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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1) 이창범 |
낯선 땅, 낯선 사람들
아, 영국이여, 안녕!
이제 아일랜드로 떠날 시간이다. 리드에서
기차를 타고 맨체스터, 옥스포드 로드, 체스터를 거쳐 홀리해드로 향했다.
홀리해드로 가는 기차안에서 아일랜드행 페리가 끊어졌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을 졸였다. 그러나 홀리해드 기차역에 도착해서 보니 배는 새벽
4시까지 운항되고 있었다. 기차역에는
수많은 배낭족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를 둘러봐도
동양인은 보이지 않는다. 창구에서 표를 끊고 입국심사를 마쳤다. 그리고
대기실의 레스토랑에서 과일, 빵 등을 잔뜩 사먹으며 주린 배를 채웠다.
그런데 안내방송이 들리더니 레스토랑이 갑자기 흔들린다. 나는 그저
대기하는 곳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곳은 배 안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값싼 숙박료를 지불하고
배에서, 그것도 아주 거창한 바에서 밤을 보내게 된 것이다.
한밤중에 페리가 요동을 치며 영국의
해안을 빠져나간다. 정들었던 영국을 뒤로 하니 목이 메어온다.
영국이여, 안녕!
아일랜드의 지하철역에서
아일랜드 던 라호가헤르(Dun Laoghaire)항에
도착한 것은 새벽 4시 40분. 아직 동이 틀 무렵이라 주변은 컴컴하다.
승객들은 모두 택시나 자가용을 타고 어디론가 하나 둘씩 빠져나갔다.
거리를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노라니
뒤에서 한 청년이 우유 한 통을 마시며 따라온다.
"지하철역이 어디 있나요?"
자기도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이라며
따라 오란다. 그도 막 배에서 내린 승객이었다. "어디서 왔나요?" "한국." 그가
우유통을 내게 건네준다. 아, 시원하고 상큼한 이 맛. 신선한 새벽공기와
함께 마음까지도 상쾌해진다. 조금
걸어가니 아래쪽에 지하철역이 있다. 함께 배에서 내렸던 10여명 가량의
승객들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백인, 흑인, 아랍인 등 그
종류도 다양해서 지하철역은 마치 인종 전시장과도 같다.
지리하게 지하철이 운행되기를 기다린지
2시간. 드디어 지하철이 도착했다. 첫 지하철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충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곳을 보아 얼른 따라 내렸다.
나는 지하철 티켓이 없어서 잔뜩 긴장하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 앞의
손님들이 검표원에게 자기가 타고 온 배의 승선권을 보여주고는 그냥
통과하는 것이다. 나도 따라 승선권을 내밀었다. 무사통과다.
시간이 일러서 아직 환전소는 문을
연 곳이 없다. 기차역에서 은행이 문을 열기를 기다렸다가 100달러를
환전했다. 천천히 걸어서 시내
중심가로 이동한다. 거리는 출근하는 시민들로 점차 활기를 띤다.
가디너 거리에 있는 호텔에 숙소를
잡았다. 싱글이 15파운드. 숙소에서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깨끗이
단장을 한 다음 다시 시내로 나왔다.
제임스 조이스의 도시 더블린
눈이 부시게 선명한 색상의 집들과
그림처럼 아름다운 해안이 있는 나라 아일랜드. 그렇게 놀랄만한 기념물이나
거대한 성채는 찾아볼 수 없지만 거리를 거닐면서,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부터 아일랜드에 대한 매력은 점점 깊어지고 만다. 아일랜드가
배출한 위대한 작가 제임스 조이스도 스물두 살에 아일랜드를 떠났지만,
이렇게 선명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조국 아일랜드를 잊은 적이 없었고,
자신의 작품속에 그의 고향을 영원히 새겨 넣었다. 더블린은 세계적인 극작가와 소설가, 시인들을
배출시킨 곳으로 유명하다. 제임스 조이스, W.B 예이츠, 조나단 스위프트,
오스카 와일드, 브람 스토커, 조지 버나드 쇼우 등이 이곳 더블린 출신들이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현대문학의 아인슈타인과도 같은 존재, 바로 제임스 조이스다.
그는 더블린 시민들에게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다. 그는 더블린 거리들을
가슴으로 느꼈고, 그의 기억들은 더블린의 지도와도 같았다.
그의 걸작 '율리시즈'와 '피네간의
야경' 등은 모두 그가 살던 더블린을 무대로 하고 있다. 그의 모든 작품들에는
더블린의 거리와 집, 주점, 상점, 교회, 다리 이름 등이 무수히 등장한다.
특히 1904년 6월 16일, 더블린 시민 레오포드 블룸의 18시간 동안의
의식세계를 기록한 '율리시즈'는 '지금까지 쓰여진 소설 중 가장 세밀한
사진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이날(6월 16일)은 그 주인공의 이름을
따 '블룸즈 데이(blooms day)'로 명명되어 세계 문학사상 불멸의 문학일로
유명해졌고, 해마다 이날이 되면 더블린에서는 율리시즈와 조이스를
기리는 커다란 축제가 벌어진다. 또한 작품속에서 주인공이 머물렀던
마텔로 탑은 조이스 박물관이 되어 있으며, 작품의 배경속에 등장하는
호워트 언덕도 명승지가 되어 있다. 블룸즈
데이는 조이스 박물관인 마텔로 탑에서 그 서막이 울려 퍼지고, 세계
도처에서 모여든 조이스 애호가들은 스티븐과 블룸 등 '율리시즈'의
주인공들이 지나갔던 자취를 더듬으며 더블린 시내를 배회한다.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 더블린 시내에서는 조이스의 동상물이나 음식점, 상점,
술집 등은 아예 간판을 조이스로 바꿔 달고 있다. 시내 여행안내소에서 제임스 조이스에 관한 안내책자와
지도를 사고, 더블린 중심가인 오콘넬 거리를 거닐어 본다. 50m의 넓은
대로에는 아일랜드 최고의 애국자인 오콘넬의 동상이 우뚝 서 있고,
안나 리비아의 수중 조각상 주위로는 수많은 더블린의 젊은이들이 모여
젊음과 낭만을 꽃피운다. 더블린은 전체 인구의 25%가 26세 이하의 젊은이들이라고
한다. 젊은 도시답게 어디서나 활기와 젊음이 넘쳐 흐른다.
오콘넬 거리에서 아비거리로 접어들면 아일랜드
문화의 진원지라 할 수 있는 아비극장이 있다. 1898년 예이츠와 마틴에
의해 세워졌으나 화제로 불탔다가 1966년에 재건되었다.
오콘넬의 다리를 건너니 더블린의 명소들이
모여있는 구시가다. 더블린 최대의 상점가인 그래프턴 거리를 따라 대학의
거리로 접어들면 트리니티 대학이 있다. 바로 조나단 스위프트, 오스카
와일드가 다녔던 학교이다. 이 학교의 도서관에는 9세기 이전에 켈스의
수도원에서 아일랜드 성직자들이 지은 복음서의 사본인 '켈스의 책(Book
of Kells)'이 소장되어 있다. 아주 절묘하게 장식된 이 책은 아일랜드의
가장 진귀하고 소중한 보물이라고 한다. 그밖에도
조나단 스위프트가 사교로 있었다는 성 페트릭 성당과 더블린 성 등을
둘러 본 다음 다시 그래프턴 거리를 따라 오콘넬 거리로 돌아온다.
이번에는 녹색 더블데커를 타고 더블린 서쪽 근교에 있는 페닉스파크로
간다. 이 공원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공원의 하나로 그 장대한 녹색공원
안에는 동물원과 어린이 놀이터, 산책로, 그리고 아일랜드 대통령의
저택이 있다. 공원에서 잠시
쉬고 있으려니 아일랜드의 어린이들이 내 주위로 몰려든다. 얼굴에 잔뜩
주근깨 투성이인 이 어린이들은 낯선 동양인의 모습이 신기한지 쳐다보는
눈길에 호기심이 잔뜩 어려 있다. 한 녀석은 담배꽁초를 입에 물고는
담배 한 대 달라고 애걸이다. "에라,
이 못된 녀석." 꿀밤을
한 대 먹였더니 뭐라고 쫑알대며 도망을 친다.
엔필드의 간이역
더블린 시내에서 제임스 조이스의 자취를
쫓다가 오후에는 윌리암 버틀러 예이츠가 그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슬라이고우로
가기 위해 기차에 올랐다. 한참을 가는데 피곤해서 잠이 들었나
보다. 차창밖은 벌써 어둠이 찾아오고 있다. 안되겠다 싶어 다음 역에서
무작정 내렸다.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그곳은 엔필드(Enfield)라는 시골 간이역이었다.
철로에서 혼자 더블린 행 기차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한 역원이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그런데 이게 웬 낭패인가, 더블린행 기차는 2시간 이후에나
도착한다는 것이다.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그분과 담소를 나누었다. 그는 25년을 이곳 간이역에서
일했다고 한다. 내가 심심해 할까봐 라디오를 틀어주고 커피, 과자까지
대접을 한다. 커피는 어찌나 맛이 없었던지 고개를 돌리고 억지로 마셔야만
했다. 그리고 TV(흑백 TV였지만)틀어주면서 한국에도 TV가 있느냐고
묻는다. 우리는 모두 칼라 TV라고 대답했더니 깜짝 놀라는 표정이다.
그는 외딴 시골 마을에 있으면서 외부와는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는
듯 바깥 사정에 대해서는 깜깜했다. 동네
아주머니 몇 분이 역에 찾아와 한바탕 요란을 떨고 간 후 드디어 더블린
가는 기차가 도착했다. 그는 헤어지기 전, 주소를 적어주며 엽서라도
교환하자고 한다. 아일랜드 시골 특유의 분위기를 풍겨주는 그는 내게
멋진 한편의 소설 소재를 떠올리게 했다. 원래는
이 역에 서지않는 직행열차였으나 친절한 팬더씨의 도움으로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기차에 탄 많은 아일랜드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쉬운
이별을 고했다.
러슬레어 항구에서의 하룻밤
다음날은 그 옛날 더블린의 명승지인
호워트 힐(Howth Hill)에 가기 위해 부사라 버스 정류장에 있는 안내소에
문의했다. "하워드 힐을
가려고 하는데요, 버스를 어디서 타죠?" 그런데
영 못알아 듣는 눈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발음에 문제가 있었다.
나는 '하워드 힐'이라고 했는데, 그들은 '호워트 힐'로 발음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워트 힐로 물으니 그때서야 제대로 알아 들었다는 표정이다.
31번 버스를 타고 호워트 힐에 도착했다.
이곳은 더블린 시민들의 인기있는 휴양지로 이곳에서 멋진 더블린 해안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만병초가 피어나는 호워트 성의 정원과 계곡들은
그 매력을 더해준다.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와 상점가와 서점가 등을 배회하다가 러슬레어 항구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코넬리 역으로 갔다. 이제 아일랜드에서 프랑스로
들어가기 위해서다. 코넬리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일랜드 아주머니 두 분이 옆에 앉았다.
"여행중인가요?"
"예." "혼자서요?" "예,
혼자예요." "오우."
그녀들은 대단하다는 듯 탄성을 지른다.
이제 중부유럽쪽으로 나갈 거라고 하니, 한 아주머니가 "돈 잘
간수하세요"하면서 경고를 해준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번 같은
말을 해서 화장실에 가 그동안 배낭속에 쳐박아 두었던 전대를 다시
허리에 찼다. 그런데 전대를 차고 보니 영 맵시가 나지 않는다. 배가
볼록 뛰어나온 것이 영락없이 임산부다. 전대를 풀러서 다시 배낭 속에
집어 넣었다. '너 잃어버리면
나도 끝장이다. 우리 운명을 함께 하자.' 역에서는
방금 도착한 중국인 여학생들 한 무리가 기념사진을 찍느라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코넬리 역에서 기차를
타고 밤 9시 20분경에 러슬레어 항구에 도착했다. 그러나 프랑스로 가는
페리가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기대는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아이리시
페리는 오전 9부터 오후 5시까지만 운항되고 있었던 것이다. 환전소
역시 오후 2시에나 오픈한단다. 할
수 없이 역 근처에 있는 호텔을 찾으려고 하니, 주위에 B&B(Bed
and Breakfast)가 많이 있다. 이집저집 기웃거리며 물어보니 모두 "full"이란다.
다시 호텔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자전거를 탄 소년이 내 앞에서 멈춘다.
"여기서 묵을 거예요?"
"응, 그래"
나는 구세주라도 만난 듯 반갑게 소리쳤다.
"우리 집으로 가요. 저희 집도
B&B 거든요." 소년을
따라가니 B&B 라는 간판이 문 밖에 세워져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주머니가 맞이해 준다. 여기서
10파운드를 내고 또 하루를 묵는다. 이 집의 수준은 한국의 중산층과
비슷하다. 집안 식구들의 사진이 벽마다 걸려있고, 시설도 깨끗하다.
평범한 아일랜드 가정의 모습이다. 아침
9시에 아침식사를 약속해 놓았으나 일어나 보니 9시 40분. 미안한 마음으로
침대에 앉아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문을 노크한다. "Breakfast OK?"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를 정리하고 창 밖을 내려다
본다. 낯설기만한 풍경들, 내가 낯선 외국땅에 와있다는 실감이 난다.
식사를 마치고 호버역으로 걸어나왔다.
아침에는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다. 러슬레어 항구는 그 거친 바람을
맞고 있었다. 나는 단결 투쟁가를 부르며 가슴으로 바람을 맞았다.
보딩시간이 가까워 오자 항구 대합실은
온통 배낭족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오후
5시, 드디어 프랑스 르 하브로 가는 페리에 올랐다. 르 하브까지는 21시간이
소요되는 먼 거리다. 동양인은 오로지 나 혼자뿐이다. 사람들이 차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서양인들은 아무래도 흑인이나 동양인들을 한 수 낮춰
생각하는 듯 하다. 동양인으로서의 묘한 소외감, 갑자기 한국이,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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