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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만나기 위해
2000년 3월 29일~30일 세상에 태어나 겪은 아픔 중에 가장 큰 것이었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내겐 얼마나 소중하고 큰 경험이었는지, 겪어 본 사람들은 충분히 알 것이고, 안
겪어 본 사람도 미리 짐작해 볼 수 있을 터. 그러나 겪지 않았을 때 상상만으로 생각했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2월 29일 오후에 병원에 입원했다. 유도분만을 위해서였다.
아이가 태어날 날을 훨씬 넘기고 있으니 궁여지책이었다. 자정 이후부터는 물도 마시지
말라기에 그 전에 무언가 많이 먹어 두려 했지만 마땅히 먹고 싶은 것도 없었거니와
먹히지도 않았다. 긴장된 마음에 잠도 오지 않았다. 드디어 자정이 넘고, 간호사는
2시간 30분 간격으로 병실에 들러 약을 주었다. 자궁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약인 듯했다.
그러니 밤 사이 잠도 제대로 한숨 자지 못했다. 시간은 참 더디게 흘렀다. 새벽 5시
30분, 분만대기실로 들어갔다. 아무런 통증도 없었고 몸 상태는 전혀 이상이 없었기에,
더구나 충분히 잘 낳을 것 같은 예감에 여유롭게 남편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씩씩하게 걸어서 대기실로 들어갔다. 대기실에는 침대가 스무 개도 넘었지만 진통중인
산모들이 대부분인지라 나는 거의 보조의자 수준의 침대에 누워 기다렸다. 사실 누워
있을 만큼 어디가 불편한 것도 아니었지만 마땅히 있을 곳이 없어 간호사의 지시대로
말똥말똥한 눈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기계에 연결된 이상한 선 하나가 뱃속의
상황을 체크하고 있었다. 시간은 참으로 지리하게 흘렀다. 옆 침대의 산모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왔다갔다하는 간호사들의 움직임도 구경했다. 저쪽 침대에선 진통중인 여자들의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밤새 먹은 약기운이 전혀 돌지 않는 듯하자 6시 30분, 의사는
내게 촉진제인 듯한 주사를 놓아 주었다. 7시, 8시... 시간은 흘렀지만 진통은 전혀
낌새도 없었다. 9시쯤이 되자 침대가 하나 비었는지 나는 분만실의 가운데쯤에 있는
침대로 옮겨졌다. 아이의 상태를 체크하는 동그랗고 넙적한 기구 2개가 내 배 양쪽에
얹혀졌다. 소프롤로지식 교육을 받은 내겐 특별한 서비스가 있어서 내 침대 머리맡에
있는 카세트에선 내가 평소에 자주 듣던 테이프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분만을 대비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한 음악이었다. 시간은 자꾸 흘러갔다. 그래도 진통이
없었다. 오히려 졸립기만 했다. 자꾸만 기다려지는 진통과 빨리 이 분만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조급증까지 생겼다. 내 왼쪽 옆에선 산모가 신음하고 있었다. 그도 나처럼
유도분만을 하고 있는 거였다. 어제도 이 분만 대기실에 있었다고 하니 마음이 불안했다.
나도 저 사람처럼 내일까지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 오른편엔 임신중독증
때문에 유도분만을 시도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도 나처럼 좀체 진통을 못 느끼고
있었다. 11시 30분, 왼쪽에서 점점 큰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의사는 자궁문이 2.5센티
열렸다고 했다. 그녀는 몹시 고통스러워했지만 나는 무척 부러웠다. 저 진통의 끝에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얼굴을 마주하고 홀가분한 몸이 될 테니까. 12시가
넘어가자 조금씩 진통이 시작됐다. 그러나 나의 진통은 서서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아, 진통인가 보다 했더니 어느새 머릿속까지 파고드는 심각한 통증. 그래도 아직은
참을 만했다. 가만히 누워 있기에는 몸이 너무 힘들었다. 기구들이 붙어 있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앉아 있어도 보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서 침대 발치의
난간을 잡고 머리를 숙였다가 꿇어 앉았다가 몸을 옆으로 뒤틀기도 하고 드러눕기도
하고, 그야말로 온갖 몸부림을 다 쳐댔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진통은 기쁜 것이었다.
얼마나 기다렸던 진통인가. 참으로 길고 지리하게 기다리기만 했던 진통이었다. 음악에
몸을 싣고 고통을 이겨보려 애를 썼다. 그러나 1시가 넘어가자 음악은 더 이상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했다. 간호 보조사들이 왔다갔다 하며 마사지를 해주었지만 통증이
가라앉지는 않았다. 그래도 사람의 손길이 내 몸에 닿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었다.
나는 자꾸만 소변구를 요구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반가웠고, 긴장감 때문인지
자꾸 소변이 마려웠다. 좁은 침대 위에서 소변을 보는 일도 그리 만만치는 않았지만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는 덜 아픈 것 같았다. 1시 30분, 왼쪽 여자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의사는 자궁문이 4센티 열렸다고, 조금만 더 참으면 아이가 나올
테니 힘을 내라고 알려주었다. 그때쯤 나도 진통이 심했다. 나는 2.5센티 열렸다고
한다. 왼쪽 여자처럼 진행된다면 나도 앞으로 2시간 후엔 극심한 진통을 겪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분만을 하게 될 것이다. 몹시 아팠다. 이제 몸을 뒤척이는 것도 통증을
이기는 데 힘이 되지 못했다. 그저 옆으로 누운 자세에서 끙끙 앓기만 했다. 허리와
엉덩이가 그야말로 찢어질 듯 아프고 심한 몸살을 앓을 때처럼 팔다리도 몹시 아팠다.
간호 보조사 한 명이 내게 붙어서 계속 마사지를 해주고 있었다. 아픔을 이겨 보기
위해 학생인 듯한 그 여자아이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4시, 왼쪽 여자가 울부짖으며
분만실로 갔다. 아이 머리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나 부러웠던지... 그러나
그녀처럼 요란하지 않게 차분하고 평화롭게 진통을 견디기 위해 얼마나 애썼던지...
4시 30분, 엄청난 통증으로 도무지 참을 수 없을 때 의사는 4센티가 열렸으니 힘내라고
알려주었다. 기뻤다.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진통은 정말 밀물처럼 밀려왔다.
산후를 생각해선 몸에 힘을 많이 주면 안되고, 뱃속의 아이에게 산소를 제대로 공급해주기
위해서는 호흡을 안정되게 잘 해야 하지만 자꾸만 신음이 터져나오고 팔다리에 힘이
갔다. 아이에게 빨리 나와 달라고 수없이 당부했다. 설마 죽지야 않겠지만 죽을 것처럼
아팠다. 고개를 살짝 들어 보면 간호사들 책상 뒤로 벽에 걸린 시계가 보였다. 나는
거의 5분 간격으로 시계를 살폈다. 아무리 아파도, 내가 참다 못해 큰 소리로 의사를
불러 상황을 살피게 해도 의사는 그저 아직 멀었다고만 했다. 의사는 남자들이었지만
이제 도무지 창피한 것도 모르겠고, 처음엔 내진을 할 때 아프더니 그 정도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의사가 찾아오면 반갑기까지 했다. 이렇듯 내게서 수치심이 없어지다니...
5시 30분, 자궁문은 여전히 4센티만 열린 채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는 걸까. 주치의는 내 골반은 정상이라 충분히 정상분만이 가능하다고 했었다.
6시, 너무나 극심한 통증에 온몸이 뒤틀렸다. 아무리 입을 다물려 해도 다물어지지
않고 가슴 언저리에서부터 솟아난 신음이 큰 소리가 되어 터져 나왔다. 그때였다.
주치의가 나타났다. 얼마나 반가운지 그 마음을 누가 알 수 있을까. 하루종일 외래진료가
있어서 분만실에 못 들렀던 주치의는 내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소식을 듣고 분만실로
온 것이다. 의사는 내 손을 잡으며 상태를 물었다. 나는 참을 수 없이 힘들다고 했고,
의사는 아무래도 더 이상 자궁문이 열리지 않으니 수술을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분명 임신중엔 그러지 않겠노라고, 죽어도 정상분만을 해보겠노라고 끝없이 다짐했던
터였지만 의사의 그 말이 어쩌면 그렇게 반가운지. 나는 고맙다고 했다. 이제 이
고통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더없이 고맙기만 했다. 의사는 골반 크기에 비해 아이의
머리가 큰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좀더 빨리 결정해줄 것이지, 원망도 없지 않았지만
이제라도 이렇게 결정해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아직 고통은 극점에서 맴돌고
있었다. 매초마다 더욱더 극심해져갔다. 숨을 쉬기조차 힘들어졌다. 수술실에 가기까지도
시간이 조금 지체됐다. 수술방이 여유가 없었다. 방이 날 때까지 기다리는 20~30분의
시간 동안 나는 거의 까무라칠 듯이 아팠고 급기야 비명도 마구 질러댔다. 6시
30분, 수술실로 향했다. 분만대기실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편과 시어머니가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대답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내 일그러진
모습을 보이는 게 몹시 창피횄다. 아직 내게 정신이라는 게 살아 있단 말인가. 수술실에서
또 얼마간 지체. 마취과 의사는 대기중이었지만 산부인과 의사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내 주치의는 피치 못할 약속 때문에 수술을 집도하지 못하노라고 내게 양해를 구하고는
퇴근해 버렸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마다 애절한 눈빛을 보내며 어서 마취라도
시켜주길 기다렸다. 드디어 의사가 나타나고 마취과 의사는 내 입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눈을 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돌렸다. 간호사
두 사람이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애기는요?" 내
물음에 간호사는 "네, 아드님이에요. 수고하셨어요." 한다. 드디어
낳았구나. 왈칵 치솟는 눈물. 사람들이 나를 태운 침대차를 끌고 수술실 밖으로 나가고,
밖에서 대기중이던 남편과 내 동생이 나를 따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나 이제 평생 자기한테 밥 얻어먹고 살아도
하나도 안 챙피해." 그 말을 하며 내가 울었던가. 남편은 웃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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