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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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안 나오니, 아가야?

2000년 3월 1일
드디어 3월, 우리 아기가 태어날 달이다. 예정일은 불과 20여일 남았다. 동생들처럼 일주일쯤 당겨진다면 채 보름도 안 남은 셈이다. 아가야, 어서 보고 싶다!

2000년 3월 2일
손가락 마디마디가 근육통을 앓고 있다. 일주일 전에 한꺼번에 번역을 많이 해 컴퓨터 자판을 쉬지 않고 오래 두드린 탓이다. 구순염은 아직도 여전하다. 혓바늘까지 났다. 오른쪽 얼굴 전체가 얼얼하다. 봄봄이를 만나는 길이 참 험하다.

2000년 3월 4일 토요일
병원에선 예정일보다 늦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자궁경부나 골반이 아직 딱딱하여. 몸무게는 너무 많이 늘어 있다. 의사에게 주의를 들었다. "너무 많이 먹지 마세요."
얼른 아기를 만나고 싶다. 얼굴과 손, 발, 몸뚱이를 만지고 싶고 뽀뽀도 하고 싶고 울음소리와 웃음소리도 듣고 싶다.

2000년 3월 6일 월요일
이제야 혼인신고를 접수했다.

2000년 3월 7일 화요일
봄봄이는 오늘도 매우 얌전하다. 그저 꾸물럭꾸물럭 마치 선심쓰듯 한 번식 움직여 준다. 엄마가 궁금해할 것 같으니까. 그런데 왜 갑자기 이틀 동안 이렇게 얌전할까. 걱정 안 해도 되는 건지...

2000년 3월 8일 수요일
봄봄은 오늘도 너무나 얌전해서 나를 불안하게 한다.
오늘도 낮잠중에 여지없는 악몽. 자고 나면 기억에 남아 있지도 않은 이 악몽들의 연속, 몹시 피곤하다. 이것과 봄봄이의 얌전한 움직임이 무슨 상관이라도 있는 건 아닐까.

2000년 3월 11일 토요일
그저께는 늦은 눈이 오더니, 오늘은 비. 봄비다. 봄이 와서 그런지, 막달이라 그런지 하루종일 피곤하다. 매일 3시간 가량 낮잠을 자는데도 피로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병원에선 태동기록표를 주면서 꼼꼼하게 기록해 오라고 한다. 자궁문은 아직 단단하게 닫혀 있고, 봄봄이의 움직임은 일주일 전에 비해 확실히 얌전하다. 횟수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움직임의 강도가 약해진 것이다. 의사는 겁을 준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병원에 오라고. 뱃속에서 다 키워서 죽는 경우도 있다고. 물론 우리 봄봄이가 그럴 리야 없겠지만, 절대로 그러면 안 되지...
몸은 몹시 둔하다. 먹는 밥의 양도 많고, 위는 항상 더부룩하다.

2000년 3월 13일 월요일
모처럼 낮잠도 조금만 자고 욕실 청소에 빨래. 부지런히 하루를 보냈다. 은행에도 다녀오고. 컨디션이 매우 좋다. 봄봄이는 꽤 활발하게 잘 논다. 발뒤꿈치같이 조그맣게 생긴 것이 오른쪽 배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쭉 미끄러지며 간지럽힌다. 한 10센티 가량. 간지러움인지 아픔인지 모를 야릇한 자극. 금세 손에 잡힐 듯한 그 동그란 부위, 만지고 싶다. 봄봄이도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게 좋은 듯 세 번이나 연속적으로 그런 움직임을 보인다. 남편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은데 남편 손이 배 위에 살며시 올라오면 봄봄이는 금세 얌전해진다. 왜 그럴까. 역시 기온 차이겠지. 낯선 느낌... 아빠는 얼굴을 마주보며 정을 들이고 싶은가 보다.
이제 나는 10개월 된 임신부답게 내내 굴러다닌다. 허리에 엄청나게 불어난 살 때문이다.

2000년 3월 16일 목요일
임신 기간중 마지막 10개월째가 내게는 가장 힘든 기간인 듯하다. 우선 지루하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로 힘드록, 몸을 제멋대로 가눌 수 없으며 뒹굴뒹굴 굴러다니는 것이 두 번째, 아이 낳을 때 쏟을 에너지를 생각해 많이 먹어야 하는데 조금만 양이 많아도 위가 부담스러워 힘들다. 또 매일 운동을 해야 하는데 조금만 무리하면 손발이 퉁퉁 붓는다. 수시로 얼굴과 손발, 종아리가 붓고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아기를 낳을 때까지는 1주일에 한 번 꼬박꼬박 병원에 들러 내진으 해야 한다. 또 한 가지는 나 외에도 아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안부전화가 잦은데 그때마다 마치 구구한 변명처럼 아직 아무 소식 없노라고 똑같은 말을 해야 한다. 이 기간이 빨리 지났으면 좋겠다. 내가 이토록 아기를 보고 싶어하는데, 봄봄이는 내 뱃속이 아무래도 편하겠지. 무척 잘 놀고, 건강한 듯하다. 그래도 이제쯤 나올 준비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이슬이 비치는 꿈까지 꾼 이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2000년 3월 18일 토요일
8시 50분 병원. 아직 자궁경부는 전혀 준비가 안 되어 있단다. 산전정밀검사로 받은 태아상태검사에선 별 이상이 없다. 만일 다음주 안에 아이를 낳지 못하면, 일주일 뒤-3월 25일-에 또 태아상태검사를 해야 하고, 유도분만 날짜를 잡아 입원해야 한다. 제발 유도분만까지는 가지 말아야 할 텐데... 아기에게도 내게도 큰 자극이 될 테고, 힘들어질 게 뻔하다. 유도분만ㅇ르 해서 꼭 빨리 아기를 낳는다는 보장도 없다. 지난번에 소프롤로지 교육을 해준 수간호사도 유도분만 주사를 맞고 3일 뒤에야 아이를 낳았다고 했다. 두 아이 모두를. 결코 기대할 만한 것이 못된다. 어쨌든 배가 아주 약하게나마 자주 당기고, 걸어다닐 때마다 다리가 아픈 걸 보면 분만일이 멀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슬이 비치는 건 단지 꿈에서뿐이고, 분비물도 늘지 않았으며, 가진통도 없다.

2000년 3월 20일 월요일
밤이든 낮이든 깊이 잠들지 못하고 매번 아이 낳는 꿈을 꾸다 잠에서 깬다.

2000년 3월 23일 목요일
몇날며칠 매달린 끝에 드디어 아기 이름을 결정지었다. 엄청난 심사숙고. '김도윤'. 이끌 도, 윤택할 윤. 한자 획수로 8, 16, 16-화 목 화. 풀이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외강내유의 기질로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내심은 겁이 맣고 약하다. 자존심이 강해서 남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므로 큰 재난 없이 평안한 생활을 영위한다. 대단한 노력가로서 나날이 상승, 발전하게 된다.' 특별히 좋다고 할 수 없어도 무난하지 않은가.

2000년 3월 25일 토요일
병원에선 29일에 입원하여 30일에 유도분만을 하자고 한다. 병원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편하고 안전한 방법. 운이 좋으면 29일 전에 진통이 올 수도 있을 터. 지금으로서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병원에서 나오며 남편에게 전화를 거는데 눈물이 주르르. 마음이 약해진 탓이다. 별일 아닌데, 정말 별일 아닌데... 수술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정말 아무 일 아니고, 유도분만은 자연분만이나 마찬가진데... 정말 힘든 일을 겪는 사람들이 무수한데, 복에 겨워 눈물까지 흘리다니... 우리 아기를 디가리는 마음이 너무 간절한 탓이다. 하루하루, 매시간, 매분, 매초... 아기를 기다리는 이 지루한 시간이 나를 지치게 한다. 어쨌든 다음 주 안에는 이 지리한 기다림의 시간도 끝날 것이다!

2000년 3월 26일 일요일
노오란 분비물이 어제보다 좀더 많이 나왔다. 아기가 태어날 날이 머지 않은 것이다. 예정일이 지나면서 몸이 무척 많이 붓는다. 오늘은 붓는다기보다 부푸는 듯하다. 손과 발이 풍선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자칫 터질 것처럼 아슬하다. 불안할 정도다. 식사량을 줄여도, 잠을 푹 자도 요 며칠은 계속 심하게 붓는다. 호박을 먹으려고 해도 언제 병원으로 갈지 몰라 몇 시간씩 고으고 있을 수가 없고, 그저 부풀어서 불안한 손발, 얼굴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2000년 3월 27일 월요일
이제 길어야 3, 4일. 며칠만 지나면 될 텐데, 이토록 강렬한 해방에 대한 욕구. 불룩하고 거북한 배와 퉁퉁 부은 손발에서 어서 해방되고 싶다.

2000년 3월 28일 화요일
손, 발, 종아리, 얼굴이 온통 퉁퉁 붓는다. 그것도 하루종일. 이렇게 며칠만 더 가면 아예 하늘로 붕붕 떠오르겠다, 풍선이 돼서... 그러기 전에 봄봄아, 제발 무사히 나와라. 어제 오늘 가족들과 친구들한테서 자꾸 전화가 걸려온다. 이제 그들에게 대답하는 것도 민망하다. 아들이든 딸이든 어서 만나고 싶고, 궁금해 하는 사람들한테도 소식 전하고 싶다. 봄봄아, 엄마는 오늘도 기도한단다. 내일 병원에 가기 전까지만이라도 제발 소식이 있기를... 아기가 스스로 태어날 준비를 다 갖추고 엄마 몸에 신호를 보내서 진통이 오기를...

2000년 3월 29일 수요일
결국 유도분만을 위해 병원에 간다.
이제 정말 아기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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