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세기말 서역의 색목인들이 발흥하여 그 기세 하늘을 찌르고 그 이치로
천하를 설득하여 허다한 강호의 청년 고수들이 신문명의 신묘함을 좇아 남해를
지나 서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비무대회를 통해 문하생을 선발하는 색목인들의
무공은 외공 위주인지라 내공 연마에만 힘을 써온 강호 정통파의 고수들은 그들의
실전비기인 吐弗功과 知亞理 劍法의 악랄함에 손조차 못써보고 문하에 들지
못하는 굴욕을 감내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吐弗功은 세가지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특히 초식의 배열이 강호인의 상식을
크게 벗어난바 무공수련에 정진해온 무림 고수들도 제일식 聽音功 제이식 句文功
제삼식 讀解功으로 이어지는 초식중 제일식 청음공의 독랄함에 청각을 상실하고
기혈이 끓는 나머지 비교적 수월한 구문공과 독해공의 수월함조차 감당하지
못해 비무대회에서 자기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또 知亞理 劍法은 어떠한가. 語劍流, 數劍流, 分劍流의 삼초식은 초식전개에
단지 차 한잔 식을 정도의 시간만이 주어지고 초식전개에 주어진 순서가 없기
때문에 강호인에게는 더욱 감당하기 힘든 터였다. 더구나 지아리 검법 비무는
연중 삼회만 열릴 뿐이고 비무 중 실수한 내용조차도 가려서 다음의 비무대회에
반영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참가자들의 원성이 자자하였다.
하여 비무대회에 참가하고자 객잔에 드는 무사들사이에 소문도 많았다. 토불공의 초식을 파해하는데는 학원공의 수련이 우선되어야 한다더라, 청음공의 수비와 공격은 전적으로 비무의 장소에 의존한다더라, 지아리 검법은 계절이 두번은 바뀔 정도로 수련해야 한다더라 등등.
하나 예전부터 존재하던 몇가지 비급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무공인들 사이에 이루어져 장안은 뒤숭숭하였으니 이름하여 吐弗實戰記, 知亞理大典이 그들이었다. 절세의 무공일수록 간결함과 실전에서의 위력을 특징으로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바나 간과하기 쉬운 진리여서 두 비급을 수련하는 것은 이 평범한 진리를 재발견하는 것에 다를바 없었다. 특히나 지아리대전은 그 방대함으로 인해 청년 무사들이 무리로 劍陣을 이루어서 수련한 결과 단기간에 초식전개의 변화무쌍함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는 비결공개가 잇다랐다.
폭염에 폭포에 은거하든 장서관을 찾든지간에 전광석화의 실전수련을 위해 소문에 동요하지 않고 동년배의 무사를 찾아 겨룬 청년 고수들이 모두 서역으로 무공의 신경지를 찾아 떠났다는 이야기가 간간이 전해진다. 비무에 이기는 것이 모두 중원의 발전을 위한 일임을 염두에 두고 색목인에게 배우되 취함과 버림을 가려하라는 한결같은 장문인들의 가르침이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그즈음 강호에는 이런 노래가 떠돌았다고 한다.
北武林 백성은 도탄에 빠져있고
南海에는 倭寇가 출몰하는도다
皇室爭覇로 中原은 어지러우니
何歲月에 正義가 서리요
초겨울 바람에 낙엽이 가볍게 뒹굴고 있었다. 관악 표국의 장정이 건네준 비무성적 두루마리를 펼쳐든 변방객의 얼굴에 일순 만감이 교차하였다.
<여름의 폭염속에 수련을 거듭하여 토불공을 연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어야 했는가. 비무가 한번 열릴때마다 서역인에게 엄청난 황금을 내야 한다고 해서 오죽하면 그 이름이 吐弗功이겠는가.>
달포전 연세궁에서의 비무대회를 떠올리며 그는 감회가 새로왔다.
일찍이 토불공에 정진하여 육백합 이상을 겨뤄 고수의 반열에 오른 이들이 한결같이 말하는바가 토불공의 제일식 청음공의 수련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역시 그도 동년배의 무사들처럼 토불실전기의 비급 세권과 서역에서 전래한 何忍理 秘策 만으로 비무에 대비했었다. 기실 장안에서 멀리 떨어져 변방에서 생업에 종사하며 짬짬이 무공 연마에 힘써온 그로서는 어려서부터 색목인의 청음공에 익숙한 연배의 청년고수와는 실력의 격차가 있을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그가 입문하고자 하는 空鶴派가 그리 높은 토불공의 공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위안이었다.
그가 나름대로 청음공을 수련하며 감지한바는 변화막측하여 보이는 청음공에도 일정한 정형이 있어서 필을 들어 청음공의 구결을 듣고 쓰면서 형을 연마하는 것이 팔성의 공력에 이르는 첩경이라는 것이었다. 품새가 없이 초식이 있을 수 없고 형식이 없이 내용이 있을수 없다. 그릇이 없이 물이 담길 수 있던가. 이는 실로 그가 유년기부터 스승들에게 수도 없이 듣던 가르침이 아니었던가. 또 한가지 깨달음은 청음공을 시전하기 전에 그것이 노리는 혈도가 短文穴인지 長文穴인지 對話穴인지를 미리 파악해야 공격과 방어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또한 자명한 이치가 아니었던가.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고 진정한 무사는 검을 나무라지 않는다지만 이는 모두 필과 검으로 일가를 이룬 성인의 경지에 해당되는 말. 범부에게는 비무대회장의 형세 또한 중요하였다.
회상에 잠긴 변방객의 눈사위가 잠시 찌푸려졌다.
돌이켜보건대 盛夏에 덕성궁에서의 비무는 그에게 치욕이었다. 비무대회장의
비좁음은 말할것도 없고 설상가상으로 사파무림에서나 사용하는 八月每微鳴의
독랄함에 그는 정신을 잃고 말았었다.
<부천神校 에서의 비무는 보다 수월하였지.>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협착한 장소일수록 청음공의 파상적 공세에 쉬 마음의 평정과 청각의 예민함을 다스리지 못하는법. 그런 면에서 부천신교는 잡념을 없애기에 수월한 곳이었다.
다시 그는 연세궁에서의 비무대회를 떠올렸다.
연세궁은 장안에서 벗어난 원주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는 새벽어름에 말을 달려
대회장에 당도해야만 했다. 연세궁은 듣던대로 그 규모가 엄청나서 수백의 무사들이
이미 연단에 운집하고 있었다. 평소 경신술을 가벼이 여기는 젊은 무사들의
게으름을 탓하듯 제일 앞의 연단에서 화장실에 이르는 거리는 만만치 않아 변의를
느끼는이들은 모두들 제각기 자신있는대로 초상비행 능공허도의 몸짓으로 몸을
날려야만 하였다. 특히나 천리투시의 사술로 부정하게 비무에 임하던 청년들이
판관의 호위무사들에게 힘없이 끌려나가는 모습은 참가자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였다. 수련에의 정진이 역시 빛을 발하는 듯 그는 청음공의 초식을 수월하게
파해하고 구문공 독해공의 시전을 모두 끝내고 바로 운공조식했었다. 지아리검법을
같은 시기에 연마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함이 성취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역시 구문공 독해공과 지아리 검법은 상관관계가 있었어.
<지아리 검법을 익히는이 구문공 독해공을 절로 얻으리라.>
연철대사의 말씀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吳何以吳의 심오한 진리를 구하러 서역으로 떠난 대사의 가르침이 두루마리를 꼭 쥔 변방객의 가슴에 메아리쳤다.
때를 거슬러 올라가 勞加多掌 의 수련에 식상할대로 식상해있던 변방객의 허물어져가는 장원에 서신을 동여맨 傳書鳩 가 찾아든것은 한여름 해질 무렵이었다. 서신의 내용은 이러한 것이었다.
<實戰 을 통해 知亞理 劍法 을 익히고자 하는 이들은 팔월 초하루 정오에 延世宮 正門에 모이시오. 劍과 知亞理大典을 지참하시오.- 熱血拳翁 ->
知亞理 劍法을 익히기에 이보다 좋은 기회가 어디 있으랴. 더구나 변방이 아닌 한양에는 많은 고수들이 있으리라. 내 그들로부터 크게 배움을 얻으리라 . 변방객은 서신을 소중하게 갈무리하고는 한양으로 몸을 날렸다. 退-勤-疾-走- 고함과 함께 변방객이 그의 獨門絶技인 경신술로 몸을 날리자 변방객의 자리에는 어지러운 서책들만이 나뒹굴었다.
팔월 초하루 劍과 知亞理大典을 든 추레한 용모의 변방객이 화려한 장안의 선남선녀들이 즐겨 찾는다는 연세궁 정문에 서 있었다. 기대감이 서린 변방객의 얼굴에 일순 불쾌감이 어렸다.
<이 毒香은 과거 무림의 邪派至尊 戰鬪王, 魯怠公의 五孔催淚香 이 아니던가. >
호흡을 가다듬고 독기를 제거하며 그는 생각에 잠겼다.
邪派 무림의 거두 戰鬪王, 魯怠公 시절에 청년기를 보낸 그로서는 잊을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그 시절에 기세등등하던 戰鬪王, 魯怠公 은 지금 혈도를 잡혀 무공을 폐지당한채 연옥에 갇혀있다. 하지만 당시에 사파지존에 항거하다 목숨을 잃은 수많은 청년 무사들의 넋은 누가 달래줄 것인가. 아직도 五孔催淚香이 사용되는 무림의 현실이 서글플 따름이었다.
이때 멀리서 知亞理大典을 든 변방객 연배의 무사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안녕하시오. 인사는 천천히 하기로 하고 우선 장소를 옮깁시다.>
회합을 주선한 熱血拳翁 의 제안에 무사들은 황급히 남쪽으로 말을 달렸다.
실전기 수련장소인 超弄暗算學館 을 찾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실전기 수련을 위한 이 날의 회합에서 놀라웠던 일은 삼십대에 접어든 중견 무사들이 대거 참석했다는 점이었다. 모임을 주도한 권법의 대가 熱血拳翁 유성, 華空正眞 연철대사, 新林居士 정연, 그리고 변방객까지 의기가 투합한 이들은 아미파의 두 여성고수 俠女黑白劍 희, 랑 그리고 약관의 나이에 고수의 풍모를 갖춘 風月公子 지혁연과 더불어 다짜고짜 知亞理大典 속의 무언의 가르침을 따라 실전기 연마에 돌입하였다.
知亞理 劍法 수련에 정진해온 熱血拳翁이 시전 방식을 설명하였다.
<구결을 불러 줄 때마다 초식을 전개 하십시오. 그리고 제가 종을 흔드면 다음 초식으로 넘어가십시오. 그럼 시작합니다.>
語-劍-流-!
<語劍流의 핵심은 속도와 정확성입니다. 짧게 찔러야 할때는 힘을 빼고 길게 찔러야 할때는 칼 끝에 검기를 모으십시오. 語劍流는 다시 穴途直擊, 長短劍舞, 類似分光 의 삼초식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혈도직격은 빈 급소를 찾아 검으로 채우는 동작, 장단검무는 길고 짧은 검무 후에 검으로 사방을 찍는 동작, 유사분광은 세상의 삼라만상에 검법의 동작을 응용하여 검기로서 사물의 크고 작음, 길고 짧음, 외연과 내포, 긍정과 부정, 직설과 과장 등을 가르는 심오한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초식의 주어진 배열에 집착하지 말고 穴道直擊, 類似分光 을 먼저 시전하고 다음으로 가장 많은 진기를 소모하는 長短劍舞를 전개함이 옳을줄 압니다. 본시 長短劍舞 는 理鶴派와 文鶴派의 무예가 합쳐져 생겨난지라 각각의 문파에서의 풍부한 수련정진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數-劍-流-!
<數劍流는 허초와 실초의 교묘한 배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단순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운율을 타듯이 검을 사용하십시오. 본시 색목인들은 數劍流에 약한 면모를 보이지만 중원의 무사들은 어려서 이미 정석공과 해법공을 연마한터라 數劍流 는 수월하게 파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理鶴派와 空鶴派 문하의 제자들은 이 초식의 연마에 전혀 어려움이 없을 겁니다. 업수이 여기다 허초에 속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分-劍-流-!
<分劍流 는 눈으로 보이는대로 검끝을 좇지 말고 마음에 그림을 그리며 전개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검으로 땅바닥에 구결을 단순화한 도형을 그려가면서 상대방의 혈도를 노리는 어지러운 검의 그림자에 속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나눔과 분별의 중요성 때문에 이 초식을 分劍流 라 부르는 것입니다. 分劍流 는 理鶴派와 空鶴派 에서 특히 중시하는바 수하의 제자들은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복하여 스스로 터득함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하겠으나 시간의 모자람으로 화를 부르지 않도록 일찌기 고수의 반열에 오른 이들이 어찌 이 초식을 파해하는지 참고할만 합니다.>
盛夏 의 폭염에 검을 검집에 넣는이들의 이마에는 땀이 비오듯 하였다. 울컥 변방객의 입가에 선혈이 흘렀다. 늘 빈손으로 勞加多掌 만을 연성하며 뒤늦게 검법 연마의 길로 들어선 변방객의 공력으로 준비없이 실전기를 펼친것이 화근이었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결전의 날은 다가오고..변방객은 행여 누가 볼새라 내상을 추스렸다. 칠일 후의 다음 회동에는 劍陳을 구성하여 수련을 계속하기로 하였고 각자 자신있는대로 語劍流, 數劍流, 分劍流 중 하나의 초식을 미리 연성하여 남들 앞에서 전개하고 서로의 약점을 알려주기로 하였다.
수련을 마친 무사들의 의기투합으로 죽엽청주의 향이 그윽한 가운데 그날밤은 저물어갔다.
매 칠일마다 모여 수련을 해갈때마다 무사들의 무공은 일취월장하였다. 超弄暗算學館 에는 낮부터 밤까지 푸른 검광이 번득였다. 그즈음 수련장에 인접한 中華藏에 전설로만 전해지던 三仙魚龍 의 肝紫臟 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회자되고 있었다. 희귀생물인 三仙魚龍 을 죽이고 그 내단을 中華藏主인 死里醜佳 배달군이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三仙魚龍의 肝紫臟은 그 효험이 막대하여 복용하는자는 육십갑자나 공력이 증진된다는 소문이 진작부터 있던 터였다. 死里醜佳 배달군은 자신을 이길 수 있다면 肝紫臟을 내어주겠노라고 호언장담이었다.
<오늘 우리의 무공도 시험할겸 死里醜佳 배달군과의 대결을 벌이는게 어떻겠나. 이긴다면 肝紫臟도 손에 넣을 수 있고 일거양득이 아닌가. >
新林居士 정연의 말에 華空正眞 연철대사가 헛기침을 하며 대답하였다.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네. 만약 우리가 이기지 못한다면 필시 그에게 목숨을 잃거나 큰 봉변을 당할걸세.>
<결전의 날도 얼마남지 않았는데 한번 해 봄직한 도박 아니겠는가 >
변방객이 新林居士를 거들고 나섰다. 그로서는 내심 수련 중 입은 내상을 치유할 요량도 있었다. 俠女黑白劍 희, 랑 그리고 風月公子 지혁연도 싫은 눈치가 아니었다.
<그럼 노부가 직접 그를 상대하겠네.>
말과 동시에 말릴 겨를도 없이 熱血拳翁 유성이 문을 박차고 나갔다. 風月公子 지혁연이 뒤를 쫓으며 소리쳤다.
<제게 좋은 방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유성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미처 말릴새도 없이 中華藏 앞에서 결투는 벌어졌다. 뒤를 따라 나선 무사들은 일합일합을 지켜보며 일희일비하였다.
熱血拳翁 유성이 語劍流의 빠른 초식을 전개하자 死里醜佳는 萬頭快刀로 맞섰다.
다시 數劍流의 어지러운 검무가 死里醜佳의 요혈을 찔러가자 單-武-指- 외침과 함께 그는 가볍게 한 손가락으로 검을 튕겨내었다.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分劍流 의 초식 전개가 이어졌다. 知亞理 劍法의 이 초식마저 소용이 없다면 더 이상의 요행은 바라기 힘든터였다. 死里醜佳 배달군의 일갈과 함께 그의 허리춤에서 긴 鐵棒 이 튀어나왔다.
雨-動-潛-棒-!
배달군이 이렇게 다양한 병장기를 다룰 수 있다는 점이 좌중을 경악케 하였다. 鐵棒은 유성의 머리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이때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멈추시오. 死里醜佳! 戰火主門令을 받으시오. >
風月公子 지혁연이었다. 그는 가슴에서 사각의 赤旗를 들고 흔들어 보였다. 死里醜佳 배달군의 공격이 멈추었다. 그는 갑자기 바닥에 엎드려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본좌, 문주님의 명을 받겠습니다. >
戰火主門이라면 通神功으로 일세를 풍미하던 전설상의 문파가 아닌가. 변방객은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風月公子는 戰火主門의 제자였다는 이야기군. 아, 강호에는 이리도 숨은 고수들이 많단 말인가.
<싸움을 멈추시고 이걸 읽어 보게나.>
風月公子가 死里醜佳에게 赤旗를 건네주자 그는 낮은 소리로 깃발에 금사로 새겨진 글을 읽기 시작했다.
<肝紫臟 合而六人 神速配達>
알수 없는 암호와 같은 글을 읽는 그의 손이 두려움으로 떨렸다. 이윽고 그는 말없이 철궤에 담긴 肝紫臟을 유성에게 내어주었다.
그날 肝紫臟을 복용한 후 가부좌를 틀고 운기행공하는 변방객이하 무사들의 머리위로 아지랑이같은 기운이 일렁였다. 이제 그들은 육십갑자의 공력을 갖추고 결전의 날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한편 이날 변방객은 중요한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
<知亞理 劍法이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亞理 즉 버금가는 이치를 아는 것이 아닌가. 버금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서역의 무공을 익히고자 할때 넘어야 할 관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知亞理 劍法은 진정한 무공에 이르는 하나의 방법이지 그 자체가 신기막측한 무공이 아니었구나. 보라, 肝紫臟을 얻는데는 戰火主門令으로 충분하지 않았던가. 이거야말로 주객전도의 그릇됨을 일깨우는 좋은 교훈이 되리라.>
가을이라지만 아직은 더위가 남아있는 산길을 검을 든 준수한 용모의 선남선녀들이 오르고 있었다. 漢陽 空鶴館 이 위치한 가파른 산길에는 비무대회장을 알리는 표찰들이 보일듯 말듯 그려져 있었다.
<표찰들이 쉬 눈에 뜨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중원인의 참가를 막으려는 음모의 냄새가 풍기는군.>
생각도 잠시 변방객은 서둘러 대회장에 입실하였다. 참가자들의 호패를 확인하는 어지러운 절차가 끝나고 이제 知亞理 劍法 을 시전하는 일만이 남아있었다.
둥- 두둥-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와 함께 참가자들은 검을 뽑아 들었다. 밀봉된 서책을 뜯어내자 數劍流展開 라는 글귀가 보였다. 변방객은 검을 놀렸다. 다시 북소리가 울리자 모두들 검을 추스리고 다음의 밀봉지에는 語劍流展開라고 쓰여 있었다. 검을 들어 사방위 중 어느 한 방위만을 찍고 베기를 한참 다시 북소리가 울리자 참가자들은 分劍流를 시전하기 시작하였다. 순간 진기가 소모된 청년 무사 하나가 검을 떨어뜨리고 쓰러지자 참가자들은 잠시 평정을 잃었다.
<語劍流도 벅차거니와 뒤이어 하필이면 分劍流라니.>
투덜대는 무사들틈에서 변방객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分劍流의 마무리 동작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일각을 기다리지 않고 감독관은 다시 북을 두드렸다. 순간 미처 초식을 마무리 하지 못한 검사들의 신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변방객 역시 할 수 없는지라 검을 들어 천지간을 찍는 동작으로 격랑되는 기혈을 안정시키기에 안간힘을 쏟았다. 검으로 다섯 요혈 중 하나를 골라 내려찍는 검법은 일명 五指善多運命劒法 이라 불리는 최후에만 사용되는 변방객의 절기였으나 급소를 드러내고서라도 상대의 허를 찔러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만 사용되는만큼 파괴력은 변방객 자신도 예측할 수 없었다.
이제 다시 語劍流를 전개하시오. 북소리와 감독관의 호령에 무사들은 허겁지겁 다시 검을 추스렸다.
<악랄한 초식의 배열이군.> 변방객은 내심 이를 갈았다. <적이 蛙尾 로 공격해오면 무엇으로 대적하겠느냐> 는 무예문제는 변방객에게 혼란을 일으켰다.< 龍頭... 이것은 아니고 鳳凰爪.. 이것 역시 아니다. 그렇다면 蛇足! 虛虛實實 이라 하였다. 蛙尾 는 필시 허초인즉 역시 허초인 蛇足 으로 대적하리.>
둥-!
북소리에 변방객은 자세를 가다듬고 밀봉지에 적힌대로 數劍流를 전개해 나갔다. 하나 이즈음 이미 변방객의 진기는 거의 고갈되어 가기 시작한바 空鶴派에서 십수년을 수련해온 그도 몇몇 요혈에서 피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분하다 평소의 공력이라면 數劍流를 시전하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
둥-! 分劍流!
마지막으로 分劍流의 자세를 취하던 변방객은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며 정신이 아득함을 느꼈다. 朝飯缺食大禪法 으로 평소 수련하던 그에게 주화입마의 기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知亞理 劍法과 朝飯缺食大禪法 은 상생하지 못함을 진작에 깨닫지 못한것이 화근이었다. 할수 없다. 결심을 굳힌 변방객은 五指善多運命劒法 으로 위기를 모면하기로 마음 먹었다.
五-指-善-多-運-命-劒-! 愛-悲-詩-大-而-中-擇-一-!
단전에서 진기를 끌어모아 검초를 허공에 뿌리고 변방객은 비무대회장을 홀연이 빠져나왔다.
<盡人事 하였으니 待天命 하리라. 그리고 이제는 다시 知亞理 劍法 을 사용하지 않으리라. >
달포만 지나면 비무대회의 승패가 갈릴터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무공수련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었다. 목적과 수단을 분별있게 하고 서역인의 영토에 가서도 기개를 잃지 않으리라는 변방객의 다짐이 그가 黑烏山의 鳳天巖 에 꽂은 劒 위로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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