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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난다
2000년
8월 1일 125일째 도윤이가
신발을 처음 신은 날 도윤이를 보행기에
앉히고 신발을 신겼다. 배냇저고리나 옷을 입힐 때와는 기분이 다르다.
모자를 씌울 때조차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어떤 구속, 그 속에 아이를
가두는 느낌. 굳이 필요한 것도 아니면서 사회적인 관습에 의해 필요한
것. 결국 생후 125일 만에 도윤이는 그 관습이라는 것에 맞춰진다. 아니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그랬을 것이다. 폭신한 잠자리에서 자고, 기저귀를
차고, 배냇머리를 자르고, 목욕을 하고 파우더를 바르고... 그저 적당히
익숙해진 뒤에, 이후 스스로 그것들의 불필요성을 느낀 다음에 거부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8월
2일 수요일 126일째 오늘 도윤이는 먹거나 자는 시간 외에는
칭얼댄다. 혼자 놀기 싫다는 소리다. 아기는 놀아주면 좋아하는데, 손목이
아파 아기를 오래 들고 있을 수가 없다. 하기야 내가 언제 7.8㎏짜리를
양손으로 번쩍번쩍 들어 보았던가.
8월
3일 목요일 127일째 오전 11시 30분에 집을 나서 돌아온 시간은
오후 6시. 무려 6시간 30분 동안 도윤이와 둘이서 산책을 했다. 집을
나서자마자 유모차 안에서 깊이 잠든 도윤이 덕에 아는 사람들한테 도윤이
백일사진을 메일로 보내주었다. 자꾸만 자랑이 하고 싶은 나는 고슴도치다.
은행에도 들르고 서점에도 들러 책 한 권을 사고, 더위를 피해 버거킹에
들러 또 1시간. 이때까지 장장 4시간을 실컷 잔 도윤이. 젖 먹고 기저귀
갈고 나왓다. 어제 그토록 칭얼댄 건 더워서였나 보다. 오늘은 계속
에어컨이 있는 곳이었으니 잠자기 좋았던가 보다. 공원에서 민재 엄마를
만났다. 무척 반가웠는데, 그녀는 우리 도윤이에게 눈길을 잘 주지 않는다.
아마도 통통하게 살이 올라 동글동글 예쁜 우리 도윤이에게 질투를 느끼는
모양이다. 도윤이보다 한 달이나 빨리 태어난 민재가 몸매는 절반 정도밖에
안되니 그럴만도 할 것이다. 부끄럽고 치사하게도 이럴 때 나는 무척
자랑스럽다.
8월
4일 금요일 128일째 도윤이는 잠이 짧고 깨어서는 잘 운다. 큰다는
표시겠지. 뭔지 모를 요구가 많고, 관철되지 않으면 계속 운다. 고집도
세다. 주로는 누워 있기 싫어서이고, 엄마가 안 보여서이고, 업히고
싶어서다. 우리 아기에게 처음으로 선물한 장난감: 1.촉각틸리:
알록달록한 갖가지 천으로 된 길쭉한 뱀-도윤이가 안고 뒹군다. 아래위
다른 딸랑이 소리는 신기한 모양이다. 2.목욕친구들: 빨간색, 연두색,
노란색 고무 인형-목욕통에 넣어 주었지만 제 손가락만 빠느라 전혀
관심이 없다. 3.치아발육기: 빨간색, 흰색, 검정이 고루 섞인 둥근
치아발육기는 도윤이가 좋아한다. 손에 잘 잡히고 입에도 잘 들어가고
잇몸에 잘 물리나 보다. 그래도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은 제 손이고,
두 번째는 손수건. 쉽게 잡히고 가벼워서 갖고 놀기 좋은 모양이다.
8월
5일 토요일 129일째 어젯밤을 회사에서 보내고 온 남편은 오전에
잠깐 자고 도윤이랑 노느라 고생했다. 그래도 착한 도윤이가 아빠를
많이 봐줬다. 오후엔 낮잠을 길게 잤다. 그 시간에 남편도 아주 달게
잠을 잤다. 누가 하루만 도와줘도 정말 살 것 같다. 우선 몸이 덜 힘들어
아프지가 않다.
8월
8일 화요일 132일째 도윤이의
배밀이 병원에서 예방접종을 시키고 바로
집으로 돌아올 걸 그랬다. 시어머니가 오라는 바람에 시댁에 갔다가
도윤이가 심하게 울어대는 바람에 몹시 걱정했다. 주사 맞을 땐 아주
조금밖에 안 울어 엄마를 자랑스럽게 하더니 그 못 다 운 울음을 다
쏟아내는지... 아니면 기는 연습을 억지로 시킨 게 무리였는지... 어쨌든
밤에 집에 돌아와 도윤이가 제 몸을 앞쪽으로 쭉 밀어올렸다, 딱 한
번. 이제 배밀이를 시작하려나...
8월
9일 133일째 오늘 도윤이는 하루종일 곤하게 잔다. 먹을 때 잠깐
깨고, 깨어서 잠깐 놀고는 잔다. 엎드린 자세로는 오래 있지 않으려
하고, 기는 연습은 하나도 안 한다. 딸랑이도, 치아발육기도 싫어한다.
그저 제 왼손 엄지만 죽어라 빨아대어 손가락이 빨갛고 퉁퉁 불었다.
8월
10일 목요일 134일째 아침마다 남편은 자고 있는 도윤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감탄을 거듭한다. "어떻게 이렇게 예쁘지..." 한참
동안 침대에 엎드려 도윤이를 구경하다 매번 출근시간이 조금씩 늦다.
이렇게 사랑하는 아들을 보는 시간이 너무나 짧다. 저녁에는 다행히도
도윤이가 아빠 퇴근 시간에 맞춰 깨어 있지만 아침에는 자는 얼굴밖에
보여주지 못한다. 저녁에 1시간 안 되는 동안 아기와 놀며 아기를 웃기고
자기도 웃는 그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도윤이 오른쪽 발 복숭아뼈
위에 상처가 생겼다. 언제 어디서 생긴 건지 모르는 작은 상처. 꽤 아팠을
만한데 내가 눈치챌 정도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상처를
늦게 발견한 이유라면 이유일까. 1.3센티 가량의 작고 빨간 상처로 인해
잠들기 전까지 마음이 쓰였다. 이러니 앞으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얼마나 신경이 쓰일까...
8월
21일 월요일 145일째 아,
이 난다 편도선염으로 고생하며 시댁에서
3일을 보내고 어제 낮에 집에 돌아왔다. 몸은 아직 덜 나았지만 역시
내 집이 편하다. 몸이 아파서인지, 처음에 약국에서 잘못 지어준 약
때문인지 어제 저녁에 갑자기 젖이 부족해 도윤이가 엄청나게 보챘다.
오후 6시부터 거의 6시간 가량 젖 먹는 시간 외에는 칭얼대며 겨우 잠이
들었다. 오늘도 여전히 젖이 부족하다. 이제 분유를 먹일 때가 된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는 도윤이가 분유를 몹시 싫어한다는 것. 처음 30㎖ 정도는
배고프니까 모른 척 먹더니 갑자기 울면서 고개를 돌려 내 겨드랑이
밑에 입을 감추고는 울어댔다. 우유병 젖꼭지 빨기 싫다고. 울음이 그치는
듯해 우유병을 갖다대려고 하자 병만 보고는 또 고개를 외로 틀며 울었다.
10분 가량 서럽게 울고, 5분 가량 스스로 진정하다 5분 동안은 놀다가
졸음이 쏟아지자 우유병을 문 채 스르르 눈을 감았다. 자면서 먹은 우유양이
70㎖. 아까 낮에도 그 정도 먹었다. 탈이 없어야 할텐데... 마음이
몹시 아프다. 도윤이가 제 엄마 젖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잘 때도
물고 자고, 잠에서 깨자마자 물고 싶어하고, 꿀떡꿀떡 숨 넘어가는 소리로
아주 맛있게 먹었는데. 한 손으로는 엄마 옷자락을 꽉 잡고 만지작만지작...
맛의 차이를 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지만 먹고 싶은 맛을 찾는데 줄
수가 없으니 가슴이 터질 듯 아프다. 낮에는 현관문 앞에 유모차를
내놓고 도윤이를 앉힌 채 놀았다. 비가 와서 외출이 불가능했다. 그러다
문득 '도윤이가 혹시 이가 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아이의 입을 벌려 보려고 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겨우겨우 입을
벌려 아래 잇몸을 보는데 그 잠깐 사이에 아, 이! 왼쪽 아래 앞니! 하얗게
빛나는 게 있었다. 또 한 번 입 벌리기를 시도, 또 보았다. 옆집에 놀러
와 이는 아기엄마를 불러 확인을 청했다. 역시 내가 본 건 우리 도윤이에게
나기 시작하는 '이'였다.
8월
22일 146일째 낮에 또 한 번 도윤이에게 분유 먹이기를 시도하다가
서러운 눈물만 빼놓았다. 우유병만 봐도 울고, 실리콘 젖꼭지가 입 근처에만
가도 운다. 대용식으로 먹이려고 했던 요구르트는 의외로 좋아하지 않는다.
8월
23일 수요일 147일째 도윤이에게 분유 먹이기는 당분간 미룬다.
다행히 젖 양이 좀 나아졌다. 대신 3시간 간격으로 먹이던 것을 4시간
간격으로 늘렸다. 몹시 배고파하는 도윤이에게 다른 데 관심을 돌리게
하느라 놀아주다 보니 몹시 힘들다. 남편이 회사에서 밤을 새느라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은 어떻게 아는지 희한하게도 도윤이는 일찍 잠들어
깨지 않고 잔다.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오늘도 어김없다. 둘 사이에 텔레파시라도
통하는 모양이다. 아빠가 늦게라도 집에 오는 날에는 신기하게도 10~20분
전에 깨어 일어나 있다. 아빠가 오면 놀아주기를 기다려 한참 놀고 젖
한 번 더 먹고 늦게 잠들어서 오전 내내 잠만 잔다. 혈육의 끈이라는
게 이런 건가 보다.
8월
25일 금요일 149일째 문득 바라보자 부쩍 커 있는 아들. 몸놀림이
몹시 활발해 돌보기가 버거울 때면 3~4달 전 가만히 누워서 제 힘으로는
고개도 못 들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러던 아이가 온몸 안 움직이는 곳이
없을 정도로 부지런히 움직여댄다, 제 의지대로. 보행기도 사방으로
마구 끌고 다닌다. 그러다 오늘은 보행기와 상 사이에 손가락이 끼어
두 번이나 울었다. 그 울음, 배가 고픈 것도 기저귀가 젖은 것도 아닌
그 울음, 아파서 서러운 그 울음. 으앙- 으앙!- 참 아프게 운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껴안고 한참 서성일 때까지 계속되는 예쁜 울음.
8월
26일 토요일 150일째 아직 몸이 다 나은 건 아니지만 젖은 도윤이에게
부족하지 않을 만큼 나오는 듯하다. 그렇지만 이게 언제까지 가줄지
다소 불안하다. 도윤이 아랫니 2개가 만지면 까끌할 정도로 자랐다.
8월
28일 월요일 152일째 도윤이는 보행기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줄
안다. 그러다 오늘은 또 두 번이나 손가락을 다칠 뻔했다. 도윤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면 나는 무척 자랑스럽다. 보는 이마다 예쁘다 하고,
안아 보고 싶어한다. 예쁜 얼굴에 귀여운 보조개, 티없는 미소. 정말
흠잡을 데라곤 하나도 없는 완벽한 외모다. 게다가 낯가림도 없고 보채지도
않는다. 약간의 잠투정만 있을 뿐이다. 이렇듯 착한 아들이 비가 며칠
동안 게속해서 내리자 잠이 많아졌다. 외출을 못한다는 걸 아는 모양이다.
덕분에 나도 따라서 잠을 많이 자고, 아침이면 다른 때보다 덜 피곤하다.
8월
29일 화요일 153일째 성인이 된 이후 가장 행복한 날들이 바로
요즈음인 듯하다. 아무리 보아도 예쁘기만한 아들과 함께 온종일을 보내는
요즈음, 아이의 얼굴을, 몸짓을 보다가 하루가 다 가는 요즈음, 나는
수시로 행복감을 느낀다.
8월
30일 수요일 154일째 남편과 친구를 만나러 간 자리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식사를 하고 있는데, 도윤이가 잠투정을 하며 보채기 시작했다.
투정을 가라앉혀 보려고 해파리냉채에 들어 있는 배를 씻어서 도윤이에게
주었다. 잘 게 채썬 것이어서 도윤이가 잡고 빨며 놀라고 한 것인데,
아뿔싸 도윤이가 그 예쁜 아래 앞니 두 개로 배를 아삭 깨물어
꿀꺽 삼켜 버렸다. 아직 미음에 들어 있는 다 허물어진 밥알도 먹어보지
않은 아이라 몹시 걱정이 된다. 입안에 건더기만 들어오면 혀로 오물오물
뱉어 버리더니 어떻게 배 조각을 꿀떡 삼켜 버렸는지.
8월
31일 목요일 155일째 나왔다, 배. 도윤이 응가 속에 어제 먹은
배가 조금 흐물거리는 상태로 전혀 분해되지 않은 모습으로 나왔다.
응가 속을 뒤져 그게 나오고 나서야 한숨이 놓였다. 오후 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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