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파키스탄 라호르 성
색색의 돌들을 박아 조각한 것은 인도의 타지마할 못지 않게 예쁜데 관리가 허술한지 많이 손상되었다.
라호르의 오토릭샤
하도 화려하고 깨끗해서 한 장 찍어달라고 했는데... 아뿔사, 내모양이 이리 꼬질꼬질 할줄이야...
거울달린 노란 블라우스 Rs 80
시원하고 빨리 마르는 순면 회색바지 Rs 250 (비교적 여행초반이라 바가지 쓴 것 같다)
바타(BATA) 탱탱 검정 고무 슬리퍼 Rs75
여행일기
계속 쓰고 있는 중입니다.
1. 서울탈출, 델리입성
4. 단프스 거머리
7. 파키스탄, 오렌지와 아이스크림
약도(M)
사진(P)
호텔목록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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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오렌지, 아이스크림
2001년 4월 14일
애초에 라호르만 들렀다 오기로한 것은 큰 실수였다. 생각보다 파키스탄은 훨씬 매력적이
었다. 당일치기로 하려던 여행이 미정이다운 무계획성으로 사람 좋고 밥 맛있는 바람에 3박
4일로 늘어났다. 훈자마을로 올라가는 나미 일행을 보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홀
로 터덜터덜 인도로 돌아왔다. 파키스탄은 은희 말대로 사탕보다 달콤한 오렌지와 땡볕 날
씨에 더없이 진가를 발휘하는 아이스크림이 환상적이었다. 인도에 가면 그 맛이 아물거릴
것 같아 실컷 먹어두기로 했다. 가능한 많이, 넣을 수 있는데까지 꾸역꾸역. 그러나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그 맛. 난 빨리 소화가 되지 않는 것을 한탄하며 살 수 있는 만큼 양손
에 보따리로 사들고 다니며 먹었다. 그 며칠 유쾌한 사람들과 실컷 수다 떨고 함께 보냈다
홀로 떨어져나와 허전함에 더 먹어댔는지도 모른다.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더 많은 당분과
소름끼치게 맛있는 자극으로 마음의 빈 구석을 채우려했는지도 모른다.
국경마을로 가는 버스에서도 난 끊임없이 오렌지를 까서 연신 입에 집어넣고 있었다. 인
도 국경에서 파키스탄으로 들어올 때와달리 나갈 때는 군데 군데 마을마다 들르고 버스가
서서는 한참을 기다리고 갈아타라고 하기도 했다. 그리고 혼자 여행하는 조그마한 동양 여
자를 꽤나 신기하게 보고 몇몇 용기있고 못말리는 청소년들이 유리창 없는 버스 창구멍으로
머리칼을 만지고 가는 대담함을 보이기까지 했다. 살살 만져도 되는데... 오렌지를 열중하여
먹고 있는데 머리채가 확 휘둘려지는 기분이란... 그러나 보통은 그냥 슬금 슬금 뒤로 다가
서서는 꽁꽁 땋은 머리 끝을 슬쩍 손으로 톡 치고 지나갔다. 내가 돌아보면 슬슬 곁눈질로
눈치보다가 한 무리의 친구들에게 달려가 찬사를 받았다. 코 앞에서 능글맞게 웃어보이는
인도인들보다 순진해서 봐줬다.
올 때는 몇시간 안걸렸는데... 오늘 안에 인도에 도착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하던중 버스
가 출발했다. 마을도 점점 멀어지고 먼지 날리는 길을 흔들거리며 한참 달리고 있는데 뭔가
불길한 예감이 배를 통해 전해왔다. 사르르... 딱히 아프달 수는 없지만 별로 편치않은 그 느
낌. 아무리 당도가 높아도 오렌지는 산성. 아무리 시원해도 아이스크림은 유제품. 며칠 동안
주로 이 두 가지를 섞어서 자는 동안 못먹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눈 떠 있는 시간동안 끊
이없이 집어넣었던 결과가 하필 국경으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나타나다니... 점점 불편함은
아픔으로 바뀌고 식은 땀과 함께 고뇌가 시작되었다. 버스를 세우고 벌판에서 일을 치뤄?
길동무라도 있어야 좀 가려달라고 하지. 여자는 머리칼도 못내놓는 이 나라서 이 많은 관객
앞에 아랫도리를 내 놓아야할 것인가? 그리고 나서 다시 돌아와 이 버스를 타고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르는 국경까지 이 사람들과 함께 국경까지 가야하나?
원래 당일치기로 들러갈 작정이었기에 모든 짐을 황금 사원에 맡기고 개나리 봇짐만한 허
리 배낭 하나 달랑 들고 왔다. 그 안에는 세면 도구와 파키스탄 오렌지 밖에 없었다. 버스
안에서 일이 터지면 남들에게 미안한 것은 둘째치고 걸치고 있는 옷 한 벌밖에 없는 나는
무엇을 입고 인도로 건너갈 것인가? 가뜩이나 파키스탄을 무시하는 인도인들이 파키스탄에
서 온 뭐(!) 싼 바지 입은 나를 받아줄 것인가?
버스가 서기 전에 일이 터지면 앞에 앉은 여인네의 두건을 뺏어 뛸까? 아무리 허리 배낭
을 뒤져봐도 6루피짜리 손수건 두 장외엔 가릴 것이 없다. 허벅지 하나도 두르기 힘든 손수
건 두 장을 이리 저리 묶어보다 입에 물었다. 나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나왔기 때문이다.
끝도 없이 뻗어있던 길. 내 주변 사람들이 슬슬 내 눈치를 보기 시작할 무렵 난 운전사를
소리쳐 부르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한점으로 만났던 길 주변이 뿌옇게 되면서 점점이 건물
이 보이고 사람이 보이고. 서로 전쟁 중인 나라의 국경으로 가는 중에 있는 마지막 마을이
크면 얼마나 크겠는가? 길을 따라 쪼로록 열 집이나 됐을까? 그러나 나에겐 대 로마보다
더 감동적인 곳이었다. 일단 버스 밖으로만 나가면 된다. 오! 알라신이여.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튀어내렸다. 내가 돌아오기전 버스가 떠난데도, 오늘 안에 인도로 돌
아가지 못해 호텔이 있을리 없는 이 마을에서 밤을 지새야한데도 난 이번 일만 무사히 넘기
면 평생 감사하며 살리라. 그곳은 작은 시장마을이었다. 여자라고는 한 명도 눈에 띄지 않고
모두 유니폼처럼 하얀 긴 옷에 모자에 검은 수염을 맞춘 듯이 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줄
선 듯이 내 앞에 선 남자들을 향해 "Where is a toilet?"
"Toilet!!!!" 하고 소리쳤다.
난 강사 출신으로 한 목청한다. 목소리 톤도 상당히 높다.
아무도 내게 다가 서지 않았다. 모두 커다란 눈동자를 굴리며 날 바라볼 뿐. 내가 절박하
게 토일렛을 수없이 부르짖자 한 남자가 아는체하고 서로 얘기하더니 사람들이 비켜서며 길
을 터주었다. 그들 뒤로 길 옆의 도랑이 보였다. 아! 역시 인도와 다를 것이 없군. 난 상당
히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던 듯하다. 킬킬 웃는 그들 사이로 옹기종기 집들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입구에 옷장만한 가게에 구형 라디오와 카셋트 플레이어를 몇 개 놓고 있는
남자가 빙그레 웃길래 달려 갔다.
"Where is a toilet?" 했더니,
"Which country?" 한다.
"Korea! Where is a toilet?"
"Oh, Samsung!! This is Samsung." 하며 라디오를 훌떡 뒤집어 보인다. 과연 삼성의 로
고로다. 다른 때같으면 반가웠겠지만... 상황이 상황인만큼... 눈물이 함께 터져 나오려는데....
다시한번 사정하듯 Where is a toilet을 제창하자 그는 웃으며 날 데리고 안쪽 골목으로
들어갔다. 순진한 파키스탄 시골 남자들과 달리 날 똑바로 보고 먼저 웃는 것이 인도 사기
꾼과 닮은 구석이 있지만 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저씨가 빨리 걷지 않도록 빌어야할만
큼 급박했던 것이다. 빨리 가야하는데 빨리 갈 수 없는 기분이란...
골목 안쪽에 세계 공통 구원의 표시인 빨간 십자가 병원간판이 보였다. 묻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손바닥만한 간판 말고는 여느 집과 다를 것 없는데 남의
집을 불쑥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만큼. 작은 문 안에는 남자 세
명이 들어서면 꽉 찰 작은 마당이 있고 건너에 작은 책상, 그 너머에 의사인듯한 남자가 앉
아 환자인듯한 남자를 진료하고 있었다. 의사인듯한 남자를 똑바로 쏘아보며 Where is a
toilet을 외쳤더니 손가락으로 대문 옆을 가리켰다. 작은 문이 보였다. 노크도 없이 확 열어
젖혔더니 깜깜한 안쪽에 선명히 보이는 검은 구멍. 난 재빨리 들어갔다. 그리고 금방 편안해
졌다. 이런 화장실을 toilet이라고 부르지 않은 것을 안다. 그러나 내겐 세상 어떤 화장실보
다 고마운 변소였다. 배가 편안해지고 나서 쪼그리고 앉은 자세로 어쩔 수 없이 발견한 사
실인데 속옷에 아주 작은 얼룩이 생겼다. 파키스탄의 이런 화창한 날씨라면 그대로 입어도
금방 말라서 결코 밖으로 표가 나지 않을 것도 같았으나 언제나 나를 속일 수는 없다. 남은
몰라도 나는 안다. 내 비록 3박 4일 단벌로 버텼지만 때가 묻은 것과 뭐(!)가 묻은 것은 차
원이 다르다. 아직도 이런 것에 연연하는 내가 너무 미웠으나 난 문고리를 부여쥐고 화장실
안을 살펴보았다. 인도와 같이 바가지와 물이 졸졸 새는 수도 꼭지까지 고맙게 갖춰진 훌륭
한 화장실이었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졌을 때 갑자기 불이 켜졌다.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 한
참을 나오지 않자 밖에서 누군가가 불을 켜준 것이다. 빨간 알전구가 머리 위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작업환경 완벽하고... 등에 매달린 허리배낭을 조심스레 열고 파키스탄 오렌지 사이
에서 세면도구지갑을 꺼냈다. 그 안에서 비누각을 꺼내고 비누를 꺼내고 속옷을 벗어 바가
지에 넣고 싹싹 비벼 빨았다. 물론 팬티를 버리고 갈까 생각도 했으나 제 3세계에서 구하기
힘든 은근히 야한 나의 속옷을 누군가가 발견한다는 것은 영 내키지 않았다.
내가 이 일련의 행동을 하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30여분. 공항 면세점에서 내가 항상 사
는 것은 1회용 팬티이다. 보통 대여섯개씩 들어있는데 좀 질긴 휴지같은 재질로 하루 종일
입어도 절대 찢어지지 않았다. 빨래하기 곤란한 긴 여행에 애용한다. 난 가방 속에 1회용 팬
티가 남아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아무리 환한 알전구 아래 찾아보아도 팬티를 대신할 것
이 없었다. 파키스탄은 당일치기 여행이여야했는데...
상당히 고민했던 것 같다. 기억의 끝단 곳에서부터 30평생 노팬티로 다닌일이 없었건만.
함피에서 250루피에 산 회색 면바지는 속이 비칠리가 없으나 그래도 어쩐지 불안한 것이 선
뜻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암만 고민해 봐야 손수건을 팬티로 꿰매 입을 수도 없고 허리를
펴지 못하는 낮고 좁은 공간에서 오래 있자니 다리가 저려서 나와야만 했다. 이런 날씨라면
젖은 팬티는 햇빛아래서 1시간이면 마를텐데 티셔츠도 아니고 야리꾸리한 여자 속옷을 어디
에 내놓고 말릴 것인가.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지만 오렌지를 담았던 검은 비닐 봉지에 젖
은 속옷을 넣고 꽁꽁 묶었다. 국경에서 제발 짐을 뒤지지 않기를 기도하며...
마침내 화장실 문을 열고 나서니 사막의 눈부신 햇살에 눈 앞이 하얗고 머리가 어질거렸
다. 겨우 사물이 또렷하게 보이자 화장실 앞에 한걸음씩 물러서 반원을 그린 파키스탄 남자
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좁은 마당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들어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나만
보았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아무도 아무말도 하지 않고 커다란 눈을 깜짝이지도 않고 그냥
그렇게 서 있었다. 레이스 뜨기 한 하얀 빵모자에 발목까지 오는 하얀 이슬람 옷을 입고 그
들은 언뜻보면 하얀 배경에 눈과 수염이 둥둥 떠 있는 듯 보였다.
"Thank you for letting me use the toilet. "
아무 반응이 없었다.
화장실 밖에는 바로 손바닥 만한 뿌연 거울과 바가지만한 세면대가 있었다. 나의 위생 감
각을 과시하고 싶었는지 너무 당황하여 머리가 돌았는지 난 다시 가방을 열고 쏟아지는 오
렌지 사이에서 비누각을 꺼내 세수하고 목 닦고 팔까지 싹싹 씻었다. 그리고 손수건 두장을
꺼내어 물기를 닦았다. 쏟아진 오렌지를 주어담고 돌아보니 그들은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
다.
"Thank you so much. Bye. "
빨간 십자가가 붙은 문으로 나왔다. 내가 골목으로 나오자 마자 내 등뒤에서는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났다. 웃고 떠드는 소리였다기 보다 뭔가 큰 일이 났을 때 당황하고 의논하
는 소리에 가까웠던 것 같다. 내가 신성한 곳을 오염시킨 것은 아닌지. 혹 금녀의 집에 당당
히 들어가 머리카락도 가리지 않은채 푸파푸파 시원하게 씻고 나온건 아닌지... 내게는 슬로
우 모션처럼 길게 느껴졌지만 실제로는 순식간의 일이었을지도... 아무도 나를 따라오지는
않았다. 무섭게 굴거나 무례하게 굴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가 너무 큰 실례를 한 것이 아닌
가 싶다. 돈이라도 주고 오는 건데 그랬나?
난 다시 여유로워졌다. 천천히 걸어서 큰길로 나가 큰길 가의 과일 장수에게서 오렌지를
더 샀다. 국경으로 가는 버스도 찾았다. Lady Only자리에 앉아서 라호르에서 60루피에 산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읽었다. 조금 허전하고 시원한 느낌에 가끔 선뜩 놀랐으나 남들
은 모르는 듯 했다. 한참 걸어서 건너야하는 국경에서 느끼한 인도 군인들을 보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박대장님과 갈때는 짐도 뒤지지 않았는데 혼자 돌아오니 얌생이 콧수염난
아저씨가 지퍼를 열어보라고 했다. 다시 쏟아지는 오렌지... 책, 세면도구, 5루피짜리 인도
수첩, 검은 볼펜, 꼭 묶은 검은 비닐봉지. 검은 볼펜을 하나 주고 가방을 다시 꾸려 무사 통
과했다. 그날 그시간 국경을 통과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국경에 있는 식당서 짜파티와 짜
이를 시켜 유난히 출출해진 배를 채웠다. 이제 4장의 뽀송한 속옷이 있는 황금 사원으로 가
자.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식당 주인 아저씨가 황금사원으로 가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
니 서양 할아버지가 오는데 같이 가라고 했다. 아저씨의 영어를 내가 잘 못알아들었기 때문
에 버스가 오면 같이 타고갈 수는 있을 거라고 대답했더니 아저씨는 계속 아니라고 했다.
모시고 가랄때는 언제고 어리둥절. 조금 뒤 그 아저씨가 날 다급하게 부르더니 국경을 건너
오는 웬 꼬질한 지프차를 가리켰다. 차가 멈추자 그안에서 동글동글한 서양 할아버지가 내
렸다. 식당 주인은 번잡스럽게 인사를 하고 먹을 것을 가져오고 물을 가져오고 나를 갖다
밀었다. 할아버지는 오스트레일리아인으로 일본여자를 싫어했다. 대뜸 내가 일본여자만 아니
면 태워주겠다고 했다. 습관적으로 불끈하여 "I am not Japanese. Korean" 했지만 잘한것인
지...
그 짚차는 그의 오랜 여행을 증명해주듯 낡고 지저분했다. 가재도구며 침구까지 들어찬
달리는 그의 집이었다. 말을 나누어보니 그는 점잖고 reasonable했다. 젊었을 때 많이 좋아
하던 여자가 있었으나 결혼하지 못했고 평생 혼자살았다고 했다. 몇 년 전부터 그 지프차를
끌고 세계 여행을 하는데 아프리카에서 중동지방을 지나 인도로 온 것이라고 했다. 일본여
자에 대한 편견은 순전히 아프리카에서 만난 이해할 수 없이 selfish한 여행자 때문에 생긴
것인데 할아버지를 몸시 괴롭혔던 모양이었다. 이게 소위 남들이 말하는 히치하이크인가?
돈은 얼마를 줘야하나?
좀 있으면 해가 질텐데 버스가 언제 올지도 모르겠고 황금 사원에 언제 도착할 지는 더욱
모를 일이므로 그냥 그의 차를 타고 가는 것도... 위험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난 큰 일(?)을
겪은 이후 심신이 지쳐 피곤하였고 불편한 버스보다 그의 지프차가 훨씬 안락해 보였다.
그는 적어도 70은 넘어보이는 파파 할아버지였고 혼자 여행하는데 말동무가 그리운듯했
다. 에라 모르겠다. 난 어느새 그의 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그에게 아프리카에 관한 질문을 많이 해서 그를 즐겁게 해주었고 일본여자 험담에 열심히
장단도 맞춰주었다. 그러다가 조금 졸았던 것도 같다. 그는 지도를 보며 주차장이 있는 모텔
을 찾고있었기 때문에 기차역이 보이자 내려달라고 했다. 돈을 드리려고 했으나 한사코 사
양하셔서 오렌지를 드렸다. 하나만 달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하나만 주면 정없다고 전혀
영어로는 이해가 안되는 억지를 부려 두 개를 드렸다. 황금 사원까지 태워다 주지 못해 미
안하다고 하셨지만 난 이미 너무 황송했고 다시 못할 호강이었다. 마음이 많이 따뜻해졌고
한편으로는 많이 외로워졌다. 부러우면서도 두려운 기분. 나이들어도 떠날 수 있는 여유와
용기는 당연 부러웠으나 나도 평생 혼자일 수 있다는데는 아직도 많이 두려웠다. 게다가 나
는 추억할 첫사랑도 없지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