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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아악! 홍역이란다.

 

2001년 2월 1일 목요일 309일째
도윤이는 제 고추가 신기한 모양이다. 응가를 할 때마다 엉덩이를 물로 씻기고선 한참 벗겨 둔 채 두는데 오늘은 제 고추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는 손가락으로 잡았다 놓았다 하는 게 아닌가. 기저귀 속에 숨어 있다가 가끔 한번씩 바람을 쐬는 제 몸 한 부분이 특별하게 느껴지기라도 하는 걸까. 그러나 그 관심도 길지는 않다. 3~4번 잡았다 놓더니 금세 장난감을 찾아 기어간다.
어제는 싱크대 문을 열어 안을 뒤적이다 나사못 하나를 찾아내어 먹으려다 엄마한테 들켜 실패한 도윤이가 오늘은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먹으려다 또 실패했다. 정말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는 심각한 구강기다. 이 구강기는 언제나 끝이 나나.
도윤이는 하루 종일 몹시 시끄럽다. 옹알이를 아주 열심히 하기 때문인데 거의가 단음에 가까운데도 참 다양하다. 빠빠빠빠, 뜨아뜨아뜨아, 까까까, 아아아아, 아아아따- 아아아따, 어부부부 아-따, 어띠아어띠아-... 목소리도 많이 커져서 혼자서 떠드는데도 시끌시끌하다. 어쩌다 실수로 '아빠-'도 하고 '엄마', '어부바'도 한다.
식탁 밑에 들어가 의자 다리 사이로 빠져나오기도 하는 등 운동신경이며 주의력도 상당히 좋아졌다. 이제 식탁에 머리를 부딪쳐 우는 일은 없다. 오히려 의자 밑에 들어갔다 나오는 새롭게 도전에 열중이다.

2월 2일 금요일 310일째
이번 설을 지나면서 도윤이의 취침시간이 확 바뀌었다. 보통 밤 1, 2시경에야 잠들어 아침 10시경에 깨곤 하던 아이가 밤 10시가 넘어가면 잠투정을 한다. 그러다 10시 30분경이면 잠이 들고 아침에는 식구들 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데 그 시각이 8시. 마치 시계를 보고 그러는 것처럼 정확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저 혼자 놀고 있다. 뒹굴거리다가 침대를 붙잡고 왔다갔다 하거나 장난감을 꼼지락이거나 하면서 '우워-우워-' 옹알이를 해댄다. 살짝 실눈을 뜨고서 한참 구경하다가 알은체를 해주면 아이는 좋아라 하고 얼른 달려들어 가슴에 착 안긴다. 그 보드라운 살결과 목에 감기는 아이의 야무진 팔 힘은 내 잠을 멀리 쫓아 버린다.
도윤이에게는 몇 가지 고약한 버릇이 있다.
1.걸핏하면 제 엄마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급기야 뽑고야 만다. 저는 재밌는지 모르지만 당하는 나는 매번 고역이다.
2.한 손으로 바닥이며 냉장고, 의자 따위를 탁탁 치는데 제 엄마 어깨며 등, 머리도 치고 제 아빠 머리도 친다. 물론 발달의 한 과정이겠지만 자칫 버릇없어 보일까봐 걱정이다.
3.요즘 새로 생긴 버릇으로 깨물기. 어제는 팔꿈치 쪽을 제법 세게 물렸다.
4.뭐든 입으로 가져가는 것. 드디어 싱크대 문을 완전히 열고 양념통을 꺼내는 데 성공. 거기까지는 괜찮은데 양념통이 곧장 입으로 향한다. 문제다 문제. 이 구강기는 대체 언제 끝나나.

2월 3일 토요일 311일째
도윤이는 짬짬이 혼자 걷는 연습을 한다. 오늘도 아무도 유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안한 걸음을 세 걸음. 아슬하슬하더니 금세 주저앉고 만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세 발짝이나 아무것도 안 잡고 걸음을 뗐는데. 오후에도 또 한번. 기특하다.

2월 4일 일요일 312일째
웬만하면 서 있으려고 하는 도윤이. 이제 발바닥이 납작해졌다. 아직 단단하지는 않지만 힘이 닿는 부분이 납작해져 있는 발바닥, 참 귀엽다.
아무 낌새도 못 느꼈는데 덕정리 이모댁에서 도윤이가 자꾸 보채며 우유도 안 먹으려 들었다. 수다스러운 두 아이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그렇거나 낯선 곳에 와서 그런 거리라 단순히 생각했다. 그런데 한참 뒤 아이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볼 양으로 얼른 이모댁에서 나왔는데 병원이 문을 안 열었는지 통화가 안됐다. 하는 수 없이 부루펜 시럽을 사서 집으로 왔다. 옷을 벗기고 한 10분쯤 지난 뒤 그래도 열이 안 떨어져서 시럽을 2.5cc 정도 먹였다. 약을 먹인 지 1시간 30분, 열은 떨어졌고 우유도 200ml나 먹었다. 다행이지만 내일은 병원에 가봐야 한다. 도윤이 코에서 그러렁 소리가 난 건 대구에서부터였고, 그것이 감기 기운이었다면 벌써 일주일이 넘은 셈이다. 그래도 단순한 감기라면 참말이지 다행일텐데, 혹시 홍역이라도 걸린 거라면 참으로 걱정이다. 아까 아이 몸이 38.2도에서 38도 사이를 오락거릴 때는 정말 몸둘 바를 몰랐다. 이마보다는 머리 뒤, 목, 몸뚱이, 손바닥이 특히 뜨거웠다. 그동안 한번도 아픈 적이 없었기에 그저 당황스러웠다. 홍역이라면 어떡하나. 홍역도 처음 증상은 감기와 똑같다는데...

2월 5일 월요일 313일째
오전에 괜찮던 아이가(새벽 3시 30분에 먹인 약 때문이었는지) 오전 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열이 치솟아 38.8도까지 올랐다. 가슴이 철렁. 아이의 열은 아이만이 아니라 나까지도 지배했다. 그 열은 내 머릿속으로 곧장 파고들었다. 시럽을 먹이고 30분이 경과하자 열은 37.5도로 떨어졌다. 물론 옷도 웃도리는 벗겨두었다. 약과 우유를 먹은 아이는 다시 잠이 들었다. 혹시라도 홍역이면 어쩌나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남편이 퇴근해 오면 병원에 가겠지만 병원 출입도 얼마나 두려운지. 온갖 바이러스들이 둥둥 떠다니는 병원에 데려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건지... 만약 단순한 감기라면, 그걸 알 수만 있다면 그냥 집에서 견뎌 보게 해주련만, 홍역 초기 증상은 감기와 똑같다고 하니 다른 방도가 없다.
아이가 내 가슴에 얼마나 깊이 자리하고 있는지 새삼 느낀다. 남편도 아마 일이 손에 안 잡힐 거다. 우리에게 이 아이는 얼마나 끔찍이도 소중한가.
오후 6시 30분. 결국 병원에 갔다. 열은 38.8도. 목감기라고 한다. 물론 홍역일 수도 있지만 아직은 알 수가 없고 지켜봐서 몸에 열꽃이 피기 시작하면 홍역이라고 볼 수 있단다. 홍역만 아니었으면...

2월 6일 화요일 314일째
어젯밤부터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기 시작한 도윤이는 오늘 컨디션이 많이 회복되었다. 침도 안 흘리고 흰죽도 곧잘 받아먹는다. 이틀 동안 열이 계속 날 때는 침을 흘리고 죽 먹기도 거부했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2월 7일 수요일 315일째
어젯밤 내내 심한 몸부림으로 보낸 도윤이는 낮잠을 많이 잔다. 코가 많이 막혀서 숨을 씩씩댄다.

2월 8일 목요일 316일째
홍역이란다.
하도 증상이 이상해서 미심쩍었는데, 의사는 전형적인 홍역 증상이란다. 처음엔 사타구니에 기저귀 발진 같은 것이 돋아 있었다. 열이 나고 이틀 뒤였다. 그래서 단순한 기저귀 발진이라 여겼다. 이틀째 오후 병원에 다녀온 뒤 다음날 열이 떨어졌다. 감기약은 계속 먹였다. 4일째는 열이 없고, 오히려 35.1~35.5도 사이를 오락거렸다. 발진은 등에도 나고 배에도 났다. 아주 조그맣게 좁쌀보다 더 작은 것들이라 단순한 열꽃인 줄 알았다. 그리고 어제 저녁엔 귀 뒤에 빨간 반점 2~3개, 이마에도 반점들이 약하게 나타났다. 5일째인 오늘 발진은 콧잔등에도 몇 개 더 나고 등과 배는 많이 번져서 온통 벌겋다. 이마와 등, 배, 사타구니, 엉덩이, 목에 발진들이 돋아있고 아직 팔다리와 볼에는 없다.

<홍역 일지>
2월 7일

7:00 기상, 우유 100ml, 황금색 설사
9:00 응가(설사 아님)
9:20 200ml, 생선죽(조기) 3큰술
10:00~1:00 약 먹고 자고 일어나 잘 논다. 요미얌 1개(40그램)
2:00 응가(설사 조금), 생선죽 1/2공기
2:40 약 먹고 목욕, 사타구니가 온통 벌겋고 등에도 좁쌀만한 반점이 가득하다.
3:30~5:00 새우깡 2개, 우유 170ml 먹고 잠. 숨이 고르다.
5:30 치즈 1장, 응가를 지림
6:00 50ml, 칭얼댄다.
8:30~9:00 심하게 보채다 잠들었다. 코로만 숨을 쉰다.
9:30 100ml, 바나나 1/2쪽, 귤 2쪽
9:50 응가(설사 아님), 잘 논다.
11:40 160ml 먹고 잠
**코가 불편한 듯하고 응가는 설사를 하는가 하면 지리기도 하고 왔다갔다 한다. 먹는 건 신통치 않다. 특히 우유는 먹는 양이 아주 많이 줄었다. 잘 노는 걸 보면 전혀 아픈 아이 같지 않다.

2월 8일
8:00 기상
8:30 응가(설사 아님), 열 35.1도
8:40 우유 80ml
9:30 생선죽 1/2공기
10:00~11:30 잠
12:00 된똥 조금
12:20 죽 1/2공기, 우유 50ml
2:00~4:00 자고 나서 심하게 보채고 등과 배의 반점이 아주 심해졌으며 목과 이마도 온통 벌겋다.
4:30 쎄레락 1공기(물 90ml+32그램), 우유 30ml, 요구르트 1모금
5:00 짜먹는 요구르트 2개(약 60그램)
6:00 병원-전형적인 홍역 증상이란다. 합병증만 없으면 된다고 한다. 반점은 이마에서 눈 언저리까지 내려왔고, 콧잔등에도 한두 개, 열도 없고 약간의 코막힘 외에는 다른 증상은 거의 없다.
7:00 우유 80ml, 감자스틱 2개
7:40 우유 30ml
8:00 우유 30ml
11:00~ 잠
**먹는 양이 너무 줄어서 애가 탄다. 컨디션이 안 좋은지 껌처럼 엄마 몸에 찰싹 붙어 있으려 한다.

2월 9일
7:00 6시부터 보채다 우유 90ml를 먹고 다시 잔다. 반점은 손가락과 발등에도 보이고 얼굴에도 입 주변과 코 옆에 조금 더 났다.
9:00 기상
9:10 커피우유 색 같은 응가
9:30 짜요 1/2개(약 20그램), 과자 2개
10:30~12:00 흰죽 1큰술, 우유 120ml를 먹고 잠. 배와 등, 사타구니, 이마는 많이 흐려져서 나아가고 있다. 지금은 엉덩이가 제일 심하다. 종아리 뒤쪽도 발진이 났다.
1:10 응가 조금, 흰죽 1/2공기
1:30 우유 120ml
2:00~5:00 3시에 깨어 10분쯤 보채더니 다시 잤다.
5:30 우유 200ml. 부족하다는 듯이 뚝딱 먹어치웠다. 이마는 많이 깨끗해졌다. 팔뚝에도 반점이 보이고 엉덩이가 제일 심하다.
5:50 묽은 응가
6:10 요미얌 1개
7:40~8:40 잠
9:00 우유 100ml
10:50~11:10 잠. 허벅지, 오른쪽 발등, 손등에도 발진 출현.
11:30 우유 200ml
12:00 응가 조금
12:30 잠
**의사가 말한 것보다 발진의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고 벌써 나아가는 부위도 있다. 의사는 앞으로 2~3일 더 진행되고 온몸이 벌개진 뒤 발진이 돋기 시작한 부위부터 서서히 연해져 없어진다고 했는데, 도윤이는 다른 부위로 발진이 퍼져가면서 이미 먼저 난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 홍역이라면 저 스스로는 몹시 힘들텐데 오늘 네 발짝이나 걸었다. 웃음도 되찾아서 종일 방긋방긋. 오늘은 엄마한테 치대지도 않고 혼자서 잘 놀았다. 아픈 아이 맞나?

2월 10일
8:00 기상 턱과 엉덩이는 아직 불그스름하지만 배와 등은 반점들이 사라졌고 얼굴도 깨끗하다. 아이의 컨디션은 최상인 듯하다. 잘 웃고 잘 논다.
9:00 우유 200ml
9:20 응가(상태가 아주 좋다)
10:30~11:00 잠
11:30 흰죽 1공기
12:30 우유 200ml
1:00 과자 3개
2:00~4:00 잠
4:00 죽 1공기, 짜요 1개
5:00 응가
6:00 우유 200ml
7:00~8:00 잠
9:00 우유 100ml
9:30 응가 아주 조금
10:00 우유 100ml
11:00 우유 120ml
11:10 응가, 대부분의 반점들이 사라지고 발목과 종아리에만 남았다.
12:00 잠
**우유도 죽도 잘 먹고, 응가 상태도 거의 정상. 4번 한 것 외에는 평상시와 다를 바가 없다. 아픈 데라고는 전혀 없어 보인다. 걸음마가 늘어서 두세 걸음은 아주 쉽게 걷는다.

2월 11일
9:30 기상, 우유 180ml. 이제 반점은 모두 없어지고 다리와 발등에 얼룩만 조금 남았다.
10:00 응가(정상)
10:30 된 닭죽 1/2공기
11:20~12:00 잠
1:30 새우깡 5개
2:00 우유 170ml
4:00~5:30 낮잠. 무슨 좋은 꿈이라도 꾸는지 자면서 실쭉실쭉 웃는다. 귀여운 녀석.
5:40 닭죽 1/2공기
6:20 우유 200ml
7:20 응가
7:45 요미얌 1개
10:00 우유 200ml
10:30 응가
11:50 요구르트 65ml
12:30 우유 80ml 먹으며 잠
**아장아장 천천히 열 발짝을 걸었다. 응가 상태도 정상이다. 한숨이 놓인다.

2월 12일
9:00 기상
9:40 응가(정상)
11:00 우유 200ml
12:00 닭죽 1공기
1:00~4:30 잠
4:30 죽 1공기
5:00 우유 120ml
6:00 목욕
6:50 요구르트 1병, 치즈 1장
8:00 쎄레락+달걀 노른자(잘 먹는다)
9:30 우유 120ml
10:00 응가
11:40 취침
12:30 잠결에 우유 70ml
**목욕을 하고 나서 로션을 바르고 오일을 바르는 그때에 도윤이는 그 통들을 교대로 갖고 논다. 오일을 바를 때는 로션 통을, 로션을 바를 때는 오일 통을. 요즘 모든 뚜껑들을 입으로 여는 도윤이에게 그 통들을 그대로 맡겨두고 있었던 내 불찰이 큰 사고를 일으켰다. 로션을 바르는 사이에 오일 통을 갖고 놀던 아이가 뚜껑을 열고 오일을 먹고 있었다. 누워 있어서 오일이 입가에, 목에 온통 뒤범벅. 깜짝 놀라 통을 뺏느라 아이가 진짜로 오일을 먹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뭐 큰일이야 있을까만은...
홍역은 이제 완전히 물리친 듯하다. 다만 합병증이 안 오게 하려면 앞으로 당분간은 외출을 전혀 할 수 없으니 저나 나나 몹시 갑갑하겠다.

2월 13일 화요일 311일째 손가락을 다쳤다
블럭을 사주었더니 블럭은 안 갖고 놀고 블럭이 들어 있는 상자만 가지고 노는 도윤이. 그리 작지도 않은 유아용 블럭인데도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뭐든 큰 거만 가지고 놀려는 아이. 양푼이며 반찬통, 바구니 등 큰 것들만 장난감을 삼는다. 그런 아이가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블럭 상자의 문고리에 손이 끼고 말았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아플 텐데 저 혼자 힘으로 손가락을 빼내겠다고 버둥거리다 더 고생을 하며 소리 높여 울어댔다. 저도 나도, 남편도 허둥지둥. 문고리의 생김새를 미리 잘 살펴두지 못했던 내 무심함을 한탄하며 아이의 손가락을 빼내려고 애써 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아이의 울음 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우리는 진땀을 뺐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손가락이 쑥 빠져나왔다. 아이의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은 다른 손가락의 두 배 크기로 부었다. 아이는 10여분을 무섭게 울었다. 병원에 갈 정도인지 아닌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그저 벌겋게 부어올라 있을 뿐이고 잘 움직이니, 가만히 두면 그대로 부기가 가라앉을 것도 같다. 설마 손톱이 빠지기야 할까. 모양이 변한 채 자라다가 원래대로 되겠지.

2월 14일 수요일 312일째
죽을 되게 해서 먹여 보았다. 묽은 죽을 먹던 버릇이 있어서 그냥 삼키려다 목에 걸리자 우왁- 하며 뱉고는 그제사 오물거린다. 그러기를 몇 번, 제법 오물거리며 먹는다. 또 새로운 걸 하나 배우는 셈이다.

2월 15일 목요일 323일째 서울, 32년 만의 폭설
이제 도윤이는 발만 닿으면 뭐든 밟고 올라서려 한다. 비록 얇은 책이라도 밟고 서길 좋아한다. 인형도 밟고 서고, 욕실 문턱에도 발을 올려놓고 욕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낑낑댄다. 이마의 멍이 하루도 가실 날이 없다. 고집은 얼마나 센지 저 하고 싶은 대로 안되면 고함을 지르며 운다. 욕심 내던 것이 제 손에 들어오면 금세 입이 함박만해진다.
도윤이는 혼자 놀 게 두고 동네 골목길의 눈을 쓸러 나갔다. 집 앞 길만 틔우려 했던 게 어느새 온동네 길을 다 쓸어 버렸다. 참 눈이 푸짐하게도 내렸다. 도윤이에게 못 보여주는 게 너무나 안타깝다. 허나 어쩌랴, 아직은 홍역 뒤끝이라 집안에만 있어야 하는 걸.

2월 16일 금요일 324일째
광고 방송을 몹시 좋아하는 도윤이. 낮잠이건 밤잠이건 자다 깰 땐 꼭 TV광고 시간이다. 잠에서 깨어 아무 소리도 안 나면 울면서 나오고, 광고 소리가 나면 울지도 않고 얼른 거실로 나와 고개를 갸웃이하고 TV를 본다. 얼마나 부지런히 기어나오는지... 잽싸게 나와서는 광고가 끝날 때까지 꼼짝않고 본다. 아직 잠이 덜 깬 눈을 부릅뜨며 집중한다. 광고와 본방송은 첫 소리부터 알아챈다. 귀신 같다. 죽 먹이기도 광고 시간엔 참 쉽다. 칭얼대다가도 광고만 하면 뚝!
오늘은 걷는 횟수가 많이 늘었다. 네다섯 발짝은 쉽다. 제법 잘 걷는다. 아무것도 안 잡은 채 앉았다 일어서는 것도 자유자재. 기특한 녀석.

2월 18일 일요일 326일째
도윤이는 눈만 뜨면 엄마를 찾는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제일 먼저 엄마 침대로 가서 침대를 잡고 선 채 엄마를 찾는다. 엄마가 안 보이면 운다. 으-앙! 거실에서 TV 소리가 나면 엄마가 거기 있으려니 하고 뿔뿔 기어나온다. 거기에도 엄마가 없으면 큰 소리로 운다. 다가가 안아주면 금세 멈춘다. 혼자 잘 놀다가도 문득 돌아보아 엄마가 없으면 울고, 아빠가 문 밖을 나설 때도 운다. 집에 돌아온 아빠가 옷 갈아입으러 들어가 눈에 안 보이면 울고, 화장실에 가느라 문을 닫아도 운다. 울음으로 표시되는 의사표현. 그래서 표현력이 많아진 요즈음은 우는 일이 잦다.

2월 20일 화요일 328일째
오랜만에 창문을 활짝 열고 방안 가득 들어오는 햇살 속에서 도윤이를 놀게 했더니 아이는 눈부터 찡그린다. 그러더니 이내 손을 휘저으며 햇살을 잡으려고 애를 쓴다. 아무것도 손에 들어오는 게 없자 금세 포기했지만 그래도 햇살 속에서 노는 게 좋은지 안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태교 때 듣던 모차르트 임팩트를 틀어놓자 경쾌한 음악소리에 끌린 듯 도윤이가 얼른 거실로 나온다. 웃으면서 아장아장 예쁘게 걸어서.
며칠 전에 다친 손가락의 손톱이 어제는 빨개지고 오늘은 보라색이다. 손톱이 빠지지나 말았으면...

2월 21일 수요일 329일째
잠버릇이 몹시 험한 도윤이는 잠들기 전에도 온 방안을 휩쓸고 다닌다. 마치 어디가 잠들기 제일 편한 곳인지 탐색전이라도 펼치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한 10여분 굴러다니다 주로 베개 위에 드러누워 잠든다. 참 요란하기도 하다. 자면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제 잠자리는 부족한지 요 바깥에, 벽에 부딪치거나 문에 머리를 찧고 울기도 한다. 옆에 누워 자다가는 불시에 얼굴이나 배를 가격당하기도 한다. 몸부림치다 머리로 내 코를 팍 찧기도 하고 발로 배를 걷어차기도 한다. 자다말고 봉변을 당하기 일쑤이므로 도윤이가 잠들기를 기다려 나는 슬며시 침대로 올라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다. 새벽녘 아이는 엄마의 부재를 알아채고 으앙! 그러면 또 아이 옆에 누워 있어야 한다. 밤마다 되풀이되는 이 양상.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찌뿌드드하다.

2월 22일 목요일 330일째
도윤이가 어제부터 죽을 안 먹으려 한다. 숟가락만 보면 얼굴을 돌리고 쉬었다 먹여도 안된다. 이전에는 그러다가도 입에 음식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억지로나마 먹었는데 이젠 혀로 밀어내 버린다. 밥그릇을 들고 1시간쯤 씨름하다 보면 내가 먼저 지친다.
이틀 전부터 아이는 땀을 많이 흘린다. 물론 날씨가 좋아져서일 수도 있지만 웃도리만 입혀서 재워도 자고 일어나면 머리 밑이 땀으로 젖어 있고, 바닥에 닿았던 왼쪽 귀 밑으로는 땀띠 같은 것이 송송 돋아 있다. 뜨겁지도 않은, 그저 미지근할 뿐인 우유를 먹으면서도 머리 밑이 홈빡 젖고, 목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