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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마와
마늘 먹기
2000년 2월 2일 화요일 병원에서 소프롤로지식 분만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가장 인상 깊은 이야기는,
"분만은 아기와 엄마가 제일 처음 하게 되는 공동작업입니다." 아기도
세상에 나오기 위해 산모만큼이나 힘든 시간을 보낸다. 그 과정에서 산모가 불안정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아기에게는 산소부족이라는 치명적인 자극이 가해질 수도 있다.
평온한 상태에서 호흡을 통해 아기에게 산소를 충분히 공급해주어 아기가 순조롭게
태어나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엄마가 아기에게 줄 수 있는 최초의 선물이다. 강의에
참여하길 잘했다.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일본에서 이 방법으로 분만하는 과정을
찍은 화면을 보았다. 산모는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리고 열심히
호흡에만 정신을 쏟고 있었다. 중간중간 손으로 브이자를 그려 카메라를 쳐다보며
웃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너무나 부럽고 감격한 나머지 눈물이 왈칵. 아기의 탄생
순간을 생각하면, 그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난다. 아기의 그 조그만 몸뚱이가 내 몸을
빠져나와 처음 눈을 맞추고, 조그만 손으로 내 몸을 더듬고, 입을 한껏 벌려 울음을
터뜨릴 그 모습... 분만실에서 줄줄 눈물만 흘릴 것 같다. 아기에게 엄마의 첫 모습을
우는 것으로 보여주지 말아야 할 텐데, 왜 이리도 눈물이 흔한지... 아가야, 엄마는
네 생각만 해도 이렇게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나는구나. 어쩌면 좋으니, 네가 이렇게
엄마 가슴에 크게 자리잡고 있으니 말이다.
2000년 2월 3일 수요일 분만을 생각할 때마다 자신있노라고, 행복하게 순산할 거라고, 아기와 나를 위해
웃으면서 진통을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가슴 속에서, 내 입에서, 내
머리에서 그런 생각이 지배적이라고 믿어왔다. 얼마나 복된 일이나고, 내게 이런
엄청난 행운이 닥친 게 얼마나 큰 축복이냐고. 그런데 자꾸 잠을 설친다. 내 마음
속 어느 한 구석 혹은 말초신경의 어느 한 곳, 낯선 세포 하나 속에 혹시 분만에
대한 두려움이 또아리를 틀고 숨어 있는 걸까...
2000년 2월 10일 목요일 고맙다, 봄봄. 정말 고맙다. 착하고 사랑스러운 우리 봄봄이가 제자리를 잡고
있다. 어쩐지 며칠 전부터 딸꾹질하는 소리가 배의 밑부분에서 나더니 내 짐작이
맞았다. 운동도 그리 부지런히 하지 못했는데, 봄봄이가 또 한번 나를 도와주었다.
이제 많은 걱정들이 가셨다. 34주 하고도 3일. 조산에 대한 걱정도, 임신중독증에
대한 불안도 이제 더 이상 갖고 있을 필요가 없다. 신우도 더 이상 늘어나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손발이 부기도 많이 빠져 오늘은 조금도 붓지 않았다. 피부도
트지 않았고, 유산도 안 되었으며, 기형아 검사에서도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했다.
불안감이나 걱정 없이 그날이 오기만 기다리면 된다. 아기와 만나는 그날. 나는 멋지게
아이를 맞을 것이다. 행복하고 평화롭게. 아!우리가 얼마나 감격하며 서로를 쳐다볼까.
너무 기쁘고 반가운 나머지 기절이나 하지 않을까...
2000년 2월 11일 금요일 요즘은 다시마와 마늘을 많이 먹는다. 모든 음식에 마늘을 듬뿍 넣는다. 튀겨서
먹어 보았지만 며칠 먹지 못했다. 음식에 넣어서 많이 먹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것
같다. 간헐적으로 통증이 있다. 3일 전, 오른쪽 아랫배가 한 번 아프더니, 오늘
저녁에도 그 부위가 아프다. 뿐만 아니라 배 전체가 두루 땅기고 서서 일을 하다
보면 허리도 아프다. 허리를 숙이면 조금 낫다.
2000년 2월 13일 아기용품 중에 빠진 것을 사러 시장에 갔는데, 가게 주인 한 사람이 말했다. "순산하시고,
득남하십시오." '순산, 득남'-그것이 이 시대 임신부에게 주는 최고의 덕담인
모양이다. 어제 동대문시장에서도 가게 주인아주머니가 똑같이 말했었다. 물건을
사러 가면 주인들은 어김없이, "아들이겠네요." 한다. 아들이건 딸이건
건강하고 탈없이 태어나주기만 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런데 만약 딸이라면,
그 아이도 자라서 결혼을 하고 아기를 가지며 나와 뚝같은 행복을 맛보게 될 테지.
그건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여자라서 당하는 불공정한 처사 따위는 우리 아기가
성인이 됐을 때쯤엔 거의 없어져 있을 테지. 수세대를 걸쳐 내려온 사고방식들도
급격히 변하고 있는 추세다. 내가 낳은 딸아이가 첫 생리를 하고, 그 경험에 대해
의논하는 걸 생각만 해도 얼마나 가슴이 설레는지... 내가 아이를 하나만 낳는다면
기왕이면 딸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슬며시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다. 또 만약 아들이라면
알게모르게 얼마나 그 아이를 의지하게 될지 다소 걱정이 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한테는
얼마간 의기양양할 거다. 시어머니께도 당당할 테고, 딸만 낳은 친구들 앞에서도
은근히 자랑스러울 거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아쉬움이 있겠지. 아기에게 머리띠도
못 해주고, 원피스도 못 만들어주고, 머리도 못 빗겨주고, '엄마-' 하고 불을 쓰다듬어
주는 아이의 살까운 몸짓과 목소리도 조금은 뻣뻣할 테니까.
2000년 2월 15일 화요일 신생아실, 모자동실, 분만대기실을 견학했다. 분만대기실은 의외로 조용했다.
견학자들이 있어서 그런지, 우리의 용감한 임신부들이 독한 마음으로 진통을 참고
있는 건지... 보호자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분만대기실의 여자는 울부짖고
있었다, 처참하게. 옆에 위로해 주는 남편이 있어서 마음껏 어리광이라도 부리고
있는 건지... 나는 분만을 혼자서 감당해 보고 싶어졌다. 남편이나 시어머니가
옆에 있은들 고통이 덜해지지도 않을 테고 오히려 기대고 싶어서 더 힘겹게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서 조용하고 얌전하게, 아기와 둘이서 용감하게 겪어내고
싶다.
2000년 2월 17일 목요일 아기가 뱃속에 있는 동안은 그래도 내 몸 하나만 신경쓰면 되니 조금은 편했는데,
아기가 태어나고 나면 하나의 생명체로서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반응하고, 표현할
테니 더욱더 어려워질 것 같다. 유심히 잘 살펴봐야 하고, 요구에 재빠르게 대처해
주어야 할 것이다. 하긴 그 정도의 노고야 예쁜 아기의 얼굴과 몸놀림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 보상이 될 것이다. 봄봄이는 매우 활발하다. 울룩불룩,
북덕북덕, 저 혼자서도 신이 나는 모양이다.
2000년 2월 24일 목요일 병원에서는 내진을 했다. 아이를 낳기에 골반은 이상 무. 정상분만이 가능할 것
같다. 오른쪽 배만 움직이고 왼쪽은 딱딱했는데, 그래서 혹시 아기가 옆으로 누워
있는 게 아닌지 걱정했더니 의사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자리를 잡고
나면 다시 돌아가지는 않아요. 왼쪽 딱딱한 부분은 아마 등이나 엉덩이일 거에요."
순산 준비 완료. 몸무게도 2주 전에 비해 하나도 안 늘었다. 임신중독증 걱정도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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