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더 에이프런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경찰과 내무부가 내놓은 결과물이 미미하자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는 범인에 현상금을 걸자는 제안을 빨리 받아들이지 못한 것에 대해 더욱 혹독한 비판을 받아야 했다. 예전에 보상금을 지불하는 정책을 쓰다가 몇 번 호되게 당한 적이 있는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이기도 했다. 내무부장관이 보인 이런 성명문에 이스트엔드의 사람들은 더욱 화를 내었다.
내무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정보를 제공할 것인가를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다. 이상하거나 반사회적인 사람들이 수도 없이 경찰서에 신고됐다. 정체 모를 대상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분노에 휩싸인 주민들은 그 희생양을 찾기 시작했고, 점점 세력을 더해가고 있는 유태인 집단이 바로 그 대상이 되었다. 단순무지한 화이트채플의 시민들은 그다지 객관적 근거가 있다고 할 수 없는 몇 가지 사실에 주목했다. 창녀를 못살게 굴었던 "가죽 앞치마"라고 불리는 사람이 유태인이라는 것이 첫번째였다. 또한 애니 채프먼 살인 사건에 대한 롱즈 부인의 증언에서 외지인이 거론됐던 사실이 있었다. 이 두 가지 사실과 더불어 다른 근거없는 소문들이 지역주민들로 하여금 반유태인정서를 갖도록 몰아갔다. 몇몇 상인들은 이런 반유태인 정서를 일찌감치 감지하고 재빨리 행동을 취했다. 대부분은 유태인 상인들로 이루어진 마일가(街) 자경 위원회를 조직한 것이다. 조지 러스크라는, 건축업자이자 교회 간부였던 한 남자는 이 16명의 세력가들로 구성된 조직의 회장으로 뽑혔다. 일반인이 떠올리는 자경단과는 동떨어진 이 위원회는 한마디로 동네 순찰대에 가까웠다. 화이트채플 지역의 유태인 대표였던 새뮤얼 몬태규라는 사람은 화이트채플 살인마를 잡으면 보상금을 지금하겠다는 제의를 했고, 그 제의는 마일가 위원회의 인가를 받은 것이었다. 일주일 남짓 지나자, 화이트채플의 방탕한 밤거리는 다시 빠르게 그 본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매춘을 비롯한 여타 유흥업을 통해 하루하루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시민들은 경찰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경찰이 그동안 올린 성과는 결코 적다고는 할 수 없었다. 9월 11일 화요일, 애니 채프먼이 죽은지 며칠 후 존 파이저라는, 그 유명한 '가죽 앞치마'는 체포되었다. 고의적인 소문에 의한 희생양일 뿐이라는 가족의 변호에도 불구하고, 6개월간의 중노동을 선고받았던 폭력사건 하나만 봐도 파이저가 그리 선한 인물은 되지 못한다는 증거는 남아돌아갈 정도였다. 창녀들에게서 금전을 갈취하고 공갈협박을 했다는 혐의는 증거부족으로 취하되었다. 이스트 런던 옵저버 지(誌)는 백스터 검시관에게 했던 파이저의 증언을 상당히 편파적으로 보도했다.
폴리 니콜스와 애니 채프먼이 살해된 이후 왜 종적을 감추었느냐는 백스터의 물음에 파이저는 그의 형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고 말했다. "전 근거없는 혐의를 받고 있어요." 그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 형이 한 충고는 그다지 시기적절했다고 볼 수 없군요." 라고 백스터가 말했다. 파이저는 재빨리 대꾸했다. "그게 말이죠, 그러지 않았으면 뼈도 못추렸을 거란 말예요!" 파이저가 유쾌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그가 화이트채플의 살인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엇다. 무엇보다도, 그는 폴리 니콜스와 애니 채프먼이 살해될 당시의 알리바이가 확실했다. 폴리가 살해됐을 때, 파이저는 한 여관에 있었고 그 여관 주인 또한 그 점을 시인했다. 애니가 살해됐을 때는 그는 남의 눈에 띄는 것이 두려워 친척집에 머물렀고, 이 알리바이 또한 몇몇 주변사람들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두번째로, 그는 애니 채프먼을 난도질하여 그녀의 자궁을 떼어내 갈 정도의 탁월한 외과 기술이 없었다. 파이저는 풀려났지만 몇몇 다른 사람들도 끌려와 비슷한 심문을 받았다. 일부는 술주정뱅이 괴짜들로 살인사건에 대해 허풍을 떨던 사람들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서류상 정신이상으로 드러났다. 심문은 머지않아 끝나곤 했는데, 그 이유는 외과 기술이 턱없이 부족했거나 살해당시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가끔 감옥 또는 구치소에 있었다는 것도 알리바이가 되곤 했다. 정신이상과 의학적 지식이 있는지의 유무가 용의자들을 솎아내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또하나의 요소는 롱즈 부인의 증언에 따른 외국인인지의 유무였다. 의학적 지식에 초점을 맞춘다면 수사범위는 화이트채플을 훨씬 벗어난 런던의 중, 상류층까지 포함을 시켜야 했고 그에 따라 괴상하거나 폭력적인 일부 의사 특히 외과의사들의 행위가 문제시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