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이마에 X자를 칼로 붉게 새긴 모습으로 배심원들에게 처음 그 얼굴을 보인 맨슨은 스스로를 변호하는데 애썼다. 그의 옆에는 필요없는 사항에 집착하기 도사인(덕분에 증인과 판사, 배심원들은 지루함에 치를 떨어야 했다) 어빙 카나렉이라는 늙다리 변호사와 헤슬리 반 호튼의 변호사인 일명 "히피족 변호사"로 알려진 로날드 휴즈가 있어 그를 도왔다. 맨슨의 변호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그 "가족"을 확실히 손아귀에 잡아두는 것이었다. 만약 추종자들이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경우 맨슨은 그걸로 끝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과 그의 "가족" 구성원들 간에, 특히 현재 기소되어 있는 구성원들과 효과적인 의사소통 매개체를 만들어 놓아야 했다. 그는 감옥에 가지 않은 외부의 구성원들에게 그의 의사를 전달했고, 그들은 다시 기소된 구성원들에게 그 뜻을 전했다. 이 지령이 얼마나 살벌한 것이었는지는 바바라 호이트에게 일어난 일을 보면 알 수 있다. 호이트는 검찰측의 증인이었는데, 만약 재판정에서 증언을 하면 그녀와 그 가족은 모두 죽임을 당할 거라는 협박을 당했다. 그후, 맨슨가족의 한 여자가 유인을 하여 그녀를 호놀루루까지 데려가서는 치사량의 LSD를 투여했다. 운좋게도, 그녀는 병원에 늦지 않게 도착하여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맨슨은 법정에서 그의 여자들에게 상당한 통제력을 보여주었다. 그때쯤 수잔 앳킨스는 대배심원 앞에서 증언을 번복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범행에 참여했다는 것만 모호히 알려줄 뿐, 사랑하는 찰리는 쏙 빼놓은 이야기를 늘어놓아 사람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증거가 제출될 때마다 상황은 맨슨과 그의 여자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버글리오시에 의하면 일종의 "관행"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연극은 맨슨이 올더 판사에게 시비를 걸다 판사에게 달려들며 "너는 모가지가 떨어져도 싸!"라고 소리치는데서 그 절정에 달했다. 앳킨스와 크렌윙클, 호텐은 다같이 일어서서 라틴어로 찰리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맨슨과 그의 여자들이 법정 바깥으로 끌려나가고, 놀란 올더 판사는 배심원들에게 방금 겪었던 것을 없던 것으로 하라고 말했지만, 그 파급효과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배심원들은 찰리의 본래 모습을 목격한 셈이었다. 22주의 재판 기간이 지나고, 검찰측에 이어 이제 피고측 변호인이 일어서야 할 때가 왔다. 올더 판사는 맨슨과 여자들을 변호하는 변호사들에게 첫 번째 증인 출석을 명했는데, 이에 대한 피고측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감사합니다, 재판장님. 더 이상 없습니다." 법정은 술렁거렸다. 그러자 세 명의 여자들이 증언을 하겠다고 외쳐댔다. 판사를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 행동에 모두 놀랐다. 여자들은 그들이 살인을 계획하고 주도했으며 찰리는 이 일과 아무 관련이 없노라고 증언할 태세였다. 레슬리 반 호튼의 "히피족 변호사" 로날드 휴즈는 이의를 제기하고 맨슨의 뻔히 들어다 보이는 책략에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내 의뢰인을 계속 음해하려는 상태에서 저는 더 이상 재판과정에 임할 수 없습니다." 며칠 후, 로날드 휴즈는 실종되었다. 재판이 끝나고, 그의 시체가 벤츄라 군(郡)의 두 표석 사이에 끼인 채로 발견되었다. 맨슨 가족의 한 일원은 후에 그들이 그를 살해했다고 시인했다. 이어서 변호를 맡을 사람을 급히 구해야 하는 가운데, 맥스웰 키이스라는 사람이 지명되었다. 재판이 재개되었을 때 맨슨과 그의 여자들은 올더 판사가 "로날드 휴즈를 처치했다"고 주장하며 그 때문에 다시 불리하게 되었다고 소란을 부렸다. 대부분, 피고측 변호인들은 실망스런 작태를 연출했다. 패트리샤 크렌윙클의 변호인이었던 폴 피츠제럴드는 그의 의뢰인보다 맨슨을 옹호하는데 더 급급했다. 수잔 앳킨슨의 변호인인 데이 쉰은 의뢰인을 위해 몇 마디 되지도 않는 짧은 변호를 했을 뿐이었다. 어빙 카나렉은 앞뒤가 안맞는 엉터리 변호를 며칠 동안이나 끌고 나갔다. 결국 올더 판사는 의사 방해죄로 그를 기소했다. 맨슨 역시 카나렉의 김빠지는 변호를 지루해했고, 결국 이렇게 소리쳤다. "이봐! 그냥 가서 앉아있어! 오히려 더 불리하게 됐잖아!" 1971년 1월 15일, 재판이 시작된지 7개월만에 배심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기 시작했다. 9일이 지나고, 판결은 내려졌다. 재판장을 둘러싼 경비는 더욱 삼엄해졌는데, 그 이유는 맨슨 추종자들이 해군기지에서 수류탄 한 상자를 훔쳐 소위 "심판의 날"에 쓰려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배심원들은 찰스 맨슨과 패트리샤 크렌윙클, 수잔 앳킨스, 레슬리 반 호튼에게 각각 살인죄와 살인 공모죄를 언도했다. 찰스 "텍스" 왓슨은 범죄자 인수 절차와 다른 복잡한 법적 문제 때문에 그 해 말에 가서야 법정에 출두할 수 있었는데, 그 역시 살인죄와 살인 공모죄가 내려졌다.1971년 3월 29일 배심원들은 재판의 처벌기간 동안 그들의 심의를 모두 마쳤다. 맨슨과 세 명의 여자 피고인들은 판결문의 낭독을 앞두고 머리를 밀었다. "위와 같이 명명된 사건의 배심원인 저희는 피고인 찰스 맨슨에게 1급살인죄를 언도하며... 이에 사형에 처할 것을 바라는 바입니다." 패트리샤가 한마디 했다. "이제 니들 처지가 그렇게 될 거야." "문단속 잘하고 애들 간수 잘해." 수잔 앳킨스가 덧붙였다. 네 명의 피고인 모두 사형을 언도받았다. 1971년 4월 19일 대법원 판사 찰스 H. 올더는 판결문을 낭독했다.
판사는 배심원들 각각과 악수했다. "만약 제게 배심원들에게 상을 줄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저는 여러분들 모두에게 그 상을 수여할 것입니다." 후일, 로버트 부소레일, 찰스 맨슨, 찰스 왓슨, 브루스 데이비스, 스티브 그로건은 게리 힌먼과 도날드 (쇼티) 시어를 살해한 죄로 기소되었다. 버글리오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1972년 캘리포니아는 사형제도를 폐지하였고, 따라서 피고인들 모두에게 종신형이 내려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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