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아이들

대한민국의 교육 목표가 대학입시에 맞추어져 있는 마당에 인성교육 같은 것은 소외될 수밖에 없고, 이렇게 잘못되고 있는 교육의 결과는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도덕불감증이 심하여 퇴폐향락과 부정부패·인명경시 등의 심각한 사회문제를 앉고 있는 사회에 더 많은 도덕불감증 환자를 배출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와 선생들은, 학교의 명예와 선생의 자질이 걸린 대입시험에서 더 많은 학생들을 명문대에 합격시키기 위하여 시험과목에서 제외된 것은 아예 교육일정에서 빼 버렸고, 학부모들조차 시험에 나오지도 않는 인성교육 같이 쓸데없는 것은 가르치지 말라고 강요하고 있다.

학부모와 선생들은 그들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또는, 겪고 있는 위계에 의한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숨막혀 하면서 그들의 자식과, 그들이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런 사회적 불평등에서 어느 정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검사·판사·변호사·의사 등을 만들려고 피나는 노력을 시킨다. 선생들은 이럴 가능성이 높은 아이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느끼면서 호의를 베푼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명문대에 많이 합격할수록 선생의 가치가 그만큼 높아지기에 더욱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개밥의 도토리처럼 점점 밀려나게 되어 심할 경우 인간 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할 정도로 냉대를 당한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급의 전체 성적을 깎아 먹는 공부 못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인사고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전생에 원수라도 진 것 같은 인간일 뿐이다.

이런 원수 같은 학생의 학부모가 돈 봉투라도 가져오면 그런 대로 참고 넘어가지만, 집에서도 신경 쓰지 못하는 아이들은 인격형성에 가장 중요한 시기를 어둡고 음산하게 보낼 수밖에 없다.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몫이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선택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이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마찬가지이지만 우리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여 심각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인생을 결정짓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부는 암기식 위주의 교육으로써,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외울 수 있는 머리 좋은 아이들은 잘 적응하여 놓은 점수를 얻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많은 아이들은 겉돌 수밖에 없고, 그 아이들이 지니고 있는 개별적인 능력은 인정받지 못한 채, 붕어빵 찍히듯이 모든 아이들이 규격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부모와 선생들의 자기편견에 의해(사회전체가 가지고 있는 편견) 필기하고 외우는 주입식 교육을 강요하고 있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의 방식과, 다양한 종류의 인생이 이런 획일화된 교육에 의해 뭉개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이상한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배우지도 않고 들어보지도 못한 다양한 삶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 가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인생에서, 평생을 통해 단 한번도 써먹지도 못할 암기식 교육에 의해 너무 멀리 돌아서 자신의 자리를 잡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비현실적인 교육제도를 알고 있으면서도 인성교육에 등한히 할 수밖에 없는 선생들은, 상부보고용 서류작성에(높은 어른들의 탁상행정으로 -돌아다니면서 확인하는 짓은 천한 행동이기에- 실질적인 현장의 실태를 살피기 보다 서류로 판단하려는 권위의식이 이런 불필요한 제도가 관행처럼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시간과 노력이 낭비되고 있으며, 학교에서는 부족한 인력으로 학생들을 맡아야 하는 일선교사들의 과중한 업무 때문에 보다 나은 교육을 위해 재충전할 시간도 없이 짜여진 시간표에 의해 교사들은 지금도 혹사당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인생의 주인공으로써, 주관과 건전한 판단으로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기 위하여 교육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려 노력하는 것이고, 학교와 선생들은 자신들의 편견에 의해 그들의 장래를 망치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되는 것이다.

 

  

 

홍매도 대련
紅梅圖 對聯

又峯 趙熙龍(1789∼1866) 朝鮮 19世紀 中葉
종이·水墨淡彩 各145.0×42.2

호암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