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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맺힌 가난
그 당시에는(자유당시절) 있는자, 가진자, 배운자들은 자신들의 끗발을 자랑하며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고, 그들의 사대관은 미국을 동경하며 민주와 평등을 외치고 있었지만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루 하루의 끼니를 걱정하며 자포자기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민주주의는 어느 개인만을 위하여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지금까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정치를 하고 있으며, 그들은 남미(南美) 같이 소수의 특권층만이 자유를 만끽하였던 그런 시절이 민주주의가 행하여졌던 중요한 시기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우리주위에는 여기에 동조하며 꼭두각시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모든 국민들이 이런 잘못된 편견을 가지게 많은 노력을 하였던 사람들은 박정희 생전에 반대를 위한 반대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고, 그 후에 박정희보다 훨씬 훌륭한 정치를 펼칠 수 있을 것 같이 반대를 위한 반대에 목숨을 걸었던 그들이, 막상 정권을 잡아서는 형제자매를 비롯하여 처갓집 사람들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일가친척들에게 마음대로 해먹으라고 특권을 부여하고는, 그들의 방패막이가 되어 가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나라를 말아먹는 정치를 펴다가, 결국에는 박정희의 발바닥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스런 지도력을 보였다. 그 당시에 이미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생활하였던 인간들이, 자신의 허벅지 살을 도려내어 높은 사람들에게 바쳐야 하는 힘없는 백성들이 당하여야 하였던 그 어둡고 캄캄한 한 많은 세상을 어찌 이해 할 수 있을 것인가? 박정희를 욕하는 그들은, 조선말엽에 백성들의 고혈과 인육을 뜯어먹으며 나라를 팔아먹었던 그 양반 지식인층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특권층이었던 것이다. 60년대 초 손바닥만한 땅을 가지고 자신의 생활도 제대로 못하고 있던 자작농과,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어야 했던 소작인, 도시에서 하루 하루를 품팔이하며 살아가야 하는 노동자들이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을 때, (이런 상황은 반만년동안 거의 변함 없이 계속되었지만)그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은커녕 당장 내일 먹을 양식을 걱정하여야 하였다. 농사를 지으면 지주들이 거의 다 가져갔고, 어디 가서 일을 하고자 하여도 일자리가 없는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포자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술과 노름에 빠져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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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산수도 호암미술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