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1980년 2월 6일 수요일, 존 웨인 게이시 살인사건 재판이 일리노이스주의 시카고에 위치한 형사법정에서 시작되었다. 배심원들은 5명의 여자와 7명의 남자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들은 검사 밥 에간이 로버트 피스트의 생전의 삶과 잔인한 죽음, 그리고 게이시가 이와 같은 32명의 젊은이들의 살인에 관련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경청했다. 에간은 게이시에 대한 수사와 그의 집 밑에서 발견된 시체, 그리고 게이시의 행동이 얼마나 용의주도하고 논리적이었는지도 설명했다. 설리반과 매이켄의 책 "살인마 광대:존 웨인 게이시 살인사건"에 따르면 에간의 이 진술에 "처음으로 게이시 살인 사건을 낱낱이 알게 된 배심원들과 법정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엄청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쓰여 있다. 에간의 첫 진술은 게이시의 변호사 중 하나였던 로버트 모타로 이어졌다. 그는 게이시의 행동이 사실은 이성이 없는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저질러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그는 게이시가 정신이상자이고 그의 행동을 자제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주장햇다. 만약 정신이상으로 판명된다면, 게이시는 주립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될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언제까지 붙잡아 놓아야 한다는 제한이 없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사회에 재적응할 수 있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언제든지 풀려날 수 있었다. 이것이 로버트 모타가 생각할 수 있는 한 그의 의뢰인에게 최선이었다. 그러나, 정신이상임을 밝히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중 하나였다. 검찰측은 게이시의 정신이상 판정 요구에 당황했지만, 그것은 그들이 이미 예상했던 바였고 또한 대처방안도 마련해 놓은 터였다. 진술이 끝나자 검찰측은 첫 증인을 세웠다. 마코 버코비치, 즉 게이시의 희생자인 존 버코비치의 아버지였다. 그는 희생자들의 가족, 친구들로 이루어진 증인들 중 하나였다. 몇몇 증인들은 의자 위에서 끝내 울음을 터뜨렸고, 몇몇 이들은 그들이 사랑했던 사람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되뇌이기도 하였다. 다음 증인들은 게이시로부터 종종 성적, 폭력적인 접촉을 겪었지만 어쨌든 살아남은 사람들의 가족이나 친구였다.전에 일하던 사람 중 하나는 게이시의 변덕스런 성격과 그가 수갑을 가지고 어떻게 장난을 쳤는지 증언했다. 다른 사람들은 일하는 도중 게이시가 어떤 방법으로 접근했는지 증언했다. 증언은 이후 몇 주동안 계속 이어졌고, 그들 중에는 게이시의 친구, 이웃, 수사관과 경찰관들, 살해당시 게이시의 정신은 말짱했다고 보는 정신과 의사 등이 끼어 있었다. 휴정이 되기 전, 거의 60명의 사람들이 증인석에 불려졌다. 2월 24일 피고인측은 변호를 하기 시작했고, 제프리 링골을 첫 증인으로 내세움으로써 법정의 많은 사람들을 놀래켰다. 링골은 검찰측의 증인으로 세워야 마땅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링골은 한 책에서 게이시와의 만남을 언급했었고, 검찰측은 그 사실이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검찰측은 그의 증언이 오히려 반대증언에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불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게이시의 다른 변호사였던 아미란테는 링골에게 게이시가 자제력이 있어 보였냐고 물어보았다. 링골은 게이시의 폭력이 상당히 가학적이었던 것을 기억하며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링골은 강간의 세부적 사항을 증언해야 하는 시점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너무나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그는 토했고, 신경질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그는 결국 법정 밖으로 이끌려 나왔고, 게이시는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보이지 않은 채 앉아있었다. 게이시의 정신이상을 밝히려는 일환으로 아미란테와 모타는 피고인의 친구들과 가족을 증언대에 불러 세웠다. 게이시의 어머니는 남편이 얼마나 게이시를 학대했는지 증언했고, 한번은 가죽끈으로 채찍질 당한 적도 있다고 했다. 게이시의 누나는 아버지가의 언어 폭력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했었는지 어머니와 비슷한 요지로 이야기했다. 피고측의 다른 증인들은 게이시의 인자함과 인간적인 성격을 언급하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면서도 얼굴엔 미소를 잃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했다. 릴리 그렉사는 증언대에 서서 그가 얼마나 훌륭한 이웃이었는지 증언했다. 그러나, 그렉사는 게이시의 변호에 불리할 지도 모르는 말을 한마디 했다. 그년는 그가 미쳤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고, 그대신 게이시가 "아주 똑똑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 증언은 게이시가 자제할 줄 모르는 정신병자라는 피고측 이야기와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었다. 변호인측은 토마스 엘리시오라는, 게이시와 재판 전에 만나 본 적이 있는 정신과 의사를 불러냈다. 토마스 의사는 게이시는 아주 똑똑한 사람이지만, 아마도 경계성 정신분열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검찰측에서 불러낸 다른 의학 분야 전문가들도 게이시는 정신분열증 환자로, 다중인격장애와 반사회적 행동의 소유자라는 비슷한 내용의 증언을 했다. 그들은 게이시의 정신적 장애가 그가 저지른 범죄행각의 흉폭성을 인식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고 보았다. 그들은 그가 살인을 저지를 당시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었다. 의학 전문가들의 증언 후, 변호인들은 휴정을 신청했다. 양측모두 그들 앞에 앉아 있는 배심원들에게 감정적인 변론을 해댔다. 각 측 모두 이미 증언했던 증인들과 전문가들의 증언을 다시 상기시켰다. 검찰측은 게이시가 저지른 범행의 극악무도함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그의 주도면밀함, 희생자에 대한 강간과 고문의 잔악함, 철저한 사전 계획 등을 설명했다. 피고측은 게이시가 정신이상자이고 살인 당시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으며 재판 중 전문가들이 했던 발언들을 상기시켰다. 5주간에 걸쳐 100명이 넘는 증인들과 양측의 설파전을 끝내고서야 배심원들은 판결에 들어갔다. 배심원들이 판결문을 내린 것은 그로부터 몇 시간 지나지 않아서 였다. 법정 안엔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고 이어 모든 이는 판결문을 들고 나타난 배심원들에 주목했다. 법정서기가 다음과 같이 낭독할 때야 그 침묵은 깨졌다. "저희 배심원들은 피고인 존 웨인 게이시가 유죄임을 선고합..." 게이시는 31명에 대한 살인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았고 설리반이 책에 쓴 대로 그는 "미국 역사에 있어 한 사람이 제일 많은 살인혐의에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였다. 게이시는 사형선고를 받고 메너드 교도소로 보내져 그곳에서 몇 번 항소를 해보다 결국 약물주사방식으로 사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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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