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육의 희생자들
샤론 테이트 몰살 사건의 희생자들 모두의 신원이 결국 확인되었다. 차안에 있던 청년은 경비원 개럿슨을 찾아왔던 스티브 패런트(Steve Parent)라는 청년이었다. 집밖에서 발견된 시체 두 구는 애비게일 폴거와 그의 애인 보이텍 프리코스키였다. 샤론과 함께 줄로 묶여있던 사람은 제이 세브링이었다. 스티브 패런트와 제이 시브링, 그리고 보이텍에겐 22구경 권총이 쓰였다. 총 5명의 희생자 중, 스티브 패런트를 빼고는 수차례 칼에 찔렸다. 세브링은 얼굴을 강타당했고, 프리코스키는 둔기로 머리를 여러차례 맞았다.칼에 찔린 상처로 미루어 보아 동일한 칼이 사용된 것으로 보였다. 마치 종검같은 것이었다. 샤론 테이트의 시체 가까이서 발견된 칼은 벅(Buck)사의 제품으로 걸쇠가 달린 주머니칼 종류인 흔치않은 칼이었는데, 가정부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샤론 테이트는 일생동안 미인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어렸을 적에도 미인대회에서 상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의 꿈은 모델이 아니라 영화배우였다. 마침내 1963년 22살 되던 해에 그녀는 프로듀서 마틴 랜소호프(Martin Ransohoff)로부터 후원자를 얻게 되었다. 랜소호프의 도움에 힘입어 그녀는 '비버리힐빌리즈(Beverly Hillbillies)'와 '패티코트 정션(Petticoat Junction)'과 같은 시리즈물과 '에미리의 귀화(The Americanization of Emily)', '샌드파이퍼(The Sandpiper)'와 같은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 1965년 그녀는 데이빗 니븐(David Niven)과 데보라 커(Deborah Kerr)가 주연한 '악마의 눈(The Eye of the Devil)'에서 처음으로 비중있는 역을 맏게 되었고, 이 영화에서 신비한 마력을 지닌 시골처녀를 연기하게 된다. 1966년 여름, 런던에서 영화촬영을 하는 동안 그녀는 로만 폴란스키를 만났고, 그 당시 그는 카트린느 드뇌브(Catherine Deneuve))와 쿨 뒤 삭(Cul de Sac)이 주연한 '증오(Repulsion)'이란 영화를 통해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있었으며, 이 영화는 많은 유럽영화상을 받게 되었다. 폴란스키는 그의 영화 '겁없는 흡혈귀 사냥꾼들(The Fearless Vampire Killers)'에서 샤론을 주연으로 내세웠다. 이 기간동안 그녀는 폴란스키의 애인이 되었다. 관계는 꽤 오래 지속되었고, 영화 '악마의 씨(Roemary's Baby)'가 끝날 무렵 그와 샤론은 결혼하였다. 1969년 그들은 도리스 데이(Doris Day)의 아들 테리 멜쳐(Terry Melcher)가 소유한 시에로 드라이브에 있는 저택을 임대하였고, 2월 중순 그곳으로 이사하였다. 샤론의 명성은 좀처럼 폴란스키처럼 치솟지 못했고, 이것은 그녀가 '인형의 계곡(Valley of the Dolls)'에서 제니퍼역을 맡았음에도 변함이 없었다. 그녀의 경력이 이렇듯 기대에 못미친 주요 원인은 연기력을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배역 모두가 예쁘게만 보이면 그만인 것들이었다. 임신을 하자, 그녀는 영화는 잠시 포기하게 되었다. 아기와 남편이 그녀 인생의 두가지 축이 되버린 것이다. 그녀를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녀를 독특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뛰어난 미모와 눈에 띄는 입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다른 젊은 여배우들처럼 위선적인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성격이었다. 그녀는 매우 사랑스러웠고, 한편 순수하기도 했다. 심지어 헐리우드와 같이 질투가 횡행하는 곳에서도 모두들 샤론을 좋아했다. 그녀의 가슴과 등에난 5개의 칼자국은 그녀의 삶에 종지부를 찍었고, 칼은 그녀의 심장과 폐, 간을 관통하여 과다한 내부 출혈을 일으킨 상태였다. 나머지 11개의 칼자국은 단순히 그녀의 시체를 모독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그녀의 아기 폴 리차드 폴란스키(Paul Richard Polansky)는 그녀와 함께 죽었다. 그녀의 친구 애비게일 폴거는 사망할 당시 25세였다. 폴거 커피 회사의 상속녀로서, 그녀는 매우 안락한 삶을 누려왔다. 196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사교계로 데뷰했고, 레드클리프 대학을 졸업했다. 다른 부잣집 딸들과 마찬가지로 주어진 시간을 좀더 의미있게 보낼 수 없을까 고민하던 끝에, 결국 그녀는 사회 봉사에 열성적이 되었다. 1968년 애비게일 폴거는 그의 애인 보이텍 프리코스키를 만나게 되었고, 그는 그녀를 샤론 테이트와 로만 폴란스키에게 소개했다. 그녀는 곧 제이 시브링의 미용 사업의 후원자가 되엇다. 로스엔젤레스 게토에서의 그녀의 사회봉사활동은 그녀를 지치게 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과 같은 헌신이 산재해있는 무관심과 가난 같은 문제들과 맞서 싸우는데 너무나 미약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그들의 고통이 피부 속까지 느껴져"라며, 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프리코스키와의 관계도 그녀에겐 근심거리였다. 둘다 너무 마약에 의존하는 게 탈이었다. 사회 봉사활동에서의 좌절과 보이텍과의 관계가 거의 매일 가졌던 심리치료사와의 대화에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용기를 내서 곧 보이텍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그녀의 삶을 제 궤도에 올려놓을 찰나, 28개의 칼자국이 그 모든 것을 앗아갔다. 보이텍 프리코스키는 사망할 당시 32살이었다. 그는 폴란드에서부터 로만 폴란스키의 오랜 친구였다. 폴란스키에 따르면, 그는 "재능은 별로 없었으나 매력이 넘치는" 친구였다. 바람둥이였던 그는 이렇다할 생계유지수단이 없었고, 근본적으로 애비게일 폴거에게 얹혀살고 있었다. 그가 사람들에게 작가라고 말하고 다니는 동안, 그가 매력 넘치고 명랑하며 재미있는 "약물중독자"였다는 사실은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얼마나 방탕한 생활을 했는지, 또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는 몰라도 두 번의 총격과 두부에 가해진 13번의 타격, 그리고 51개의 칼자국은 그의 생에 갑작스런 종말을 가져왔다. 제이 세브링은 프리코스키와는 전혀 다른 경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미국에서 최고 남성전용 헤어스타일리스트였으며 남성 전용 머리용품과 매장을 개척하는데 엄청난 세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의 고객 중엔 프랭크 시나틀, 피터 로포드, 조지 페퍼드, 폴 뉴먼, 스티브 맥퀸등이 있었다. 그의 새 회사 'Sebring International'은 남성전용 미용실과 머리손질 용품을 체인점화하고 있었다. 그는 일명 '뭇여성의 남자'로 알려져 있었으며 숱한 여성들과 데이트를 즐겼다. 한때 샤론 테이트도 그의 애인이었는데, 그녀가 폴란스키를 알게된 후 그와는 관계를 정리했었다. 세브링의 화려한 애정행각엔 어두운 이면이 있었다. 그는 종종 여자친구들을 묶어놓은 다음, 관계를 갖기 전 채찍질을 하곤 했다. 그의 성공적인 경력에도 불구하고 진짜 제이 시브링은 외롭고 불안한 남자였다는 것은 몇몇 증거를 통해 나타났다. 한 번의 총격과 7개의 칼자국은 그 불안감에서 그를 해방시켜 주었다. 샤론 테이트의 아기를 제외한 희생자들 중 가장 어린 사람은 18세의 스티븐 얼 패런트였고, 그는 엘 몬티(El Monte)에서 아빠엄마 그리고 형제들과 살고 있었다. 토요일 저년 11시 45분 쯤에 패런트는 손님용 별장을 지키는 경비원이었던 윌리엄 개럿슨을 만나기 위해 샤론의 저택에 오게 되었다. 패런트는 오디오광이어서 그는 개럿슨에게 그가 산 라디오를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개럿슨은 흥미를 보이지 않았고 패런트는 새벽 12시 15분 쯤에 그 집을 떠났다. 이 청년은 6월달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을에 대학교를 가기 위해 이일저일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건 22구경 권총의 총알 네 개뿐이었다. 레노 라비앙카는 존경받는 사업가였다.그의 아버지는 'State Wholesale Grocery Company'의 창립자였으며 레노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가업에 몰두하였다. 그는 누구에게나 호감을 살 만한 남자였으며 어떠한 원한도 사지 않을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조용하고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는 수차례 칼에 찔려 사망했는데, 총 26번이었다. 로즈마리 르비앙카는 멕시코 태생의 매력적인 38살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어릴적 고아로 태어나 12살때 입양되었다. 그녀는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했고, 1940년대에 첫남편을 만났으며 2명의 아이들을 낳았다. 1958년 이혼한 이후 그녀는 로스페리즈 여관에서 여급으로 일할 때 레노를 만나게 되었다. 로즈마리는 매우 성공적인 사업가로 성장했다. 수익성 좋은 부티크를 운영했을 뿐 아니라 증권분야에서의 신중한 투자는 2백육십만 달러에 상당하는 부를 불러들였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인생을 시작해 일생의 대부분을 여급으로 살아온 사람치곤 꽤 좋은 인생을 일구어낸 셈이다. 그녀는 41번 칼에 찔렸으며 6번째에 벌써 죽음에 이르렀다. 이틀 연속 7명의 무고한 성인과 한 명의 아이가 잔인하고 동기없는 범죄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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