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April May June July 2001 HOME
3/9/99
엄마가 사주시는 목도리와 내복,
나는 받기만 하고 사주지 않는데? 연실 뭔가를 사들고 오는 언니들,
연인들이 주고 받는 선물들,
그 모든게 이해가 되려고 합니다.
뭐가 그냥 좋다면 그냥 주고 싶습니다.
내가 아끼는 거라도, 아니, 내가 아끼는 거라면 더욱 더 주고 싶습니다.
예전에 아무리 반항기 있는 청소년이였서도
애낳고 아빠 엄마 되면 다들 잔소리하는 부모가 되면서,
이거하라 저거하라 참견하며 똑같이 되면서,
자기는 안 그럴 듯 고개를 내 젓는다.
자기는 뭐 다른것처럼...
올챙이가 아무리 자라기 싫어도 개구리가 되어서야 비로소 완성이 되듯이
다들 지나가는 과정이고 당연히 자신도 그렇게 완성이 되는것을...
자기는 아직 올챙이라고, 자기는 개구리가 안 될 듯이 떠들어된다.
말 잘 안듣는 딸보고 엄마들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너랑 똑 같은 애 낳아봐라."
맞는 말이다.
너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너랑 또옥 같은 애 있어봐라.
너는 어떤지. 너는 어떻게 변하는지.
말로만 해결안되는 일들이 있다.
몸소 체험을 해 봐야 한다.
"어, 김 나온다"고 하는 말,
그거 진짜인지 오늘 새삼 느꼈습니다.
뻐얼건 쇳불이 서서히 그 뜨거운 빛을 발산하듯이
내 몸에서 발끝부터 머리위로 서서히 불이 붙는걸 느꼈습니다.
정말 열이 나서 더워지더군요.
땀도 찔끔 난 것 같아요.
여러분, 화내지 맙시다.
가뜩이나 오존땜에 더워지는 이 날씨, 더 더워지게 하지 맙시다.
소중한 사람은 떠나도 가슴에 남기 때문에
잃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말 얻는게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옆에 있을땐 하지못하는 그리움도,
입가에 미소를 뛰우며 추억을 하나하나 씹어보는것도,
잃었기에 얻는거니까요.
항상 곁에 있기에 해야 할말을 많이 안하고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일 당장 떠날지도 모르는데
나중에, 나중에 하며 할말을 접어둡니다.
떠난후에 무슨 후회를 하더라도
"이 말을 못해줬어"라는 아쉬움은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오랜만에 밤바닷바람을 쐐이고 왔다.
하늘엔 별들이 총총 떠 있었고
파도는 끊임없이 거품을 뿜으며 물결쳤다.
바람이 너무쌔서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을 때도 있었지만
가끔은 이렇게 귀가 떨어져나갈만큼의
추위를 느껴보는것도 좋다.
그만큼의 아픔이 있기에
밤바다는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
사람들이 내말을 잘 못알아듣는다고들 합니다.
그리고 내가 웃긴얘기 하면 안 웃고
그냥 던진얘기는 배꼽빠진냥 웃어재낍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은 내가 설명을 제대로 못하는 거랍니다.
자기들이 못 알아듣는게 아니라.
웃기죠?
난 알아듣는데, 자기들만 못 알아들으면서
나보고 이상하뎁니다.
정말 웃기죠?
난 아무래도 애꾸눈 나라에 온 멀쩡한 두눈을 가진 사람인가 봅니다.
자기도 하기 싫어하는 일이기 때문에
남이 하기싫은 일을 해주고,
자기가 그것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남이 기분좋아할 것을 주고....
그런것들을 받는것도 좋지만
해 준 다음의 느낌은 말할수 없이 뿌듯하다.
막 자랑하고 싶지만 꾹 참을 때
그 기쁨은 배로 더해지는 것 같다.
요즘에는 계속 받기만 하고 주지를 못한 것 같다.
다른사람의 기쁨으로 인해 내가 기뻐해 보는것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좀 더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야 될것같다.
답장이 오지않을것이라는 것을 알고서도
편지를 써 본적이 있으십니까?
상대방이 그 편지를 받아보지도 못할것이라는 것을 알고도
정성스레 편지를 써 본적이 있으십니까?
편지장에 써 본적은 없지만
마음으로 편지를 보낸적이 있습니다.
답장을 기다리지도,
답장을 쓰지않는 사람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한 번 보내면 보낸 것으로,
받으면 받은 것으로 ,
그 편지는 충분히 제 할 일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만족합니다.
내가 보낸 편지는 그의 소유이지
더 이상 내것이 아닙니다.
오랜만에 기분좋게 술을 마셨습니다.
형식적으로 분위기 따라 마지못해 마신 것이 아니라,
서로 마음이 맞아 시험 바로전날 한 번 팅겨보겠다고
살짝 마셨습니다.
요즘엔 그동안 잃고 지냈던 것들을 조금씩
다시 느껴보는 것 같습니다.
매일 같은 일상에 찌들어 모든 것을 당연한 듯
받아들였던것들을
이제 잃을 것 같으니까
아쉬움에 하나씩 고마움을 새삼스레 느낀다고나 할까요.
표현이 좀 서투르네요.
예전엔 이기심 반, 자존심 반으로 내생각, 내주장을 상대방에게
설득시키려고 무지 노력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냥 내생각을 이해시키는 데에서 끝나는 것 같습니다.
내가 너무 이기주의적이 ㄷ는지, 아님 책임감을 상실했는지....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해 준다는게 얼마나 큰 책임을 요하는지도
알게된 것 같습니다.
그냥 남의 생각을 바꾸게 한다던가 내말이 맞는다던가 하는 것은
너무 부질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좋은 것을 알고있다면 같이 알고 지내는 것, 그것 뿐입니다.
흐르려는 눈물을 꾹 참고 집에까지 걸어왔습니다.
누가 볼까봐 좀 한적한 골목에 접어들어
맘껏 울어보려 했는데
막상 울려니 눈물이 안 나왔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힘이 없다고 느껴질 때 비로서
강해지는것인가 봅니다.
눈물이 많은 사람이야 말로 마음이 강하고
슬픔을 아는사람이 기쁨이 무엇인지 더 잘 압니다.
가끔가다 옛속담이나 그냥 옛말이 가슴을 파고들며
절실히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소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던가,
가는말이 고와야 오는말이 곱다던가...
마음이 건강해야 몸이 건강하다는 말도
바로 이럴때를 두고 얘기하는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라는게 참 우습더라구요.
아주 작은 것에서 큰 기쁨을 얻습니다.
보이지도 않을만큼 작은 가시가 손 끝에 밖혔을 때
온몸이 아픈것처럼 고통이 크듯이,
보이지도 않을만큼 작은 기쁨이
아팠던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줄수 있는 것 같습니다.
괜히 작은데서 쉽게 기쁨을 얻으면
단순하다며 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순한게 뭐가 나쁜거죠?
자신들보다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인가요?
나를 눈에 넣어도 안 아프시다는 어머니가 계십니다.
내가 아무리 심통부려도 봐주고 예뻐해 주는 언니들이 있습니다.
힘들 때 같이 울어주고 기쁠 때 같이 웃어주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좋은 상담자가 되주는 선배들이 있습니다.
나의 어리석은 점을 깨우쳐주는 후배들이 있습니다.
기분이 울적할 때 숨통을 탁 트여주는 파란 하늘이 있습니다.
화가 나 소리지르고 싶을 때 올라갈수 있는 언덕이 있습니다.
내 자신을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기도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무슨 나쁜일을 해도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당신 곁에는 누가 있습니까?
게으름이란 것은
선함처럼 태어날 때 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터득하는 하나의 나쁜버릇인 것 같습니다.
"나는 왜이렇게 게으르지?", "게으름을 어떻게 고치지?"
하는 질문들은 그래서 우스운 것입니다.
자기가 귀찮아서 쓰레기를 휴지통에 버리기 싫어
바로 옆에다 던져놓고 "난 왜이렇게 더러운 곳에서 살지?" 라고 묻는 것과,
눈을 뜨면 밝은세상을 볼 수 있는데도 눈을감고
"이 어둠을 어떻게 밝히지?"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대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냥 알고있다는 것을 알기 싫을 뿐입니다.
손톱을 물어뜯는 것이 나쁜것인줄 알면서도
불안할 때 안정시켜주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계속하는것과,
담배를 피면 몸에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분전환을 시켜주기 때문에 끊을 수 없이 계속 피는것과 같습니다.
손끝에서 피가나기 전에, 폐가 쌔까매져서 숨쉬기도 힘들어지기 전에
빨리 버릇을 깨야 합니다.
깨끗이 깨 버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겐 무조건 막 주고싶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3/10/99
사람들은 참 웃긴다.
3/10/99
사람이 화가 나면 몸에서 열이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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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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