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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연재할 글들은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Village/SOHO에도 소개한 바 있는 소호는 정말 변모에 변모를 거듭하여 "여시"(?)같다는 느낌을 주는 곳이지요. 90년대초만 하더라도 썰렁하고 무서워서 저녁에 소호를 가지 못했는데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마치 진한 화장을 하고 호객 행위를 하고 있는 듯 하니까요.
분위기 I
얼마전 친구가 한국에서 놀러와 구경차 소호를 돌아다니다 너무 추워서 한국 사람들도 많이 찾아가는 Bar 89을 들어갔다. 그때 시간이 퇴근시간을 5시를 조금 넘어선 시간. 우리는 발음이 잘 안될 정도로 얼은 입의 근육을 뒤틀어 "Two coffees, please."라고 겨우 의사 소통을 한 후 몸을 감싼 목도리, 코트등을 벗고 정신을 차린 후 주변을 둘러 보기 시작했다. 어쩐일인지 평소에 동양 사람들이 몇 테이블은 죽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이 곳에 그날은 우리만 유일한 황인종이었고 나머지는 다 근사하고 고상하게 차려입은 SoHo족들이 앉아 있었다--어째 들어 올때 마주치는 시선들이 쬐께 이상터라... 또 왠걸... 다들 길죽하고 주둥아리가 유난히 큰 칵테일 글래스에 너나 할 것 없이 레몬 한조각이 담긴 액체를 마시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얀 머그잔에 커피를 마시는 것 역시 우리밖에 없었다. 나도 열심히 뉴욕타임즈도 읽고 해서 유행을 모르는 "촌것"은 아니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아주~ 스타일 구기고 있게 된 것. 그새 아주~마가 된 것일까? 암튼 눈총을 주는 사람 하나 없으나 눈총을 받고 있다고 생각을 계속하며 커피잔을 홀짝였다. 아주~마 답게 Refill까지 당당하게 요구하며. 상상컨데 일 끝나고 저녁식사나 우아하게 공연을 보러가기 전 칵테일 한잔씩 하면서 그야말로 "쏘셜라이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카타로그에나 나오는 사람들 처럼 멋있게 차려입고 게다가 무언가 있어 보이는 듯한 사람들. 웅성거림. 간간히 들리는 칵테일잔 소리. 뿜어대는 담배 연기. 달라진 소호의 분위기에 다시 한번 어깨를 움추렸다.
분위기 II
미술을 좋아한다. 어렸을때 미술학원 다녀서 상 안타본 사람 없겠지만 그래도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색채때문에 한 때는 미술을 전공하겠다고 맘을 먹은 적도 있었다. 그래서 뉴욕에 살면서 세계에 내노라하는 작품이 걸린 미술관이 있다는 것을 항상 심적으로 든든히 여겼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미술관=도둑놈들 창고 라는 등식 때문에 미술관 가기를 잠시 거부한 적도 있었지만. 소호는 그야말로 갤러리로 유명한 곳이다. 아니 용신s 말씀대로 "곳이었다"라는 과거형을 써도 좋을 듯 싶다. 소호의 갤러리는 그렇다. 개인적으로 많이 가 보지는 못했는데 거기에 가면 너무 맘이 편치 못해서이다. 일단 관람객이 가뭄에 콩나듯하다. 갤러리 오프닝이면 모르겠지만. 그리고 갤러리는 보통 그리 크지 않으니까 내가 그림을 보고있는 건지 리셉셔니스트가 나를 보고있는 건지 휑한 공간에 나돌아 다니는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편치 않은 관계는 사실 갤러리 문을 쭈빗거리며 들어오는 나의 모양새--이 손님은 "구매자"로서 보이지 않음--라는 첫인상으로부터 이미 시작된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소호는 갤러리의 천국이 아닌 나의 환상적인 윈도우쇼핑 동네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소호 I
여성이라면 대부분 옷에 관심이 많다. 나 역시 돈이 없어 못 사서 안타까울 따름이지 옷에 대한 관심은 무지 많다. 이런 나같은 사람에게 소호는 보기에 썩 좋은 그림의 떡이다. 소호는 쇼핑 천국으로 탈바꿈을 한지 꽤 되어가니까. 소호는 누구나 들어서 익히 알만한 부띠크가 많은 곳은 아니다. 물론 미국 사람들의 유니폼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심을 품게할 정도로 브랜치가 많은 Gap 스토어도 많지만(Gap, Banana Republic, Old Navy가 모두Gap회사의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계시리라) 듣도 보도 못한 가게도 많다. 한국 디자이너도 몇개 있는 것 같더라. Shin Choi 그리고 또 누구더라? 그리고 소호의 옷은 다소 실험적인 옷도 많고 아방가르드한 옷도 많다. 옷가게만 많은 것이 아니다. 신발가게, 구두가게, 그리고 주방 용품 가게, 가구점등. 각 매장의 조명, 인테리어, 디스플레이도 독특한 것이 많다. 소호도 점점 커지는 것 같다. 예전에는 Prince, Spring Street 그리고 West Broadway에서 East Broadway정도면 대충 커버했는데 이제는 어디까지가 소호인지 잘 모르게 뒷골목에도 근사한 가게를 발견할 수가 있다. 주머니가 두둑하면 갈 만한 곳이 아닌가 싶다.
소호 II
소호하면 두 "대가"가 떠오른다. 언젠가 사물놀이에서 일을 할 때 기회가 생겨 소호에 로프트를 아주 오래전부터 가지고 계신 한 한국 화백님-존함이 가물가물-을 방문한 적이 있다. 부부가 다 미술을 하시는 분인데 한국에 돌아가 춘천 부근 산골로 들어가셨다는 얘기를 후에 사물놀이에서 다시 들었다. 엄청나게 큰 텅빈 공간에 작업실, 응접실, 부엌이 배치된 공간. '영화 고스트에 나온 바로 그런 집아냐!' 그 때만 해도 소호는 저녁에 스산해서 가지 않았던 바로 그 때였다. 집에 대한 나의 감상을 얘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미술가 부부 얘기다. 지긋이 나이가 드신 분들인데 미술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신 분들이다. 용신s가 개탄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아니지 싶다. 나는 그분들을 통해 미술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책을 많이 읽고 자기 작품에 대해 "연구"를 하는구나 하는 것을 처음 느꼈다. 집에는 별별 책들이 다 있었다. 미술가란 색에 대한 뛰어난 감각을 가진 재주꾼일뿐이다라는 인식을 바꾸어 놓은 분이다. 그리고 다른 한 분은 바로 백남준 선생님. 강서회관앞에서 처음 뵈었을 때의 그 모습을 나는 잊지 못한다. 비는 부슬 부슬 오고. 김덕수 선생님과 강서회관 앞에서 백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웬 (죄송) 거지가 하나 걸어오는 것이었다. 옆겨드랑이에는 신문지를 끼고, 한 발은 다쳤는지 붕대를 감고 신발을 신지 않은채 쩔둑거리면서 오는 것이 아닌가. '아, 한국거지가 있다더니 바로 저 사람이구나...'라고 속으로 쯧쯧 거리고 있는데 그 때 "아이구, 선생님 안녕하세요!"라며 김선생님이 냉큼 달려가시는게 아닌가! 엥? 그때 이미 백선생님의 명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니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알아주는 대 미술가가 바로 저분이란 말인가... 그러한 첫 대면과 나눈 대화에서 참 기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