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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의 역사
수석 수집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전해졌을까?
그 근원을 요약해서 말한다면 1700여년이전부터
시작된 기암괴석의 정원을 거점으로 중국의북송,
남송의 산수묵화를 토대로 축경완석(縮景玩石)을
경유하여 수석으로 발전하였다. 북송대(960∼1130)의 채양, 소식, 황정견, 미만이 서화4대가로 대표한다.
특히 소식(소동파)과 미만은 애석가로서 후대에 이르기까지 전해지고 있다.
소동파가 호구 이정신의 집에서 환지석을 감상하며 지은 시를 수석에 대한 시로 많은 사람이 애송한다.
우리나라의 애완석(愛玩石)에 대한 기록이 문헌상에 나타난 것을 보면 백제 진사왕 7년(392년)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3년)에 중국으로부터 축산(정원)이 전래하였다고 하며 그 후에 강희언(1417∼1464), 문익점(1329∼1398), 이퇴계(1501∼1570), 정다산(1762∼1836)등 서화가들이 완석(玩石)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 서울의 비원 창경원 등에도 옛날 궁중에서 애완(愛玩)하던 돌이 그대로 보존 전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