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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의 장군이

2000년 3월 31일 금요일 아기 생후 2일째
내 아기는 3월 30일 오후 7시 3분에 태어났다. 처음 입원했던 방에서 모자동실로 방을 바꾸었다. 병원에서도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자유롭게 모유를 먹이기 위해서였다. 몇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밝은 오후에 아가가 방으로 왔다. 시어머니가 신생아실에서 데려온 아기는 아랫입술이 온통 입안에 쏙 들어가 있었고, 신생아치고는 제법 크고 얼굴도 넙적했다. 참 낯설었다. 내 몸에서 태어난 아기의 모습이라니... 이건 물론 내가 신생아를 실제로 가까이서는 처음 보았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아이가 예쁘다며 입이 마를 정도였다. 나는 도뇨관과 혈관주사를 꽂은 채 누운 채로 쳐다보느라 잘 볼 수도 없었지만 참으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 아기가 이런 모습이었구나... 저도 내 모습이 참 많이 낯설겠구나... 산도를 빠져나오려 고생한 삐죽한 정수리를 보니 가슴이 아팠다. 마치 고깔콘 같은 머리 모양. 저도 나처럼 두 가지 고통을 모두 겪었다. 마지막엔 엄마가 숨을 제대로 못 쉬어 저도 산소가 부족해 태어나자마자 의사들을 긴장시키고, 소아과 의사들도 쫓아다니게 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지금은 괜찮고, 어머니 말로는 신생아들 중에서 가장 깨끗하고 얼굴도 뽀송뽀송하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볼 수는 없지만 내 눈에도 아이는 매우 통통해 보였다.

4월 1일 토요일
지난밤에 어깨 언저리부터 팔까지 저리고 아프더니 그것이 젖이 도는 징조였나 보다. 어제는 아이가 아무리 입을 대고 있어도 젖이 안 나오더니 오늘은 드디어 젖이 나오고 아이는 맛있게 먹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처음 해보는 일은 서툴기 마련이라 참 어색하고 불편했다. 게다가 내 가슴에서 젖이 나오고, 그걸 아이가 먹고 있다니, 얼마나 신기한가. 아이는 참 야무지게도 빨아댔다. 나는 드디어 엄마가 된 것이다. 이 자랑스러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아이는 양쪽에 보조개가 쏙쏙 들어가고 눈에는 쌍꺼풀 같은 엷은 선이 보인다.
의사는 배출되는 오줌의 양이 적다고 걱정을 하며 돌아가더니 저녁 무렵 다시 돌아와서는 엄청난 비보를 전해주는 게 아닌가. 내가 맞고 있는 링거의 2/3는 소변으로 나와야 하는데 배출되는 건 1/3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수술시에 혹시 실수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자궁 양쪽에 있는 신장의 관은 자궁과 아주 바싹 붙어 있어서 수술시에 자궁을 꿰매면서 실수로 신장까지 꿰맸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오늘만 버티면 도뇨관을 떼어내고 식사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목이 몹시 말랐다. 그러나 의사는 물 한모금도 허락하지 않았다. 젖은 가제로 입안을 닦으면서 어쩐지 억울함이 몰려 울고 말았다. 나는 죽을 고생을 다해 지금까지 왔는데, 만약 저들의 실수로 다시 수술을 하거나 어쩌지도 못하는 상태로 퇴원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래도 마구 걱정을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옆에서 시어머니가 시중을 들고 계시고 아이에게는 젖을 물려야 하기 때문이다.

4월 2일 일요일
오전 10시경 주치의가 방문했다.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이야기하고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말란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나쁘게 생각하면 저들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는 세 번의 수유로 양이 충분치 못했던 모양이다. 오후에 신생아실로 돌려보내기 전에 무려 1시간을 보챘다. 젖이 모자라 그런 줄도 모르고 온갖 걱정을 다 했다. 분유를 먹이자 아이는 금세 조용해졌다. 밤에는 젖을 짜서 신생아실로 보내 주었다. 아이의 응가는 쑥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아이는 먹으면서 응가를 해서, 먹을 때마다 응가를 하는 셈이다.
오후에 물 한모금을 마셨다. 이렇게 달고 맛있는 물은 태어나서 처음 먹은 듯하다. 물 한모금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다.

4월 3일 월요일
모유량은 충분한 듯하다. 이제 칭얼대는 건 안아달라는 신호인 모양이다. 안아주면 금세 조용해진다. 배꼽이 떨어졌다. 태어난 지 만 4일. 참 빠르다. 다들 놀란다. 간호사들은 우리 아기를 '장군'이라고 부른다. 아이는 건강하고 튼튼하다.
초음파검사와 엑스레이 촬영을 했다. 의사가 겁을 준 것처럼 수술시에 잘못된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좀더 지켜보자고 한다. 허리가 많이 아프고 가슴도 아프고 숨도 막힌다.
오후에는 링겔을 떼고 도뇨관도 뗐다. 자유롭게 걸어다닐 수 있다. 식사도 했다. 4박 5일 만에 하는 식사. 미역국과 밥을 다 먹어치웠다.

4월 4일 화요일
오전 8시 40분, 처음으로 직접 아기를 데리러 신생아실로 갔다. 그동안은 시어머니가 아이를 데려오고 데려다주고 했다. 신생아 인수증을 간호사에게 주고 기다리는 동안 우리 아기에게 행해지는 조처를 유리 너머로 지켜보았다. 아이의 체온을 재고, 기저귀를 살피고, 엄마 아빠 이름이 쓰인 이름표와 우유 1병을 챙겨 우리 방으로 가져갈 카트로 데려와 누인다. 그 모든 모습을 지켜보며 가슴 속이 뻐근해졌다. 울컥거리는 감동. 눈물이 흐른다. 우리 아기와 만난 지 6일째에 비로소 나는 진한 감동을 느낀다.
새벽 5시에 수술 부위의 실밥을 뽑았다. 아프지는 않았다.
아기는 오전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심하게 보챘다. 젖이 부족한지 젖꼭지를 놓으려 들지 않았다. 낮에는 그토록 잘 먹고 잘 자더니...
아기의 눈엔 쌍꺼풀이 진하게 쏙쏙 들어간다. 예쁘다.
엑스레이 검사 결과는 어딘가에 물이 고여 있다고 한다. 이틀 후에 초음파 검사를 다시 한 번 하자고 한다. 소변을 통해 저절로 물이 빠져야 하는데 좀더 지켜보자는 것이다. 자연히 퇴원은 늦어지는 셈이다. 수술한 산모들도 5박 6일, 그러니까 오늘이면 퇴원할 수 있는데 말이다.

4월 5일 수요일
아이는 앞머리 쪽의 배냇머리가 많이 빠져서 이마가 길고 앞 머리숱이 적어졌다. 나는 젖이 넘쳐서 고생이다. 아이는 생후 7일, 병원에서 입혀주는 일률적인 사이즈의 배냇저고리가 작아서 옷이 끼고 길이가 짧아 짱뚱하다. 아이가 타고 있는 카트도 꽉찰 지경이다.
내게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불과 3~4년 전만 해도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다. 엄청난 출산의 고통도 겪고, 자식이라는 존재도 곁에 두어 보고... 이 아들이 내게 앞으로 어떤 존재가 되어 줄지 기대와 함께 일종의 우려가 머릿속 한편으로 스며든다. 나를 빌어 세상에 나왔으되 내 소유가 아니며, 저 혼자 힘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잘 보살펴 주는 것이 부모 된 나의 도리일 텐데, 그 도리에 충실키 위해 나와 남편은 또 얼마나 노력할지.
삼성제일병원 116호실 창 밖으로 동국대 후문이 보인다. 그 후문을 거쳐 교정에 봄꽃들이 흐드러져 있다. 노오란 개나리, 금방이라도 필 것 같은 벚나무의 불그스름한 기운, 단아한 모습으로 함초롬히 피어 있는 목련 한 그루. 우리 아기, 지금은 그저 퉁퉁하고 아직 제대로 모양이 안 잡힌 듯하지만 저 멋진 목련 꽃처럼 단아하고 고고한 모습으로 멋지게 자랐으면... 시원할 것 같은 바람이 보기 좋게 불고, 따뜻한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포근한 4월을 맞으며 태어난 우리 아기, 저 전형적인 하늘색처럼 부드럽고 온화한 품성을 지닌 다정한 사람이 되어 주었으면...
오늘 아기는 똥을 폭포처럼 쏘아 기저귀를 갈아주고 있던 할머니를 깜짝 놀라게 했다.

4월 6일 목요일
새벽 3시에 수유실로 가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기까지 했는데, 새벽 5시 폭포같이 쏟아지는 피. 정말이지 폭포처럼 피는 흐르는 것이 아니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끝도 없이 쏟아졌다. 무언가 왈칵! 하고 나오는가 하면 또 잠시 있다 그러기를 수차례. 엉덩이 밑에 깔린 패드는 5분도 못되어 한 장씩 바꾸어야 했다. 내 몸 안에서 그토록 많은 피가 쏟아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너무나 끔찍하게 쏟아져 내리는 피 때문에 정신이 몹시 산만해졌다. 이렇게 죽는구나, 산부인과에서 죽어가는 산모들이 있다더니 바로 나 같은 경우이구나, 어쩌나 아이가 나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젖도 몇 번 못 물렸는데... 온갖가지 걱정이 몰아쳤다. 의외로 남편은 참 많이 담담했다. 나를 안정시키려 무던히 노력하는 그 모습에서 두려움 따위는 읽을 수 없었다. 7시나 되어서야 분만실에 있던 의사가 나타났고, 무슨 기구인가를 동원해 피를 뽑아냈다. 몹시 아팠다. 그러나 여전히 피는 멈추지 않았다. 이러다 온몸의 피가 몸땅 다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9시 30분, 주치의가 찾아와서는 다시 아까처럼 다시 피를 뽑아냈다. 그는 전혀 아프지 않게 부드럽게 했다. 별거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도 했다.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얼마나 편해지는지...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피는 줄어들었다. 그러자 곧장 세 가지 초음파 검사를 하고 엑스레이 촬영을 했다. 그야말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느낌이었다.
태평스레 잘 자고 있는 우리 아들, 그 아들을 보자 자꾸 눈물이 흘렀다. 하루 종일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밥 먹다가도 울컥, 아이 얼굴을 쳐다보다가도 울컥, 자리에 드러누워도 울컥... 아이를 신생아실로 데려다주고 나서 친정에 전화를 했다. 그저 엄마 아버지 목소리만이라도 듣고 싶었다. 울고 싶었지만 용케 참았다.

4월 7일 금요일
지난밤에 두 번이나 수유를 하러 다니며 잠을 설쳐서인지 몸무게가 2킬로그램이나 빠졌다. 나도 참 지독한 사람이다. 내 몸이 지금 이 지경인데도 아이에게 젖을 주는 일만은 한 번도 안 거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거다. 수유만 끝나면 배가 몹시 고프다. 신생아실이나 모유수유실에서 우리 봄봄이는 늘 관심의 대상이다. 모유수유실에서 보면 다른 아기들은 손바닥만하다. 게다가 다른 엄마들은 젖이 모자라 끙끙대고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 봄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두 배는 크고, 젖도 잘 빤다. 젖은 충분하다. 다른 엄마들은 부러운 눈길로 우리를 쳐다본다. 그러나 초보 엄마가 4.3킬로그램의 번쩍 들고 안았다 뉘었다 하는 일은 결코 수월치가 않아서 양팔이 심하게 시큰거리고 허리, 허벅지, 두 종아리도 많이 당긴다. 온몸에 힘을 쏟으며 젖을 먹이는 셈이다.
검사 결과 몸에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한다. 물을 많이 마셔서 소변을 많이 누면 수분이 많이 빠져서 괜찮아질 거란다. 왠지 미덥지는 않지만 어쨌든 퇴원은 결정되었다. 병원에 들어온 지 10일 만이고, 아이가 태어난 지 9일 만이다.
샤워실은 약간 추웠지만 샤워를 했다. 당분간 목욕은 못할 테니까. 끝없이 허기가 진다. 입원확인서를 보니 참 가관이다. 1.임신 39주 2.아두골반불균형 3.제왕절개분만 4.거대아분만 5.수술후핍뇨 6.분만후출혈 7.폐부종
결국 폐가 부었었다는 거다.
시댁에서 산후조리를 하기로 결정했다. 아이에게 깨끗한 새옷을 입히고 모자를 씌우니 인물이 산다, 살아. 시댁에 도착해 아이는 2시간 정도 칭얼거렸다. 적응하느라 힘든 모양이다. 보고, 듣고, 말하고, 느끼는 감각들이 온전하기를 빈다.
시어머니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방 안 온도를 높인 뒤 아기를 안고 선 채로 기도부터 올린다. 축복기도를. 어머니는 집에 도착해 게속 종종댈 정도로 바쁘다. 미역국을 비롯해 내 식사를 준비하고, 짐보따리들을 정리하고 아기 기저귀를 갈아 빨고... 무척 분주하다. 나는 계속 피곤해 먹으면 잠에 곯아떨어지고.

4월 8일 토요일
아이는 잘 먹고 잘 잔다. 살이 찌는지 쌍꺼풀이 없어져 버렸다.
젖몸살이 오는 줄 알고 잔뜩 긴장했다. 유축기로 남은 젖을 짜내도 아프기는 마찬가지. 30분쯤 지나 아이가 젖을 빨자,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픔이 싹 사라졌다.
나는 허리가 몹시 아프다. 오른쪽 손목도 붓고 통증이 심하다. 아직도 배가 당기고, 수술 부위도 불편하다. 오로는 정상인 듯하다. 생리처럼 조금씩 피가 나온다.
아기는 천사처럼 예쁜 모습으로 잘 잔다. 제 아빠의 어린시절 사진을 보니 영락없이 아빠 모습이다. 특히 코와 입은 빼닮았다. 눈은 제 아빠를 닮아 별로 크지 않은 듯하다. 눈만이라도 이 엄마를 좀 닮아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발톱까지도 제 아빠만 닮았다.
아기는 발등까지도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여느 아이들에 비해 약 한 달 가량 성장이 빠른 셈이다. 뱃속에서의 일주일이 배 밖에서의 한 달을 따라잡은 모양이다. 하루중 두 번 정도는 잠투정을 하느라 칭얼댄다. 안아달라는 신호인 듯하다. 왼쪽 젖을 물린 뒤 기저귀를 갈면 반쯤 들었던 잠이 깨고 다른 쪽 젖을 물리면 젖이 빌 때쯤 눈을 스르르 감는다. 어느 땐 그대로 잠들고, 어느 땐 자리에 누이면 보챈다. 아이는 매우 순한 편이다. 탯속처럼 속싸개로 꼭꼭 싸서 재우면 편안하게 잘 자다가 가끔 팔다리를 요동치듯 움직인다. 갑갑한 모양이다.
정말이지 천사 같다. 하긴 이때 이만큼 천사같지 않은 아이가 있으랴만 내 품에 천사를 안고 있는 이 근사한 기분, 세상 무엇도 부럽지가 않다.

4월 9일 일요일 생후 11일째
아기 머리카락을 살짝 뒤쪽으로 빗질하면 이 아이는 숨길 수 없는 남자아이다. 생후 열흘 만에 이렇듯 모습 자체가 사내아이 티를 낸다. 병원에서도 이미 "남자애답다"는 소리를 여러 차례 듣긴 했어도 내가 체험하기는 처음이다. 얼굴 모습 자체에서 느껴지는 이 사내아이 느낌. 이렇듯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은 자기 성을 표출하는가 보다.
목욕을 시키느라 시어머니와 내가 아이를 데리고 전쟁을 치렀다. 작고 여려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조심스럽기만 하고 아기는 병원에서 능숙한 간호사들에게 길들여졌던 탓인지 너무나 힘들어 한다.
아이는 볼 근육을 위로 살짝 올려서 눈웃음을 짓는다. 초승달처럼 구부러지는 눈, 무척 귀엽다. 나를 닮은 건, 입가의 보조개뿐. 볼에는 제 아빠를 닮은 확실한 보조개가 있다.

4월 10일 월요일 12일째
목욕을 한 아이는 새하얐다. 넓은 이마며 작고 오똑한 코, 볼록한 볼, 앙증맞은 턱, 얼굴에 비해 조금은 커 보이는 귀까지 모두 하얐다. 손톱이 많이 길다. 어떻게 잘라 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시어머니는 이로 깨물어서 잘라주라고 하는데 그러자니 어디까지가 손톱인지 보지 않고는 감이 잡히지 않아 불안하다. 비닐처럼 얇은 손발톱. 내가 가진 대부분의 것을 이 조그만 아기도 갖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하다.
봄봄이는 깨어 있는 시간이 차츰 많아진다. 특히 오늘은 1시간 이상이나 깨어 있기도 했다. 젖을 다 먹고 1시간이 넘도록 깨어 있으니 조바심이 났다. 아직 우리 아기는 신생아인데 벌서 이래도 되나 하고. 한번 잠들면 여전히 잘 자지만 어제보다는 조금 더 예민해진 듯하다. 오늘은 날씨마저 쌀쌀하고 방안엔 위풍이 있어서 자못 걱정스럽다. 감기 걸리지 말아야 할텐데.
행복하다. 내게 이만한 행복을 준 존재가 이전에도 있었던가... 젖을 물고 동그란 볼을 볼록이며 입을 오물오물, 꿀떡! 젖을 넘기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꽉차는 행복감. 10센티도 안되는 거리에서 바라보는 아기의 얼굴에는 '평화'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없다. 아기에게서 느껴지는 평화 때문에 내가 매우 행복하다.
아기 손톱을 잘랐다. 손톱은 많이 자라 있었다. 손가락이 길고 균형 잡힌 손은 아주 예쁘다. 살인지 손톱인지 헷갈릴 정도로 얇은 손톱을 자르는데 굉장한 주의력이 필요했다. 아기가 자는 사이에 살짝 이 작은 성공했다.

4월 11일 화요일 13일째
오늘 목욕은 편치 않았던지 꽤 힘들어했다. 그래도 아기는 여전히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럽다. 잘 때 하는 배냇짓도 어쩜 이리 천사 같은지... 입 속으로 쏙 들어가 있던 아랫입술도 이제는 다 나와 작고 예쁜 입술로 여러 가지 표정을 만들어낸다. 조그맣게 모아 앞으로 쏙 내밀면 코보다도 작아져 앵두보다 더 작을 것 같다. 꽉 다문 입술을 양쪽으로 힘을 주면 엄마 보조개와 아빠 보조개가 동시에 생기는 볼. 힘을 줄 때마다 얼굴은 거의 적갈색으로 바뀐다. 그래도 아기는 좀체 울지 않는다. 참으로 순한 아기다. 다른 아이들은 요구가 있을 때마다 울음으로 의사를 표시하느라 걸핏하면 운다는데 우리 아기는 그저 깨어서 조용히 눈만 껌벅인다. 하루에 한두 번 아이가 우는데, 채 10초도 안 넘을 만큼 짧게 운다. 점잖고 얌전한 아기다. 그래서 아기가 뭘 요구하는지 계속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야 한다. 빨리 기저귀를 살피고 머리 밑이 덥지 않은지, 땀이 너무 많이 나지 않는지, 젖을 찾고 있는 건 아닌지. 주의깊게 보살펴야 한다.
바닥이 더운 것 같아 아기를 옆으로 살짝 돌려 눕혀 보았다. 어라, 놀랍게도 아기는 옆으로 누워서도 잘 잔다. 신기하다. 저 연약한 몸뚱이 어디로 제 몸을 받치고 모로 누워 있을 수 있을까.

4월 12일 수요일 14일째
아기는 손발의 움직임이 매우 활발하다. 배냇짓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은 웃는 행동이고. 딸꾹질을 자주 해서 병원 신생아실에 문의하니 아이가 급하게 먹어서 그럴 수 있다고 한다. 자주 트림을 시키고 먹일 때도 가끔 쉬어 주라는 조언. 몸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응가를 지리는 것은 모유를 먹는 아이들에게 흔히 있는 현상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한다.
나는 팔다리가 몹시 욱신거리고 허리가 여전히 많이 아프다.
아기는 콧구멍 속, 코바퀴에 살이 붙은 것도 아빠를 닮았다.

4월 13일 목요일 15일째
보름, 아기는 세상에 나온 지 한 달의 절반이 되었다. 아기는 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천사의 모습 그대로다. 이 아이를 위해 내가, 남편과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크다. 좋은 공기 속에서, 마음 착한 사람들 속에서 선하고 바른 사람으로 살게 해주고 싶은데, 그러자면 우리가 감수해야 할 것이 아주 많다.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런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 극복하고 아기를 위해 우리가 우리 삶의 일정 부분을 쉽게 포기할 수 있을까...
아기를 한참 들여다보다 보면 어느새 가슴 속에 꽉차 오는 뿌듯함. 이 가슴 벅참은 대체 뭘까. 행복감? 아마 그것일 거다. 이만한 행복을 내게 선물한 아이에게 내가 뭘 바랄 수 있을까. 아이는 내게 준 이 행복만으로도 내게 해줄 모든 것을 해준 셈이다.

4월 14일 금요일 16일째
봄봄이가 나를 닮은 면 또 하나 : 갈색 직모.
봄봄이 머리카락은 진한 갈색이다. 마치 염색이라도 한 듯 고운 색이다. 배냇털이 빠지는 중이라 머리 밑이 성성하지만 아빠처럼 곱슬머리가 아닌 건 다행이다.
잠깐 아이를 뒤집어 놓아 보았다. 아이는 어색한 행동이 불편한지 몸부림이 무척 심하고 급기야 울려고 했다. 그러더니 한참 뒤 한숨 자고 나서 젖을 먹고 나더니 누워서 게속 버둥대며 논다. 그냥 노는 게 아니라 발에 힘을 주어 위로 올라간다. 등으로 기어서. 생후 16일 만에.

4월 15일 17일째
황달기가 완전히 가신 아기의 눈망울은 맑고 깨끗하며 총명해 보인다. 잘 조화를 이룬 이목구비와 볼록하고 탐스러운 볼, 훤하고 투명한 이마, 조그맣고 다부져 보이는 턱... 아기는 내 바람처럼 착하고 영민할 것 같다.

4월 16일 18일째
봄봄의 속눈썹이 보인다. 태어나 처음 만났을 땐 속눈썹이 보이지 않았었다. 제 엄마 아빠 모두 그리 길거나 진하지 않으니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속눈썹이 길고 짙어진다. 입 속으로 들어가 있었던 아랫입술도 다 나왔고, 전체적으로 입술이 도톰하다. 깨어서 한번 놀기 시작하면 사지를 버둥이며 1시간 이상 논다. '아-' 하는 짧은 소리도 낸다, 마치 옹알이처럼. 눈은 똘망똘망, 얼굴이 또랑또랑 야무지게 생겼다. 활기찬 몸놀림은 건강하고 씩씩한 아이로 자랄 것을 예감케 한다.

4월 17일 19일째
아기가 눈을 감고 잠이 들면 이내 나도 잠에 몰린다. 아기는 잠에서 깨어나도 보채지 않는다. 그저 눈동자를 굴리며 조용히 사방을 응시한다. 너무나 배가 고파 도저히 참을 수 없으면, '아-' 짧게 한마디 내뱉는다. 그 소리가 나기 전에 나는 늘 잠에서 깬다. 마치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된 듯, 아기의 뇌파와 내 뇌파가 연결돼 있는 듯. 아기가 눈동자를 굴리며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일 때 기저귀를 갈아주고 젖을 물리면 아기는 기분 좋게 젖을 빨고 배가 부르면 젖을 문 채로 다시 잠이 든다. 배가 덜 찼거나 먹던 중에 기저귀를 갈기라고 하면 자리에 뉘었을 때 눈을 곧장 뜨고 한참을 조용히 논다. 팔다리를 휘저으며 신나게 놀다가 또 배가 고프면 '아-' 하고 소리를 내고, 그때 또 젖을 물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젖을 문 채로 잠이 든다.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모습인가.

4월 18일 화요일 20일째
젖몸살. 38.3도. 낮부터 열이 나는 듯하더니 점점 심해지고 몸살처럼 온몸이 으슬거려 동네 산부인과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받아 왔다. 봄봄이는 복이 많다. 젖이 많아 저 먹고 싶은 만큼 양껏 먹을 수 있으니까. 그만큼 나는 힘든 일을 많이 겪는다. 젖이 남아 유방 속에 갇혀 젖이 불어 있는 젖몸살. 봄봄이 먹고 남을 만큼 많은 양의 젖이 나오는 셈이다. 모유량이 적어 고민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데, 그에 비하면 봄봄은 복이 많은 것이다. 시어머니 표현대로 도윤이 껍데기인 나는 껍데기로서의 역할에 무척 충실한 셈이다. 내가 가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아기에게 주는 셈이니까.
온몸을 옷으로 칭칭 감고 병원에 다녀오는 길, 앞집에 두 그루의 라일락이 보라색, 흰색 꽃을 활짝 피우고 있는 걸 보았다. 그런데 왜 마치 어떤 충격적인 장면을 보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일까.

4월 19일 수요일 21일째
양치질을 했다. 무려 22일 만에. 그 동안은 가그린으로 입안을 헹구는 게 전부라 몹시 찝찝했었는데, 오랜만에 양치질을 하니 그 개운함이란...
젖몸살은 다 낫지 않아서 다시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하루치 약을 받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눈을 들어 보니 가로수들이 연녹색 잎사귀들을 소복이 덮어쓰고 있었다. 앞집의 라일락 두 그루에서 풍겨나오는 짙은 향기는 골목을 접어들어 염천교회 앞에서부터 콧속으로 파고든다. 이 멋진 계절에 우리 아기는 잘 먹고 잘 자며 무럭무럭 자란다. 매일 자라는 게 눈에 보인다. 어제 키를 쟀을 때 60센티. 길쭉한 손가락과 큰 손은 나를 닮은 걸까. 잘 때 만세하는 건 틀림없이 날 닮은 거다. 최소한 두 가지는 나를 닮았다.

4월 20일 목요일 22일째
삼칠일이 지났다. 조금 눈치가 보인다. 나이를 감안하기보다 날짜를 더 염두에 두는 건 산후 뒷바라지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증거이리라.
아기는 오늘 손가락을 쥐어주자 꼬옥 잡는다. 결코 센 힘은 아니지만 쉽게 놓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여리지만 보드라운 세기로 꼬옥 잡는 그 힘이 참 좋은 느낌을 준다. 볼에는 살도 오르기 시작한다.
사람들한테 잘생긴 우리 아들 자랑해야 하는데, 볼에 살이 통통 오르면 이목구비가 몰린 형상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럼 사람들은 우리 아기를 잘생겼다고 봐줄까?
어젯밤 남편은 아기의 작고 여린 몸과 피부가 사랑스럽다며 발을 핥고 손을 핥고, 무릎에 입을 맞추며 아기에게서 떠나지를 못했다. 여리고 불완전해서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
오늘 아기는 눈 꼭 감고 목욕을 마쳤다. 한번도 울지 않고, 잠에 실려 눈도 못 뜨고. 덕분에 아주 쉽게 목욕을 시켰다. 엉덩이 발진이 도졌다. 어젯밤에 기저귀를 미처 제때 갈아주지 못한 탓이다. 불쌍한 엉덩이가 시뻘겋다. 다른 아기들보다 오래 병원에 있으면서 질 나쁜 종이 기저귀를 차고 있어서인지 병원에서부터 생긴 발진이 없어지지를 않는다.
아이는 자다가 자주 놀라고, 가끔 팔다리를 부들부들 떨고, 자다 깨면 몸을 심하게 뒤틀며 오만상을 찡그린다. 기웅환 한 알을 먹였다.
오늘은 머리도 감았다. 개운하다.

4월 21일 금요일 23일째
이제 아기는 잘 때 주먹을 꼭 쥐고 잔다. 어제까지도 슬적 펴져 있던 손이 오늘은 일부러 벌리려고 해도 잘 펴지지 않을 정도다. 아기들은 태어날 때부터 주먹을 꼭 쥐고 있는 줄 알았더니 자라면서 주먹 쥐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나 보다.
아이는 하루에도 여러 번 나를 미소짓게 한다. 저 혼자 배냇짓으로 하는 그 예쁜 미소는 볼 때마다 웃음이 나고, 사지를 휘저어대며 온몸운동을 하거나 변을 볼 때나 혹은 이유도 모르는 용을 쓸 때면 얼굴이 온통 시뻘개지는데, 그 모습 또한 너무나 사랑스럽다.
아직도 아기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들이 많다. 1.잘 볼 수 있고, 잘 들을 수 있어야 하며, 말도 잘 할 수 있어야 하고, 사지도 멀쩡해야 하며, 내장들도 모두 온전해야 한다. 2.지능이나 운동능력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뒤지지 않아야 한다. 3.갖가지 예방 접종도 아무 사고 없이 잘 끝내야 한다.(올해만 해도 예방접종 때문에 잘못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DPT와 소아마비 접종을 맞히는 건 정말 두렵다.)
아이에 대한 바람과 더불어 가슴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불안의 자락들. 그래서 아이를 보는 내 눈 속엔 아슬아슬한 불안감이 깃들어 있다. 어제는 장애인의 날이라고 텔레비전에선 하루 종일 장애인들이 나왔다. 지금 내 아기가 이만큼 예쁜 모습으로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하다는 생각 한켠에 저들처럼 불행한 일이 우리 아이에게 닥치면 어쩌나, 그래서는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너무나 크게 자리하고 있다. 우리 아기는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다. 할머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나와 남편, 삼촌, 이모들까지도 아이의 탄생을 무척 기다렸고, 기뻐했다. 볼 때마다 정이 들어가는 그 얼굴마저도 내겐 큰 기쁨을 안겨준다. 그런데도 이 아이를 통해 더 많은 기쁨을 얻고 싶다. 예쁘게 재롱을 부리는 모습, '엄마, 아빠'를 외치는 고운 목소리, 아장아장 걷는 사랑스러운 모습 등...아직도 나는 이 아이에게서 아주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젖몸살은 가라앉았다. 이틀 만에 끝나 다행이다.

4월 22일 토요일 24일째
쑥쑥 무럭무럭 잘 자라는 우리 아기. 태지는 이제 눈썹과 머리카락 속에만 조금 남아 있다.
아기가 은행나무 새순 같은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살짝살짝 누르면서 젖을 빤다. 그 모습을 보니 이 세상 모든 걸 다 주고 싶다.

4월 23일 일요일 25일째
아기가 어제부터 침을 조금씩 뱉는다. 입을 오물오물하다 거품 같은 침이 입술 끝으로 삐져 나온다.
우리 아기의 가장 귀여운 모습: 입을 조그맣게 오므리고, 장미 꽃잎 같은 혓바닥을 보이며 장난치듯 아주 잠깐 있는다. 그러다 입을 다물고는 동그랗게 오므린 입술로 한동안 있는다. 그러면 입술은 코보다 작다. 입술 때문에 얼굴은 무척 고집스러워 보이지만 통통한 볼과 조그만 입술이 어울려 무척 귀엽다.
밤 11시부터 자정까지: 젖을 먹고 30분쯤 놀다 잔다.
밤 3시경에 일어나 젖을 먹고 1시간쯤 보채다 놀다 한 뒤 잔다. 이때는 그래도 견딜 만하다.
새벽 5시~6시 사이, 젖을 먹고 놀다 칭얼대다를 1시간 이상. 이때 나는 거의 그로키 상태가 된다. 눈으로 잠이 몰려 자꾸 눈이 감긴다. 졸다 아이를 놓치기라도 할까봐 자꾸 긴장해야 한다. 그래도 순간순간 잠이 쏟아진다. 이 시간이 내겐 가장 힘들다. 겨우 아이를 재우고 나면 나 또한 정신없이 잠든다.

4월 24일 월요일 26일째
아기는 생후 26일 만에 손가락을, 나뭇잎 새순 같은 그 조그만 손가락을 어떤 목적을 위해 쓸 줄 안다. 젖을 빨기 위해 젖꼭지를 물다가 제대로 물리지 않자 이전처럼 얼굴만 찌푸리는 게 아니라 그 작은 손가락을 동원해 젖을 누르면서 젖꼭지의 위치를 제대로 찾아 입에 문다. 젖꼭지를 입에 넣으면 손가락으로는 젖을 빠는 리듬에 맞춰 힘을 넣었다 뺐다 한다.
병원에서 반가운 소식이 왔다. 태어나서 곧바로 실시한 선천성대사검사(DKU&TSH검사) 결과 정상이란다. 이 검사는 아기의 저능아 여부를 조기에 발견,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아무 이상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병원에서 무슨 검사만 하면 겁이 난다. 임신 이후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검사를 한 건 하나도 없지만 어떤 것이든 검사만 하면 우선 겁부터 난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의심과 함께 불안이 따르기 때문이다.
산후 처음으로 찬물에 가제 수건을 빨고, 발을 씻었다.

4월 25일 화요일 27일째
아기는 한번 깨어 놀기 시작하면 1시간 간격으로 젖을 먹으며 2~3시간 깨어 있다. 오늘은 오후 2시 30분부터 5시까지. 그런 뒤에는 배가 고파 깨었다가도 젖만 먹으면 잔다. 젖을 입에 문 채로. 잘 먹고, 잘 놀고, 잘 잔다. 부모를 닮아 코가 약한지 계속 코가 메어 있다. 코 때문인지 젖을 먹다가도 숨이 가빠한다. 아니면 젖이 필요한 양보다 많이 나와서 그런 건지. 어떨 땐 반은 흘리고, 반은 삼킨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참 복 많은 아이라고. 이 시대 대개의 아이들은 젖이 모자라 인공수유를 한다고 하는데. 아기는 자면서 가끔 아래턱을 바쁘게 오물오물 움직인다, 뭘 먹는 것처럼. 2~3번 숨을 몰아쉬기도 한다. 자면서 감은 눈을 가늘게 옆으로 움직여 웃는 얼굴을 만들기도 한다. 혹은 깊은 생각에 빠진 듯한 얼굴. 얼굴이 시뻘개질 정도로 온몸을 뒤틀며 힘을 줄 때도 있다. 엄마 뱃속에서도 저렇듯 갑갑해 했을까 싶다. 아기는 자면서도 방귀를 뀐다. 아기는 매우 자연스러운 복식 호흡을 하며 세상 무엇도 부럽지 않은 평화로운 얼굴로 잠을 잔다.

4월 26일 수요일 28일째
아기는 낮밤을 구별하려는 모양이다. 새벽 6시부터 정오가 넘도록 10~20분씩 짧게 토막잠을 잘 뿐 계속 개어 있더니 오후에도 잠시간이 길지 않다. 길게 잔 것이 고작 1시간 30분. 밤에는 잘 잘는지...
허리가 몹시 아프다. 앉아서 30분을 버티기 힘들고, 아기를 안을 때는 5분 이상 견디는 게 무척 고역이다. 그런데도 아기는 자꾸 안아달라고 보챈다. 아픈 허리를 주체할 수가 없다. 침이라도 맞아야 할까 보다.

4월 27일 목요일 29일째
어제부터 그렇듯 허리가 아프더니, 아침에 덩어리 피가 세 덩이 나오고 피가 생리 첫날처럼 꽤 많이 나와 누워 있기가 불안하다. 어제까지는 생리 끝날같이 양도 적고 색도 거의 검은색에 가깝더니 갑자기 다시 오로가 시작되는 걸까. 어쨌든 자궁이 아프고 피가 나면 불안하기만 하다. 또다시 입원해야 하는 건 아닌지 겁이 나고, 부디 1~2시간 내에 별 문제 없이 사그라지기만 빌 뿐이다.
의사와 어렵게 통화가 됐다. 의사 왈, "자궁이 풀려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는데, 피 양이 많지 않다니 그런 것 같지는 않고, 하여튼 내일 봅시다."
다행히 오후에는 피가 거의 멈추었다. 아기가 자는 사이에 집에 다녀왔다. 가는 길, 온통 연녹색 나뭇잎과 연보랏빛 꽃들. 분홍색, 흰색 꽃들. 봄이 완연하다. 집에서 샤워를 하고 빨래도 하고 아기 내복들도 챙겨왔다. 어제부터 아기는 배냇저고리를 벗고 내복을 입는다.
오늘 아침 아기는 배가 몹시 고팠던 차에 제 아빠가 안아주자 아빠 가슴을 입으로 마구 더듬더니 급기야 아빠 좆꼭지를 빨아 온 식구를 웃겼다. 어제부터 아기는 배가 고프면 아무데나 더듬으며 빨려고 한다. 심지어는 제 손까지도.
트림을 시키느라 마주 껴안으면 매미처럼 내 가슴에 납작하게 붙어 양손을 벌린 채 내 옷자락을 꽉 거머쥔다. 그 쥐는 힘이 꽤 세다. 제 손에 맞는 철봉이라도 쥐어주면 꽉 잡고 놓지 않는다고 하니, 그렇듯 쥐는 힘 또한 본능일까. 앞으로의 삶에 대한 의지가 표현된, 설명할 수 없는 본능이 아닐까.

4월 28일 금요일 30일째
봄봄은 어제 못 잔 잠을 오늘 다 자는 모양이다. 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가는 엄마를 도와주려는지 병원에 가기 30분 전부터 자더니 병원에 다녀오는 2시간 30분 동안 내리 잠을 잤다. 젖을 찾을지도 몰라 시어머니와 함께 아기를 데리고 병원에 갔던 건데 괜한 첫 외출이 된 셈이다. 병원에선 내진을 하더니 좋다고, 잘 회복되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 한다. 의사는 봄봄이를 아주 반가워했다. 자기도 내 회복 문제로 마음을 많이 쓴 탓에 내가 잘 회복되고 아기도 건강하니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어제보다 허리가 더 아픈데, 자궁 문제가 아니라 수유 자세가 나쁜 탓인가 보다. 그저께의 경험으로 허리만 아프면 괜히 겁이 난다.

4월 29일 토요일 31일째
아기 보러 온 후배 하나가 "도윤이는 참 귀티가 나네요."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도윤이, 귀티가 난다. 복스럽고 통통한 얼굴이 정말 부잣집 도련님이다. 얼굴에서 풍기는 분위기처럼 부족함 없이 넉넉하게 자랐으면...

4월 30일 일요일 32일째
오전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8시도 못되어 목욕을 시키고 젖을 물리고 있는데, 도윤이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먹느라 열중인 얼굴과 이마에 맺힌 땀을 보니, 이 아이는 착하고 총명하고 정의로울 것 같다. 소망이 아니라 느낌. 우리 아기 봄봄이에게서 느껴지는, 이 아이가 내게 주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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