무리 웹을 기술적으로 운영한다고 하여도 마지막 손질은 인간이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the last step must be human) 야후!는 지금도 이러한 데이빗의 주장에 따라 디렉토리를 정리할 때 야후! 서퍼를 고용하여 그들로 하여금 각각의 웹사이트 내용을 검토하게 한 후, 적절한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정리하도록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유저들이 14개의 항목에서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검색어에 근접한 카테고리로 점점 좁혀 들어가 결국 원하는 웹사이트를 찾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다른 서치엔진과의 차이때문에 야후! 사이트는 스탠포드 대학 연구실의 서버가 거의 주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참고로 제리의 아케보노 워크 스테이션은 스탠포드 서버에 물려 있었다) 급기야는 그 당시 박사과정 담당 교수인 죠반니 데 미켈리 (Giovanni DeMicheli)로부터 더 이상 스탠포드의 서버가 야후!의 트래픽을 감당 할 수 없으니 둘의 취미 활동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제 야후!의 집을 찾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급선무였다.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94년 말이 되자 둘이 더 이상 집에도 가지 못하고 밤을 새서 일을 해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일이 쌓이고, e-mail과 전화가 폭증하였다. 그 무렵 각종 언론 매체에서는 이미 인터넷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떠들기 시작하였고, 또한 인터넷 보급에 획기적인 역할을 한 넷스케이프가 베타버전의 브라우저를 처음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리와 데이빗은 이러한 상황에서 무언가 새로운 도약을 하지 않으면 안된 다고 느꼈다. 따라서 제리는 학교 동창이자 하버드대 MBA 2년차인 티모시 브레이디(Timothy Brady)에게 사업 계획서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게 되었고 팀은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그 당시 이미 웹사이트에 광고를 담기 시작한 HotWired의 회사소개 자료를 토대로 야후!의 사업 계획서를 작성한다. 제리와 데이빗은 이렇게 완성된 사업 계획서를 들고 여기 저기 학교 근처 Sand Hill Road에 있는 벤처 캐피탈 회사들부터, 마이크로소프트, MCI, C/net과 같은 거물급 회사까지 여러 곳을 다니며 야후!에 대한 사업 설명을 하게 되었다. 결국 이 둘은 AOL과 Netscape, 그리고 벤처 캐피탈회사 Kleiner Perkins Carfield & Buyers로부터 제안을 받는다. Kleiner Perkins는 자기네가 이미 투자를 한 또 다른 서치엔진 회사 Architext (현 Excite)와 야후!가 합병할 것을 투자 조건으로 요구하였다. 한편 AOL은 제리와 데이빗이 자기 회사에 들어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 대신 스톡 옵션을 주겠다는 제안을 내 놓았다. 이것은 충분히 귀를 솔깃한 제안이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AOL은 한참 "잘나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AOL의 주식을 받게 되면 백만장자가 되는 것은 그야 말로 시간 문제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학교에서 쫓겨난 야후!를 호스트해 주고 있던 넷스케이프 역시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넷스케이프에서 같이 일해 보자는 제안을 했다. 제리와 데이빗은 아직 상장 전이고 또 가장 야후!와 비슷한 회사 문화를 가진 넷스케이프의 제안에도 상당히 끌렸다. 그러나 결국 이 둘은 모든 제안을 사양한다. 밤을 세워서 일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떤 일을 끝내고 결과를 볼 때 거기서 맛보는 성취감이 무엇보다 좋았기에 제리와 데이빗은 독립 노선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이후 AOL은 WebCrawler를 사들였고 AOL의 서치 엔진으로서만도 많은 유저를 끌어들이는 것에 성공을 하였지만 다양한 정보를 친숙한 포맷으로 전하는 데는 야후!만큼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넷스케이프와의 인연에서 야후!에게 한가지 매우 행운이라 할 수 있었던 점은, 인터넷이 넷스케이프 브라우저와 거의 동일시 되며 급성장을 할 때 넷스케이프 브라우저의 인터넷 디렉토리 버튼이 곧바로 야후!로 연결이 되어 있어 초기에 수많은 사용자에게 널리, 그리고 빨리 인식되는 행운을 거저 누렸다는 것이다. 결국 야후!는 Sequoia Capital의 Michael Moritz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쎄코이아는 컴퓨터 산업의 새로운 역사를 연 애플(Apple), 비디오 게임 산업을 창조한 아타리(Atari), 데이타베이스를 장악했던 오라클(Oracle), 네트워크의 자이언트인 씨스코(Cisco) 등에 투자를 하여 벤처 캐피탈로서의 권위를 쌓아온 회사이다. 야후!의 기획서를 받아 본 마이클 모리츠는 제리와 데이빗에 백만 불의 투자를 받을 건지 아닌지의 답을 24시간 안에 하라고 한다. 24시간 안이면 그 다음날 아침 열시까지라는 얘기인데 제리는 그 시간 안에 일어나는 것은 무리라고 하면서 2시간을 더 달라고 한다. 결국 이 둘은 26시간 안에 세코이아의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 처음 제리와 데이빗의 트레일러를 방문한 마이클 모리츠는 그 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회고한다. 아무렇게나 며칠 동안이고 빨지 않은 옷가지가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모습이며 피자 상자들을 한 구석에 쌓아 놓은 방은 "세상에 있는 모든 어머니들의 바램"을 저버리는 최악의 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너저분한 방보다 마이클 모리츠가 더 걱정한 것은 바로 야후! 그 자체였다. 도대체 누가 이런 리스트에 관심을 가질까? 뿐만 아니라 무엇을 하자는 사업인지도 불분명하였다. 야후!가 가진 것은 고작 해야 링크를 왕창 모아 둔 리스트 뿐이었다. 게다가 돈도 안받고 무료로 제공하는 일에 벤처 캐피탈이 돈을 투자한다는 것 자체도 아이러니였다. 아직 야후!에는 제리와 데이빗 이외에 일하는 사람도 없었고 이름 조차도 생소하였다. 애들 장난도 아니고 회사 이름이 "야후!"라니... 그러나 한때 기자였던 마이클 모리츠는 이미 인터넷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시공간의 제한을 초월해 정보를 교환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인식하던 참이었다. 또한 무료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고객을 확보해 놓을 수 있었다는 점 등이 전략적으로 사업을 잘 전개 시킨다면 괜찮은 사업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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