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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995년 4월에 쎄코이아로부터 창업기금(당초 제안의 4배인 4백만불)을 받은 제리와 데이빗은 사업 계획서를 써준 팀 브레이디(현Production부사장)를 첫번째로 고용하고 엔지니어인 도날드 로보와 일본 교토에서 만난 스리니자 스리니바산(현 부사장, Editor in Chief)을 채용하게 되었다. 이제 그들의 첫번째 쇼핑 목록에 오른 것은 CEO를 구하는 일. 아이들이 취미로 장난한다는 것과 같은 이미지에서 벗어나, 전문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때 제리와 데이빗 앞에 나타난 사람이 바로 Timothy Koogle이었다. 모토롤라, 인테멕에서 탄탄한 경력을 쌓아 올린 팀은 버지니아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을 한 후 스탠포드에서 장학금을 받고 공학으로 석,박사 과정을 마친 인재이기도 하다. 일명 TK로 통하는 팀이 이제 해야 할 일은 야후!에 "살붙이기" 작업이었다. TK는 "야후! 회사 만들기" 작업의 일환으로 95년 여름부터 야후!에 본격적인 광고를 받기 시작하였으며 (처음 광고가 나갈 때에는 유저들로부터 "변절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라는 등의 항의 이메일을 많이 받았으나 금새 시들어졌다고 한다), 19개로 분리되어 있는 항목을 14개로 간추렸고, 각종 언론 소스에서 뉴스 서비스를 공급받기 시작하였다. 이 가운데 경제 뉴스를 제공한 로이터와의 인연은 94년부터 시작된다. 150년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뉴스서비스 회사 로이터에서 마케팅 부사장으로 일을 하고 있던 존 테이섬(John Taysom)이 마침 야후!가 독자적으로 분투하고 있을 그 당시 스탠포드 대학이 있는 팔로알토로 파견 근무를 나왔다. 이미 지역 신문에서 야후!의 명성을 익히 알게 된 테이섬은 야후! 사이트를 자주 찾게 되었고, 그러면서 야후!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접하는 웹사이트야말로 정보 제공자와 정보 구매자의 간격을 좁혀 줄 수 있는 최상의 매체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존이 제리에게 전화를 해 만날 수 있냐고 물었고 제리는 이를 흔쾌히 승락하였다. 제리는 존에게 야후!는 단순한 인터넷 기술 회사가 아닌 미디어 회사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로이터와 같은 회사와 만나고 싶었다고 피력하였다. 존이 야후!의 본부인 트레일러를 이때 방문하게 된 것이 야후!와 로이터의 첫 만남이었고, 이 만남을 계기로 양사의 관계는 오늘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95년도 11월. 야후!의 경영진은 2차 사업 기금 모집에 나서게 된다. 목표 금액은 4천만불. 야후!가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이 몇 주일이 채 안된 때였고 불과 7개월 전에 4백만불의 창업자금으로 시작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4천만불이라는 돈은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그리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고는 했지만 아직 현금흐름이 원활히 되는 것도 아니었고 게다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경쟁자들과의 격차를 벌리기 위해서는 하루 바삐 도약을 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재정적으로 탄탄한 것이 중요하였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 따른 위기감과 과연 투자가들의 동의를 받아 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갖고 반신반의로 회의에 참가했으나, 예상과는 달리 액수를 밝히자마자 그 누구 하나 눈깜짝하지 않고 간단하게 통과가 되었다고 한다. 그 때 제리는 가슴을 치며 속으로 "제기랄, 더 달라고 할 걸!"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때 투자를 한 회사가 전부터 관계를 맺고 있던 로이터와 바로 급성장을 하고 있던 한국계 일본인 마사요시 손의 소프트 뱅크이다. 이미 90년대 초, 일본 PC 시장에 새로운 돌풍을 몰고 온 장본인이며 또한 94년도에 Ziff Davis의 컴덱스 사업을 인수해 미국 사람들을 놀라게 한 마사요시 손은 야후!에게 투자를 하기 불과 몇 주전에도 지프데이비스 전체를 21억불에 인수하여 다시 매스컴을 탄 존재이기도 하였다. 마사요시는 야후!에 대한 이야기를 시스코 이사회에 참가한 돈 발렌타인(Don Valentine)에게 들었다. 이 당시 야후!는 Ziff Davis와 계약을 맺어 잡지를 만들 계획을 추진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만약에 Ziff Davis의 새 주인인 소프트 뱅크가 야후!에도 투자를 하게 된다면 계약 진행도 부드럽게 이어질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소프트뱅크와 협력하여 인터넷이 한참 붐이었던 일본에도 야후! 지사를 설립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한편 PC업계에서의 미디어 황제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마사요시에게 인터넷 사업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야후!는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소프트뱅크는 2차 사업 기금 모집 때 5%의 야후! 지분을 사들인다. 그렇게 양사가 인연을 맺은 이후 소프트뱅크는 지금까지 자사의 지프데이비스를 통해 "야후! 인터넷 라이프" (Yahoo! Internet Life)라는 잡지를 발간해 뉴스 스탠드에서도 야후!의 존재를 알리게 하였으며 또한 야후! 재팬을 96년도에 51%을 지분을 갖는 형태로 설립하는 등 야후!와 꾸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야후! 코리아도 97년 말에 소프트 뱅크와의 합작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참고로 소프트뱅크는 야후! 이외에도 E*Trade, PointCast, Agents Inc., OnLive! Technologies, US Web, CyberCash 등과 같은 여러 인터넷 회사에 많은 투자를 하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모든 일이 부드럽게 진행되고 있는 와중, 96년 겨울 야후!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터지게 되었다. 넷스케이프가 그때까지 야후!로 직접 연결되어 있어 인터넷을 처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야후!의 존재를 알려 주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Internet Directory 버튼을 더 이상 야후!에게 할애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그 당시 야후!에 들어 오는 사용자 20% 이상이 이 버튼을 통해서 들어왔기에 이러한 소식은 어떻게 보면 야후!에게 있어 인공 호흡을 중단시킨다는 것과 같은 말로 들렸던 것이었다. 야후!는 넷스케이프에게 별도의 버튼을 추가해 야후!로 연결시켜 줄 것을 요구했으나 넷스케이프는 이 별도 버튼 사용에 대해 야후!뿐만 아니라 여러 서치 엔진 회사에게 경쟁 입찰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던 12월 중순 어느날, 야후!는 넷스케이프로부터 Excite가 Internet Directory 버튼의 새 주인이 되었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이 사건은 야후!가 이제는 혼자의 힘으로 살아 나가야 한다라는 현실을 깨닫게 된 전환점이었다고 야후!의 경영진은 회고한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야후!의 인기는 날로 치솟았다. 96년 2월에 접속한 횟수를 분석을 해 본 결과 95년 가을에 접속한 횟수보다 무려 2배가 넘었으며 (하루 6백만 page view), 6개월 안에 스폰서 회사도 80개를 넘어섰다. 상장 준비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야후!는 또 다시 소프트뱅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마사요시는 소프트뱅크가 단순한 투자 회사로 남기보다 전략적인 파트너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하는 한편, 파트너로서 30%이상의 지분을 요구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제리와 데이빗은 무척 고심했다고 한다. 상장 조건을 갖추려면 최소 10% 이상의 지분을 시장에 유통시켜야 하기 때문에 소프트뱅크에게 30%이상의 지분 참여를 허용하려면 제리와 데이빗의 주식 상당 부분을 내놓는 방법밖에 없었다. 물론 제리나 데이빗, 그 누구도 선뜻 나서기를 주저했다. 그러나 파트너로서 소프트뱅크가 지닌 이점을 잘 알고 있는 이 둘은 쎄코이아와 함께 의논한 결과 각각 똑같이 소유 지분의 일부를 소프트뱅크에게 팔기로 결정을 했다. 결국 제리와 데이빗은 각각 15%, 쎄코이아는 17%, 그리고 소프트뱅크는 37%의 주식을 갖게 되었고 소프트뱅크로부터 6천만불의 금액이 야후!의 통장으로 입금되었다. 1996년 3월 7일 드디어 야후!는 NASDAQ에 상장을 하게 되었고 이것은 월가의 "사건"으로 기록된다. 공교롭게도 금요일, 그것도 불길함을 의미하는 $13이라는 숫자로 시작한 주가는 하루 동안에 $43까지 치솟더니 결국 $33로 마감을 했다. 상장한 그날 야후!는 하루 만에 갑자기 시장가치 8억3천만불이 넘는 회사로 둔갑을 하게 된 것이었다. 물론 야후!의 진군은 여기서 멈 추지 않는다. 12개의 야후! 지역 사이트, 전세계 곳곳에 11개의 야후! 사이트가 생겨 났으며, 개인이 원하는 정보를 짜집기 할 수 있는 마이 야후!, 야후!에서 제공하는 무료 이메일 서비스 (2천 5백만 사용자 확보), 야후! 쇼핑, 야후! 채트, 야후! 파트너즈, 야후! 옐로우 페이지, 야후! 지도, 또 CDNow, Amazon, AT&T와 같은 회사의 제휴 등등 이제는 하루에 1억 4천 4백만 페이지 뷰를 돌파하는 회사로 성장했다.(참고로 현재 야후!의 페이지 뷰는 다른 경쟁사인 Excite, Lycos, Infoseek, Netscape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트레일러에서 곰팡이 냄새 맡으며 탄생한 야후!는 불과 4년 만에 시장가치 106억불(98년 10월 7일 현재)에 이르는 정상급 회사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런 실리콘밸리의 신화를 창조한 야후!의 다른 주역들은 누구이며 야후!의 성공 비결, 그리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경쟁자들과 싸워 나가야 할 야후!의 미래는 어떠한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1998년 10월
* 이 글을 수정하고 있는 오늘 현재(10월 7일) 야후에서 제 3/4분기 보고서를 발표해 잠시 소개한다.
주식 종가: $114.375 * 참고로 10월 7일 현재 관련 회사들의 시장가치를 보면, 넷스케이프 - 17억불, 라이코스 - 10억불, 익사이트 - 17억불, 인포시크 - 6억 4천만불, 아마존 - 47억불, C/net - 6억 6천만불 Reference: Robert Reid, Jerry Yang: Yahoo, Architects of the Web Jonathan Littman, "Yahoo's Brand of Cool, Upside (Sept. 1998) James Lardner, "Yahoo! Rising the Stock May Be Crazy,... (Business & Technology 5/18/98) Yahoo! The Company, the Strategy, the Stock (BusinessWeek 9/7/98) Why Softbank is Shouting "Yahoo!' (Business Week, Int'l Edition 9/7/98) Hoover's Company Profile: Yahoo! Inc. Yahoo! Reports Third Quarter Profit (Company Press Relea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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