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운명의 시작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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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가집(天家集).
정확히 천 개의 가옥이 들어서 있고 그 중 구백 구십 여섯 개는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소유였고,
나머지 네 가옥은 각기 천향주루(天香酒樓), 금강 철물점(金剛 鐵物店), 만혜서원(萬慧書院), 그리고
청죽소(靑竹所)라고 불리오는 곳이었다.
천향주루는 이 마을 뿐만 아니라 근방에서 가장 인기있는 곳으로서 술맛이 기가막히기로 소문난 주루였다.
특히 이곳의 백화주(百花酒 )는 다른 어떤 지방보다도 그 맛이 뛰어나 천리를 마다하고 그것을 마시기 위해 이
곳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천향주루가 가장 자랑하는 것은 신선주(神仙酒)와 그것과 늘 함께
나오는 안주(按酒)인 오선채육(五仙菜肉)었다. 신선주는 말 그대로 신선들이 마신다는 술로 한 잔만 마셔도
보통 장정이 하루 밤낮을 자야 할 정도로 독하지만 신선주를 마신 순간 부터는 기분이 너무나 좋아져 가히
신선이 안 부럽다는 명주(明酒)였다. 그리고 오선채육은 세가지 나물과 두 가지 다진 고기로 만든 것으로 그
재료는 철저한 비밀로 오직 천향주루의 주인만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맛 하나만은 도저히 비밀로 하기에
안까울 정도로 극미(極味)의 음식이었다. 더구나 신선주와 함께 먹으면 그 맛이 더욱 기가막혀 언제나 신선주와
함께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이런 음식은 가격이 비싸기 마련이다. 신선주와 오선채육의
가격은 한 집안 식구가 열 흘은 충분히 먹을 정도인 은 열 냥이었다.
천향주루와 함께 천가집의 이대 자랑인 만혜서원은 무림제일의 학자라고 칭해지는 만혜선사(萬慧禪師)가
기거하는 곳으로 그 곳에는 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늘 우글대는 시끄러운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히 만혜서원은 천가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선망의 대상인 곳이었다. 더구나
만혜선사에게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받는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마을 촌장이라는 직위를 선사하고 그의
말이라면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할 정도로 믿고 따랐다. 더구나 그는 무림인들과도 친분이 깊어 어쩌다가
흉악한 사람들이 마을 사람들을 괴롭혀도 그가 말 한마디만 하면 곧 그 곳에서 사라질 정도로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특히 백도 연맹의 장로직을 맡고 있는 천뢰룡과는 막역지우(莫逆之友)사이로 그의 부탁으로
백도 연맹에 도움을 준 적도 적지 않게 있어서 그의 명성은 무림에서도 한 수 양보할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금강 철물점(金剛 鐵物店).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과 같이 이 곳은 세상에서 단단하기로 이름난 금속들을 제련하여 병장기를 만드는
곳으로 무림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그 곳에서는 절대 병장기 이외에는 만들지 않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리 좋은 평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 곳의 주인이자 무림 최고의 장인이라고 추앙받고 있는 구 노인은 그런 마을 사람들의 태도에는 상관없이
언제나 화로에 서서 병장기를 만드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가 만든 병장기는 최소한 무림 서열
오십 위 안에 드는 사람들 만이 사용할 수 있었고, 또한 많은 돈이 있어야만 그것을 소유할 수 있었다. 만약
무공이 약한 사람이 그가 만든 병장기를 휴대한 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목숨을 잃기 쉽상이었다. 그만큼 그가
만든 것은 뛰어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제련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금강석(金剛石)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고 알려진 금강석으로 그는 명검을 만드려고 했으나 언제나 제련 도중 실패하였다.
그리고 일 년 전부터는 그는 아예 다른 것은 만들지 않고 오직 금강석의 연구에만 몰두해
두문물출(杜門不出)하였다.
많은 무림인들의 실망과 아쉬움도 그를 어찌 할 수는 없었다. 오직 금강검의 제련만이 그의 인생 목표이자
기쁨이었던 것이다.
청죽소(靑竹所).
이름과는 달리 천가집에서 가장 미움과 냉대를 받는 곳이다. 그리고 천가집에서 유일하게 외부인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소문에는 무림인들이 거처하고 있다고 하나 사람들은 모두 그 곳에는 마을에서 온갖 말썽을
일이키는 불량배( 不良輩)들이 모여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곳의 우두머리는 성이 주씨로 원래는 그 곳
사람이 아니었으나 그곳의 실질적 여주인과 혼인하게 되어 그런 지위를 얻게 된 것이었다. 또한 어떤 사람은
그의 무공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그것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청죽소의 인물들이 어쩌다 만혜서원에서
잘못을 저질러 매를 맞고 쫓겨나 거의 죽을 지경이 돼도 그들의 우두머리는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그런 생각은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어째든 청죽소는 미움과 냉대의 대상이기는 했지만 마을에서 가장 신비한 장소인 것만은 확실했다.
그래서인지 마을 사람들은 욕은 할 망정 그 곳을 없애려 하지는 않고 있었다.
"이보시요, 말 좀 물읍시다. 혹시 이 곳에 시장끼를 면할 만한 주루나 객점이 없오?"
그 말에 지나가던 행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난 곳으로 쏠렸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는 일제히 어이가 없다는
빛이 떠올랐다.
그들이 시선이 머무르는 곳에는 이루말할 수 없이 지저분하고 옷이 망가질데로 망가진 괴인이 길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러나 행인들이 어이없어 하는 것은 그 괴인의 몰골 때문은 아니었다. 세상에서 천가집에 와 주루나
객점이 어디 있느냐고 물을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것이었다. 이미 무림에까지 이름이 널리
알려진 천향주루는 다섯 살 박이 아이도 그 곳의 이름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서 알고 있는 곳인데 이 괴상한
몰골의 사나이는 천가집에 와서도 천향주루를 제외하고 는 주루나 객점이 전혀 없다는 것을 모른채 바보같은
질문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 괴인도 곧 사람들의 표정이 이상한 것을 보고는 눈치를 챘는지 곧 어색한 표정으로 죄없는 자신의
머리만 박박 긁어대면서 말문을 열었다.
"흠흠.그렇게 이상한 표정으로 보지 마시요. 내가 비록 이렇게 의복이 상해있고 몰골이 말이 아니지만 음식을
먹을 만한 돈은 있오."
"허허................"
일순간 사람들은 기가막히다는 듯이 헛웃음을 내뱁었다.
괴인은 자신의 모습 때문에 사람들이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고 믿고서 그런 말을 한 것인데 오히려
사람들이 더욱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자 그때서야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 여러분이 왜 그러시는지 저는 영 이유를 모르겠는데 누가 말씀을 해 주시겠습니까?"
"허허허, 당신은 멍청한 것이요,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것이요? 보아하니 강호인 같은데 정말 이 곳의
사대명소(四大名所)를 모르시오?"
보다못했는지 약간 나이를 지그시 먹은 노인 한 사람이 괴인을 보고는 한심하다는 듯이 물었다.
"사대명소라니요? 강호에 그렇게 유명할 정도로 훌륭한 곳들이 있습니까? 저는 깊은 산 속에서 방금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미처 그런 것들을 들은 적이 없는지라.........."
"허허, 그렇다면 약간 이해가 가는군. 이 곳의 사대명소가 이름을 날린 것도 이제 일년이 조금 지났으니. 좋네.
내가 자네의 사정을 보아서 자세히 설명을 해 주지."
이윽고 노인은 천가집의 사대명소인 만혜서원, 천향주루, 금강철물점, 청죽소 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괴인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약간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워낙 얼굴이 더러웠기
때문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군요. 그럼 그 천향주루를 제외하고는 허기를 면할 만한 곳이 없겠군요."
"아, 이제야 말귀를 알아듣는군. 맞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지금 자네 몰골로는 도저히 그 곳에 들어갈 수
없으니 옷 한 벌을 새로 해 입어야 하지 않겠나?"
노인은 갑자기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거야 그렇지요. 그런데 혹시 노인장께서 아시는 옷가게가 있습니까?"
"하하하, 물론 아주 좋은 곳을 알고 있지. 자, 나를 따라오게. 도와준 김에 끝까지 도와주지."
노인은 괴인이 미처 무엇이라고 하기 전에 말을 끝내자마자 곧 그의 손을 잡고는 어디론가로 급히 사라졌다.
"하하하, 역시 육 노인의 상술은 알아주어야겠어. 별로 말할 시간도 주지 않고 옷을 사게 만드니."
노인의 모습이 사라지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감탄을 하면서 제각기 갈 길로 뿔뿔이 흩어졌다.
"허헛, 그것 보시오. 그렇게 옷을 입고 나니까 조금 전 보다 훨씬 낫지 않소. 하지만 원 얼굴이 그렇게
지저분해서야 아무리 옷이 좋아도 천향주루에는 얼씬도 못 하겠군. 밥을 먹으려면 우선 어디 가서 그 몸을
씻고 가야 할 것이요. 그럼 잘 가시오."
비단 장사인 육 노인은 그 사나이에게 은 한 냥을 받고는 흡족한 표정으로 묻지도 않은 말을 해주면서 무척
친절하게 배웅까지 해 주었다.
` 그러고 보니 물 구경을 한 지도 일 년이 넘었군. 그럼 어디 냇가에 가서 몸을 좀 씻어 볼까.'
사나이는 빠른 걸음으로 근처 냇가로 갔다. 하지만 온 몸에 지저분한 먼지가 더덕더덕 붙어있는 남자가 화려한
비단 옷을 걸치고 달리는 모습은 여간 꼴사나운 것이 아니었다.
이윽고 목욕을 마친 사나이의 진실된 모습이 밝은 태양 앞에 나타났다.
허리까지 내려온 긴 머리카락과 좀처럼 표정이 변할 것 같지 않은 냉정한 모습은 더욱더 사나이를 차갑게
느끼게 만들었고 그런 모습과는 달리 그의 몸은 다른 남자들보다 약간 말라서 이상스런 대조를 이루었다.
더구나 오랬동안 빛을 못 보았는지 새하얀 손은 더욱더 그를 차가운 남자로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오랜만에 목욕을 했더니 정말 시원하군. 그럼 그 유명하다는 천향주루로 가 볼까."
정말 놀랍게도 사십대 장한의 얼굴을 한 사나이의 목소리는 갓 이십대를 넘은 청년의 그 것이었다. 아무튼
신비한 모습을 한 사나이는 아주 당당히 천향주루로 향하였다.
"호, 대단하군. "
천향주루는 그 명성에 걸맞게 이층으로 건축된 웅장한 건물이었다. 곳곳에 봉황무늬가 새겨져 있고 채색 또한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 아마 이 근방을 통털어 그 처럼 화려한 건물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내부는 더욱더
뛰어났다. 탁자는 가장 비싸다는 천향목으로 만들어져 있고 탁자마다 싱그러운 꽃향기를 발하는 화병과
심신을 맑게 해주는 청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더구나 벽 또한 더 이상 뛰어날 수 없을 정도로 장식되어
있었다.
"과연 천향주루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곳이군!"
사나이의 눈에는 놀라움과 감탄이 저절로 흘러 나왔다.
"어서오십시오. 저의 천향주루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사나이가 들어오자 마자 점소이 같은 소년이 그를 빈 자리로 안내했다. 그 역시 깔끔하게 차려 입고 있어
주루의 분위기를 아주 신선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반기는 듯한 눈빛과 말투는 더더욱 손님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충분했다.
비록 가장 싼 음식이 은 한 냥 이었지만 이런 곳에서 먹는 것이라면 그 정도는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손님 주문하시지요?"
방금 전 그를 안내한 점소이가 뜨거운 물 한 잔을 내려 놓으면서 정중히 물었다. 그는 이 손님이 비록 아주
차가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지만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우선 간단히 요기 할 것과 청주 한 병만 주게. 안주는 필요 없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희 주루는 아무리 많은 주문도 일각 이내로 갖다 드리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아마 손님의 주문은 반각이면 될 것입니다."
점소이는 주루 자랑을 간단히 하고는 쪼르르 주방으로 달려가 사나이의 주문을 말하고 다시 주루 입구로 갔다.
"후후, 과연 무엇하나 흠 잡을 곳 없는 곳이군. 누군지 몰라도 대단한 장사 수완을 가지고 있어."
사나이는 점소이의 싹싹한 모습에 나직히 주루 주인에게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만큼 부리는 사람을
교육시키기는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사나이는 자신이 주문한 음식이 나올 동안 잠시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해 보았다.
'이제 지난 날의 혈채는 갚았으니 무엇을 한다? 장사나 한 번 해 볼까? 아니면 나도 무림방이나 하나 차려서
거드럼이나 한 번 떨어봐? 후후후,나 전궁이 무림방을 차린다면 놀랄 사람이 한 둘이 아니겠군.'
한데 이것이 무슨 말인가? 전궁! 이 얼마나 놀라운 이름인가!
전궁이면 과거 일년 전에 제 삼차 마백대전에서 죽은 마도인이 아닌가!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일은 그가 마도
최강이라고 불리었던 마도 장주 비천행과 막상막하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삼차 마백대전에서 현 백도
장주이자 무적미공자라고 불리우는 백도 최강의 고수인 김용인과 백도 쌍협인 천협의와 지협의에 의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이미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고 있던 인물이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어떤 이의 말에
의하면 현재 무림제일미에서 무림제일추로 변해 버린 천협의의 딸인 천월화가 그를 죽이는데 가장 큰 공로를
세웠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무림인들이라면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천월화는 전궁을 죽일 만한
무공의 소유자도 아니었고 당시 백도 최절정 고수들이라고 불리었던 세 사람의 협공에 의해서 간신히 그를
사라지게 만들었는데 어떻게 그녀가 그를 죽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아무튼 만약 전궁이 이렇게 버젓이 살아서 주루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사실이 알려지면 무림이 발칵 뒤집어질
것이 뻔했고 당장 백도뿐만 아니라 마도에서까지도 그를 죽이려고 혈안이 될 것이다. 그것은 전궁이 마도의
배반자이자 백도에서는 증오하는 마도인이라는 이상한 신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님, 주문한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과연 반각이 채 되기도 전에 점소이는 궁이 주문한 것을 가지고 와서는 조용히 놓고 사라졌다.
"흐흠, 과연 이 주루의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니었군."
궁은 가지고 온 음식을 먹어 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으음, 이보게 점소이 여기 고기 안주 한 접시만 더 갖다 주게."
궁은 자신이 주문한 것 가지고는 양이 차지 않자 점소이를 불렀다.
"예, 알겠습니다."
점소이는 곧장 주방으로 들어가서 금새 고기 안주 한 접시를 가지고 와서는 웃는 얼굴로 궁의 앞에 내려
놓았다.
"아니, 이렇게 빨리 고기 안주가 되다니! 정말 대단하군."
궁은 자신이 주문한 것이 생각한 것보다 너무 빨리 나와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헤헤헤, 사실은 제가 손님이 음식을 드시는 모습을 보고는 그것 가지고는 양이 차지 않으실 것 같아서 미리
주방에 준비시켰던 것입니다."
"허, 단지 내가 먹는 모습을 보고 그런 것 까지 알 수 있단 말인가?"
"헤헤, 실은 저는 이 천향주루의 소주인으로 제 아버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이 곳을 경영하려면 최소한
손님들의 생각을 미리 읽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이렇게 일 년 넘게 점소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허허허, 그 말을 들으니 더더욱 자네가 대단해 보이는군. 웬만해서는 이런 일을 하기 힘들텐데........."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저는 제 아버님을 따르려면 한참 멀었습니다. 제 아버님은 들어오는 손님들만 보아도
어떤 음식과 술을 드실지 알아낼 정도이니 제가 어찌 우쭐할 수 있겠습니까?"
"오, 정말 대단하신 분이군. 그 정도까지 장사 수완이 좋으시다면 아마 어떤 일을 하셔도 성공하실 것이네.
정말 자네는 복 받은 사람이군. 그런 분을 부친으로 두다니."
"감사합니다. 그럼 더이상 하실 말이 없으시면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요."
점소이는 약간 얼굴을 붉히고는 천천히 주루 입구로 물러났다.
`허, 정말 대단하군. 어쩐지 천향주루가 그렇게 유명하다 했더니 바로 그런 인물이 주인으로 있었기
때문이었군. 음식 맛도 뛰어나고.'
궁은 나직히 감탄을 하면서 천천히 가져온 고기 안주를 음미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쳇, 저 사람이 또 왔군. 한동안 안 보인다고 좋아했더니."
갑작스런 점소이의 중얼거림에 막 계산을 치르려고 일어났던 궁은 의아한 얼굴로 주루의 입구로 얼굴을
돌렸다.
"하하하, 오랜만이군. 그래 장사는 여전히 잘 되는가?"
아주 호탕한 사나이의 웃음 소리와 함께 건장한 장한이 주루로 들어오는 것이 궁의 눈에 들어왔다.
"쳇, 주운광(朱雲光) 아저씨가 웬일이세요? 근 일년 동안 안 보이시더니. 저는 또 청죽소를 떠난 줄 알고
있었는데."
점소이인 광천(鑛天)은 짜증난다는 말투로 차갑게 말을 했다. 그것은 조금전 궁에게 대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말투였다. 마치 보기 싫은 사람을 본 표정이었다.
"하하하, 이런 내가 일년 동안 여행을 하고 다녔더니 이상한 소문이 난 모양이군. 하지만 걱정말게. 말썽
피우려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니라 내 귀여운 딸 아이를 여기서 만나기로 해서 온 것이니까."
운광은 전혀 점소이의 태도에 동요하지 않고 사람 좋은 웃음을 흘렸다.
"흐흠. 소란이라면 어쩔 수 없군. 들어오세요. 하지만 소란이만 아니면 아무리 억만금을 주어도 아저씨는
여기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아시지요?"
점소이는 갑자기 운광의 말에 태도를 바꾸고는 운광의 길을 비켜주었다.
"하하하, 역시 내 딸아이는 대단하군. 이렇게 유명한 곳을 들어 갈 수 있게 해 주다니."
`흐흠. 대단한 인물이군. 내부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을 정도로 수양이 깊다니. 더구나 무공도 대단한 것
같고.'
궁은 운광의 눈을 한 번 쳐다보고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운광은 천천히 들어와서는
궁의 바로 옆 탁자에 앉고는 누군가는를 간절히 기다리는 표정으로 뚫어지게 주루의 입구만 바라보았다.
이윽고 일 각 정도 지나자 주루안으로 긴 머리를 날리면서 귀엽게 생긴 여자 아이가 들어오더니 주위를 한 번
둘러 보고는 운광을 발견하자 눈가에 반가운 기색을 띄고는 나는 듯이 그에게 달려가 안겼다.
"아빠!"
"허헛! 우리 꼬마 아가씨 못 본 사이에 많이 예뻐졌구나."
운광은 여자 아이를 본 순간부터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오랜시간 동안 자신의 딸을 못 보다가 갑자기
본 대부분 아버지들의 모습이었다.
"피이, 얼굴만 예뻐진 줄 아세요? 보세요. 키도 이만큼 컸단 말이예요?"
소란(小蘭)은 자신의 팔을 약 다섯 치 정도 벌리고는 아주 자랑스럽다는 듯이 운광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호오, 이제보니 정말 그렇구나. 그래 엄마하고 청죽소 아저씨 아줌마들도 잘 있지? "
"피이, 아빠는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궁금하지?"
"허허, 소란이도 이제 질투를 하는 나이가 됐나? 이 아빠가 정말 그렇게 보이느냐?"
"피이, 그럼 이 소란이도 벌써 일곱 살인걸. 이젠 어엿한 숙녀라고요."
소란은 입을 삐죽거리면서 토라진 듯이 말했다.
"허허허."
운광은 그런 소란이의 모습이 아주 귀엽다는 듯이 웃음을 지었고 궁과 광천 역시 입가에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쳇, 아빠는 왜 아까부터 웃기만 해. 내 말이 틀렸어?"
"하하하, 아니다. 이제 소란이도 어엿한 숙녀가 됐는데 그럼 아빠 말도 잘 들어야지? 그래 엄마와 다른 사람들
모두 잘 있느냐?"
"물론 모두 잘 있어. 왜냐하면 이 소란이가 항상 즐겁게 해 주니까 모두 매일 웃고 지내고 있어."
소란은 또 다시 자랑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모두 잘 있는 것이 자신의 덕분인 양.
"하하하, 어련하겠느냐. 그래 모두 잘 있다니 다행이구나."
운광은 소란의 말을 듣고야 안도하는 눈치였다. 비록 소란이의 얼굴을 보고 나름대로 짐작을 하고 있었지만
직접 듣고서야 안심이 된 것이었다.
"그런데 아빠 이것은 비밀인데....................."
"으응, 왜 그러느냐?"
갑자기 소란이 심각한 얼굴로 조용히 말을 하자 운광은 약간 긴장된 말투로 물었다.
"에이, 이것은 말하면 안 되는데......"
"왜 그러느냐? 그러니까 더 궁금해지는데."
"아빠,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엄마한테 말하면 안돼. 꼭 약속해야 돼."
"허허허, 도대체 무슨 말인데 그런지 모르겠지만 약속하마."
"그럼 말할게. 실은 엄마가........."
"그래. 엄마가?"
"엄마가 .........아빠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놀라지마. 엄마가 소란이만 있으면 아빠가 없어도 좋데. 뭐 이
소란이만 있으면 아빠는 없어도 행복하다고 하셨어."
"하하하, 이 아빠는 또 뭐 대단히 심각한 말인줄 알았는데 겨우 그 얘기 였느냐?"
"어, 그럼 아빠는 하나도 안 슬퍼? 엄마가 그렇게 말했는데도?"
소란은 운광의 태도에 의아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괜찮다. 오히려 엄마가 더 얄밉구나. 내가 할 말을 먼저 하다니. 실은 이 아빠도 소란이만 있으면 엄마는
없어도 좋단다. 어떠냐? 엄마는 버리고 이 아빠하고 같이 사는 것이?"
운광은 소란이의 말에 장난스럽게 물었다.
"안돼, 안돼. 엄마한테도 말했지만 이 소란이는 엄마 아빠가 모두 있어야 한단 말이야. 피이, 아빠도 엄마하고
똑같네. 하지만 이 소란이가 있는 한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두고봐."
소란은 어림없다는 말투로 말을 끝냈다.
하지만 천가집 사람들이라면 청죽소 대장인 주운광 부부의 금술이 이 곳에서 가장 좋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 둘은 상대방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을 정도로 사랑이 깊은 사이였다. 단지 소란이의
표정이 궁금해서 서로 장난을 한 것 뿐이었다. 물론 순진한 소란이 이 사실을 알리 만무했지만.
사실 소란이는 천가집에서 유일하게 어디를 가도 환영받는 아이였다. 소란의 순진함과 귀염성을 싫어 할
사람은 천가집내에서는 없었고 오죽했으면 청죽소의 인물이라면 치를 떠는 만혜 서원의 만혜선사 역시
소란이가 온다는 말을 들으면 과자와 사탕을 준비해 놓고 반갑게 맞겠는가?
"후후후. 형장, 잠시 동석해도 되겠오?"
궁은 소란이의 재롱에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 정중히 운광에게 말을 걸었다.
"허허헛, 이 곳에서 나를 보면 모두 피하는데 형장은 그렇지 않으니 아마 이곳 사람은 아닌 것 같군요.
좋습니다. 나 역시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하니 앉으십시오."
"그럼 꼬마 아가씨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
궁은 최대한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소란에게 인사를 하였다. 하지만 워낙 냉혹하게 생긴 궁이 부드러운
웃음을 짓는다고 그의 얼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주 이상한 표정이 되었다.
"푸훗!"
그제서야 소란은 그런 궁의 표정에서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아가씨가 웃으니 저도 안심이 되는군요. 제가 워낙 인상이 험해서 저를 두려워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궁 역시 소란이가 웃자 마주 웃으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한때 전 무림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마도인의 모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하하, 역시 내 생각이 맞군. 저는 형장의 눈을 보고 결코 악의가 있는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소란이가
웃는 것을 보니 이제 확실하게 알겠오."
"과찬의 말씀입니다. 오히려 제가 형장 같은 분을 만난 것이 영광입니다. 이런 통성명도 안 했군요. 저는
전궁이라는 무림 초졸입니다. 오랬동안 무공을 연마하다 세상에 나와 모든 것이 생소하니 형장의 많은 지도
바라오."
"하하하, 무슨 그런 겸손의 말씀을. 오히려 제가 형장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많은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현재 이 곳에 있는 청죽소의 대장을 맡고 있는 주운광이라고 하고 이 아이는 제 딸아이인 주소란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주형, 소란 아가씨."
궁은 겸손하게 손을 맞잡고 정식으로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였다.
"만나서 반가워요. 얼음 아저씨."
"얼음 아저씨?"
궁은 갑작스런 소란의 칭호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피이, 왜 그렇게 놀라요? 아저씨는 얼굴이 너무 차가워서 꼭 얼음같잖아요. 그러니까 얼음 아저씨죠? "
소란은 오히려 궁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허허헛, 이거 굉장한 아가씨를 만났군. 만나자마자 내 칭호를 만들어 주다니. 아무튼 꼬마 아가씨 고맙소. 그런
멋진 칭호를 지어주다니."
궁은 소란의 깜찍한 행동에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도 소란과 몇 마디 하다 보면 그녀의 순진함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소란을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였다.
"하하하, 미안하오. 워낙 내 딸이 귀여움만 받고 자라나서 철이 없는 것을 용서하구려."
주운광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면서 궁에게 사과를 하였다.
"허허허, 그게 무슨 말이요? 오히려 소란이에게 감사하구려. 그렇게 멋진 명호를 지어주다니. 참, 주형은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하하하, 올해로 딱 삼십이요."
"오, 그럼 제가 형님으로 불러야 겠군요. 저는 올해 스물 다섯이니."
"글쎄요? 저야 전형같은 동생이 생긴다면야 좋겠지만 워낙 제 이름이 이 곳에서 안 좋게 소문나서 전형께 폐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요."
주운광은 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전궁이 자신의 동생으로 들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비록 처음 만나는 사이였지만 두 사람은 이미 서로에 대해 깊이 빠져든 상태였고 무엇보다도 궁의
호탕한 성격이 운광의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허, 이거 주형님께서 저를 어떻게 보시고 그러십니까? 제가 비록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사람을
사귀는데 조건을 둔 적은 없습니다. 저와 통한다고 생각하면 설사 그 사람이 무림의 공적이라도 사귈 마음이
있는 것이 저 전궁입니다."
궁은 의외로 강력하게 운광의 말에 반박을 하였다. 하지만 어떤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도 운광이
자신을 걱정해서 한 말인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궁 아우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더 이상 사양할 수가 없군. 자, 우선 이 술으로 우리의 만남을 축하하고
내 집으로 가서 크게 잔치를 베풀어 자네와 나의 우의를 다지세."
운광은 자신의 앞에 있던 빈 술잔에 술을 가득 채우고는 궁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 전궁은 이제부터 주운광 형님의 동생입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바랍니다."
궁은 기쁜 마음으로 단숨에 술잔을 비우고는 다시 술을 채우고는 그것을 운광에게 내밀었다.
"형님, 받으십시오. "
"고맙네. 이 주운광도 이제부터 전궁을 동생으로 받아들여 성심성의껏 자네를 돕겠네."
운광 역시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술잔을 깨끗이 비웠다.
"자, 이제 우리의 결의형제도 끝났으니 어서 내 집으로 가세. 내가 오랜만에 돌아왔으니 아마 크게 잔치 준비를
해 놓았을 걸세. 참, 소란아, 이제 네 삼촌이 되신 궁 삼촌께 정식으로 인사를 올리거라."
"얼음 삼촌, 이 예쁜 조카가 인사올리겠어요."
소란은 여전히 장난스럽게 말을 하면서 궁에게 가볍게 허리를 숙이면서 정식으로 인사를 하였다. 하지만 아직
나이가 나이인지라 자신에게 삼촌이 생겼다는 것에 대해 대단히 기뻐하는 눈치였다.
"하하하, 좋아.좋아. 이 전궁에게 너 같은 조카가 생기다니 정말 기분좋구나. 내 나중에 정말 좋은 선물로 너를
만난 기쁨을 대신하겠다."
"정말이예요, 얼음 삼촌?"
"하하하, 그럼 정말이지, 이 삼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단다."
"그럼 얼음 삼촌, 그 약속은 꼭 지켜야 해요."
소란은 행여 궁이 그 약속을 어길까봐 단단히 쐐기를 박았다.
"물론이다. 만약 내가 약속을 어기면 너의 어떤 요구도 한가지 들어주마."
"좋아요. 약속했어요. 아빠, 빨리 가요. 이제 생각해 보니 엄마가 기다린다고 했어요."
소란은 궁의 약속에 대단히 기뻐하면서 운광에게 어서 집에 갈 것을 재촉했다.
"어허, 이거 혹시 소란이가 이 아빠보다 엄마를 더 좋아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피이, 아빠는 너무 질투심이 많은 것 같아. 그러니까 엄마 말이면 꼼짝을 못하지."
"어허, 이거 삼촌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구나. 내가 언제 그랬다고............"
운광은 짐짓 당황한척 하면서 궁을 바라보았다.
"허허허, 정말 형님이 존경스럽습니다."
궁은 마치 모든 사정을 안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보게, 점소이. 내 음식하고 주형님의 것을 다 합하여 얼마인가?"
" 은 한 냥입니다."
점소이의 태도는 조금전과는 딴판으로 싸늘한 기색이 엿보였다. 궁이 주운광과 결의 형제를 맺자 그도 그렇고
그런 사람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여기있네. 정말 잘 먹었네."
하지만 궁은 그런 점소이의 태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운광과 소란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소란아, 다음에 또 오거라."
"응. 오빠 잘 있어."
점소이의 정다운 말에 소란은 웃음을 띄운채 손을 흔들었다. 점소이 역시 그녀에게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소란이는 정말 대단하구나. 나나 형님에게는 그렇게 차갑던 저 사람이 너에게는 그렇게 친근하게
대하니....................."
궁은 부럽다는 듯이 말을 했다.
" 그럼요. 제가 얼마나 이 곳에서 귀여움을 받는데요. 그 엄하다는 하얀 수염 할아버지도 저에게는 항상 잘 대해
주어요."
소란은 또 다시 자랑할 것이 생겼다는 듯이 궁의 옆에 바싹 붙어서는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하얀 수염 할아버지?"
"하하하, 전아우. 하얀 수염 할아버지란 바로 만혜서원의 주인을 말하는 것이네."
"아, 그 만혜선사 말이군요."
그제서야 궁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 분은 내가 존경하는 분인데 내가 청죽소의 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아주 싫어하신다네."
운광은 매우 서운한 표정이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겠군요? 형님이 존경할 정도의 인물이 괜히 사람을 미워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것이 과거에 청죽소의 사람들이 이 곳에서 크게 난동을 부린 적이 있었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천가집의 사람들이라면 우리들을 모두 싫어했지. 그리고 그 일의 주동자는 다음날 바로 청죽소에서
쫓아냈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했지. 그래도 소란이 때문에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네."
"과거 제가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고지식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만혜선사도 꽤나 성격이 대쪽같군요."
"아우, 그래도 그 분은 학계와 무림에서 동시에 존경을 받고 있는 유일한 분일세. 더구나 그 분은 성격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점에서 정말 훌륭한 분이니 다음에 혹시라도 만날 기회가 있거든 잘 사귀어 두게나.
나처럼 미워 보이지 말고."
운광은 존경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궁에게 대답을 하였다.
"하하하, 형님이 그렇게까지 말하시니 정말 저도 만나보고 싶군요. 저 또한 약간의 보고 들은 것이 있어
학문에도 꽤 자신있는 사람입니다."
"피이, 삼촌이 아무리 잘 났어도 하얀 수염 할아버지에게는 못 당할거예요. 그 할아버지는 모르는 것이 없어요."
운광이 미처 무엇이라고 하기 전에 소란이는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옆에서 재잘거렸다.
"허허, 아무리 그 할아버지가 훌륭해도 그렇지 이 놈아. 삼촌을 그렇게 깔아 뭉개도 되느냐?"
궁은 어이가 없다는 말투였다.
"피이, 삼촌 이놈이 뭐예요? 다 큰 숙녀에게."
오히려 소란은 궁의 말에 화가 난 듯이 따졌다.
"허허허허."
궁은 소란의 말에 하도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고 웃음만 터뜨렸다.
"후후후, 아우가 소란이에게 당한 것 같군. 이제 그만 하게. 이 천가집 내에서 아직까지 소란과 말로 이겨 본
사람이 없다네."
"허허, 형님은 정말 대단한 딸을 두셨습니다. 앞으로 누구와 맺어질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평생 고생문이
열린 것 같습니다."
"휴우, 그래도 혼인이라도 하면 다행일세. 과연 저 말괄량이를 좋아할 남자라도 있을지..........휴우."
운광은 소란의 앞일이 정말 걱정 된다는 듯이 한숨까지 내쉬었다.
"어, 두 분 지금 제 흉보는 거예요?"
궁을 이겼다는 기쁨에 들떠있던 소란은 두 사람의 말에 갑자기 표정을 바꾸고 양 손을 허리에 얹고는 눈을 치켜
뜨고서 화가 난 표정으로 따졌다. 하지만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궁과 운광은 연신 웃음만 지었다.
"어, 왜 웃어요? 소란이 말이 틀렸어요?"
"후후후."
"하하하하!"
"힝, 웃지 말아요!. 소란이는 자꾸 웃으면 울거예요!"
"하하하, 이제 협박까지? 그래 , 어디 우리 소란이가 우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보자. 이 삼촌이 보고
귀여우면 예쁜 인형 하나 사 주마."
"...............?"
소란은 예상치 못한 궁의 태도에 잠시 머뭇거렸다. 아직까지 경험에 의하면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멈추거나
그녀에게 사과를 하였는데 궁은 오히려 마음껏 울으라고 하니 한순간 당황한 것이었다. 하지만 소란이 하라고
하면 안 할 소녀는 아니었다.
"으아앙!"
기어이 소란은 길바닥에 앉아 무엇이 그렇게 서러운지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이보게, 아우. 이제 그만 하게. 사람들이 보면 무엇이라고 하겠나?"
운광은 소란이 울자 상당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과거에 그가 궁처럼 했다가 돌아온 것은 그의 아내에게 칠
일 동안 쫓겨나 수하들의 신세를진 것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는 무의식적으로 소란이 우는 것을 꺼려했다.
더구나 만약 이 사실이 그의 부인에게 들어가는 날이면 그는 궁의 앞에서 쫓겨나는 망신을 당해야 하기 때문에
궁이 소란의 울음을 멈추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궁을 말렸다.
하지만 궁이 누구인가? 한때는 전 무림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인물이 아닌가. 그런 그가 소란의 도가 지나친
어리광이 마음에 들리 없었다. 물론 그도 처음으로 생긴 귀여운 조카의 어리광에 대단히 기뻤다. 평생 어느
누구에게 이런 어리광을 부리거나 받아 본 적이 없던 그에게는 소란은정말 고마운 존재였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 것이지 소란의 어리광은 정도를 넘어서 완전히 이것은 제가 최고라는 우월감에 빠져 있었다.
궁은 어떻게 이런 소란의 행동을 그 고지식한 만혜선사가 받아 주는지 정말 의문이 들 정도였다.
"으엉엉엉!"
소란은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자 더더욱 크게 울기 시작했다.
"하하하, 좋아. 좋아. 소란이는 목소리도 크구나. 어디 마음껏 울어 보거라. 언제 또 다시 이렇게 울어
보겠느냐? 아마 나중에 이 삼촌에게 크게 고마워 할 것이다."
궁은 소란의 울음에 전혀 상관하지 않고 무엇이 좋은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아우!"
운광은 간절한 눈초리로 궁을 바라보았다.
"형님, 이제 소란이도 철이 들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어리광을 받아 주실 것입니까?"
"그,그것이............"
궁의 실망스럽다는 말투에 운광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형님, 물론 저도 소란이가 귀엽고 예쁩니다. 하지만 이제 소란이도 어느 정도 예절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형님은 소란이의 말이라면 무조건 들어주려고 하시는데 그것부터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죄송합니다. 이것은 아우로서 할 말이 아닌데........... "
궁은 자신이 너무 심한 말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운광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휴-. 아우 말도 물론 일리가 있네. 하지만 소란이의 경우에는 아주 특별하다네. 남들은 내가 아내가 무서워
소란이를 맹목적으로 위한다고 생각할 지 몰라도 그 일에는 다 말못할 사정이 있다네."
운광은 나직히 한숨을 내쉬면서 금새 얼굴이 어두워졌다.
"어떤 사정이 있으신데..................?"
궁은 운광의 표정에서 차마 말 못 할 어떤 이유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 아우를 믿어서 그 이유를 설명해 줄테니 반드시 소란이에게는 비밀을 지켜 주게.'
운광은 슬픔이 담긴 전음으로 궁에게 말하였다.
`예. 어떤 일이 있어도 그 비밀을 지키겠습니다.'
`사실 소란이는 지금 아내의 자식이 아닐세. 십 일년 전에 나는 정말 순수한 한 여자와 사랑에 빠져 결국 혼인을
하게 되었네. 우리는 정말 행복했지. 하지만 하늘은 우리에게 그 행복을 누릴 시간을 그렇게 오래 주지 않았지.
혼인한지 약 육개월 후 그녀는 임신을 하게 되었다네. 우리 두 사람은 정말 기뻐하면서 아이를 키울 꿈에
하루하루 즐거움에 빠져 살았지.'
운광은 잠시 애상에 젖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곧 다시 어두운 과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하늘의 시기인지 한 달 정도 후 갑작스런 아내의 비명에 집안으로 들어간 나는 아내가 유산을 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네. 그리고 아내는 그 충격에 정신을 잃어 자리에 쓰러져 있었더군.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지. 하지만 아무리 아이도 중요하지만 어디 아내만큼 중요하겠나? 나는 곧 정신을 가다듬고
쓰러진 아내를 부축해 자리에 눕히고는 의원을 불렀다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고 아내는 크게 다친 곳 없이
단지 충격이 너무 커 쓰러졌을 뿐이었지. 하지만 더 큰 불행은 그 다음부터 였다네. 그 후 이 년 사이에 그녀는
다시 임신을 하게 됐지만 모두 유산으로 죽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지.'
운광의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비록 겉보기에는 인정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어
보이는 운광이었지만 알고 보면 그도 정이 많은 남자에 불과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매일 매일을 하늘을 저주하며 술에 찌들어 살았고 아내 역시 세 아이를 잃었다는 충격에
거의 집안에서 나오지 않았다네. 그리고 어느 날인가 아내가 근방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의원을 불러 그녀의
몸을 진맥하게 한 결과가 무엇인지 아나? 바로 더 이상 아이를 갖는다면 아이 뿐만 아니라 아내까지
위험하다는 것이었지. 청천벽력(靑天霹靂)이 따로 없었다고나 할까. 그 때는 정말 온 세상을 다 부셔버리고
싶었지. 하지만 의외로 아내는 침착했다네. 그리고 정말 말도 안되는 부탁을 나에게 했지. 다시 한 번만 아이를
갖고 싶다고. 후후후, 만약 자네였다면 그 부탁을 들어주었겠는가? '
`저였다면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없어진다고 해도 절대 그 부탁을 들어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궁은 솔직히 자신의 심정을 얘기했다.
`후후, 그렇지.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네. 너무나 아내를 사랑했기에 아내가 울부짖으며 부탁하는 것을
차마 거절할 용기가 없었다네. 아내의 심정을 충분히 짐작하기에. 그러나 나는 한가지 조건을 제시했지. 만약
하룻밤을 같이 지내고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면 더 이상 아이에 대해 미련을 갖지 말자는. 물론 처음에는
아내는 거절했지만 결국에는 승낙하고 말았지. 그녀 역시 내 청을 거절하기에는 나를 너무나 사랑했었기
때문이었지. 그리고 약 세 달 후 아내는 놀랍게도 또 다시 임신을 하게 되었다네. 아내와 나는 기뻐하는 한편
두렵기도 했지. 그 이유는 아우도 알 수 있을 걸세. 그 날 후 나는 오로지 아내와 마지막 희망인 아이를 위해 전
재산을 털어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임산부에게 좋다는 음식과 온갖 약들을 사들여 아내에게 먹였고 아내 역시
이번에는 반드시 아이를 낳겠다는 일념에 정말 모든 행동에 신중에 신중을 기했지. 그리고 우리의 정성을
하늘이 알았는지 아홉 달이 되도록 아이는 그녀의 몸 속에서 무럭무럭 잘 자나났네. 우리는 정말 하늘에
감사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지. 그리고 마침내 해산일이 다가왔다네. 나는 이틀 전부터 인근에서 가장 유명한
산파에게 부탁해 아내의 해산을 도와주도록 부탁하고서는 아내와 아이가 모두 무사하도록 하늘에 내가 아는
모든 신들에게 빌고 또 빌었지. 그런데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게 아내는 죽고 말았지. 그 당시 내 심정이 어떤지
알겠나? 온 세상을 저주하며 닥치는대로 살인을 하고 싶은 충동이 강렬하게 일어나더군. 하지만 산파에게
아내의 죽음을 듣고는 이것저것 생각할 사이도 없이 방안에 뛰어든 나는 아내의 행복한 웃음을 보고는 마음을
돌렸다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나? 바로 죽었다고 믿었던 아이가 놀랍게도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네. 산파도
처음에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아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끈질기게 자신의 생명을 놓치지
않고 있었지. 아내는 바로 죽는 순간에 아이의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는 행복한 웃음을 머금은체 저 세상에 간
것이었다네. 아마 아내는 죽는 순간만큼은 행복했을 것이라고 나는 믿네. 그리고 그 아이를 데리고 아내를 위해
정성껏 묘를 만든 후 나는 이 곳으로 흘러 들어와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 것이라네. 만약 나 혼자였다면 평생
아내의 무덤 곁에서 있었겠지만 차마 어미 젖도 먹어 보지 못한 아이를 버려 둘 수 없어서 아니 그 보다는
사랑하는 아내가 나에게 남긴 유일한 흔적인 아이를 어떻게든 잘 키우고 싶어서 동냥젖이라도 먹일 생각으로
이 곳까지 와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지. 그녀 역시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로 살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소란이를
무척 사랑해 주었다네. 하지만 나는 죽은 아내를 도저히 잊을 수 없어서 소란이만 그녀에게 맡겨둔 채 주루를
전전하면서 죽은 아내를 그리워 했다네. 그리고 소란이가 네 살 되던 해 나는 청죽소의 주인이자 지금의 아내인
두청옥(斗淸玉)과 혼인했지. 어린 소란이에게는 무엇보다 엄마가 필요했고 나 역시 그녀의 소란이에 대한
사랑에 그녀에게 애정을 느꼈던 것이지. 하지만 죽은 아내를 잊은 것은 절대 아니라네. 그리고 청옥 역시 죽은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약속을 했지. 언제든지 죽은 사람이 생각나면 찾아가기로. 아무튼
대충 이런 사연이 있다네. 그리고 죽은 아내의 이름은 하소란(河小蘭)이었지.'
운광은 긴 이야기를 끝내고는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눈길로 길가에서 울고 있는 소란을
바라보았다. 궁은 그제서야 운광의 소란에 대해 왜 그렇게 정도가 지나친 애정을 쏟는지 이해가 되었다. 운광은
소란을 통해 죽은 아내를 느끼는 것이었다. 오죽했으면 자신의 딸의 이름을 죽은 아내의 이름과 똑같이
지었겠는가? 영원히 그녀를 잊지 않겠다는 운광의 다짐인 것이었다.
"흐음. 정말 형님은 대단한 분이시군요. 그런 아름다운 사랑을 하시다니. 후후 정말 부럽습니다."
궁은 두 번이나 사랑에 실패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운광의 세상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사랑에 은근히 샘이
났다.
"아우에게 부끄러울 따름이네."
운광도 궁의 심정을 이해했는지 약간 얼굴을 붉혔다.
"아닙니다. 제가 어찌...................."
"어, 얼음 삼촌. 왜 그러세요?"
궁의 얼굴이 운광의 말에 새빨개지자 어느새 울음을 멈춘 소란은 재미있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 하하하, 이제 다 울었느냐?"
아직까지 그렇게 서럽게 울었던 아이의 모습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소란의 태도에 궁은 어이가 없어
그냥 웃고 말았다.
" 흥, 무엇이 그렇게 우스워요!"
소란은 궁이 얄밉게 느껴졌는지 또 다시 토라진 모습이었다.
" 어이구! 우리 공주님이 또 화가 나셨나?"
운광은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소란을 달랠 때마다 쓰던 말로 그녀를 위로하였다.
" 쳇, 얼음 삼촌. 두고 보세요. "
그러나 소란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모습으로 청죽소를 향해 먼저 재빨리 뛰어갔다.
" 휴우, 정말 못 당하겠군."
궁은 그런 소란의 모습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 하하하, 이 곳에서 그 녀석을 당해 낼 사람이 없는데 아우라고 별 수 있겠나? 자, 어서 가세. 저 녀석이 또
청죽소 사람들에게 뭐라고 떠들 지 모르니."
운광은 궁에게 약간 미안했는지 슬며시 그의 옷깃을 잡고는 소란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빨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