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숫자


드디어 1978년 12월 22일 금요일, 게이시는 경찰에게 자신이 적어도 삼십명의 사람들을 살해했으며 시체 대부분은 자신의 집 마루 밑의 빈 공간에 묻었다고 자백했다. "살인마 광대:존 웨인 게이시 살인사건"(저자: 설리반, 매이켄)이란 책에 따르면 게이시는 "첫 살인은 1972년 1월에 있었고 두 번째는 1974년 1월이었는데, 그때는 결혼한지 일년 하고도 반년쯤 지난 때였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희생자들을 유혹해 수갑을 채우고는 성폭행을 가했다고 자백했다. 희생자들의 비명소리를 막기 위해 그는 양말이나 속옷을 그들의 입에 쑤셔 넣었고 강간하는 동시에 밧줄로 감거나 판자로 목을 눌러 살해했다고 했다. 게이시는 죽은 시체들을 마루 밑에 묻기 전에 잠시 침대 밑이나 다락에 몇 시간 동안 놓아둔 적도 있다고 시인했다.

경찰이 땅을 파기 시작한 첫 날, 그들은 두 구의 시체를 찾아냈다. 하나는 차고 밑에서 발견된 존 버코비치였다. 다른 시체는 마루 밑에서 발견되었다. 날이 갈수록 죽음의 숫자는 늘어났다. 희생자 중 몇몇은 입고 있던 속옷이 목구멍 깊숙이 넣어진 채 발견되었다. 또 다른 시체 두 구는 너무나 가까이 붙어 있었는데 경찰은 아마도 같은 날 살해되고 매장되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게이시는 경찰에게 하루에 한 명이상 살해한 적이 몇 번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체 두 구가 왜 그렇게 가까이 붙어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그는 단지 공간이 부족해 조금이라도 늘려보려고 그렇게 한 것이라 대답했다.

12월 28일 경찰은 게이시의 집에서 총 28구의 시체를 건져냈다. 몇 주 뒤에 나온 시체들은 마루 밑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었다. 과거 프랭크 웨인 '데일' 랜딘진의 벌거벗겨진 시체가 데스 플레인즈 강에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경찰은 게이시의 끔찍한 범행을 모르고 있던 상태였고 프랭크의 사건은 여전히 수사 중이었다. 그러나 수사관들은 게이시의 집에서 프랭크의 운전면허증을 발견해냈고 그는 게이시의 희생자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강에서 발견된 희생자는 프랭크 만이 아니었다.

또한 12월 28일 경찰은 데스 플레인즈 강에서 제임스 '모조' 마자라라는 시체를 찾아내는데, 그 역시 자신의 속옷이 목구멍 깊숙히 쑤셔 넣어진 상태였다. 검시관은 속옷이 너무 깊숙히 들어가 질식한 것이 사인이라고 밝혔다.

게이시는 강에다 시체를 유기한 이유는 마루 밑 공간이 이제 다 찼기 때문이었고 무덤을 파는 일은 허리가 너무 아파 할 수 없었다고 경찰에 밝혔다. 제임스는 게이시 사건의 29번째 희생자였지만 마지막은 아니었다.

2월말이 다 되어갈 즈음에도 경찰은 여전히 땅을 파고 있었다. 그들은 게이시의 집 내부를 다 들어냈고 마루 밑에서는 더 이상 시체를 찾을 수 없었다. 날씨가 너무 추워 땅이 꽁꽁 얼어 버렸기 때문에 수사관들은 시체발굴작업에 예상치 못한 지연을 겪었고 다른 곳을 조사해 보기 위한 수사 영장을 얻기 위한 절차도 오래 걸렸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파묻힌 시체들이 더 있을 거라 믿었고 예감은 적중했다.

인부가 게이시 집의 안뜰의 콘크리트를 걷어내자 그들은 또다시 끔찍한 광경에 마주쳐야 했다. 콘크리트 밑에는 아직도 살아 생전의 모습이 남아 있는 남자의 시신이 있었다. 남자는 청반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결혼반지를 끼고 있었다. 게이시의 희생자는 소년이나 동성애자 뿐만 아니라 이제 유부남도 포함된 것이었다. 그 다음 주엔 또 다른 시체가 발견되었다.

31번째 시체는 일리노이스 강에서 발견되었다. 수사관들은 이 소년의 시체의 한쪽 팔에 새겨진 '팀 리'라는 문신을 보고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희생자 아버지의 친구가 강에서 발견된 시체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다가 이 "팀 리'라는 문신을 알아본 것이다. 희상자의 이름은 티모시 오루크였으며 쿵푸 달인인 이소룡의 팬이여서 이소룡의 성을 따 자신의 이름과 함께 팔에 새긴 것이었다. 게이시는 뉴타운의 한 게이바에서 이 소년을 만났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오루크가 발견되었을 당시 게이시의 집에서도 또다른 시체가 발견되었다. 시체는 건넌방의 바닥 밑에서 나왔다. 그 시체가 게이시 집에서의 마지막 시체가 될 터였다. 발견 직후, 집은 철거되고 잔해는 치워졌다. 불행하게도, 32구의 시체 가운데 로버트 피스트는 들어있지 않았다. 로버트 피스트는 여전히 실종상태였다.

1979년 4월, 드디어 로버트 피스트의 시체가 일리노이스 강에서 발견되었다. 시체는 강 어딘가에 걸려 있었던 것이어서 찾기가 그렇게 힘이 들었던 것으로 추측되었다. 그러나 강한 바람이 시체를 움직였고 시체는 드레스덴 댐의 수문 위로 둥둥 떠내려 온 것이었다. 검시 결과에 따르면 로버트는 목구멍에 있는 종이타올 때문에 질식해 사망했다. 가족은 즉시 게이시를 살인죄로, 아이오와 가석방위원회, 교도소, 시카고 경찰을 업무태만죄로 고소하고 8천5백만달러에 달하는 보상금을 요구했다.

수사관들은 시체들의 치아와 다른 증거물을 가지고 신원을 확인하는 일에 매달렸다. 희생자 중 9명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신원이 판명되었다. 시체발굴작업은 이제 종결되었지만 게이시의 재판은 이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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