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애니


 

 친구들이 종종 '우울한 애니'라고 부르던 애니 채프먼은 불쌍한 여자였다. 집이 없어 돈이 있을 때나 근처의 허름한 하숙집에 하룻밤을 묵을 수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해 줄 고객을 찾아다니며 거리를 배회했다.

사망당시 그녀의 나이는 마흔 일곱 살이었고, 여전히 집없는 창녀인 상태였다. 그러나 1869년, 그녀의 일생에서 한번의 전환점이 있었는데, 그때는 존 채프먼이라는 마부와 결혼했을 때였다. 슬하에 둔 세 명의 자녀 중, 한명은 뇌막염으로 사망했고, 다른 하나는 불구가 되었다. 아내와 남편 모두 서로의 병마와 술주정에 시달렸고 결국 그들의 결혼생활은 파탄에 이르렀다. 존이 죽었을 때 그나마 벌어다 주었던 월급도 없어져 더욱 비참한 생활을 이어 나가야 했다. 그의 죽음은 경제적 손실만큼이나 애니 채프먼에게 정신적 충격이었고 이후 결코 그 불행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우울증과 알콜중독증에 시달리며 그녀는 뜨개질이나 꽃을 파는 일을 했다. 이가 몇 개 빠지고, 뚱뚱한 체격으로 별 볼품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내 매춘부의 길로 들어섰다. 그녀는 원만한 성격을 가진 여자였다. 그러나 죽기 일주일 전, 비누 한 장을 가지고 다른 여자와 싸우다 왼쪽 눈과 가슴을 칼에 찔리게 된다.

1888년 9월 7일 금요일, 애니는 몸이 아프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자신도 모르게 그녀는 결핵을 앓고 있었다. "그래도 일어나서 돈을 벌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잠잘 돈도 없잖아". 그녀는 친구 아멜리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9월 8일 토요일 새벽 2시가 채 못되어, 술에 약간 취한 애니는 돈을 벌기 위해 방을 나섰다. 같은 날 새벽, 수백 미터 떨어져 있는 스피탈필드 상점 바로 맞은 편 핸버리 29번가 뒤뜰에서 그녀는 발견되었다. 상점 건물엔 17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 중 다섯 명은 살인 사건의 현장이 바로 내려다 보이는 방에 살고 있었다. 또한 그 다섯 명중 몇몇은 살인 사건이 일어나던 당시 창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사망한 애니의 모습

스피탈필드 상점은 새벽 5시에 문을 열었고, 그날 새벽 많은 사람들이 상점이 문을 여는 것을 준비하며 그 건물 앞에 모여있었다. 주민들 중엔 3시 50분경에 일을 나서는 사람도 있었다. 상점을 둘러싼 거리는 시장에 물건을 날라다 주는 차량들로 채워져 있었다. 핸버리 29가에 살며 아내와 세 명의 아들을 둔 존 데이비스라는 나이든 운전사는 새벽 6시 직후 애니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는 애니의 치마가 골반까지 말려 올라가 있음을 보았다. 그는 당장 도움을 청하러 나섰고 다른 두 작업부와 같이 돌아왔다. 그때쯤 경찰이 달려왔고 건물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잠에서 깨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날 아침 5시 23분 정각에 해가 떴고, 그 이른 시각에도 차량이 붐볐던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누구도 소란스러운 기색이나 비명소리, 피묻은 옷이나 흉기를 발견하지 못했다. 애니가 발견된 장소에 있던 물통이 깨끗한 것으로 보아 범인은 손이나 칼에 묻은 피를 물로 씻어내지는 않은 것 같았다. 또 한가지 놀라운 것은 이번엔 범인이 백주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었다.

조지 백스터 필립스라는 베테랑 경찰 수사관이 현장으로 불려 나갔고 요청에 따라 자신이 관찰한 바를 진술했다.

 

저는 땅에 등을 대고 누워있는 시신을 발겼했습니다... 왼팔은 가슴위에 놓여져 있었고 발은 땅에 대고 무릎은 바깥으로 구부린 채, 다리통은 땅위에서 약간 떠 있었습니다. 얼굴은 부어 올랐고 오른뺨은 땅에 대고 있었으며 혀는 앞니 사이로 삐져 나와 밖으로 나와있었는데, 입술 밖으로까지는 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혀는 많이 부어있었습니다. 내장 일부분이 떼어진 채 어깨 위 몸 오른쪽 부분의 땅 위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어깨 위쪽에 놓여진 위장의 일부분과 함께 많은 양의 피가 보였습니다... 몸은 대체로 차가웠지만, 몸 속 내장 안쪽엔 약간의 온기가 남아있었습니다. 사지경직은 아직 심하지 않았으나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목은 깊숙히 절개되어 있었습니다. 절개된 자리는 들쑥날쑥했으며 목둘레 전체에 걸쳐있었습니다.

 

필립스는 애니 채프먼이 두 시간 전에 죽은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핸버리 29가에 사는 사람들 중 아무도 그녀의 비명을 못들은 것은, 그녀가 목을 졸려 질식상태가 되자마자 목이 잘렸다는 증거로 봤을 때 타당했다.

그녀는 발견된 장소에서 살해당했다. 애니가 범인과 몸싸움을 벌인 흔적은 없지만, 필립스는 시체의 발 근처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애니가 가방에 지니고 있던 작은 옷조각과 휴대용 빗, 작은 칫솔이 어떤 순서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놓여져 있었던 것이다.

두 개의 알약이 들은 봉투가 머리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뒷면엔 "서섹스 연대"라고 쓰여져 있었다. 다른 한 쪽엔 "M"이, 그 아래쪽엔 "Sp"가 손으로 쓰여져 있었고 1888년 8월 23일 런던 소인이 찍혀 있었다. 또한 다른 쓰레기와 함께 가죽 앞치마가 발견되었다.

필립스의 진술은 살인자의 또다른 잔혹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범인은 애니의 턱을 손으로 잡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목을 그었는데, 정도로 보아 절단하려다 실패한 것이 분명했다. 이것이 사인이었다. 복부의 훼손은 사후에 가한 행동이라고 밝혀졌다.

복부는 안쪽의 장기가 모두 드러나 있었다. 내장은 몸 밖으로 들어올려져서 시체의 어깨 부근에 놓여졌다. 골반 안쪽의 자궁과 그 주변장기, 성기의 윗 부분과 방광의 3분의 2가량이 잘려 나간 채였다. 잘려 나간 부분은 찾을 수 없었으며 절단부분은 매끄러웠고 직장을 피해 자궁경부 바로 위까지 없어진 상태였다. 이것은 분명 전문가의 소행이었다 - 적어도, 단 한 자루의 칼로 골반 내부의 장기를 이렇게 깨끗이 처리할 수 있을 정도의 해부학적 지식, 임상학적 지식이 있는 자였다.

필립스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모든 정황으로 보아 범인은 신체의 일부를 소유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23년 경력의 필립스는 이런 잔혹행위가 그토록 능숙하고도 짧은 시간에 저질러진 것에 놀라며 적어도 15분 이상에서 대략 한시간 정도에 걸칠 작업이라고 말했다.

시체는 사지가 절단되지는 않았으나, 상처는 상당한 수준의 해부학적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만이 가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아무렇게나 입힌 상처가 아니었다(태브람의 경우와는 달리). 어디에 그 장기가 위치하는지, 장기를 떼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장기에 손상을 입히지 않고 어떻게 칼을 써야 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던 사람의 소행이었다. 숙련된 사람이 아니면 어떤 장기가 어느 위치에 있으며 설사 눈으로 보고 있다고 해도 어떤 것인지 구분을 하지 못할 것이었다. 일례로 동물을 도살하는 단순 도축업자들은 이런 정도의 작업을 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분명 시체검시실에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필립스는 범행에 쓰인 도구가 가죽을 다루는 단검이나 그 비슷한 종류의 것이라기 보다는, 15에서 18센티에 이르는 다소 가늘고 얇은 칼일 것이라 추측했다. 도축업자나 외과의사들이 그런 도구를 쓰는 사람들이었다.

애니의 손가락에 나타난 찰과상은 반지를 억지로 빼내다 생긴 것으로 보였다. 나중에 애니의 친구들에게서 경찰은 애니가 싸구려 구리반지를 끼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은 아마 금으로 보였을 가능성이 컸다.

폴리 니콜스 사건을 담당하던 애벌린 수사관은 관할이 다른 스피탈필즈에서 일어난 채프먼 사건을 돕도록 지시가 내려졌다. 그러나, 수사반장은 조셉 챈들러라는, 대도시 경찰의 H지국에 있는 사람이 임명되었다. 수사관들 사이에서는 폴리 니콜스와 애니 채프먼 사건이 동일인물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이 나돌고 있었다.

채프먼 살인 사건은 니콜스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물증들 - 가죽 앞치마, 못상자, 금속조각 - 들은 그곳에 사는 모두 리차드슨 부인과 그녀의 아들 소유였다. 서섹스 연대 소인이 찍힌 봉투는 지역 우체국에서 제일 흔하게 팔리는 봉투였다. 더군다나 애니의 여관에서 머물던 한 남자는 언젠가 약병이 깨져서 애니가 알약을 담으려고 부엌바닥에서 그 봉투를 줍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애니 채프먼을 아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 본 결과, 역시 유력한 용의자나 어떤 합당한 범죄 동기도 발견할 수 없었다. 또한 사건현장에서 도망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사건은 아주 맥빠진 것은 아니어서, 세 명의 주요 목격자를 얻을 수 있었고, 그중 한명은 거의 살해현장을 볼 뻔한 사람도 있었다. 첫 번째 목격자인 존 리차드슨은 아멜리아 리차드슨의 아들이었다. 새벽 4시 45분에서 50분 사이에 일어났던 살인 사건 당시, 그는 리차드슨 부인이 그녀의 도구와 물건들을 챙겨놓은 다락에 올라가 자물쇠를 확인하려고 핸버리 29가를 방문했다.

그는 뒤뜰의 울타리를 열고 계단에 앉아 발을 찌르던 가죽조각을 신발 속에서 꺼내려 했다. 사방이 환하게 밝아오기 시작했고, 그는 신발을 고쳐 신으며 다락의 자물쇠가 열려진 것을 발견했다. 그는 그 당시 뒤뜰에 애니 채프먼의 시체가 없었다는 것도 기억해냈다. "그때 시체가 있었더라면 발견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또다른 목격자인 앨버트 카도쉬는 핸버리 29가의 바로 옆에 살았는데, 그는 새벽 5시 20분이 지나자마자 뒤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제대로 들린 것은 "아니오"라는 말이었다. 몇 분이 흘렀고 5시 30분 쯤에 그는 무엇인가가 울타리를 치고 쓰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가장 중요한 목격자는 엘리자베스 롱 부인으로 그녀는 핸버리 거리를 통해 스피탈필드 상점으로 오는 도중 길가의 시계가 5시 30분을 알리는 종을 치는 것을 들었다. 그녀는 한 남자와 여자가 '29가의 상점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롱 부인은 나중에 영안실에서 그녀가 핸버리 거리를 따라 내려갈 때 마주친 그 여인이 바로 애니 채프먼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불행하게도, 애니와 이야기하고 있던 남자는 분명 살인자였음이 확실한데, 그의 등만 보였을 뿐이었다. 그녀는 검시관 와인 백스터에게 그 남자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려 애썼다.

 

백스터: 그 남자의 얼굴을 보셨습니까?

롱 부인: 얼굴은 못 봤고, 다시 몸을 돌려 확인해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음침해 보였고, 갈색 사슴사냥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확실하진 않습니다.

백스터 : 어른이었습니까 아이었습니까?

롱 부인: 아유, 한 사십은 넘어보였습니다. 죽은 여자보다는 조금더 키가 컸던 것 같네요. 내가 생각하기로는 외국인 같기도 했습니다.

백스터: 어떤 일을 하는 사람같이 보였습니까?

롱 부인: 그냥 좀 꾀죄죄한 신사로 보이던데요.

 

이 목격자들의 증언을 들은 경찰은 난관에 봉착했다. 경찰이 크게 믿고 있던 필립스는 애니 채프먼이 적어도 토요일 새벽 4시 30분 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 목격자들은 애니가 죽은 시각을 5시 30분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결국, 챈들러 수사관은 그들의 진술을 무시했고, 그 중엔 아주 중요한 것으로 보였던 롱 부인의 진술도 있었다.

필립 서전은 그의 책에서 이 주제에 관해 필립스의 사망 시간 추정을 반박하고 있다.

 

우선 의사의 사망 추정 시간은 그닥 확실한 것은 아니다. 요즘처럼, 직장이나 간에서 측정한 시신의 몸 안쪽 온도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단지 얼마나 사후경직이 진행되었는지와 몸 밖의 온도를 손으로 만져봄으로 해서 내려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경우 몸의 온도를 급격히 낮출 만한 몇몇 요인이 있었다. 9월 8일 아침이면 상당히 추울 때다. 애니의 옷은 다리와 하복부를 외부에 노출될 정도로 올라가 있었다. 그녀의 복부는 완전히 절개되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피도 상당량 흘린 채였다. 필립스는 다른 것에 비해 상당히 그 비중이 작은 것에 기초해 사망시각을 추론해냈으며 다른 중요성은 무시했다. 만약 이 가설이 맞다면 애니는 4시 30분 전이 아니라, 그 후에 살해된 것이다.

 

신문 기사는 이스트엔드에 사는 주민들의 분노와 경악에 불을 붙였으며 온갖 소문과 이야기가 떠돌았다. 네 건의 이 잔혹한 살인사건은 평상시 사람이 북적이던 거리를 초저녁부터 조용하게 만들었으며 밤중엔 아예 사람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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