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애 10

 

하이얀 백지를 보고 있으면

시꺼먼 얼굴이

늘 나와 마주 봅니다.

 

왜 그리도 못 생겼는지.

코는 뭉뚝하고

입은 새빨간 줄이 미로를 이루고

눈 또한 뿌옇게 흐려서 답답하고.

 

왜 그런 얼굴이

백지 위에서

늘 나를 바라볼까?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그 얼굴이.

 

그래.

아주 오래 전

그 얼굴과는 무척 다른

한 얼굴을 본 적이 있지.

 

눈은 빛나고

코는 반듯하고

입은 조금 억세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친근하게 느껴지던

그  얼굴.

 

지금 백지 위의 시꺼먼 얼굴과

그 얼굴과는 아주 다르지만

또 어딘지 모르게 닮았습니다.

 

1995년 10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