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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뭉치

 

2000년 11월 2일 목요일 217일째
도윤이 응가가 또 초록색인데다 묽다. 콧물도 조르르. 그래도 잘 놀고 사고도 잘 친다. 지금도 일기 쓰는 걸 방해한다. 내가 쥐고 있는 펜을 뺏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다.

2000년 11월 2일 목요일 217일째
도윤이 응가가 또 초록색인데다 묽다. 콧물도 조르르. 그래도 잘 놀고 사고도 잘 친다. 지금도 일기 쓰는 걸 방해한다. 내가 쥐고 있는 펜을 뺏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다.

11월 4일 토요일 219일째
우리가 별일 없이 하루를 보내는 사이에 곳곳에서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경기도 지역에선 홍역이 돌고 있다. 도윤이는 예방접종도 아직 할 때가 안됐는데 걱정이다.

11월 6일 일요일 221일째
도윤이가 종일 보챈다. 내게 달라붙어 칭얼댄다. 장난감을 갖고 혼자 노는 시간은 아주 짧고 대부분의 시간을 내게 매달린다. 콧물은 심하지 않고 열도 없고 먹는 것도 잘 먹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지 종일 걱정했다. 다행히 밤에는 잘 놀다가 잠들었다.

11월 7일 화요일 222일째
도윤이는 오늘도 보채더니 저녁엔 잘 논다. 둘만 보내는 낮시간이 지루해서일까. 어제보다는 콧물이 심해 외출도 못하고 꼼짝없이 집에서만 지내니 갑갑하기도 하겠지. 콧물약을 두 번이나 먹였다.

11월 8일 수요일 223일째
이제 도윤이는 맨밥도 잘 받아먹고 소화도 잘 시킨다. 오늘은 감을 아작! 씹어서 내가 빼낼 틈도 없이 꿀꺽! 삼키고는 목이 아파서 칵- 칵. 응가에 섞여 나오겠지.
문제는 감기약이다. 콧물 감기약을 세 번 먹였는데 콧물은 안 떨어지고 TV에선 충격적인 내용을 보도하는 게 아닌가. PPA라는 감기약 주성분이 출혈성 뇌졸중을 일으킨다는 보고가 나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감기약에서 PPA(페놀프로파놀아민)는 가장 중요한 치료제이며, 특히 코감기약으로는 이 성분이 빠질 수가 없다고 한다. 그저 감기는 다 앓고 저절로 나으라는 결론. 실컷 아프고 난 뒤에 저절로 항체가 생기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건데, 저 어린 녀석 코에 질금질금 달라붙는 콧물을 무시하기란 참 쉽지가 않다.

11월 9일 목요일 224일째 의자에서 떨어졌다
도윤이가 보채다가 업히자마자 잠이 들기에 아이를 바로 내려놓을 수가 없어서 산책 겸 집을 나섰다가 인터넷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갔다. 요즘 내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민화배우기 사이트를 찾고 자료를 살피고 있었는데, 사고가 터졌다. 등에 매달려 자고 있는 도윤이가 안돼 보여서 포대기를 풀고 가슴에 안아 재웠는데 아이가 금세 잠에서 깼다. 아이는 제멋대로 놀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래서 풀어놓았던 건데, 도윤이는 금세 사고를 쳤다. 정말이지 아차! 하는 아주 짧은 시간에 아이가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의자 위를 기어다니려고 팔을 휘저었다가 헛짚었던 모양이다. 팔을 뻗어 아이를 잡을 틈도 없이 정말 순간적이었다. 아! 하고 놀란 건 이미 아이가 바닥에 머리를 부딪친 뒤였다. 앞 이마와 왼쪽 귀 위의 머리 사이를 바닥에 대고 엎드려 있는 아이. 으-앙! 아이를 일으켜 안고 보니 뻘겋다. 가슴에 꼬옥 안고 달래자니 아이는 큰 소리로 한 30초간 울더니 곧 울음을 멈췄다. 업어주니 잠잠. 옹알이도 어- 어-. 아이가 금세 진정이 되니 아픈 건 아닌가 보다 하면서도 내심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부디 아무 일 없기를...

11월 24일 금요일 239일째
일기를 안 쓴 요 며칠, 그저 평화롭게 지나갔다. 우리의 결혼기념일 두 번째 날도 여전히 날씨가 추웠다. 2년이라는 세월이 어느결에 지나갔고, 우리에겐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이가 생겼다.
도윤이는 밤중수유를 끊은 지가 5일째. 이유식을 세 번으로 늘리면서 밤엔 수유를 하지 않는데 그동안 먹던 것이 버릇이 됐는지 아직도 밤 3~4시엔 꼭 한 번씩 심하게 보챈다. 먹고 싶어서인지 엄마의 체온을 느끼고 싶어서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후자에 가까운 듯하다. 한참 팔다리를 주물러 주면 어느새 다시 잠이 든다. 눈도 못 뜨고 괴로워서 몸부림을 쳐대는 걸 보면 당장이라도 젖을 물리고 싶지만 그러다 보면 또 버릇이 들 게 될 거다. 안타깝지만 참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도 싶패다. 새벽 4시 40분부터 시작된 아이의 보챔이 5시가 되어도 그치지 않고 아이는 몹시 힘들어했다. 하는 수 없이 곁에 누웠더니 젖을 향해 얼른 고개를 돌리는 아이. 도윤이는 10여분 동안 젖을 먹고는 편안한 숨결로 다시 잠들었다. 큰일이다, 마음이 독하지 못해서.

11월 25일 토요일 240일째
날씨가 아주 좋아서 마로니에 공원에 갔다. 도윤이를 업고 은행에 볼일을 보러 간 참에 그냥 집으로 들어오기에는 날씨가 하도 쾌청하고 포근해서 그대로 돌아오기는 아까웠다. 그런데 이런, 공원은 메마른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몹시 메말라서 삭막하기 그지없는 풍경. 가을이면 몹시도 아름다운 마로니에 공원의 은행나무들과 마로니에가 모조리 잎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로 초라하게 서 있었다. 가을 풍경을, 그 멋진 가을의 노오란 풍경을 보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겨울을 향해 있는 나무들. 환하게 눈부신 나뭇잎들을 도윤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날이 쌀쌀해 마음놓고 돌아다니지 못하고 집에서 보낸 그 시간 동안에 가을이 슬며시 다녀가 버린 것이다. 세월이 무상하고 추웠던 날씨가 원망스럽고 도윤이에게 몹시 미안하다.

11월 26일 일요일 241일째
도윤이가 처음으로 젖 없이 저녁식사를 했다. 시댁에 들렀다가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남편과 외출하고 오자 시어머니는 도윤이에게 쇠고기죽을 1그릇쯤 먹여 놓았고 배가 부른지 도윤이는 젖을 찾지 않았다. 덕분에 7시간 동안 젖을 먹이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서서히 젖을 떼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겠다. 소화나 잘 시키고 탈이나 안 나면 좋겠다.

11월 27일 월요일 242일째
오늘은 도윤이가 이유식 먹기를 몹시 싫어한다. 젖 먹을 시간에 이유식을 먹으면 젖을 먹을 수 없다는 걸 눈치채기라도 한 걸까. 죽 먹이는 데 애를 먹었다.
도윤이는 잠에서 깰 때쯤 혹은 설핏 잠이 깼을 때엔 칭얼대며 운다. 마치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듯이 보인다. 밤에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낮잠을 잘 때도 마찬가지다. 안아주어도, 얼러도 소용이 없다. 그저 젖을 물려야만 조용해지는데 그럴 때마다 젖을 먹일 수가 없어서 열심히 달래 보지만 조용해질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11월 28일 화요일 243일째
인터넷에서 육아에 대해 살펴보고 나서야 도윤이에 대한 걱정이 한결 덜하다. 밤중에 깨어 일어나 우는 것도 예삿일이며 젖을 찾는 것도 도윤이 월령에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역시 다른 엄마들의 경험담이 가장 큰 힘이 된다. 밤중수유를 끊는 시기가 너무 늦어 버렸다는 결론. 아이가 기어다니지 못할 때, 그러니까 5개월쯤에 했었어야 하는데 도윤이는 많이 늦어 버렸다. 그래도 버릇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한두 주 정도 아이를 울리더라도 바로잡으라고 하는데 영 자신이 없다. 아이가 우는데 어떻게 참지...

11월 29일 수요일 244일째
기분 좋게 잠에서 깼을 때 도윤이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꼿꼿이 세운 자세로 앉아서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러다 내가 누워 있는 침대 쪽으로 뿔뿔 기어온다. 침대에 손을 얹고 서서 불안한 다리를 흔들대다가는 제 잠자리 머리맡에 있는 옷장 위의 장난감들께로 옮아간다. 신발이며 인형, 덧신, 옷들을 하나씩 집어들고는 입으로 가져간다. 모든 사물의 존재를 손과 입으로 확인하는 것이 도윤이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인 듯하다. 쳐다보거나 손으로 만져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도윤이 특유의 버릇이 한참 계속된다. 차례로 하나씩 집어서 물었다 놓고는 더 이상 손 닿는 것이 없으면 다시 침대께로 와서 나를 빤히 쳐다본다. 볼록한 볼이 귀여운 얼굴엔 초롱초롱 반짝이는 눈. 소리 없이 손을 슬쩍 뻗어 내 팔을 툭 쳐보기도 한다. 천사 같은 저 모습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매순간이 몹시 아쉽다.

11월 30일 목요일 245일째
지난밤 일로 도윤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오늘 하루 내내 이어진다. 세상에 태어나 그리 슬피, 그리 오래 운 건 처음이었다. 그렇게 아이를 울리고도 결국은 내가 지고 말았다. 져서는 안되는 건데, 30분 가량 아이를 울린 보람도 없이 결국 지고야 말았다.
밤 10시쯤 젖을 먹은 도윤이는 자정이 되어 업힌 채로 잠이 들었다. 아침까지 푹 잘 줄 알았는데 아이는 새벽 4시가 조금 지나 깨어 칭얼대기 시작했다. 밤중수유를 끊기로 작심했던 터라 대충 넘겨보려 했다. 등을 토닥이며 다시 잠들게 하려고 애를 써보았다. 업어주면 잘 것 같기도 했지만 그 또한 버릇이 되면 내내 그래야만 한다고 하니 그냥 누인 채로 재우려고 등과 팔다리, 엉덩이만 토닥거렸다. 아이는 게속 보챘다. 급기야 소리 높여 울기 시작했고, 그때까지 않쓰럽게 지켜보았던 시간이 아까운 데다 아이가 떼를 쓰면 된다는 걸 알 게 될까봐 끝까지 참아보려 했다. 10분, 20분, 21분, 22분... 아이는 목쉰 소리로 느껴 울고 남편마저 잠이 깨어 아이를 안아주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도윤이는 몸부림을 치며 괴로워했다.
나는,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젖을 물리자 아이는 목구멍으로 꾹꾹 이상한 소리를 내며 숨을 참으면서까지 젖을 먹었다. 그리고는 흑- 흑- 작은 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그리하여, 아이가 원할 때까지 젖을 먹이고 저 스스로 찾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잠만은 가능한 한 10시쯤엔 자도록 유도할 테지만 그것도 안되면 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둔다. 밥도 먹고 싶어하는 만큼 주고 안아달라고 할 때는 아무리 귀찮아도 거절하지 않는다. 아이가 엄마에게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결코 결핍감을 갖지 않도록 해준다. 말귀를 알아들을 때까지는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준다. 그래서 평화롭게 자라게 해준다.
나는 결코 매몰차거나 냉정한 엄마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냥 인정하고 만다. 억지로 냉정해지려 하지 않을 거다. 억지로 하는 건 무엇이든 너무 힘들다. 나를 배반하는 행위, 그런 건 내 아이와의 관계에서만이라도 안 하고 싶다.
 
우리가 별일 없이 하루를 보내는 사이에 곳곳에서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경기도 지역에선 홍역이 돌고 있다. 도윤이는 예방접종도 아직 할 때가 안됐는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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