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라는 신은 지혜도 있지만, 변덕쟁이며 장난꾸러니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이따금 그 때문에 골탕을 먹기 일쑤였다. 그는 본디 아사 신의 일족이 아니라 아사 신에게 멸망된 거인족의 출신이다. 그러나 오딘과 의형제가 되어 아스가르드의 일원으로서 신들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행실은 어쨌든 기묘했다.

  그러나 그의 장난이 오히려 신들에게 커다란 이익을 가져오는 일도 흔히 있었다. 아스가르드에서 첫째가는 용사 토르의 이상한 망치같은 것도 이 로키의 장난에서 생긴 보물이었다. 토르에게는 시후라는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숱이 많고 길었다. 햇빛을 받으면 금처럼 빛났다. 시후는 물론 토르도 그것을 몹시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시후가 이도운의 능금나무 미테서 잠이 든 사이에 장난꾸러기 로키가 그것을 싹둑 잘라 버리고 말았다. 잠이 깨어 까까머리가 된 것을 안 시후는 남편에게 가서 울면서 호소했다. 토르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로키를 찾으러 뛰어나가 곧장 장본인인 로키의 멱살을 움켜 잡았다. 로키는 토르가 진정으로 화를 내는 것을 보고, 정신없이 사과했으나 토르는 막무가내였다. 당장이라도 죽일 듯한 기세였다. 로키는 검둥이 소인(小人)한테 가서 머리를 만들어 오겠다고 하여 로키의 용서를 받아냈다.

  로키는 곧장 검둥이 소인의 나라로 달려가 도봐린이라는 유명한 검둥이 소인의 아들들을 찾았다. 형제는 로키의 부탁을 듣자 시후의 머리카락에 못지 않은 아름다운 그발을 만들어 준 데다가 긍그니르라는 던지면 반드시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투창과 스킷드 브라드니르라고 하는 작게 접으면 주머니에 들어가고 넓히면 신들이 모조리 탈 수 있을 정도로 커지는 마법의 배를 주었다. 로키는 기분이 흡족해서 돌아왔다. 그런데 그는 도중에 브로크라는 다른 소인을 만났다. 브로크는 대장장이의 명수로 알려져 있는 신도리의 동생이었다. 로키는 신도리에게서 받은 물건으로 브로크에게 자랑을 했고 신도리가 더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다면 자신의 머리를 주겠다고 했다.

  그는 로키를 대장간으로 데리고 가서 형에게 로키와 내기를 한 이야기를 했다. 신도리는 곧 불을 지폈다. 동굴 구석에서 불이 달아오르자 신도리는 불 속에 한 장의 돼지가죽을 넣었다. 그리고 신도리는 동생에게 풀무를 넘겨주고는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쉬지 말고 풀무질을 하라고 말하곤 밖으로 나갔다. 신도리가 나가기가 무섭게 로키는 한 마리의 커다란 말파리로 변신한 다음 브로크의 손에 앉아 힘껏 그 손을 쏘았다. 그러나 브로크는 풀무질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신도리가 돌아와서 불 속에서 만들어진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한 마리의 황금 갈기가 달린 산돼지였다. 이어 신도리는 불 속에 금을 던져넣고, 다시금 동생에게 풀무질을 시켰다. 이번에도 로키는 브로크의 목덜미에 앉아 아까보다 더 억세게 두 번이나 찔렀다. 그러나 브로크는 여전히 일손을 머무지 않았다. 그러자 신도리가 돌아와 불 속에서 훌륭한 금반지, 드라우프니르를 집어냈다. 드디어 이번에는 불 속에 쇠를 넣고, 동생 브로크에게 당부를 하고 나갔다. 로키는 브로크의 눈과 눈 사이에 앉아 힘껏 눈꺼풀을 찔렀다. 피가 줄줄 흘러내렸고 참다 못한 브로크는 일손을 멈추고 말파리를 쫓았다.

  그러나 짧은 사이에 불길은 눈에 띄게 약해져 버렸고 그때 마침 돌아온 신도리가 동생을 꾸짖었다. 그렇게해서 불 속에서 집어낸 것은 하나의 망치였다. "이것을 신들에게 갖고 가서 어느쪽 선물이 훌륭한지 판가름해 달라고 해라" 신도리는 이렇게 말하고 물건 세 개를 브로크에게 주었다. 그리하여 브로크와 로키는 각기 선물을 가지고 아스가르드로 향해 떠났다.

  신들은 [기쁨의 집]이라는 오딘의 집에 모여 모두 제자리에 앉았다. 오딘과 토르와 후레이의 세 신이 어느쪽 선물이 뛰어난지 마지막 결정을 하기로 합의했다. 로키가 먼저 자기의 선물을 꺼내 시후의 것과 똑같은 금발은 토르에게, 긍그니르의 창은 오딘에게, 스킷드 브라드니르라는 배는 후레이에게 내주었다. "이 머리카락을 시후의 머리에 얹으면 진짜 머리카락과 똑같이 붙고, 이 창은 던지기만 하면 반드시 명중합니다. 또 이 배는 놀랄 정도로 빨리 달리고, 접으면 작은 손수건처럼 되어 주머니에도 들어갑니다." 이렇게 그 효능을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브로크가 선물을 꺼냈다. 그는 오딘에게 금반지를 내주고 말았다. "이것은 드라우프니르의 반지라고 하여, 아흐레째 밤마다 똑같은 반지를 여덟 개씩이나 새끼를 칩니다." 다음에는 금돼지를 후레이에게 내주며 말했다. "이것은 [황금의 갈퀴]라는 산돼지인데 공중이나 해상이나 말보다 빨리 달립니다." 또한 브로크는 토르에게 망치는 내주며 말했다. "이 망치는 미요르니르라고 하여 어떤 적이건 간에 단번에 쓰러뜨릴 수가 있습니다. 또 아무리 멀리 던져도 저절로 되돌아옵니다. 그리고 당신의 마음에 드신다면, 작게 만들어 주머니에 넣을 수도 있습니다." 브로크는 말하지 않았으나 이 망치에는 한 가지 결점이 있었다. 자루가 약간 짧았다. 이것은 말파리가 된 로키가 브로크를 찔렀을 때 풀무질을 잠시 멈춘 까닭이었다. 오딘과 토르와 후레이는 서로 의논한 끝에 브로크의 선물이 뛰어나다고 판정을 내렸다. 어쨌든 토르의 망치는 거인들과 싸울 경우 다시 없는 무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오딘은 일어서서 브로크의 승리를 선언했다. 브로크는 곧 로키의 머리를 요구했다. 로키는 놀라서 브로크를 설득했다. 소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황금이었음을 안 로키는 황금으로 브로크를 유혹했으나 브로크는 막무가내로 로키의 머리를 요구했다. 그러자 로키는 물 위에서도 하늘에서도 자유로이 나는 신발을 신고 달아나 버렸다.

  브로크는 토르에게 로키를 잡아 달라고 부탁했고 토르는 로키에 대한 감정이 아직 남아 있었으므로 곧 후레이에게 금돼지를 빌려서 그 등에 올라타고 하늘로 올라가서 로키를 잡아 아스가르드로 끌고 왔다. 브로크는 기뻐 당장 로키의 머리를 자르려고 했다. 그러자 로키가 말했다. "좋아, 자 소원이라면 머리를 자르라. 그렇지만 손톱만큼이라도 내 목에 상처를 냈다간 그냥 두지 않을 거야. 머리를 준다고 했지 목을 준다고는 안했으니까 말이다." 브로크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결국 그는 단념을 하고 못마땅한 듯이 외쳤다. "만일 이 자리에 형의 부엉이가 있었다면, 네놈의 그 주둥이를 꿰매버릴 텐데...." 순간 신도리의 부엉이가 날아와서 로키의 입술을 물어뜯어 구멍을 냈다. 브로크는 재빨리 가죽끈으로 그 입술을 꿰매버렸다. 그러나 로키는 태연했다. 브로크가 사라지자 그는 곧 끈을 물어 뜯어 버렸다. 그리하여 로키는 대단한 벌을 받지 않고, 신들에게 좋은 선물만 가져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