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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힘으로 일어섰다
2000년 12월 1일 금요일 246일째 평화로운 하루. 아래 왼쪽 이가 하나 더 나기
시작해 다섯 번째 이를 맞는 도윤이는 자정이 넘어서야 잠들었다, 어제처럼. 이리
뒹굴 저리 뒹굴 30분이 넘도록 뒹굴고 치대다가.
12월 2일 토요일 247일째 시댁에서 김장을 하고 집에 돌아온 건 밤 9시. 하루종일
이 사람 저 사람과 노느라 피곤했던지 도윤이는 밤에 자면서 몸부림이 몹시 심하고
낑낑거렸다.
12월 3일 일요일 248일째 3일 동안 도윤이가 응가를 하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특별히 이상한 걸 먹은 적도 없는데...
12월 4일 월요일 249일째 4일 만에 도윤이가 마침내 응가에 성공했다. 이유도
모른 채 기다리고만 있던 며칠, 내심 속이 탔다. 오늘도 오전에 한 번, 오후 5시
무렵에 한 번, 몹시 힘을 주며 응가를 시도했다. 온얼굴이 시뻘개지고 눈두덩이가
무서울 정도로 벌개졌지만 성공하지 못하더니 오후 7시 40분, 마침내 성공했다. 아까
항문에 올리브유를 살짝 발라둔 게 유효했던 것 같다. 무척 된 응가와 이어진 부드러운
응가. 아이는 몹시 힘들어하다 결국은 응가를 누고 매우 개운해 하는 듯하더니 조금더
시간이 지나고는 아직 다 못 눈 듯 힘을 주었지만 더 이상 나오지는 않았다.
12월 5일 화요일 250일째 도윤이의 뇌수막염 3차 접종. 발육 상태는 정상이다.
물론 평균보다는 한 달이 빠르다. 체중은 9.7㎏, 신장은 73.6센티. 욕심 많은 부모
입장에서 보면 조금밖에 못 자란 것 같다. 건강은 아무 이상이 없다. 참 고마운 일이다. 예방접종은
아주 수월하게 했다. 왼쪽 허벅지에 주사바늘이 들어가자 '으앙-' 한 번 큰 소리로
우는 듯이 소리를 내지르더니 내가 얼르는 소리에 그만 뚝! 지난번엔 양쪽 다리에
다 맞고 내가 비벼주는 동안 내내 울고도 모자라 흑흑- 느끼기까지 하더니, 참 의젓해졌다.
12월 6일 수요일 251일째 아직도 뭐든 입에 집어넣는 도윤이가 오늘 또 내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시각 훈련을 위한 그림책 두 권은 도윤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갖게 된 책이다. 그 책을 처음 대했을 때가 도윤이가 뭐든 입으로 가져가던 때. 그래서인지
도윤이는 그 책들을 유난히 뜯어먹으려 한다. 물론 그런 줄 알고 있기에 조심했는데
오늘은 모처럼 갖고 놀게 두었다. 오랜만이니 잊어 버렸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며.
그런데 웬걸, 여지없이 입으로 물어뜯으며 놀더니 급기야 캑캑대는 아이. 목에 무언가가
걸린 듯 몹시 괴로워했다. 얼른 다가가 억지로 입을 벌리게 했지만 내 힘으로는 역부족일
정도로 입을 오무리고 괴로워하기만 했다. 아이를 거꾸로 들고 등을 쳐주었지만 나오지
않았고, 나는 아이의 입을 벌리게 하려고 애를 썼다. 목에 무언가가 걸려 괴로운
아이는 제 몸을 억지로 어떻게 하려는 엄마 때문에 더욱더 괴로워하고... 그러다
도윤이가 쿠에-엑 하며 토하듯이 무언가를 입 속으로 끌어올리는 듯했다. 양 볼을
꽉 누르고 손가락을 입 안에 집어넣어 보았더니 손가락에 걸리는 비닐. 책을 코팅시킨
비닐을 벗겨 삼킨 것이다. 크기도 꽤 컸다. 일전에도 응가에서 비닐이 나온 적이
있지만 그때는 이만큼 크지도 않았다. 입 속에서 나온 비닐은 폭이 1센티 정도, 길이는
무려 6, 7센티쯤 되었다. 책을 눈에 띄지 않는 숨겼다.
12월 7일 목요일 252일째 아이는 무언가를 먹고 있을 때가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다. 참새처럼 입을 쫘악 벌리고 있다가 숟가락이 들어가면 오무려서 입 안으로
끌어넣은 뒤 오물거리다 꿀꺽 하며 식사를 한다. 아래위로 길게 벌어지는 그 입 모양은
아이가 웃을 때도, 장난치고 싶어 애교를 떨며 기어올 때도 늘 짓는 바로 그 모습이다.
과자를 먹을 때는 한쪽 손에 끝이 짧게 쥐어 주어도 아이는 금세 길쭉하게 빼내어
작은 이로 톡 잘라 입 속으로 가져간다. 입 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다 어느 정도 녹으면
꿀꺽 삼키는데 덩어리가 클 때는 눈두덩이와 얼굴이 시뻘개지며 애를 쓴 뒤 삼켜
버린다. 크다고 뱉는 법이 없다. 크-악, 하고는 꿀꺽! 귤은 요즈음 도윤이가 잘
먹는 과일이다. 5개월 때 즙을 주었을 때 아이는 오만상을 쓰며 잘 먹지 못했었다.
지금은 한쪽씩 손에 쥐어 주면 쪽- 쪽- 맛있는 소리를 내며 빨아먹는다. 손에 하도
힘을 주어 손에서는 귤즙이 뚝뚝, 질질 흘러내리고 입 안에 다 못 들어간 즙이 입
주위에 온통 번져 있다. 사과를 잘게 썰어 주면 입 안에서 이쪽저쪽 옮겨가며
아직 안 나온 어금니 쪽 잇몸으로 오물거린다. 어느땐 마치 껌을 씹듯이 질겅거리기도
한다. 나 모르는 사이 뭐 다른 걸 먹고 있나 걱정되어 가만히 살펴보면 입 안에는
아직 작은 사과 조각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다.
12월
8일 금요일 253일째 춤추는 도윤이 아침
10시까지 잠을 푹 자고 일어난 도윤이. 30분쯤 놀다 젖을 먹고는 놀기 시작. 장난감을
이것저것 만지다 내가 동요를 틀어주자 새로운 반응이 나타났다. 카세트 앞에 놓인 바구니를
붙잡고 서서 다리를 굽혔다폈다 하며 노는 게 아닌가. 우연인가
했더니 그 동작이 한참 이어졌다. 제법 박자도 맞는 그 동작은 끊어졌다 다시 시작되며
10분도 넘게 계속됐다. 그러다 결국은 상체도 함께 흔들흔들. 온몸으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도윤이. 아이는 집중력이 좋아져 20~30분을 그렇게 놀았나 보다. 요즘은
책도 곧잘 보는데 혼자 두면 책장을 넘기며 책을 이리저리 돌리기도 하고 꽤 오래 책을
본다. 그러다 입에 넣기도 하고 어떤 땐 그냥 팽개치고 다른 놀잇감에 매달리기도 한다.
무조건 입으로 가져갈 때에 비하면 참 큰 발전이다. TV도
아주 주의깊게 본다. 특히 광고가 나오면 눈을 떼지 않는다. 본방송이 시작되기 전까지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턱을 약간 숙인 채 조금은 높은 곳을 쳐다보는 눈빛으로 집중한다.
뭘 아는지 좋아하는 광고도 있다.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도 광고의 음악소리가 들리면
얼른 고개를 쭉 내밀고 쳐다본다. 생각해 보면 도윤이가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광고들에는
저보다 조금 더 큰 아이들이 등장한다. 혹은 제 또래이기도 하고. 어쨌든 아이들이 나오는
광고가 좋은 모양이다. 이제는 바뀌어 버린 맥도널드 광고를 무척 좋아했고, 요즘은 공익광고
한 편. 이 광고에는 어린 여자아이 둘이 등장하고 편견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광고 문구가 나온다. 그 아이들은 도윤이보다 두어 달쯤 성장이 빨라 보인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차츰 명확해지는 듯하다. 욕실에 손을 짚지 못하게 하는 내 목소리가 싫은지
이제 욕실 문턱에 짚고 선 손을 바닥에 대지 않는다. "안돼!" 하는 단호한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 같다. 이웃집에 놀러가면 그 집 아이가 볼륨을 크게 해놓고 TV를 보고 있는 안방에
들어가려 하고, 목소리가 유난히 큰 그 집 아빠를 보면 내게 파고든다. 일전에 그가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는 걸 듣고 한 번 울었던 기억이 다시 나는 모양이다. 저를 귀여워해주는
사람들에게는 방긋방긋 미소를 보낸다. 생각해
보니 9개월째에 접어들어 도윤이가 넘어지는 걸 본 기억이 없다. 평형감각이 발달한 걸까.
8개월에는 무척 잘 넘어지고 엎어져 고난이 심했는데, 이달에는 넘어져서 울거나 다치는
일이 없다. 힘 조절이 안되어 쿵-하고 부딪치는 일은 아직도 더러 있다. 밤중수유는
다행히도 자연스럽게 끊기고 있다. 3~4일에 한 번 정도는 3, 4시경에 젖을 먹지만 늦게
잔 날은 아침까지 그냥 잔다.
12월
9일 토요일 254일째 가끔
이런 방정맞은 생각을 한다. '소중한
우리 아기, 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나.' 아-,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혹은
내가 이 아이 앞에 있지 못하면 어떡하나.' 머릿속도
멍멍해진다. 아이의
노는 모습을 눈여겨본다. 이제 제법 마디가 생긴 단단한 손을 꼼지락거려 먹을 걸 입으로
옮길 줄도 알고 제 엄마 머리카락을 하루에도 수십 번 움켜쥐고 뽑아대기도 하는 손가락이
긴 예쁜 손. 온갖가지 표정이 나오는 사랑스러운 얼굴. 조금씩 단단해지며 균형이 잡힌
몸뚱이. 하나씩 뾰족이 머리를 내미는 조그만 이. 목줄기, 마른 듯한 팔뚝, 갈비쪄, 앞으로
동그스럼하게 나오는 배, 말랑말랑한 조그만 엉덩이, 길쭉해지는 발과 꼬물거리는 발가락,
제법 단단해져서 요즘은 잘 부러지지 않는 발톱, 까르르 칵 칵 웃음소리, 으음-와-앙
울음소리, 음! 음! 입 다물고 내는 옹알이, 아아아아~ 잠들기 전에 부르는 소랫소리,
내 옷을 잡아당기며 기어오를 때의 착착 감기는 느낌... 참
행복해서, 이토록 행복해본 적이 없어서, 그래서 동시에 불안감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평화롭게 자고 있는 아이를 보다가 갑자기 아이의 코 밑에 손을 대고 아이의 호흡을 확인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내가
곁에 누워 있을 때 아이는 잠결에도 팔을 뻗어 내 어깨며 얼굴을 만지고 잡아당기기도
한다. 잠결에 내가 곁에 없는 걸 알면 아이는 으-앙! 하고 울어서 나를 불러들인다. 제
곁에 항상 있는 존재, 아이에게 나는 아직 물이나 공기 같은 존재다. 내게 아이는 그보다
더 큰 존재다. 나 자신보다 소중한 존재. 내 건강이 걱정스러운 건 내가 아프거나 죽거나
하는 게 무섭거나 아쉬워서라기보다 아이 때문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아이에게 그 필요를
채워주지 못해 가슴아프게 할까봐 생각만으로도 지레 겁이 난다.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하는 동안은 늘 곁에 있어 주고 싶다.
12월
13일 수요일 258일째 도윤이가
TV를 보면서 웃는다. 이제 이 아이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을 보며 웃는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TV에선 개들의 재미있는 모습이 나왔다. 개 한 마리가 우체통에 들어 있는 신문을 꺼내기
위해서 팔딱팔딱 뛰었다. 개가 뛰어오를 때마다 도윤이가 웃었다. 크어-크어-. 개가 마침내
신문을 꺼내어 물고 뜯으며 놀았다. 하ㄱ하ㄱ하ㄱ-. 눈 위를 뒷다리를 모두 들고 뛰는
강아지가 나왔다. 또다시 칵칵거리는 도윤이. 눈 속을 터널처럼 뚫으며 돌아다니는 개
한 마리. 하-하-. 도윤이는 내게 동의를 구하듯 내 쪽을 한번 쳐다보며 카카카-. 도윤이는
TV를 보면서 재미있다고 웃었다. 웃음을 표현할 줄 아는 것이다. 재미를 느낄 줄도, TV를
볼 줄도, 내용을 나름대로 이해하기도 한다. 기특하다! 도윤이의
윗니가 또 하나 난다. 이 나는 순서가 엉망이다. 지금은 이 모양이다. 잇몸이
가려울 때 도윤이는 가끔 제 손등을 세게 빨아서 멍을 들여놓곤 한다. 제때 말리지 않았으면
멍이 크게 들 뻔했다. 엄지나 검지를 집어넣고 질겅거리기도 하고 제 엄마 옷을 물어뜯기도
하고 장난감을 씹기도 한다. 물론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참으로 얌전한 편이다. 침을
질질 흘리는 일은 없다. 도윤이는 깨끗하다.
12월
14일 목요일 259일째 사랑은...
전체의 절반은 밥 같은 몸이고, 절반의 절반은 끊임없이 들이쉬고 내쉬는 숨결 같은 일상이고,
절반 중에 그 나머지의 절반은 주변의 이웃이 완성시켜준다. -요즘
읽고 있는 황석영의 소설 '오래된 정원' 중에서
12월
18일 월요일 263일째 도윤이
이가 또 하나 난다.
12월
19일 화요일 264일째 오늘
도윤이는 스타가 됐다. 남편 친구들 모임에서 도윤이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안기고 재롱을
피우고 한껏 사랑받으며 웃다가 지칠 정도였다. 잘 웃고 아무한테나 잘 안기는 도윤이.
모임의 중심이 도윤이에게로 몰리는 듯해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12월
20일 수요일 265일째 아침
9시, 심하게 우는 도윤이. 자다가 눈도 다 못 뜨고 눈물에 콧물까지 줄줄 흘리면서 우는데
좀체 그치지 않았다. 안고 다독여주어도 눈을 뜨지 않고 잠에 취한 채 소리 높여 울기만
했다. 아이가 진정된 건 무려 10여분 뒤. 아이는 헉헉 흐느끼며 다시 잠들었다.
도윤이가
제법 분명하게 '어-엄-마' 한다. 어제는 그냥 어쩌다 나온 소리인 줄 알고 몇 번을 하는데도
예사로 넘겼다. 그런데 오늘은 마치 제대로 할 줄 아는 아이처럼 더욱 또렷하다. 5, 6번이나.
12월
21일 목요일 266일째 시판
이유식을 먹이느라 신경을 쓴 이후 도윤이가 죽을 먹는 양이 많이 줄었다. 그래도 탄수화물의
섭취가 다른 영양소들에 비해 많은지 응가 냄새가 고약하다.
12월
22일 금요일 267일째 도윤이가
실을 삼켰다. 잠들기 직전에 실 한 토막을 삼켜 버렸는데 그게 내내 마음에 걸린다. 흔들의자에서
떼어내 먹다가 나한테 들켜 손에 들고 있던 건 빼앗겼지만 한 줄기는 이미 입 안에 들어
있었다. 10여분 실랑이를 벌였다. 아이는 입을 안 벌리려고, 나는 기어코 빼내겠다고
손가락을 아이 입안에 집어넣으며... 아이의 대성통곡에 내가 지쳐 안고 얼르는 사이에
아이는 그걸 그냥 삼켜 버렸다.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어서 아직도 울음이 멈추지 않은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아이는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다른 날보다 무려 3시간이나
빨리. 과연 아침까지 갈까... 그나저나 그 실토마기 응가로 나와야 할텐데.
12월
24일 일요일 269일째 소박하게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고 도윤이가 자는 밤. 자정, 그러니까 정확히는 25일 0시, 도윤이가
맞는 첫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린다. 10년에 몇 번 안된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도윤이는
태어난 첫해에 맞는 셈이다. 도윤이는 복이 많은 아이임에 틀림없다. 평생 그렇게 행복하게
살기를...
12월
25일 월요일 270일째 날이
추워 아이를 데리고는 갈 데가 없는 우리.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낼 남자친구가 없는 동생을
불러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TV를 보고, 낮잠을 자며 평화롭게 보냈다. 참 좋다. 도윤이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노는 내내 중얼거린다. 음-아, 푸푸-, 어-엄마, 어-험, 음음, 어-어...
예쁜 목소리로 끊임없이 응얼거린다.
12월
27일 수요일 272일째 도윤이가 섰다 드디어
도윤이가 혼자 힘으로 서 있었다. 며칠 전부터 언뜻언뜻 혼자 서는 연습을 하더니 오늘은
서서 한참을 있는 게 아닌가. 선 채로 내 한 손만 잡고 있었는데 그 손을 슬그머니 놓았는데도
가만히 서 있었다. 하도 신기해서 혼자 세우길ㄹ 1시간 동안 무려 7~8번 가량 해보았다.
아이가
처음 기기 시작했을 때보다 더 큰 감동이 몰려왔다. 이제 완전히 인간의 모습이 되는
셈이라 그런가. 할머니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주신 소리 나는 장난감도 오늘은 아주 잘 갖고 논다. 적응하는 데
무려 3일이 걸린 셈이다. 처음엔 무서워 내 뒤로 숨다가, 나중엔 멀찍이서 쳐다만 보다가,
오늘은 뒤집어서 바퀴를 굴리고 곰돌이의 머리며 자동차의 헤트라이트 부분을 꼼지락꼼지락
만지며 논다.
12월
28일 목요일 273일째 도윤이가 혼자 일어섰다 내
앞에서 장난감을 갖고 놀던 도윤이가 내 손에 들려 있던 전화번호 수첩을 가질려고 손을
뻗기에 그걸 높이 쳐들었다. 그때 도윤이가 그걸 잡으려고 벌떡 일어섰따. 혼자 힘으로
버-얼-떡! 요즈음은
매일매일 감동의 연속이다. 어-엄-마,
하는 소리는 하루에 최소한 50번은 들을 수 있다. 그저 내는 소리일 터이지만 그때마다
나를 부르는 듯한 착각을 느끼며 감동하게 된다. 행복하다. 밥만
잘 먹어 주면 좋으련만. 시판 이유식을 먹인 뒤로 밥을 잘 안 먹고 숟가락만 봐도 고개를
돌린다. 그래도 시판 이유식이 영양은 많은지 아이는 살이 통통 오르고 단단해져서 아주
보기 좋다. 도윤이
몸매: 머리 17.5인치, 가슴 19인치, 허리 18.5인치, 손목 10센티, 발목 13.5센티, 목
25센티
12월
30일 토요일 275일째 도윤이
이 하나가 또 발견됨. 손가락을
깊숙이 물고 빨아대는 게 어언 4~5일째. 엄지손가락이 불고 마치 굳은살이 박히 듯하더니
이 하나가 또 예쁘게 나오고 있다. 그토록 간지러울까? 오늘은
도윤이가 죽을 세 차례에 걸쳐 조금씩이나마 먹어주어 마음이 펴나다. 도윤이의
옹알이는 웅변 수준이다. 대부분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지만 음-마 하나만은 참으로
명료해서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12월
31일 일요일 276일째 언제
아기침대의 고리가 양쪽이 다 열려 있었는지... 요즘들어 그 고리를 꼼지락거리며 열곤
하더니 급기야 오늘은 양쪽을 다 열고는 사고를 치고 만 도윤. 아기침대를 침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아이 놀이터로 사용하며 내가 일을 할 때면 그 속에서
놀게 했는데 오늘 아이가 거기서 떨어져 버렸다. 양쪽 고리가 다 풀려 있어서-물론 도윤이가
직접 푼 것이다-아이가 문을 밀자 그대로 앞으로 확 열리며 문과 함께 아이가 바닥에
머리를 쾅! 찧으며 고꾸라지고 말았다. 아-악!
모르는 사이에 그만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도윤이는 처절한 울음을 한동안 그치지 못했고
남편과 나는 안절부절. 다행히도 젖을 물리자 잘 먹었고, 평소와 다름없이 잘 놀았다.
오늘은
2000년을 마무리하는 마지막날이면서 우리집엔 보일러가 고장났고, 두루넷이 설치되느라
어수선했으며, 낮에 사온 갈비를 재느라 정신이 없었고, 도윤이는 자꾸 보챘다. 참 피곤한
날이다. 그중에서도 도윤이가 아기침대에서 떨어진 건 압권이다. 도윤이는 잘 먹고 잘
놀지만 나는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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