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
1969년 11월 11일 35살의 지방검사인 빈센트 T. 버글리오시는 테이트-라비앙카 살인사건을 맡게 되었다. 보조 검사는 지방검사 사무실의 부장을 맡고 있던 애론 스토비츠라는 사람으로 임명되었으나 그는 나중에 다른 사건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버글리오시는 골치아픈 사건을 맡은 셈이었다. 맨슨 가족이 테이트-라비앙카 사건의 주모자였다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일을 찰리 맨슨이 지시했다는 것을 동시에 밝혀내야 했다. 찰리는 4명의 추종자들을 범죄현장으로 보내기만 했을 뿐, 자신이 직접 갔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로즈마리와 레노 라비앙카를 직접 손으로 묶었고, 다른 세 명에게 죽이라고 지시한 사실이 있었다. 검사는 찰리가 그의 '가족'에게 거의 무한하다고 할 수 있을 만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증거를 확보해야 했고, 찰리가 이 7명의 희생자 모두를 살해할 만한 충분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배심원들에게 확신시켜야 했다. 처음엔, 버글리오시는 조금 헤맸다. 증거라곤 수잔 앳킨스가 버지니아 그레이엄에게 들려준 이야기와 알 스프링어와 래리 드카를로가 경찰에게 말해준 이야기, 그리고 맨슨과 그의 꽃순이들에 대해 사람들에게 물어본 것 몇가지 밖에 없었다. 12월 3일이 되어서야 버글리오시는 맨슨 가족 중에 살인사건의 실제적 범인이 누구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찰리는 테이트 저택에 찰스 '텍스' 왓슨, 수잔 앳킨스, 패트리샤 크렌윙클, 린다 카사비안을 보냈다. 라비앙카의 집에 갈 때 찰리와 동행한 사람은 왓슨, 크렌윙클, 레슬리 반 호텐이란 사람이었다. 앳킨스와 카사비안 그리고 스티브 '클렘' 그로건은 차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앳킨스의 증언은 기소에 거의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녀에게 무죄 판결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만약 앳킨스가 수사에 협조할 경우, 힌먼, 테이트, 라비앙카 이렇게 세 번의 살인사건 모두에서 사형을 면할 수는 있었다. 그녀가 수사에 어디까지 협조할 수 있느냐에 따라 1급살인죄과 종신형이 판가름 날 것이었다. 수사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샤론 테이트의 거실 안쪽 문에서 발견된 패트리샤 크렌윙클의 지문에서부터였다. 이 증거와 더불어 스판 농장에서 발견된 22구경 권총에 쓰인 탄환 또한 발견되었다(테이트 살인사건에 쓰인 총은 22구경이었다). 버글리오시의 첫번째 임무는 대배심원들로 하여금 찰리와 살인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었다. 대배심원 앞에서 증언할 차례가 되자 수잔 앳킨스는 지난번 로니 하워드와 버지니아 그레이엄에게 들려주었던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태연히 되풀이 했다. 그녀가 자행한 극악무도한 짓에 대해, 어떠한 죄의식이나 후회도 전혀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배심원들은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증언을 경청했다. 비커 대니 드카를로는 그와 맨슨, 왓슨 외의 다른 일당들이 스판 농장에서 사격연습을 했을 당시 22구경 번트라인사 권총을 사용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또 테이트 살인사건에 쓰인 세 가닥으로 꼬인 나일론 줄이 농장에서 쓰던 것과 동일하다고 증언했다. 배심원들이 버글리오시가 바라던 판결을 내리기까지에는 단지 20분가량이 소요되었을 뿐이었다. 찰스 맨슨, 찰스 '텍스' 왓슨, 패트리샤 크렌윙클, 수잔 앳킨스, 린다 카사비안은 3건의 살인죄, 1건의 살인공모죄를 언도받았고, 레슬리 반 호텐은 2건의 살인죄와 1건의 살인공모죄를 언도받았다. 며칠 후 로즈마리 라비앙카의 지갑이 한 주유소의 화장실에서 린다 카사비안이 남겨둔 그대로 발견되었다. 지갑은 변기의 물통과 벽 사이에 꽂혀 있었다. 이 증거물품은 나중에 맨슨이 수잔 앳킨스를 사주하여 그녀가 자신의 증언을 번복하려 할 경우, 아주 유리하게 쓰일 수 있는 주요 증거 물품이었다. 또 하나의 주요 증거가 '발견'되었다. 버나드 와이즈의 아들이 발견하여 석 달 반 전에 경찰에 건네준 손잡이가 파손된 흔치 않은 모델인 22구경 하이스탠더드 롱혼 권총이었다. 신문에서 그 판결기사를 읽고 난 버나드 와이즈는 혹 자신이 신고한 권총이 살인사건에 쓰인 권총이 아닌지 전화를 걸어보았다. 몇 번 전화가 돌려진 후 마지막으로 받은 경찰관은 와이즈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흰 신고된 총기를 그렇게 오래 보관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경과하면 바다에 버리죠." 와이즈는 "테이트 사건의 거의 유일한 증거가 될 수도 있는데, 그걸 당신네들이 그렇게 쉽게 내다버렸다니 말이나 됩니까?"라고 반문했고, 그는 "이봐요, 아저씨, 어떻게 우리가 신고한 물건 하나하나에 다 신경을 쓸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와이즈는 뉴스 기자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그 기자는 다시 LAPD로 연락을 취했다. 그 권총은 결국 분실 장소인 벤 누이 경찰서에서 재차 '발견'되었다. 몇 가지 검사를 거친 결과, 이 총이 바로 살인 사건에 쓰인 것이 거의 확실했다. 남은 일은 권총과 맨슨을 서로 연관시키는 것이었다. 결국 랜디 스타라는 자가 연결고리가 되어 주었다. 한때 그가 권총의 주인이었는데, 그것을 맨슨에게 넘겨주었던 것이다. 한편, 테이트 살인사건의 범인들이 살인 직후 증거 인멸을 했던 지역의 소유자 경찰이 만나게 되면서, 수사는 새로운 진전을 맞이했다. 맨슨과 그의 여자들에게 자신의 차를 빌려준 스판 농장의 종업원이 차종과 번호를 경찰에 제공했다. 그 증거는 기소를 하는 데에는 별다른 필요가 없을 수도 있었지만, 찰리가 테이트 살인 사건에 직접 가담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버글리오시는 살인동기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버글리오시는 그것이 바로 'Helter Skelter', 즉 맨슨이 인종전쟁이란 소재로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계획에서부터라고 비롯된 생각했다. 멜쳐로부터 시에로 드라이브의 저택을 구입한 루디 앨토벨리는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인물이었다. 그는 캐서린 헵번이나 헨리 폰다와 같은 대배우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여행을 많이 다녔기 때문에 그는 폴란스키 부부에게 그 집을 임대했고, 대신 자신은 손님용 별장에 머물곤 했다. 1969년 3월 맨슨은 희생자 다섯 명중 네 명이 머물고 있던 그 집에 찾아갔었다. 찰리는 자신이 멜쳐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샤론이 초대한 손님 중 하나가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말투로 그를 돌려 보냈고, 그러는 사이 그는 "도대체 저 음침하게 생긴"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 하던 샤론의 얼굴을 볼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 다음, 맨슨은 손님용 별장에 찾아가 그곳에 있던 루디 앨토벨리에게 저 사람들이 이쪽으로 가보라고 해서 왔다고 말했다. 엘토벨리는 자신의 집에 사는 사람들을 방해하지 말라고 타이르며, 테리 멜쳐가 어디로 이사갔는지는 자기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맨슨은 그 집의 외형을 알고 있었고, 누가 그 안에 살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찰리는 그를 내쫓은 대가로 그 집에 사는 사람에게 일종의 복수를 하고 싶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앨범작업을 매정하게 거절한 테리 멜쳐에게도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 'Helter Skelter'의 범죄가 왜 하필 그 집에서 일어났는지에 대해 설명이 가능했다. 맨슨 자신은 자주 법정 출두를 하면서 연극의 대가가 되어갔다. 버글리오시는 자신이 관찰한 그의 행동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재판은 공식적으로 1970년 6월 중순부터 시작되었다. 판사는 찰스 올더라는 사람이었다. 협박이나 대중으로의 노출을 방지하기 위해 그는 일단 선발된 배심원들을 재판이 끝날 때까지 한 곳에 가두어 놓기로 결정했다. 판사 자신도 경호원을 데리고 다녔고, 집도 경찰들의 감호 아래 놓이게 했다. 12명의 배심원 중 여자는 5명, 남자는 7명이었고, 나이는 25세에서 73세에 걸쳐 있었다. 그들이 가진 다양한 직업 중엔 전직 경찰도 들어있었다. 버글리오시는 맨슨이 "떠돌이 부랑자"이며 실패한 기타리스트이자 가수며, 그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라 부르고 다니면서, 평화와 사랑을 노래하는 히피로 위장한 살인자인 동시에 권력에 대한 욕구를 강렬한 폭력적 살인 충동으로 치환시키는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하며 첫 운을 떼었다... 버글리오시는 맨슨이 추종자들에게 살인을 지시한 것이긴 하나, "그들 모두가 이 대략학살에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을 증명하고도 남는 증거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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