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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불뚝이 욕실에서 미끄러지다
2000년 1월 1일 새해, 우리 아기가 태어날 해인데 지난밤엔 자정예배도 못 드리고 지독한 감기와
유난한 태동을 느끼며 21세기를 맞는다. 늦게 일어나고, 낮잠도 3시간이나 잤다.
감기는 제법 나아가고 있다. 줄줄 흐르던 콧물이 멎어 코가 꽉 막혔고, 얼굴 표면의
통증도 많이 줄었다. 지긋지긋한 감기.
2000년 1월 2일 일요일 8개월째에 접어든 뱃속의 아기 봄봄은 오늘도 심하게 움직인다. 아주 건강하게,
신나게 잘 노는 걸 테지. 감기는 많이 나았다. 이번에 그나마 제법 짧은 편이다 요
며칠 사이 우리 봄봄이의 움직임: 어디가 어딘지 모를 부위로 내 배를 마구마구 흔들어댄다.
꾸물꾸물대던 여린 움직임에서 우당탕탕하는 소란스러운 움직으로 바뀌었다. 오른쪽
배에서 퍽퍽대는 건 아마도 다리가 아닐까. 왼쪽 배에서 북닥북닥대는 건 손일지도
모른다. 가끔 아랫배 쪽에서 펄떡펄떡거리는 건 글쎄, 뭘까. 하여튼 머리는 왼쪽,
다리는 오른쪽을 향하고 있는 것 같다. 7,8개월이면 아기는 머리가 아래를 향한다고
하는데, 아직 우리 봄봄이는 자리를 못 잡은 건지... 무심코 배를 쳐다보면 아기의
움직임이 보인다. 좀더 가깝게 느끼려고 손을 갖다대면 금세 아기는 얌전해진다.
특히 남편에게 보여주려고 자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한동안 조용하다. 우리 봄봄이는
수줍음이 많은 모양이다. 아니면 외부의 상황에 대해 많이 민감한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느땐 배를 가만히 쓸어주어도 운동을 멈추지 않을 때도 있다. 지금도 오른쪽
배가 너무 소란스러워 정신이 없다.
2000년 1월 3일 월요일 감기가 많이 나아 몸이 한결 개운다. 두 차례나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이젠 더
이상 누워 있지 않아도 될 성싶다. 일찍 퇴근한 남편과 참으로 오랜만에 산책. 스트레스가
풀리고 마음이 가라앉았는지, 봄봄이 많이 얌전해졌다. 이전처럼 꾸물꾸물거린다.
퍼덕퍼덕 조급스런 움직임은 많이 잦아들었다. 엄마가 걸린 감기가 저한테도 힘들었던가보다.
2000년 1월 4일 화요일 친정엄마가 아기 포대가 사주라고 주신 돈을 통장에 넣었다. 아기는 벌써 포대기까지
선물받은 셈이다. 외할머니가 사준 포대기를 쓰면 복이 많다는데, 아기는 좋겠다.
2000년 1월 5일 수요일 남편과 내가 인도의 델리에서 만난 지 오늘로 4년. 그 첫 만남 이후 많은 일들이
있었고, 지난해 결혼, 그리고 지금 내 뱃속엔 8개월에 접어든 아기가 자라고 있다.
남편과 나는 비교적 무난한 인생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둘 다 크게 무리없는 성격이고,
크게 무능하지도 않으며, 복잡한 가족관계를 갖고 있지도 않다. 어찌 보면 우린 둘
다 복이 있는 사람들이다. 감사하며 살아야 할. 그런데 요즈음 나는 야망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앞날에 대한 기대를 야망이라는 말로 대치할 수 있을까마는. 지금의
나보다 더 큰 나를 만들기 위해 지금 내가 가져야 할 것이 야망이라면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바로 그 야망이다. 특히 내 꿈과 시간이 아기에게로 귀착되면서 나는
야망의 주체를 남편에게로 옮기고 있다. 그러자니 남편은 버겁겠고, 나는 불안하다.
2000년 1월 6일 목요일 뱃속의 아기가 너무나 보고 싶다. 우리 봄봄이.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손은,
발은... 궁굼하고 보고 싶다. 그리움. 지난 7개월간 나는 아기의 얼굴도 모른 채
막연한 그리움 속에서 내 마음 속에 하나의 형태로 아기의 모습을 만들어오고 있다.
건강하고 포동포동 살이 찌고, 눈이 동그랗고 코가 오똑하며 입술이 도톰한, 조그맣고
하얀 손은 여리디여린 피부로 싸여 있고 그 조그만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몸부림을 치며 내 배를 톡톡 두드리기도 하고, 작은 발로 꼼지락거리기도 하는....
내 아기! 이제 겨우 두 달 보름. 이제까지의 기간보다 훨씬 짧은 날들이 남았을
뿐인데... 봄봄아, 보고 싶어!
2000년 1월 8일 토요일 허리와 엉덩이의 통증은 질리도록 잠을 자고 나서야 조금 가라앉았다. 벌써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하니 분만에 대한 걱정이 좀체 가시지 않는다. 한 방송사에서는
새해 특집 프로그램으로 출산에 대해 다루고 있다. 오늘이 그 첫 번째 시간. 좌식분만,
수중분만 등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흔치 않은 분만법의 우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나라 병원에서 행해지고 있는 분만법은 산모가 아니라 의사 위주의 분만법이라고
한다. 산모나 태아를 위해서는 앉아서 아이를 낳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란다. 나는
몹시 불안하다. 물론 그만큼 기대도 크다. 아기를 낳는 일은 분명 행복한 일이니까.
내가 아기를 순산할 힘만 있다면... 허리가 많이 아프지만 않다면...
2000년 1월 9일 일요일 30주째 굳게 또 한번 결심하고 임신부 체조에 돌입. 아무래도 강제적인 규약이 없는 탓인지
그동안은 게으르게 드문드문 했다. 허나 오늘부터는 방심할 수 없다. 8개월도 중반에
접어들려는데. 아기의 편안한 출생과 나의 안전한 분만을 위해 운동은 꼭 필요하다.
이번주 목요일에 병원에 가면 소프롤로지식 분만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운동도
해야 할 것 같다. 병원에 1주일에 한 번 가는 정도야 부담스럽지는 않으니까. 무엇보다
누워서 분만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끌린다. 30~40분 운동했다. 마늘도 먹기
시작했다. 풍부한 모율르 위해. 현대 여성들이 모유를 제대로 못 먹이는 이유가 젖이
부족하기 때문이란다. 젖을 풍부하게 해준다는 마늘. 구워서 먹으니 그런대로 맛있다.
2000년 1월 11일 화요일 이틀 동안 봄봄이의 몸놀림이 제법 활발하더니 배가 불쑥 또 나왔다. 밤에 운동을
하고 나자 봄봄이는 몰라보게 기운찬 발길질을 해댄다. 깜짝 놀라긴 했어도 뱃가죽이
불쑥불쑥 일어날 정도로 힘차게 발길질을 하는 봄봄이 때문에 기분이 무척 좋다.
이제 봄봄이도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나 보다.
2000년 1월 12일 수요일 태교라고 생각하며 내가 제일 많이 한 행동은? 뜨개질, 바느질. 특히 뜨개질을
많이 했다. 침착하고 조용한 아이가 태어날까? 글자공부는 어쩐지 내가 극성엄마가
되는 것 같아 잠시 하다가 그만두었고, 동화책은 내가 좋아서 여러 권 읽었다.
잠자리에서 남편이 읽어주는 동화도 내가 더 열심히 듣는 것 같다. 이 모두를 아기와
내가 함께 한다고 믿으며...
2000년 1월 13일 목요일 아기의 탄생이 무척 기다려진다. 벌써부터 나는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다.
고통이 심하리라고는 생각한다. 이미 수많은 여성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이었노라고,
어디에 견줄 수도 없을 만큼 아파서 정말 죽고 싶었노라고, 무수히 겁을 주었었다.
실제로 그러한 고통이 나를 힘들 게 할지라도 내가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우리 아기를
만나는 길에 당하는 고통쯤이야... 아기만 건강하게 태어나준다면... 두려운 마음보다
더 큰 기대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제 약 두 달. 아기도 내 마음을 알까. 마음이
많이많이 행복하다.
2000년 1월 15일 토요일 텔레비전에선 생명의 기적 2부가 방송됐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은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것이다. 많은 난관이 있지만 엄마가, 가족들이 포기하지 않으면 훌륭하게 틔어나
살아갈 수 있다. 생명의 탄생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우리 아기가 이 세상에 나올
때 내가 얼마나 감격하고 감동하게 될지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전율이 온다. 두려움과
기대감이 섞인 미묘한 감정. 봄봄이에게 도움을 청한다. "봄봄아, 엄마를 많이
도와주렴."
2000년 1월 16일 일요일 엄마만큼 아기도 고통을 겪으며 세상에 나온다. 아기가 탯줄을 통해 이제 나갈
준비가 되었노라고 엄마에게 전달하면 엄마의 뇌는 그 신호를 받아 자궁에게 수축운동을
하라고 지시한다. 그때부터 엄마는 진통을 느끼게 되고, 아기도 산도를 빠져나오기
위한 진통을 겪는다. 두 사람의 인내와 노력이 비로소 한 생명의 탄생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출산을 위해 병원에 가면 참을 수 있을 정도의 통증을 느낄 때 의사에게
미리 말해두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혹시라도 내가 인내심이 부족해 경황중에 수술을
요구하더라도 그 말을 믿지 말라고. 자연스런 상태로 내 아이가 세상을 만나게 해주는
것, 그것이 내가 아이에게 가장 먼저 줄 수 있는 귀한 선물이 될 것이다. 병원이라는
상황이 비록 매우 부자연스럽기는 해도 엄마가 수술이라는 물리적인 힘을 빌리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분만해준다면 아기도 한결 편하고 안정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부디 내가 도중에 포기하지 않기를. 아기를 만나는 소중한 시간들을 귀하게 여겨
행복해 하며 고통의 순간들을 잘 이겨낼 수 있기를 빈다.
2000년 1월 20일 목요일 정말 배가 많이 나왔다. 태어난 이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배꼽의 끝이 배 밖으로
튀어나올 듯 솟아나와 있다. 앞으로도 거의 두 달이나 남았는데, 배의 어디가 더
커질 수 있을까. 살이 트지나 않았으면... 그래도 봄봄이에게 고마워할 일이 많다.
입덧도 거의 없었다. 봄봄이가 순한지 유독 잠이 많았고, 밥냄새를 싫어하기도 약
1달 정도로 끝났고, 고기 냄새도 6개월째부터는 싫지 않았다. 음식을 가리지도 않았고,
특별히 먹고 싶어 애가 타는 경우도 없었다. 8개월 후반에 접어드는 지금까지 배나
다리에 튼 자국도 없고, 부기가 그리 오래 가지고 않으니 임신중독증도 걱정되지
않는다. 과일도 제철 과일만 열심히 먹어댔다. 이만한 임신부는 그리 흔치 않다고
한다. 착한 봄봄이 덕분에 나는 무척 편한 임신부다. 다른 임신부들이 겪는 어려움의
절반도 채 겪지 않는 듯하니. 고마운 봄봄, 콩팥이 제발 아무 문제 없기를...
2000년 1월 23일 일요일 봄봄이는 매우 건강하고 힘이 센 아이인가보다. 며칠 전부터 움직임이 매우 활발한데,
내 뱃가죽이 이리저리 불쑥불쑥 움직일 정도다. 침대에 반쯤 누워 책을 읽다 보면
배 위에 올려둔 책이 봄봄이의 발길질에 흔들흔들 들썩인다. 힘 좋은 녀석. 요즈음
봄봄이는 잠도 줄었는지 운동이 잦다. 3킬로그램도 안되는, 50센티도 안되는 이 조그만
아기가 동그란 자궁 안에서 세상과 만날 준비를 하느라 이렇듯 부지런히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가.
2000년 1월 24일 월요일 남편의 아침식사로 볶음밥을 해주려고 했다. 밤에 늦게 잠들어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였던가보다. 프라이팬에 돼지고기김치볶음을 넣고 뒤집개로 누르는 순간 뒤집개의
목 부분이 부러지며 그 힘에 프라이팬의 한쪽 구석이 눌려 중심을 잃은 프라이팬이
뻘건 내용물들과 함께 바닥으로 콰당. 그것은 심상찮은 경고였다. 오후 1시 45분.
욕실에서 머리를 감고 나오다가 미끄러졌다. 세상에, 임신 8개월 후반의 임신부가.
세탁기 코드가 꽂혀 선이 축 늘어져 있었다. 미리 알고 있었지만 머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을 닦기 위해 수건을 가지러 나오며 아차 하는 순간 슬리퍼가 그 선에 걸리고 정말
눈깜짝할 사이 바닥으로 엎어졌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서 배를 살피니 왼쪽 배
윗부분이 발그스름. 골반뼈 위에는 더 아픈 상처. 어깨죽지 쪽의 팔이 우리하게 아파오고
발목 또한 아프기 시작했다. 우리 봄봄이 무사할까... 머리에 수건을 감고 물기도
닦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모로 누웠다. "봄봄아, 놀랬지? 엄마도
많이 놀랐단다. 그렇지만 괜찮아. 봄봄이도 괜찮지?" 하지만 아기는 움직이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불안하면 가까운 병원에라도
가서 아기가 무사한지 확인해 보세요." 무슨 놈의 전화를 그 따위로 받는 거야.
배가 동글동글하게 뭉치거나 피가 나기라도 하면 곧장 병원으로 달려오고, 조금이라도
불안하면 지금이라도 병원에 오라는 거다. 가면 진료는 또 바로 받을 수 있나? 당장은
안정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집을 나서서 택시를 잡기 위해 한참 길을 걷는 것보다는
배를 쓸어주며 아기를 진정시키는 편이 더 낭르 것 같았다. 다행히 피가 비치지는
않았다. 배는 평소에 늘 단단해지는 정도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2시 10분경,
아기의 작은 움직임. 내 신경은 온통 배로 향해 있었다. 살짝 움직이고는 한동안
잠잠. 왈칵 눈물이 나며 걱정이 눈앞을 가렸다. "봄봄아, 괜찮아. 잠깐 소동이
있었던 것뿐이야. 아무 일도 없어. 넌 건강하잖니. 조금 전 일은 잊어 버려라, 제발..."
봄봄이에게 수없이 사정했다. 심호흡을 하면서. 10분, 20분... 아기는 조금씩 더
움직여 주었다. 그렇게 침대에 꼼짝않고 누워 책을 읽었다.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았다.
예민해진 손 바닥으로 아기의 움직임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1시간 30분.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까보다 배가 더 단단했다. 또 걱정. 흔들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평온하면 아기도 편하리라 믿으며. 4시 30분. 조용하던 배가 움직였다. 아까보다
좀더 많이. 어제처럼. 이쪽저쪽이 교대로 울룩불룩. 고맙다, 봄봄. 지금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너빡에 없단다. 네가 이 엄마를 사랑하고, 걱정시키지 않으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없을 것 같구나. 사랑하는 봄봄아, 건강하게 따뜻한 엄마 뱃속에서
3월 중순까지 잘 있다가 엄마랑 같이 병원으로 가서 그 고귀한 작업을 함께 하고
함께 즐거움을 맛본 뒤에 웃으면서 집으로 오자꾸나, 부디...
2000년 1월 25일 목욕탕에서 한 여자가, 아이 둘을 데리고 목욕을 하고 있다가 때밀이 아주머니의
농담 한마디에 귀가 찢어질 듯 큰 소리로 한 바탕 웃어댔다. 저 통쾌하고 기분 좋은
너털웃음, 내가 그렇게 웃어 본 것이 언제쯤이었나. 내 뱃속엔 여리디여린 아기가
들어 있고, 나는 모든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아마도 그래서 웃음이 줄었나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렇듯 큰 소리로 웃은 기억은 참 오래 됐다. 그뿐인가, 나는
그녀가 참 부러웠다. 배 밖으로 나와서 칭얼대기도 하고, 고집을 부리기도 하는 두
아이를 씻기고 있는 그녀는 나보다 한결 여유가 있고 자유로워 보였다. 자기 몸 속에
한 생명을 품고 있는 건 그만큼 불안한 상황인 모양이다. 봄봄이가 건강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와 제 목소리를 내고, 고집을 부리고, 욕심을 낼 때쯤이면 나도 조금은
자유로워질까...
2000년 1월 27일 목요일 33주 초음파 검사를 무려 세 차례나 했다. 거의 30분 이상 걸렸다. 아기가 등을 보이고
누워 있는 상태라서 심장을 볼 수가 없노라며. 마지막에 아기는 겨우 심장을 보여주었다.
참 고집스런 녀석이다. 신우는 여전히 한쪽은 3㎜, 한쪽은 5㎜. 지난달과 똑같은
크기다. 아기는 1.8킬로그램. 아기는 크는데 신우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으니 안심해도
되고, 양쪽이 길이가 다른 건 걱정할 바 아니라고 한다. 봄봄이는 넉넉한 양수 속에서
참 많이 움직이는 편이라고 한다. 두 번째 초음파 검사 때는 옆으로 누웠더니 세
번째 검사 때는 머리가 위로 올라와 역아 상태다. 의사는 36주까지 기다려보고 머리가
아래로 내려오지 않으면 수술을 하자고 한다. 이제부터는 역아체조 시작이다. 그런데
좀 무리했나. 배가 계속 딴딴하다.
2000년 1월 30일 일요일 아기가 이 세상에 나올 때 조금이라도 충격을 덜 받으려면 순산을 해야 하는데,
며칠 동안의 역아체조로 아이가 자리를 잡았을까. 어쨌든 2주간 꾸준히 할 일이다.
앞으로 열흘. 배에 어떤 충격이 있기라도 할까봐 노심초사, 조산을 막기 위해 열심히
먹어대는 과일과 굴, 고기 등. 이렇게 신경쓰며 뱃속의 아기를 키우고 있는데, 이
아기는 태어나면서부터 나랑은 전혀 다른 하나의 존재로 살아가겠지. 내 속에서 나온,
내가 아닌 또 다른 존재. 그리고 아빠랑 함께 내 흉을 보기도 할 테고, 나와 다른
의견에 고집을 부리기도 할 테고, 내가 잘못할 땐 지적도 할 테지. 지금도 내가 원하는
대로 태동을 하지 않는 걸 보면 아기는 이미 내 소유가 아니라 저 나름의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하나의 존재로.
2000년 1월 31일 월요일 배는 어제 오늘이 다른 정도가 아니라, 몇 시간 전이 다르다. 자고 일어나면 배는
불쑥 더 나와 있다. 낮잠을 자더라도... 왼쪽 배가 높은 것은 여전하고 오른쪽 배의
끄트머리, 즉 허리 가까이에서도 태동이 느껴진다. 아기가 옆으로 누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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