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이도수님 영국 여행기 중 아일랜드 부분(1995년)

1. 천리안 여행 동호회 게시판
1) Rush2112
2) Dorothea

2. 스포츠 서울 
1) 박성은

3. 월간 금호문화
1) 임철우

4. 동구 여자중학교
1) 정상률

5. 동국대학교 컴퓨터학과 
1) 변정용

6. 경상대학교 영어교육학과
1) 이도수 (아일랜드 부분 발췌)

7. EOS TOUR 
1) 김성호 (아일랜드 부분 발췌) 

8. 아일랜드 여행사진 모음 링크 
1) 정연희 

9. 아일랜드 영어학교 유학일기 링크
1) 오경아 

10. 아일랜드 여행기
1) 이창범 

 22일에는 일찍부터 서둘러 아일랜드로 갈 페리를 타려고 140km 남쪽의 스트란라 항으로 바쁘게 달렸다. 10시 45분에 출발한 쾌속 페리는 한 시간 반 만에 북 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에 닿았다. 벨파스트 시내 중심가에 차를 세워 사진을 찍고 더블린으로 향해 남으로 계속 달렸다. 한이 많은 섬 아일랜드, 한국인처럼 정이 많고 애수적인 정서를 지녔다는 말을 어려서부터 들어 왔던 곳이다. 노벨문학 수상 작가를 셋이나 낳은 이 섬은 남북 아일랜드를 합해도 남한보다 약간 작은데 그 중 5분의 1정도를 영연방에 속한 북아일랜드로 내 주었으니 아일랜드 공화국의 영토는 영호남을 합한 정도에 불과하다. 

12세기에 팽창하는 잉글랜드의 속국이 된 이래 줄기 차게 저항하다가, 16세기에 잉글랜드의 국력이 세계로 뻗으면서 전 유럽의 왕권을 좌지우지해온 로마교황청에 맞서서 독자적인 영국정교를 선언할 때, 구교를 고수해온 아일랜드가 대륙의 힘을 빌어 독립하려고 시도를 하다가 잉글랜드와 더욱 숙원지간이 되었다. 17세기 엘리자베스 여왕 때 그 보복으로 스콧틀란드인을 대거 북 아일랜드 지역으로 이주시켜 이 섬을 잠식할 거점을 마련하려고 북부 얼스터 지방의 토착지주들을 강제로 몰아 내는 과정에서 끔찍한 유혈사태를 빚었다. 금세기 들어 1921년에 아일랜드는 끝내 독립을 쟁취했으나 남북 아일랜드 간의 피 비릿내 나는 마찰은 끝 없이 이어져 온 터이다. 메스컴에 연일 보도되던 테러사건들이 요즘은 해빙무드를 타고 뜸 하지만, 그 국경에는 우리 나라의 군사분계선 같은 삼엄한 통제가 있으리라 여기고 유심히 살펴도 전혀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 

화폐교환소가 길가에 총총 있을 뿐 철조망이나 접경표시 하나 못 본 가운데 북아일랜드의 접경을 훨씬 벗어나 있었다. 주변 분위기만으로는 남북 아일랜드의 구별이 선뜻 눈에 들어 오지 않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일랜드 공화국에서는 잉글랜드 풍을 되도록 거부하려는 듯, 도로 표지도 마일이 전부 km로, 영연방에서는 M으로 표기된 고속도로도 N으로 바꾸어 놓았다. 휴게소나 지명 등은 영어와는 전혀 달라 [갈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지명처럼 발음하기가 힘든 아일랜드 고유의 긴 지명이나 용어를 쓰고, 그 밑에 영어를 곁들여 붙여 놓았다. 스콧틀란드나 북 아일랜드의 화폐에는 여왕 대신 그 지역 상징을 넣은 다른 그림이 들어 있으나, 환율은 잉글란드와 같아 상호 통용되는데, 아일랜드는 환율까지 차가 있는 전혀 다른 화폐를 쓴다. 

더블린으로 다가 가면서 주변을 보니 도로나 마을들이 잘 정비되지 않았고, 짜임새가 엉성하다. 영국은 시골 구석 구석까지 생활 기반 시설이 완비되어 있고, 도로변 나무 하나도 전문 조경인에 의해 손질되어 있는데, 이 곳은 크게 후지다. 우리가 달린 길이 이 나라의 가장 중요한 간선도로이고, 수도권에 들어섰는데도 노면이 고르지 못하고 꾸불꾸불하며, 길 연변의 울타리들이 전혀 손질되어 있지 않아 우리 나라의 후진 지역 시골 길을 가는 듯하다. 주위를 둘러 보면서 어느 모로 보아도 우리 나라 시골 풍경 같다고 모두들 입을 모아 말한다. 몇 시간 차로 달리며 좀 쉴 장소를 찾으려 해도 차를 세울만한 휴게소나 주차표시된 곳이라고는 찾을 길이 없다. 도로변 가게 앞에라도 차를 대고 음료수로 목을 추기려고 유심히 살피면서 상점 물건들을 바깥 도로변까지 진열해 둔 점까지 우리나라에서 명절 특수상품을 바깥에 진열해둔 모양과 같다고 말하며 모두 웃었다. 

더블린 근교에 이르러 통닭집이 있길래 간신히 도로변에 차를 대 놓고, 그 집에서 산 통닭과 준비해 간 밥을 홀에서 먹도록 허락받아 점심을 해결했다. 더블린 시내로 진입하여 마땅한 주차장을 찾지 못해 차로 몇 바퀴 돌다가 겨우 시내 번화가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중심지를 돌아 보았다. 아일랜드의 독립투사이자 정신적 지주인 파넬의 동상과 이곳 원주민 켈트족의 여성수호신 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행인들 중 좀 알만한 사람들을 골라 제임스 죠이스의 유적지를 물어도 아는 사람이 없다. 시민들이 문화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나라 차원에서도 보존이 그리 잘 되고 있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시간 여유가 없으니, 내륙으로 좀 들어가 보고 숙소를 정하자며 중부 내륙의 호수지역으로 향했다. 

멀리가르라는 중부 도시의 남쪽 호수 주변에 이르러, 아일랜드에 들어선 이래 처음으로 주변이 아늑한 숙소가 많이 보였다. 몇 집을 전전하다가 넓은 목장과 우람한 나무 숲 속에 자리 잡은 옛날 부호의 저택에 들어 갔다. 한 쪽으로는 목장이 내려다 보이고, 또 한 쪽으로는 호수가 굽어 보이는 멋진 고가이다. 화장실이 실내에 갖추어 있지 않아 호텔로 인가를 못 받고 B & B로 쓰인다는 이 집이 자형은 좀 불편하다고 꺼리시는 눈치인데 아일랜드 관광에서 기대에 못 미친 것을 이런 장원에서 자 보는 것으로 보충하자는 쪽이 우세하자 결국 자형이 양보를 하셔서 거기서 유하게 되었다. 숙박비도 지금껏 어느 집보다 싼 편이니, 이곳의 국민소득이 영국에 비해 크게 낮음을 실감한다. 숲 속 정원에 돗자리를 펴 놓고 밥을 지어 먹으니 꿀 맛이다. 

아침에 넓은 정원을 산책한 후 출발하여 가다가 [갈리버 여행기]의 작가 스위프트의 유적지 표시가 있어 잠깐 들렀다. 기대감으로 들어 갔으나 호수가에 있는 공원이 스위프트의 이름만 따서 붙여 놓았을 뿐 아무 유적도 없다. 수난 속에 먹고 살기가 바빠서 문화유산은 보존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지, 똑똑한 사람은 해외로 다 빠져 나가고 멍청한 사람들만 남은 탓인지 세계적으로 자랑할만한 문화재를 도대체 왜 사장시키는지 궁금하다. 우리 나라에 팔도의 인간평이 있듯이, 여기도 지역별 인간에 대한 평이 있는데, 아일랜드인은 정이 많으나 게으르다는 평이 있다. 스콧트란드인은 순박하고 우직하나 돈에 인색하고, 웨일스 인은 정서적이나 정직성이 모자란다는데, 잉글랜드 인은 강하고 무게가 있으나 교만하다고 빈축을 받는단다. 

아일랜드가 140년 전(1857) 5년 간에 걸친 감자기근으로 백만 명이 굶어 죽고, 백만 명이 미국 등으로 이주를 하여 당시에 남은 사람이 백만 정도였다고 한다. 이주한 백만이 손을 퍼뜨리고 본국의 인척을 계속 불러들여 7대를 내려 오는 동안 아일랜드계의 피를 약간이라도 받은 후손이 해외에 4천만이나 있다니, 미국의 패권을 쥐고 있는 백인계는 잉글랜드계 못지 않은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단다. 영국이 아일랜드를 무시 못하는 것도 그런 힘의 함수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한 시 반에 출발하는 페리를 타기 위해 가까스로 로슬레어 항에 이르러 대기 중 주차장에서 입을 좀 다시고, 승선하자 바로 점심을 시켜 먹었다. 3시경 웨일스의 피쉬가드에 이르러 금일 중에 집에 이를 작정으로 서둘렀다. 웨일스의 미항이라는 스완지를 잠시 들리고 다시 웨일스의 수도 카디프로 들어가 차로 일주한 후, 성 앞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고속도로로 올랐다. 웨일스는 우리 나라로 말하면 백제와 같이 서부의 조그만 지역을 차지해 있었으나 지역성이 강해서 잉글랜드에게 대항하며 버티다가 450여년 전(1536)에 영연방에 병합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스콧틀란드인들 보다 더 독자성을 주장하여 아일랜드처럼 영어와 크게 다른 자기들 말을 학교에서 가르치며 입학시험 과목으로 넣고 있다. 도로 표지판이나 간판을 보니 아일랜드 말 비슷한 이 지역 말로 표기되어 있다. 

지금 국제어라고 세계 각국에서 역점을 두고 앞 다투어 가르치는 영어가 한갖 한 섬의 일부인 잉글랜드의 방언에 불과하고, 정치적으로 통합된지 3백년이 가까운 현재까지 자국 내에서도 통일을 이루지 못한 언어라는 것을 생각하면 슬며시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진다. 그러나 저러나 잉글랜드인의 꽉 다문 입술 안 쪽에 숨겨 둔 꿍심은 알아 주어야겠다. 로마제국의 치하에서 수난을 받으면서 지중해의 선진 문화를 받아 들인 후 그 세력을 내 붸고, 기독교를 받아들여 기독교 국가로 정한 후에는 대륙의 지배를 벗어 던지고 독자종교를 선언했으며, 대륙에서 일어난 문예부흥운동을 전파 받아 쉐익스피어 같은 대문호가 그걸 능가하는 경지를 이루어 전 세계에 역수출한 저력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 영어가 잉글랜드의 방언에 불과했지만 게르만어에 원주민 켈트족의 토착어와 라틴계 언어를 녹여들이고, 전 세계를 제패하면서 6대륙의 각 국어를 다 뭍혀들여 용해시켰으니 어느 나라 말보다 풍성화 되었음은 사실이다. 

영국에서 마음 트고 사귄 사람들이 대개 아일랜드인이었데 그들이 하도 잉글랜드인을 못마땅해 하길래 잉글랜드인을 다시 뜯어보며 같이 흠 잡아 보려해도 꼬리가 잘 안 잡힌다. 웬만한 실수를 해도 이해성 있게 참아 주고, 도움을 청하면 너무 진지하게 대해 주어 미안할 정도이다. 한 겨울에 억수 소낙비가 쏟아져도 뛰지 않고, 정기 운행 차가 아무리 연착을 해도 그럴 이유가 있겠지 여기고 여유 있게 기다리는 듬직함 등이 돋보일 뿐이다. 작은 것은 다 양보하여 남을 품어 들이고 큰 것을 얻겠다는 속 뜻이라면 굳이 흠이랄 수만은 없다 싶은데, 그런 꿍심으로 인해 당한 입장에서는 피해의식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일본인들의 나쁜 속성을 얘기하면, 솔직하고 근면하여 잘 사는데 왜 나쁘게 보느냐고 이 사람들이 이상히 여기듯, 묵은 원한이 있는 사람과 그렇찮은 사람과는 보는 눈이 다를 수밖에 없겠다. 

컴퓨터에 무슨 자료 나오라고 키를 치면 저장된 목록이 한꺼번에 나오듯이, 인간의 뇌도 누구의 미운 점 찾아 내라고 명령하면 줄줄이 눈에 뜨이게 되어 있다. 그런데, 고운 점 찾으라 할까, 미운 점 찾으라 할까의 결정은 뇌의 좌반부에 있는 정서통활부위에서 내리니 인간의 판단이란 주관을 좀체 벗어 나기가 힘들 것 같다. 공평무사하다는 하나님도 행위의 선악만으로 인간을 심판하지 않고, 신에게 호의로 의지하느냐, 악의로 배반하느냐를 먼저 가린다고 하지 않은가. 

브리스톨에 못 미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저녁식사를 해결하자며 들어가 휴게소 잔디에 자리를 펴고 찌개를 끓여서 식사를 했다. 남 보기에 떳떳하지는 않은데도 그 간의 여행에서 모두 집씨 기질이 들었는지 눈치 안 보고 편한 마음으로 페리에서 사 온 위스키와 라면을 맛있게 들었다. 허선생이 고속도로에 대형 사고로 막혔을테니 우회하여 오라고 전화로 알려 주어, 이리 저리 둘러 엑시터까지 오니 열시가 가까웠는데, 통닭을 사와서 무사 귀환의 축배를 들었다. 

항공여행의 노독이 가실 겨를도 없이 원거리 육상여행을 속행했는데도 연세를 의심할 만큼 능동적으로 참여해 주신 자형 내외분의 아량과, 만리 길의 장거리 운전이 무리였을텐데 사뭇 쾌활한 기색으로 잔 심부름까지 도맡아 해 준 석 선생 덕택에 누구나 꿈 꾸는 영국일주여행을 무사히 마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1995년 6월 5일 영국 엑시터에서 이 도수) 
 

원주소: http://nongae.gsnu.ac.kr/~dslee/eng.htm

 

참고사항: 

기본적으로 그림과 사진을 제외한 저자의 원문과 형식을 그대로 수록하려 노력했습니다.  가능한 몇 가지 오자를 수정하고 영어 철자를 바로 잡았습니다.  영문 지명의 경우 Lonely Planet 사의 Travel Survival Kit 시리즈 중 Ireland 편 1996년 판(2nd edition)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현지 발음은 저자의 원문을 그대로 두었습니다.   천리안을 제외한 각 원문의 위치는 글 마지막에 인터넷 주소를 링크해 부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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