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이 아스가르드로 옮겨 살게 된 지 얼마 안된 무렵이었다. 신들은 이미 인간이 사는 미드가르드도 만들었으며 놀라운 와르하라 궁전도 세워 놓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 쳐들어 올지 모르는 거인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스가르드의 성벽이 없는 것이 근심거리였다. 실상 이 성벽은 신과 인간세계 전체를 지키는 역할을 하게 되는 만큼, 놀랄 정도로 크고 튼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실정이라 그러한 성벽을 만드는 것은 신들로서는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를 만큼 힘든 대사업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한 석공(石工)이 찾아와서 어떤 거인도 파괴할 수 없는 성벽을 쌓아 보겠다고 나섰다. 신들은 매우 기뻐서 물었다. "그래 그 보답으로 뭘 바라는가?" "일한 대가로는 여신 프레이야를 주셨으면 좋겠소. 그리고 태양과 달도 주셨으면 합니다."하고 말했다. 그러나 신들은 쉽게 승낙할 수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프레이야는 여신 중에서도 첫째가는 미인이었고, 태양과 달을 주었다가는 세계는 암흑 속에 빠질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신들은 모두 모여 의논했으나 신통한 해결책이 없었다. 게다가 제일 힘이 센 토르는 하필 동쪽 나라로 거인들과 싸우러 가고 없었다. 석공은 매우 위협적으로 확답을 요구했다. 마침내 신들은 석공이 제시하는 조건으로 그에게 성벽을 만들게 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성벽은 반드시 이번 겨울 안에 쌓아야 한다. 만일 봄이 되도록 완성시키지 못할 경우에는 대가는 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쓰지 말고 혼자 해야 한다" 신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이런 조건을 제시하면, 그가 일을 맡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그런데 석공은 이렇게 반문했다. "그렇지만 내 말 스와디르화리한테 돌을 운반시키는 것쯤은 괜찮겠죠?" 신들은 잠시 궁리하고 있었다. 그때 로키신이 그 정도는 허락해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신들도 석공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석공은 초겨울부터 일을 시작했다. 그는 날이 채 새기도 전에 굉장히 큰 돌을 말에 싣고 오자 그 돌을 어렵지 않게 쌓아 올라갔다. 신들은 그것을 보고 놀랐다. 더욱이 놀란 것은 그의 말 스와디르화리였다. 아무리 큰 바윗돌도 거뜬히 끌고와 주인의 곱절이나 일했다. 주인은 그가 가져온 돌을 그저 쌓아올리기만 할 뿐이었다. "이 석공은 아무래도 보통놈이 아닌걸" 신들은 약속을 취소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도 없었다. 이미 계약을 체결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빈틈없는 석공은 만일 토르가 돌아온다고 해도, 우격다짐으로 쫓아 버리지 못하도록 신들과 정식계약을 맺어 두었다.

  겨울은 금새 지나고 벌써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동시에 성벽도 진척되어 이제 완성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성문 하나 뿐이었다. 신들은 매우 난처했다. "곤란한 약속을 해버렸군. 튼튼한 이 성이 완성되는 것은 좋지만, 그 아름다운 프레이야 여신을 그 따위 석공한테 빼앗기다니." "그뿐 아니지. 태양도 달도 빼앗겼다간 이 세상은 암흑천지가 되버리지?" 신들은 저마다 이렇게 말하며 그 불길한 계약을 취소할 방도는 없을까 궁리를 했으나 역시 �i遁통한 해결책은 없었다. 마침내 그들은 애초에 그런 약속을 하?므 권한 것이 누구냐고 떠들어댔다. 그러자 그들은 그 계약을 권한 것은 로키라는 사실을 알았다. 신들은 로키에게, "네가 권해서 계약한 것이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사를 늦추게 만들어 봐. 만일 그게 안될 때는 너를 사형에 처할 것이다" 이렇게 위협을 했다. 장난꾸러기 로키도 신들이 굉장히 화를 내고 있는 것을 보고 겁이 나서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서든지 성벽이 겨울 안으로 완성되지 못하게 해볼 것이니 제발 사형만은 말아줘"

  그날 밤 석공이 자기의 말에 바위를 싣고 성문쪽으로 오자마자 한 마리의 어린 암말이 숲속에서 뛰어나와 크게 울었다. 그러자 스와디르화리는 곧 바위를 떨쳐 버리고 정신없이 암말의 뒤를 따랐다. 아말은 재빨리 숲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암말은 스와디르화리를 숲 속으로 마구 끌어들여 밤새 뛰어다니며 장난을 쳤다. 석공은 말을 찾으려고 밤새껏 숲 속을 헛되이 돌아다녔다.

  아침이 되었다. 그러나 돌은 하나도 없었다. 공사가 도저히 기일 내에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자 석공은 미친 것처럼 노하여 그 정체를 드러냈다. 그는 다름아닌 신들의 세계의 비밀을 염탐하러 온 산의 거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신들은 그의 정체를 알자, 상대방이 거인이라면 굳이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곧 토르에게 사자를 보냈다. 토르는 산과 개울을 뛰어넘어 급히 아스가르드로 돌아왔다. 거인은 당장 아스가르드를 부수려고 덤볐다. 토르는 하늘 높이 미요르니르의 망치를 들어올려 일격에 거인을 쓰러뜨리고 말았다. 그는 두 개골이 산산이 부수어 안개의 나라 밑 깊숙이 날려 버렸다.

  그런데 그 암말은 실은 로키가 변신한 것이었다. 그의 덕분에 신들은 거인의 재난도 피할 수 있었고, 성벽까지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수말에게 침범된 로키는 얼마 뒤 한 마리의 망아지를 낳았다. 그것은 마물의 피를 이어받은 탓으로 다리가 여덟 개인 잿빛의 이상한 말이었다. 이것이 스레이르니르라고하여 주신(主神) 오딘이 타게 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