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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밤이 바뀐 아기
2000년 5월 1일 월요일 33일째 이제 아기는 제법 큰 소리로 칭얼댄다. 한번 칭얼대기
시작하면 1시간 이상 간헐적으로 지속되기도 하고, 잘 때마저 몸부림이 몹시 심하다.
어디 아픈 데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런데 여태 여러 번 그랬던 것처럼
내가 심하게 우려했던 일들은 의사와 상담해보면 대부분 별것 아니었다.
5월 3일 수요일 35일째 목욕탕에 갔다. 때밀이 아주머니에게 때를 밀었다.
아주머니가 마사지를 잘해 준 덕에 오늘은 젖이 다른 날보다 더 많고, 잘 나온다. 아기
정기검진 때문에 병원에 갔다. 아기는 건강하다고 한다. BCG와 간염2차 접종을 했다.
간염 주사를 좋는데, 바늘 길이가 우리 봄봄이 길쭉한 손가락만했다. 무정한 간호사는
그 주사바늘을 아무렇지도 않게 아기의 왼쪽 허벅지에 단숨에 푸욱 찔렀다. 봄봄은
놀라서 울고, 그 모습을 지켜보자니 가슴이 아팠다. 시어머니가 얼른 휴지를 갖다
주시고 간호사는 내 눈물을 보고 자꾸 놀렸다. "그래서 학교는 어떻게 보내고,
유치원은 어떻게 보내겠어요?" 봄봄은 쉽게 울음을 그쳤는데, 내 눈에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BCG 접종은 왼쪽 팔에 했고, 그 모습은 쳐다보지 못했다. 눈을 돌리고
있는데, 간호사는 주사를 놓으면서(주사는 동그란 거였던 모양이다) "아직 시작도
안했어요."를 되풀이 되풀이... 그러더니 어느새 접종은 끝났고, 봄봄은 또
짧게 세 번 울음을 터뜨리더니 멈췄다. 주사대기실에서 아기를 달래고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데려온 아기와 다른 아기들을 비교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기들은 여전히
악을 쓰며 울어댔다. 아팠던 기억을 위로받고 싶은지... 봄봄은 조용히 잠을 청하며
젖을 찾았다. 젖을 먹이자 한참 맛있게 먹고 잠이 들었다. 어젯밤 내내 잠을 안 자더니
그 부족한 잠을 오늘 낮 내내 보충하는 모양이다. 지난밤 거의 밤을 새운 나는 살이
1킬로그램이나 빠졌다. 봄봄은 한 달 동안 1.3킬로그램 살이 쪘다. 오늘 체중은 5.6킬로그램.
5월 4일 목요일 36일째 자면서 투레질도 할 줄 알고, 쪽쪽 젖 빠는 소리도
낼 줄 아는 우리 봄봄이.
<15센티의 행복> 아이에게 15~20센티 정도 가까이 다가가 아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게 이토록 행복한 시간이 있을 수 있을까 싶다. 졸음에 겨워 게슴츠레
내려뜬 눈과 이도 없는 잇몸으로 꽉 문 아랫입술, 통통한 볼, 단단한 이마, 다부진
조그만 턱. 아이는 손과 발을 꼬물락꼬물락. 이 천사 같은 아이가 정말 내 속에서
나온 게 맞나??? 원활한 복식호흡으로 인해 들썩이는 몸뚱이와 그에 맞춰 새어나오는
아이의 호흡 소리는 이 세상 어느 음악보다도 아름답다. 화들짝 놀라는 몸동작도,
신경질적으로 내뻗는 작은 주먹도, 제법 힘있게 내지르는 발길질도 모두모두 참으로
사랑스럽다. 내게 이런 행복이 주어지다니, 정말 꿈만 같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
15~20센티의 거리를 유지한 채 언제고 아이만 바라보고 있고 싶다. 잠도 들지 말고
배도 고프지 말고, 기대고 있는 팔도 아프지 말고, 쳐다보는 눈도 피곤하지 말았으면...
이대로, 이 평화로운 시간이 영원토록 이어질 수 있다면...
'도윤엄마', 그것이 이제부터 나를 부르는 이름이 되겠지. 누구누구의 아내, 누구누구의
엄마라는 호칭보다 제 이름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나도
그들의 그런 견해에는 충분히 동의한다. 그러나 지금 내게 '도윤엄마'라는 호칭은
그저 하나의 애칭처럼 느껴진다. 더할 수 없이 사랑스러운 내 아이의 엄마, 그보다
더 위대한 호칭은 내게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내 존재의 또 다른 한 모습, 내게
붙여질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생명을 잉태하는
커다란 기쁨을 맛보았고, 한 생명을 탄생시키는 엄청난 고통의 시간을 거쳐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도윤엄마'로.
5월 5일 금요일 37일째 시댁으로 우리집으로 봄봄이를 옮겼다. 나 또한 한달간의
산후조리를 마치고. 시어머니는 여느 친정엄마 못지않게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고맙다는
인사를 좀더 살갑게 할 줄 안다면 참 좋겠는데, 무뚝뚝한 내 입은 부끄러움이 많아
쑥스러워한다. 오랜만에 누워 보는 침대, 나와 남편이 공유하는 이 공간이 주는
이 넉넉한 편안함과 평화. 좋다. 도윤이도 아기 침대에 눕히자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도윤이와 헤어지는 게 서운해서 우리집에 함께 와서 빨래까지 해주고 가시는
시어머니, 그분께 첫 손자가 주는 각별한 느낌을 알 것 같다. 딱 한 번, 도윤이
손이 입 쪽을 향했다, 정확하게. 금세 손가락을 빨 태세다.
5월 6일 토요일 38일째 남편에게 늦은 출근을 부탁하고 내 힘으로 아기를 목욕시켰다.
5.6킬로그램의 아기와 오른쪽 손목이 아픈 이 엄마는 서로 씨름하다시피 목욕을 마쳤지만
아기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고맙게도. 목욕시간을 즐기는 듯했고, 로션과 파우더를
발라줄 때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내가 얼쩡대며 목욕을 시킨 탓에
아기는 딸꾹질을 했다. 그렇지만 젖을 먹이자 아기는 편하고 행복하게 잔다. 아기와
단둘이 처음으로 있는 날, 하루 종일 분주하다. 빨래와 식사, 간식까지 모두 혼자
챙기려니 낮잠 잘 겨를도 없다. 시어머니의 노고를 새삼 느낀다. 도윤이가 손가락이
아니라 주먹을 입에 문다. 배가 고프자 입맛을 쩝쩝 다시다가 그래도 입에 먹을 것이
안 들어오자 제 주먹을 핥는다. 손가락 빨기의 전조인 듯싶다.
5월 7일 일요일 39일째 지난밤 또 깨어 놀던 아기로 인해 하루 종일 피곤.
아기는 확실히 낮밤이 바뀌는 모양이다. 낮엔 잘 자고 한밤중엔 깨어 있다. 그냥
깨어 있는 게 아니라 깨어서 논다. 아주 잘 논다. 옹알이도 부지런히 하고, 생글거리다가
칭얼대기도 한다. 그렇듯 새벽 1시부터 4~5시까지 깨어 있으면 나는 무척 피곤하다.
그 시간은 내게 잠이 가장 필요할 때. 아기에게 맞춰 비몽사몽간에 놀며 젖 물리며
하다 보면 굉장히 피곤하고 여차하면 품에 안은 아이를 떨어뜨릴 것만 같아 잔뜩
긴장해야 한다. 지난밤엔 젖을 물린 채 우리 침대에 뉘고는 잠이 들어 버려 자다
깬 남편이 깜짝놀라 아기를 아기 침대에 뉘었다. 큰일날 뻔했다.
5월 8일 월요일 40일째 일광욕을 시키려고 침대 위 창가에 엎어 놓았더니 아기는
그대로 잠을 청한다. 배가 덜 차서 칭얼댈 만도 한데. 그대로 잠들어 잘 잔다. 바로
잘 때보다 오히려 더 편한 모양이다. 아기 키가 내 베개 길이보다 작다. 저런 녀석이
어느새 키가 커지고 몸무게가 엄마보다 더 나가면서 보호하고 보호받는 관게에 약간의
변화가 오겠지. 사내아이들은 엄마의 그늘에서 더 빨리 떠나려고 한다니,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그때의 서운함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부디 다정한 아이로 자라 주었으면... 아기의
뾰족하던 정수리는 다 내려와 머리통이 동그래졌다.
5월 9일 화요일 41일째 아기는
확실히 낮밤이 바뀐 모양이다. 지난밤엔 10시 30분에 목욕을 해서 밤새
푹 잘 줄 알았는데 새벽 2시에 깨어 일어나 5시가 넘도록 안 자고 울다가
놀다가... 그러고 또 아침 8시부터 지금 11시가 넘도록 놀고 있다. 잘
놀다가는 보채고, 젖을 먹고도 자려 들지 않는다. 어디가 불편한 건
아닌지...
5월
10일 수요일 42일째 지난밤 억지로 놀게 뒤 재웠더니 그나마
새벽 5시까지 4시간은 잤다. 5시부터 10시 30분까지 놀며 칭얼대며 찔끔찔끔
젖을 먹고 주변이 몹시 소란스러운중에 내 품에 안겨 겨우 잠들었다.
그렇게 자기 시작해 오후 내내 젖 먹는 시간만 빼고 잠을 잔다. 도윤이에게
잠투정이 있다. 안아달라고 칭얼대는 것이다. 20~30분은 안고 있어야
한다. 도윤이는 아기답게 잘 자라고 있는 셈이다. 막혔던 코가 뚫렸는지
숨소리가 조용해져서 자고 있는 아기에게 자꾸 다가가게 된다. 제대로
숨을 쉬고 있는지 코 밑에 손을 대보고는 비로소 안심한다. 아기를 키우는
동안은 내내 긴장상태다. 아기가 잘 때 따라서 잠시 눈을 붙이다가도
조그만 소리만 나면 번쩍 눈을 뜨게 되고, 잠은 금세 달아난다. 낮에도
밤에도 눈이 무겁다. 편히 한번 자고 싶다. 아기를 혼자 키우는 건 꽤
힘든 일이다.
5월
11일 목요일 43일째 밤낮이 바뀐 건 길어 봐야 1년여, 짧으면
100일 안에 끝나는 거라고 한다. 저절로 어른을 따라하게 된단다. 그렇다면
굳이 조바심 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엄마 된 도리로 조금만 참아주면
될 것이다. 만약 100일 안에 끝난다면 오늘부터 쳐도 60여 일, 두 달
가량 남았을 뿐이다. 아기와 리듬을 맞추는 게 좋을 듯하다. 그런데
아기처럼 낮에 잠이 오지는 않는다. 혼자 아기와 있다 보면 아기가 자는
동안에도 주의해서 지켜보지 않으면 만약에 토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아기가 깨어 있을 때는 함께 놀아 주어야 하고, 잘 때는 지켜봐아
하므로 낮잠은 거의 포기 상태다. 어젯밤엔 다행히도 아기가 밤에도
잘 자 주었다. 새벽 1시부터 5시까지. 잘 자고는 5시부터 지치도록 논다.
정오쯤 잠을 청하더니 오후 내내 자고, 저녁에도 젖 먹는 시간만 빼고는
잔다. 지금은 자정. 아기가 언제 깨어날지 궁금하다. 이렇게 내리 12시간
이상을 잠만 자도 괜찮은지...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이다.
5월
12일 금요일 44일째 오이소박이를 담그는 데 무려 4시간이나
걸렸다. 잘 놀던 아이가 보채면 달래고, 젖을 먹이고, 재우고... 그러다
보니 점심시간도 훌쩍 지나고, 3시가 넘어서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이가 자는 사이에 함께 눈을 좀 붙이고 싶은데, 할 일이 태산이다.
빨래를 걷어서 개고, 세탁통 속의 빨래를 널어야 하고 색깔옷 빨래도
해야 한다. 오외소박이 담고 남은 부추도 뭘 만들어야지 그냥 두면 상할
거다. 어젯밤엔 3시에 깨어 젖 먹고 자더니 5시에 다시 깨어 그때부터
조금전 오후 2시 30분까지 중간중간 토막잠을 잘 뿐 아기는 깨어 있었다.
잠시간과 깨어 있는 시간이 매우 길어졌다. 어제는 무려 12시간이 넘도록
먹을 때 빼고는 자더니, 오늘은 8시간 30분 동안 먹을 때 빼고는 놀았다.
이제 자기 시작했으니 언제까지 잘까...
5월
13일 토요일 45일째 오전에 잠깐 잠을 잔 아기는 오후 내내 깨어
놀았다. 지난밤 제대로 잠을 못 잔 나는 오후 4시가 넘자 도조히 잠을
몰아내지 못해 비몽사몽. 5시경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둘 다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밖에서 "도윤아, 도윤아" 부르는 소리. 시어머니가
오셨다. 설핏 들었던 잠에서 깨어난 나는 머리가 아팠고, 아기도 겨우
들려고 했던 잠에서 깨어 시어머니가 가실 때까지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잠이 들어서도 자꾸 놀라서 깨고... 아기는 손을 빨기 시작했는데,
주먹이 입으로 들어가려 하더니 이제는 검지손가락을 곧추 세워서 제법
손가락 빠는 시늉을 한다.
5월
15일 월요일 47일째 아기 배냇머리가 앞쪽은 대부분 빠졌고,
동그란 이마 위의 머리카락은 꺼뭇하게 자라고 있다. 옆이나 뒤의 머리는
빠지지 않고 길이만 길어서 묶을 수도 있을 정도다. 아기의 얼굴은
하루에도 몇 번씩 뽀얘진다. 목욕을 한 후 쉬고 있을 때나 잠든 지 몇분
후에 아기의 얼굴은 그야말로 우윳빛으로, 뽀얗고 통통하며 보송보송하다.
이마와 눈가에 태열인 듯 좁쌀처럼 오톨도톨 올라 있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도 그때만은 눈에 안 띈다.
5월
16일 화요일 48일째 밤잠을 재우기 위해 낮에 못 자게 스트레스를
주는 대신 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둔 지 일주일도 못되어 아기는
저절로 낮밤을 구별하고 있다. 지난밤엔 10시에 잠들어 새벽 4시에 조용히
깨어 놀며 젖 먹을 때를 기다려 주었다. 그러고는 젖을 먹고 다시 잠들어
아침 7시에 일어났다. 덕분에 나는 참 편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기의 청력을 검사해 본다. 아기의 감각 발달 중 가장 알기 힘든
것이 청각이다. 봄봄이의 시력은 문제가 없는 듯하다. 나와 눈을 맞출
줄 알고, 나의 움직임을 좇을 줄도 안다. 미각이나 말하는 것도 옹알이가
열심인 것과 결명자차와 설탕물을 구별하는 걸 보면 괜찮은 것 같고,
촉각 또한 발달한 듯하다. 그런데 청각은 알 수가 없다. 귀 옆에다 대고
자명종 시계를 울려도 특별한 반응이 없는가 하면, 딸랑이를 흔들었을
땐 조금 반응을 보이는 듯도 하다. 그런데도 내가 부르는 소리에는 전혀
반응이 없는 걸 보면 혹시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다른 감각들도 처음엔 우연의 일치처럼 시작됐었다. 그래도 혹시나...
안돼! 안되지. 그럴 수는 없다. 싫어. 가슴부터 막막해진다. 봄봄은
요 며칠 고개 가누기 연습이 한창이다. 아이를 품에 안으면 고개를 빳빳이
들고 눈을 두리번거린다. 금방이라도 목을 가눌 태세다. 이렇게 조금씩
매일매일 아이는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보인다. 저렇게 자라 제 힘으로
앉고, 걷고, 먹고, 뛰어다니겠지... 그때마다 나는 또 새로운 기쁨을
맛볼 테고...
5월
17일 수요일 49일째 연 3일째 수술 부위 안쪽에 따끔따끔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있다. 겉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고, 어림짐작으로
만져 봐도 딱 집히는 곳이 없는데 어쩌다 몸의 움직임에 따라 불현듯
콕콕 찔러댄다. 아기를 안을 때나 아이와 놀기 위해 허리를 숙일 때
등 갑자기 통증이 온다. 침대 위에 엎어 놓자 잘 자던 아기는 온갖
몸부림을 동원해 고개를 돌린다. 열심히 애를 쓰다가 어느 순간 훽!!
하고 빠르고 힘차게. 목힘이 좋아졌다. 아기 엉덩이의 발진이 나를
몹시 괴롭힌다. 창가에서 햇빛을 쬐주고 문밖에 일광욕을 해주지만 워낙
연한 살결에다 살이 서로 붙어 있는 곳이라 좀체 낫지 않는다. 하루중
아기 엉덩이와 씨름하는 시간이 내 육아의 절반을 차지하나보다.
5월
18일 목요일 50일째 친구와 통화가 좀 길어졌는데, 잘 놀던 아기가
보채기 시작했다. '아-', 짧게 시작된 아기의 목소리가 점차 커져갔다.
마침내 소리를 지르기가지. 그런데 친구가 먼저 "엄마 하네"
하는 게 아닌가. 전화기 너머 저편에선 그 소리가 그렇게 들렸나 보다
했더니, 웬걸, 진짜 아기가 '으-음-마' 하고 우는 게 아닌가. '으-음-마',
그건 얼핏 들으면 틀림없는 '엄마'였다. 그렇다면 이 소리는 아기를
울릴 때만 들을 수 있는 걸까. 아기가 오늘 나를 놀라게 한 또 한
가지는 '쩝-쩝' 하는 소리를 낸 것이다. 이건 또 남편이 먼저 발견했다.
목욕을 한 뒤 젖을 먹고 기분 좋게 잘 놀던 아기는 제 침대에 누운 채
잘까말까 하고 있었다. 아기를 살펴보러 왔던 남편이 그 모습을 발견했다.
손가락을 빠는 것도 아니면서 입을 잔뜩 모았다 벌리면서 '쩝-쩝-' 하고
큰 소리를 내는 것. 소리는 매우 컸다. 남편이 부르는 소리에 방에 들어온
나는 깜짝 놀라 얼른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와 찍었다. 아기는 저 스스로도
재미가 있는지 이후로 잠들 때까지 여러 번 그 '쩝-쩝-'을 되풀이했다.
아기의 작은 발전 하나에 이토록 행복해지는 우리. 이렇게 아기는
우리 가슴 속 깊이 파묻힐 듯 파고든다. 아기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기뻐져 다른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낮에 기분 좋게 놀고 있을
때 실시한 청력 테스트. 아기는 딸랑이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또 내가 재채기를 하자 놀라는 듯했다.
5.18, 20년
전 이 땅에는 사람의 땅이라 할 수 없을 만행이 저질러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 5.18은 독재의 시대를 종식하고 민주화를 이끌기
위한 도화선이 되었다.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분신 자살하고, 고문사하고,
감옥에 갇히며 이 땅의 민주화를 부르짖었다. 그리고 이제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세상은 많이 변했다. 많은 혼돈 또한 찾아왔었고, 이제
사람들은 시대를 아파하기보다 개인의 안위와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안일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세상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기술 문명의 엄청난 발전으로 인해 사람들은
바쁘다. 재빨리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기 위한
노력들은 눈물겹다. 영어 공부에다 컴퓨터 공부, 해야 할 공부가 많고
생업 속에서 요구되는 일들이 과중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기가 어른이
되어 이 세상의 주역으로 살아갈 때는 사람들이 저마다 서로의 평화를
기원하고 마음의 평화로 자유로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신적인 여유,
그 안에서 느끼는 온전한 평화와 자유. 바쁘지 말며 게으르지도 말고,
나를 귀하게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을 귀하게 여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5월
19일 금요일 51일째 온몸이 천근이다. 안 아픈 곳이 없고, 몸이
자꾸만 가라앉는다. 식사 시간이 매우 불규칙해졌다. 그래서인지 변비도
생겼다. 아기가 잠들었을 때 얼른얼른 챙겨 먹지 않으면 때를 거르게
된다. 아기는 목 가누기 연습을 하고 싶어서 깨어 있는 시간마다
안기려 든다. 품에 안겨서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목을 가누려 애를 쓴다.
그러다 콰당콰당 내 몸에다 머리를 찧는다.
5월
20일 토요일 52일째 한의원에 갔다. 내 몸은 내가 챙겨야 하니까.
좀더 나이 들어 매일 아프고, 아프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기 싫어서.
보약 한 재, 그걸로 산후통이 말끔히 나았으면 좋겠다.
5월
21일 일요일 53일째 아기는 어제부터 진한 황금색 응가를 한다.
너무 예쁜 색이다. 횟수도 많이 줄었다. 몰아서 눌 줄 아는 것 같다.
그대신 소변은 잦다. 응가를 지리는 것도 많이 줄었다. 힘만 주면 지려서
오줌 기저귀에도 거의 대부분 응가가 묻어 있었는데, 이제 그러지 않는다.
그래도 짓무른 엉덩이는 아직 낫지 않았다.
5월
22일 월요일 54일째 햇빛에 빨래 내다말리기 2번, 세탁기로 빨래하기
2번, 빨래 삶기 2번. 빨래로 하루해가 다 간다. 도윤이 배꼽이 좀
이상하다. 진물이 멈추지 않았던 걸까, 다시 도졌다. 여러 가지로 속이
썩는다. 아기에게 조그만 일만 일어나도 무척 걱정이 되고 안절부절
조바심이 난다.
5월
23일 화요일 55일째 아기를 쳐다보고 있을 땐 아무 생각도 안
하게 된다.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간혹 생각한다, 건강하게
잘 자라 달라고. 아기의 까만 눈동자, 통통한 볼, 오똑한 코, 조그맣게
오므린 입술에 나는 취하여 생각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생각 없이
멍-하니. 이런 나를 사랑한다. 아기에게 반하여 아기에게 충실한
것만으로도 행복한 생활. 내게 닥친 이 소중한 시간을 귀하게, 귀하게
보내리라. 나중에 내가 무엇을 안타까워하든지, 그건 그때 고민할 일이다.
그래도 준비는 해야 하지 않을까, 훗날을 위해...
5월
24일 수요일 56일째 낮잠을 자던 아이가 갑자기 깨어 '으앙~!'
하고 크게 소리 내어 울었다. 토닥토닥 도닥여주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고, 혹시 내버려두면 제풀에 지쳐 그만두지 않을까 하고 가만히 지켜보자니
몇초도 되지 않아 얼굴이 온통 새카매지고 숨이 넘어갈 듯 울어젖히는
게 아닌가. 품에 안고 겨우겨우 달래고 울음을 그치게 했다. 또 두어
시간 뒤 잠에서 깨며 '으앙!~'. 마치 어딘가 심하게 아픈 아이같이 우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젖은 기저귀를 갈고 달래어 겨우 진정시켜
놓았더니 한 30분 자다가 또 깨어서 '으앙!'. 이번엔 기저귀를 아예
채우지 않았는데도 발진이 난 엉덩이가 아픈지, 배꼽이 문제가 있는지,
어제 혹시 파우더가 왼쪽 눈에 들어간 게 아닌지... 품에 안고 달래자
진정되고 흔들침대에 눕히고 살살 흔들어 주니 평화롭게 잔다. 악몽을
꾸었던 건지. 소리내어 우는 법을 터득한 게 아닐까... 한순간도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어서 집에 있는 재료들만 넣어 김밥을 만들고는 하루종일
그것만 먹었다.
5월
25일 목요일 57일째 결국 밤 2시까지 보채던 아기는 겨우 잠들어
두 번 젖 먹는 시간만 빼고는 오후 3시까지 내리 잤다. 두어 시간 놀다가
또 잤다. 밤 9시, 아기는 깨어서 논다. 좀전에 칭얼대는 아기를 처음으로
업었다. 따뜻한 등과 포대기 때문인지 금방 잠을 청하던 아기는 침대에
눕히자 깨어서는 놀고 있다. 오늘밤은 도 언제까지 깨어 있을는지... 엄지에서
손목으로 이어지는 근이 아파서 글씨를 쓰기가 몹시 불편하다.
5월
26일 금요일 58일째 아기를 띠에 둘러 안고 처음으로 혼자 외출했다.
이웃에도 놀러가고, 동사무소와 은행엗호 들르고. 아기는 이웃집에서
잠시 깨어 기분 좋게 놀고는 내내 잤다. 아기가 그저께 밤부터는 잠이
더 많아졌다. 낮에도 깨어 있는 시간보다 자는 시간이 훨씬 많다. 아기를
띠로 안으니 손이 자유로워서 매우 편하다. 아직 목을 가누지 못해 불안해서
팔로 두르고 다니지만 팔에 크게 힘을 주지 않아도 되니 참으로 편하다.
아기가 크는 만큼 나도 편해지는 걸까...
5월
27일 토요일 59일째 살풋살풋 비가 내리는 대학로를 아기와 함께
걸었다. 대학로에선 마토연극제가 열리고 있었다. 마지막 토요일엔 연극을
보자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고 축제다. 대학로 찻길에 차들은 다니지
않고 배우들이 온통 차지하고 있었다. 비를 맞으면서 비가 내려 축축한
길바닥에 배우들은 나뒹굴고, 뛰어다니고, 기어다니고, 드러누워 버둥대고
있었다. 그들이 표현하고 싶은 건, 우리 인간 세상에서 고통받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을까. 그들의 처절한 몸부림과 비명은 내리는 비로
인해 더욱더 처연했다. 그들의 몸짓을 한참 지켜보고 서 있다가, 내
품에 안겨 곤히 자고 있는 우리 아기를 보며 속으로 말했다. '아가,
이 세상엔 기쁘고 즐거운 일들도 많고, 밝고 맑은 곳도 많고, 행복한
날들은 더욱 많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아주 많단다. 너는 부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좋은 것들을 많이 대하면서 행복하게 살아라...'
5월
28일 일요일 60일째 60일, 두 달. 기쁘다. 아침에 도윤이는 내
품에 안긴 채 나를 보고 방긋방긋 웃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남편에게
자랑하고, 남편도 신기해 했다. 아가는 또 한 가지 발달 단계를 건너고
있는 것이다. 아침에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이후 여러 번 아기는 나와
눈을 맞추고 미소를 지었다. 생글생글. 엄마를 알아보나 보다. 도윤이
응가가 많이 진해졌다.
5월
29일 월요일 61일째 아기가 동그란 눈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입술을 오물대다가 생긋생긋 웃으면,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행복감
때문에 눈물이 핑-돈다. 이 세상에서, 태어난 지 처음으로, 이만한 행복을
맛보고 있는 것 같다. 남편을 처음 사랑하게 됐을 때조차 이만큼 행복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내 인생에서 아마도 가장 행복한 날들이 요즈음이 아닐까.
아마 틀림없이 그럴 거다. 그러니 충분히 맛보고 싶다. 아기에게 잘해주며
행복하고, 아기의 미소를 보며 행복하고...
5월
30일 화요일 62일째 어젯밤에 콧소리가 그르릉대던 아기가 오늘
아침엔 더 심하고 기침까지 했다. 한참을 걸어서 소아과를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기는 감기 기운이 있는 거였다. 숨쉬기가 어려워 심하게 들숙거리는
가슴을 본 의사는 콧물 뽑아내는 기계로 아기의 콧속에 잔뜩 들어 있던
코를 뽑아냈다. 아기는 금세 편안해 보였다. 엉덩이는 연고만 하루에
한 번 발라주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고 한다. 진료가 끝나고 젖을
먹이고 나니 또 코가 그르릉. 의사는 저절로 낫기를 기다리면 된다고
한다. 저절로 나을 거라면서. 아기가 어려서 약은 줄 수가 없다고 한다.
아기도 나도 불편하고 힘들지만 참는 수밖에 없다. 체중은 6.8킬로였다.
집에 와서도 내내 아기 코가 신경쓰인다. 저녁 무렵엔 기침도 더 잦더니
힘겹게 젖을 먹고는 그르릉거림 없이 자고 있다. 현재 시각, 저녁 6시
40분.
5월
31일 수요일 63일째 도윤이 콧물이 더 심한 듯하다. 먹는 것도
시원찮다. 숨이 막혀서인지 입에 고였던 젖을 뿜어내는 것이 더 심하다.
양도 준 것 같다. 낮잠을 잘 때 엉덩이 발진 때문에 바지와 기저귀를
벗겨 놓았더니 멎었던 기침도 다시 한다. 응가는 정상적인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도윤이가 젖을 먹으면서 힘들어 한 건 지난 목요일부터였던
것 같다. 그저 젖 빠는 힘 때문에 힘이 들어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코막힘도 시댁에서부터 그랬기 때문에 무심코 넘겼는데,
콧물도 지난 일요일부터 시작됐다. 비오는 날 외출 시간이 길었던 탓일까. 남편
꿈 속에서 도윤이가 아빠에겐 "안녕하세요" 엄마에겐 "사랑해요"
라고 했단다. 남편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꿈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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