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출발
게이시는 시카고로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인생을 되찾으려는 준비에 착수했다. 그는 자신의 과거로 인해 앞날이 망쳐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유일하게 게이시를 우울하게 만든 일은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아버지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도 못한 것을 가슴 아파 하면서, 게이시는 감옥에서 나온 뒤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리는 괴로운 시기를 잠시 보냈다. 자식들을 자주 학대했던 아버지였지만, 게이시는 그런 아버지를 깊이 사랑했기에 아버지와의 관계를 개선해 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점에 대해 분노를 느끼기까지 했다. 하지만 게이시는 아버지와 끝내 화해를 못했다고 그걸 평생 후회나 하면서 살 사람은 아니었다. 게이시는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에 같이 살게 되었고, 시카고의 한 식당에서 주방장으로 일했다. 그는 일에 흠뻑 빠져 열심이었다. 몇 달이 흘렀고, 게이시는 이제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감옥에서 출소한 뒤 기특하게도 사회에 잘 적응한 것에 대한 기쁜 마음에, 즉시 시카고 외곽에 집을 마련했다. 게이시는 웨스트 서머데일 8213번지에 위치한 그 집의 4분의 3가량을 차지했고, 누이들과 어머니는 나머지 4분의1을 썼다. 수려한 경치에다 깨끗한 환경, 소박한 사람들을 이웃으로 두게 된 것과, 1950년대 농장 스타일로 지어져 침실 두 개 딸린 집을 갖게 된 것에 게이시는 흡족해 했다. 그는 에드워드 그렉사와 릴리 그렉사라는, 그 동네가 생길 때부터 그곳에서 살았던 옆집 이웃을 재빨리 친구로 만들었다. 새 집에서 산지 7개월만에 게이시는 그렉사 부부를 크리스마스 때 초대해서 어머니를 대동한 저녁식사까지 할 정도가 되었다. 이웃들은 속속 게이시와 함께 술자리를 갖거나 포커 놀이를 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렉사 부부는 게이시의 전과경력 같은 것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렉사 부부가 게이시의 집에서 크리스마스 저녁을 같이 보내고 난지 약 한달쯤 되던 어느날, 게이시는 경찰에 붙들려 갔다. 버스정류장에서 소년에게 강제로 성적인 행동을 요구한 혐의였다. 게이시는 가석방되고 나서 몇 달 지나지 않아 또다시 범행을 저지른 셈이었다. 그러나 이 나이 어린 피해자는 재판 내내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 바람에 그에 대한 모든 혐의는 기각되었다. 운이 좋았던 것이었다. 게이시는 또 한번 자유의 몸이었다. 1972년 게이시는 갓 이혼해 두 딸을 데리고 살던 캐롤 호프라는 여성을 만난다. 남에게 쉽게 의지하려는 경향이 다소 있었던 캐롤은 게이시가 접근하자 즉각적으로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녀는 게이시의 재치와 너그러움에 마음을 뺏겼고, 게이시가 그녀와 아이들을 충분히 부양할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 게이시의 전과를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그녀는 이제 게이시는 새 사람이 되었을 거라 믿고 있었다. 게이시는
캐롤과 그 딸들을 데리고 서둘러 새 집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부부는
이웃들과 친밀함을 유지했으며 그렉사 부부 또한 게이시 부부가 정성들여
준비한 바비큐파티나 생일파티에 항상 초대되었다. 그렉사 부부는 젊은
부부들이 자신들을 매번 초대해주는 것에 한편으로 고마워했지만, 딱
한가지, 그 집에서 나는 엄청난 악취가 문제였다. 릴리 그렉사는 게이시의
집 마루 밑에 분명히 죽은 쥐가 썩고 있는 것이라 확신했고, 게이시에게
그것들을 치우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의했다. 게이시는 그 악취의 원인이
마루 밑 빈 공간에 찬 습기에 있다고 대답햇다. 그러나, 마루바닥 밑의
습기는 냄새와는 아무 관련 없었다. 악취에 대한 무서운 진실은 게이시만이
알고 있었고, 그는 수년간 그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숨겼다. 친구와 가족, 이웃 대다수는 게이시의 집에서 풍기는 그 이상한 냄새에 대해 불평했지만 게이시의 초대까지 거절할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게이시는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두 번이나 성대한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 한 번은 삼 백명 이상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인 적도 있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제일 인상적인 파티는 하와이안 테마 파티와 서부시대 테마 파티였다. 두 파티 모두 대 성공이었다. 게이시는 파티 참석자들이나 파티에 대해 소문을 들었던 사람들에센 커다란 화젯거리였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관심있게 지켜봐 주고 있다는 느낌을 즐겼다. 1974년, 게이시는 창업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는 건물 도색, 장식, 유지를 전문으로 하는 PDM이란 건설회사법인을 차리고, 사원에 청소년들을 뽑았다. 그는 친구들에게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소년들을 고용했노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었다. 게이시는는 성적으로 유혹하기 위해 소년들을 고용한 것이었다. 그의 동성애적 욕구와 폭력성은 다른 사람도 종종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고, 특히 그의 아내 캐롤은 그걸 더욱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캐롤과 존은 1975년 별거에 들어간다. 그들의 성생활은 사실상 중단되었고, 게이시의 성격은 전보다 훨씬 예측하기 어렵게 변했다. 그는 한순간 기분이 좋다가도 곧바로 주체 못할 분노에 휩싸여 가구들을 내던지기가 일쑤였다. 그가 가진 불면증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었다. 게이시는 저녁 때 집에 붙어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설사 있다 해도 집 밖에서 무언가 고치는 데 시간을 보내거나 차고에 머물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캐롤이 걱정하고 있던 문제는 다른 것이었다. 캐롤이 고통스러워 했던 점은 게이시가 더 이상 그녀에게 성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있었지만 우연히 집에서 벌거벗은 성인 남자와 소년들의 사진이 담긴 잡지들을 발견했던 때였다. 그녀는 게이시가 그 잡지를 읽는다는 걸 알았고 게이시는 잡지 건에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게이시는 사실 캐롤에게 여자들보다는 소년들에게 더 끌린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캐롤은 참을 수 없었고, 곧 이혼서류를 준비했다. 그들은 1976년 3월 2일에 이혼한다. 비록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겼지만 그는 성공에 대한 야심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주변의 관심과 인정을 한창 받고 있는 바로 그 때, 게이시는 정치로 눈을 돌리게 된다. 게이시가 궁극적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 받고 싶은 세계는 정치였다. 그는 앞으로 꼭 유명한 정치인이 되리라 결심했다. 게이시는 자원봉사나 지역사회봉사에 참여해서 일단 이름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정치계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게이시는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천부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었고 그 나름의 독특한 방법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노우드 파크 읍의 위원장직을 맡고 있던 로버트 매트윅이라는 민주당 의뭔은 곧 게이시를 알게 되었다. 지역사회봉사의 일환으로 게이시를 비롯한 회원들은 민주당사의 사무실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을 했다. 게이시는 광대옷을 입고 파티와 병동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건설회사 사장이라는 이미지를 매트윅에게 각인시켰다. 게이시의 과거를 모르고 지역사회에 대한 의무감과 헌신적 행동에 감명받았던 매트윅은 게이시를 거리정화운동 선도 위원으로 지목했다. 1975년 게이시는 재무담당을 맡았다. 게이시의 꿈이 이제 현실로 다가올 찰나였다. 그러나 그의 정치 생명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었다. 게이시가 소년들에 대해 동성애적 행위를 강요한다는 소문이 돌았으며 서서히 불씨는 커져갔다. 그 소문 중 하나는 게이시가 민주당사 사무실 청소 작업 기간 동안 실제로 일어났던 일에 기초하고 있었다. 일원 중에는 16살 난 소년인 토니 안토누치도 끼어 있었다. 소년의 말에 따르면, 게이시는 그에게 성적인 접촉을 시도했고 소년이 의자를 들고 때릴 태세를 취하자 뒤로 물러났다고 했다. 게이시는 장난이었다고 말하며 이후 한달 동안 그를 건드리지 않았다. 토니가 그 다음달 게이시의 집을 방문했을 때 게이시는 다시 토니에게 접근했다. 게이시는 수갑을 가지고 이런저런 장난을 치면서, 순간 풀어지지 않게 만든 다음 소년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토니는 한쪽 손목의 고리가 느슨함을 알아챘고 곧 손을 풀어 냅다 게이시를 바닥으로 밀쳤다. 게이시가 나동그라지자마자 토니는 게이시의 손에 수갑을 채웠지만, 게이시가 다시는 그를 건드리지 않겠다고 통사정을 하자 풀어주었다. 게이시는 토니에게 이후 성적인 접촉을 시도하지 않았으며 토니는 그 사건 이후 약 일 년간 게이시 밑에서 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