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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잠이 쏟아지고, 몹시 예민하다
99년 8월 2일 월요일 의사의 권고를 따르기 위해 2주간의 휴가를 신청했다. 입사한지 겨우 2개월, 그것도
5일이나 모자라는 주제라 입이 무거웠지만 의외로 쉽게 휴가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복도 참 많은 사람이다, 나는.
99년 8월 3일 화요일 문득, 서럽다. 지난 7월 31일 1주일 만에 병원을 다시 찾았을 때 몸무게가 1㎏
줄어 있었다. 그주 내내 내가 먹어댄 음식의 양을 생각하면 참으로 믿기지 않았다.
아이가 아직 덜 자라 심장이 안 뛰나 해서 무진장 먹어댔었다. 배도 쉴새없이 고팠고,
배가 고프면 뭐라도 먹었다. 하다못해 사무실 책상 위에 오이며 당근 따위를 유리컵에
잔뜩 꽂아놓고 공복감을 없앴다. 그런데 오히려 몸무게는 줄었다. 그대신 아이는
많이 자랐고. 끊임없이 잠이 밀려온다. 나른하고 노곤한 육체. 침대 속으로만 들어가고
싶다. 자도자도 끝없이 잘 것처럼, 마치 잠의 동굴 속에 깊이 빠져든 것처럼 잠이
쏟아진다. 무기력하고 아무 의욕도 없다. 그저 자고 싶다. 이전의 씩씩하고 힘 좋은
장은주가 아니다. 여차하면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할까봐 조심조심, 조마조마. 이렇게
한 아이는 제 어미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먹고 자라나 보다. 영양분, 수면, 육체의
힘, 하다못해 생명력이나 활력, 생에 대한 욕구마저 다 빨아먹고 자라나 보다. 이렇게
어미를 갉아먹고 자라난 아이가 태어나서는 또 어미의 희망이 된다고 한다. 어미의
희망, 어미의 삶 자체.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이것이 바로 혈연, 피로 엮인 끊지
못할 관계라는 것 아닌가. 두렵다. 이제 피는 더 이상 비치지 않는다. 그래도
2주를 꽉채워 쉴 생각이다.
99년 8월 8일 일요일 교회에서 시어머니를 만났다. 무척이나 기뻐하시는 시어머니. 무엇이 이분을 이토록
기쁘게 할까. 내가 알지 못하는, 이해하지 못하는 또 다른 어떤 감정이 있기나 한
걸까. 문득, 아이를 여럿 낳아 이분을 좀더 많이 기쁘게 해드려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어머니는 태교에 신경을 많이 쓰라며 준비해 두신 책 4권을
주셨다. <태아는 모두 천재다>, <엄마가 엄마에게>,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이렇게 가르치라>. 세심한 배려에 감사. 항공봉투 속의 돈을
건네시며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많이 못 주어 미안하다고 하신다. 그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에 또 한번 감동!
99년 8월 9일 월요일 친정엄마는 참 담담하게 전화를 받았다. 다섯 자식을 낳아 기르고, 이미 손주가
셋. 그래서일까, 조금은 무감각해 보인다. "각별히 몸 조심해라. 요즘 사람들은
몸이 약하니까..." 그 당부가 전부다. 하지만 그 속에 든 따뜻한 정을 어찌
모를까. 배가 조금이라도 고프면 속이 니글거린다. 울렁임도 아니고 쓰라림도
아닌, 그저 니글거림. 음식을 먹고 나서도 그 니글거림은 좀더 지속된다. 아주 불쾌한
느낌.
99년 8월 13일 금요일 아기를 위해 음반 1장을 샀다. 모차르트 이펙트 3:잠재능력을 일깨우고 창조성을
이끌어내는 음악. 아기를 위한 건지, 나를 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기를
위한'이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참 행복하다.
99년 8월 14일 토요일 사무실엔 모차르트 이펙트가 경쾌한 선율로 흐른다. 빠른 리듬. 아기들은 이렇듯
빠르고 경쾌한 음악을 좋아하는 걸까. 잠재능력을 일깨우고 창조성을 이끌어낸다니,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내 아이는 정말 멋진 아이로 태어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창의력
있는 아이로. 보이지도 않는 뱃속의 아이에게 말을 거는 행동은 어쩐지 너무
어색하다. 책에서는 참 많이 강조하는 일인데, 아직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저 속으로만
웅엉거리거나 머릿속으로만 얘기를 건넨다. 아이가 그런 이야기나마 들어주기를 바라며.
아직 아이는 내게서 조금도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저 나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99년 8월 16일 월요일 낮에는 어김없이 잠이 오고, 의자에 기대어 혹은 책상에 엎드려 비몽사몽 헤매다
보면 어느새 1,2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이대로 회사 생활을 계속 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다. 게다가 하는 일도 육체적인 힘이 필요해 힘들며, 머릿속도 분주하지
못하고, 나른하며 잠만 쏟아진다. 집중력은 무진장 떨어지고, 회사 생활을 그만두고
태교에만 전념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하루종일 불편하다.
99년 8월 19일 목요일 노산임을 감안해 병원을 바꾸었다. 삼성제일병원. 검사하는 데 2분, 상담 2분.
그걸 위해 1시간 45분을 기다렸다. 참 지독하다.
99년 8월 20일 금요일 밥하는 냄새가 너무 싫다. 밥마저 싫어진다. 먹고 싶은 것보다 먹기 싫은 것들이
더 늘어난다.
99년 8월 21일 토요일 날로날로 피로감이 더해간다. 이 끝없는 피로감의 정체가 단지 뱃속의 아기라니... 며칠
전 회식 때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3~4시간 있었던 탓인지 아침마다 몸살기처럼
허리가 아프다.
99년 8월 22일 일요일 453장 찬송을 하다가, '주 없이 살 수 없어...' 하는 부분에서 눈물이 왈칵 솓구쳤다.
뱃속의 아이, 이 아이가 나를 또 제 부모를 이렇게 신처럼 여기며 살걸 생각하니
두렵고,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지쓰고 스세딕의 <태아는
모두 천재다>를 읽으며, 내가 얼마나 태교에 쓸 시간이 부족한지를 절감한다.
그리고 얼마나 게으른지도. 나는, 강이 있고 나무가 무성한 곳에서 뱃속의 아기와
편안히 휴식하며 아기에게 강물처럼 고요하고 평화롭고 순조로움과 나무처럼 곧고,
무성한 잎들처럼 넉넉한 마음을 심어주고 싶다. 자연과 잘 어울리는 참으로 인간다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싶다. 다른 사람들에게 여유롭고, 저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부지런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싶다. 마음은 늘 평정을 유지하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그런 사람으로.
99년 8월 23일 월요일 아무 일 하지 않아도 몸은 피곤한데, 회사에선 일이 많다. 하루 종일 바쁘고 힘들다.
오후 6시쯤 슬금슬금 허리가 아프기 시작, 얼른 일을 마무리하고 7시 조금 넘어 퇴근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올라오는 길, 은행에서 집까지의 약 3백 미터쯤의 길이 너무나
멀고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다리가 아프고 몸이 피곤하다. 저녁을 먹고 누워서
쉬고 있는데 8시 30분쯤 배가 몹시 아팠다. 처음 겪어 보는 통증. 뱃속의 어디랄
것도 없는 부분을 사방에서 잡아당기는 듯한 통증. 분명 뱃속 깊은 어느 곳이었는데,
위나 장, 방광같이 평소에 아플 때면 조금식 통증이 느껴지는 그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움직일 수도 없고, 일어나 앉을 수도, 자세를 바꿀 수도 없이 단지 오른쪽으로
누워 있던 그 자세에서 일어나 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도무지 불가능했다. 아파서,
아기가 걱정되어서 눈물이 먼저 났다. 그렇게 2분쯤 됐을까, 내겐 너무나 긴 고통의
시간이 가고, 통증이 서서히 멎었다. 남편이 통신을 열심히 뒤혀 나와 거의 비슷한
케이스 하나를 발견했고, 그 질문에 답해 놓은 의사의 글을 알려주었다. '안정을
취하고, 만약 안정을 취해도 똑같은 통증이 오거나 피가 나면 유산의 가능성이 있으니
의사를 찾으라...' 아기에게 문제가 있는 거라면 피가 비칠 테니까, 그런 일이 없다면
안심하리라. 일단은 안정을 취하기로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너무 심각해 했던
것이 아기에게 미안해서 담담한 척 애를 많이 썼다. "아가야, 놀랐지? 걱정
마, 괜찮을 거야."
99년 8월 24일 화요일 회사는 결근하고 밥 익는 냄새를 피해 밥솥에 밥을 앉혀 놓고 서점으로 외출해서는
책 두 권을 샀다. <꿈꾸는 사람만이 지혜를 찾는다>와 <먹구렁이 기차>. 퇴근해
오는 남편을 만나 함께 집에 돌아와 같이 식사를 준비했다. 굴비를 굽고 콩나물국에
가지볶음으로 식사를 했다. 밥은 해놓은 지 한참 지나서 냄새가 역겹지는 않았다.
식사 후 텔레비전을 보며 키들거리고 각자 책을 읽으며 잘 지내다가 갑자기 불뚝
화가 났다. 남편 때문이다. 남편은 집에 오면 주로 누워서 지낸다.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마루에 드러누워 모든 걸 해결하려 든다. 긴장되고 단정한 모습을 그에게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늘도 엎드려 책을 보다가 몸을 뒤집으려 그 뚱뚱한 몸을 뒤채다
내게 한마디 잔소리를 들었다. 그는 편한 대로 지내고 싶어한다. 앞으로 우리에게
한 아이가 생겨나고, 그 아이의 생활습관마저도 우리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걸 간과하고
있는 남편. 그로 인해 화가 많이 났고, 우리에게 부모로서의 자격이 있나를 생각하다
눈물이 났다. 그는 내가 지나치게 심각하게 굴자 화를 풀게 하려 안절부절한다. 그런
모습이 한편으론 사랑스럽지만 우리는 앞으로도 참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한다. 건강하고
밝은 아이를 맞아들이기 위해서는.
99년 8월 25일 수요일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화가 났다. 아기에게 무척 미안하다. 내 나쁜 컨디션
때문에 더욱더 화가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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