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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마다 대학시절을 회상하면 여러 생각들이 나겠지만 나에게 있어 "낭만"을 선사한 곳이 있다면 바로 그곳은 St. John The Divine이라는 성당이다. 교양과목으로 미술사를 한 학기 들은 것이 계기가 되어 대학 2학년 때 처음 이 성당을 들어 가 보고는 매우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St. John은 콜럼비아 대학에서 정말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학년이 되서야 들어가 본 것은 아마도 그 전까지는 그렇게 건축물, 아니 아예 예술을 직접 보고 즐긴다는 것에 별로 익숙치 못해서였을 것이다.
각설하고 이 웅장한 성당을 처음 들어섰을 때 그 적막함과 웅장함 그러나 은은히 스테인드 글래스를 통해 들어오는 채광은 마치 신비로운 세계에 들어서는 것과 같은 특별한 체험을 선사해 주었다. 모네는 한 성당의 그림을 여러 차례 그렸다고 한다. 하루에도 시간에 따라, 그리고 계절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성당의 모습을 캔버스에 실었다고 하는 얘기를 듣고 나는 한 때 이 성당을 그려 보겠다고 마음을 먹어 스케치를 시도했던 기억이 있다. 결국 2번밖에 그리지 못하였지만... 그리고 나는 시간이 나면 일요일마다 성당 맞은 켠에 위치한 헝가리안 카페에 앉아 커피와 치즈데니쉬를 먹으며, 뉴욕타임즈를 읽으며, 옆의 사람들 논쟁을 귀동냥하며, 해가 지나가는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성당의 모습을 보며 마냥 폼을 잡았던 나날을 머리에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이 성당은 나에게 있어 포근한 잔상을 남겨 준 곳이기도 하다.
덕분에 요즘 뉴욕에 오는 손님들을 구경시켜 줄 때에도 항상 이 곳을 잊지 않고 들린다. 지난 주(1/10/99) 뉴욕타임즈 선데이 "The City"라는 섹션에 "St. John The Unfinished"라는 기사가 나와 읽어 보며 이 성당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되는 계기가 생겨 또 직업의식을 갖고 글을 써 보기로 했다.
세인트 존 성당의 소속은 Episcopal Church이다. 즉 우리 말로는 감독교회라고 번역하는 모양인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아마 이름이 생소할 것이다. 간단하게 알아본 바로는 이 교파는 미국 역사의 특수한 산물인 셈이다. 당초 미국의 기독교는 보스턴 쪽에 17세기 말에 청교도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지만 주류를 이룬 것은 식민지 종주국인 영국의 공식 종교인 국교회 Anglican Church, 한국에서는 성공회라 하는 교파였다. 일부 가톨릭이나 유대교 인구가 있기는 했지만 뉴욕의 경우 19세기 초까지도 신부들이 비밀리에 잠입해서 몰래 미사를 보았다고 할 정도로 비 개신교에 대한 탄압이 심했다고 한다.(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현재 뉴욕에서 가장 큰 신자 인구를 가지고 있는 종교는 가톨릭이다) 학교 다닐 때 배운 유럽역사에도 나오지만, 종교개혁이 유럽 대륙을 휩쓸고 있을 때, 영국의 경우 헨리 8세가 이혼문제를 계기로 해서 토마스 모어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시 영국의 공식 종교인 가톨릭을 개혁해서 왕이 수장이 되는 국교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국교회의 경우 여러 개신교의 분파들 중 가장 가톨릭과 교리나 의식 등이 비슷하기 때문에 종종 혼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글은 종교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할 자리는 아니니 이만 줄이고…
하여간 18세기 말에 미국의 식민지들이 영국으로부터 오랜 전쟁 끝에 독립을 이루게 되자, 미국의 국교회는 난처한 처지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계속 영국 왕을 수장으로 모시는 원칙을 고수하는 세력을 국경너머 캐나다로 도피하게 되고, 나머지는 독립이라는 변화를 수용하게 되어 오늘날의 감독교회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미국 독립은 종교의 자유를 선포했기 때문에 이 감독교회가 국가의 공식 교회가 되지는 않았다. (실제로 대부분의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Founding Fathers은 무신론자들은 아니었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근대적인 프리메이슨들이었다) 오늘날까지도 미국 동부에는 감독교회가 상당히 큰 세력으로 남아있다.(감독교회 역사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을 빌림-남편이 대신 써줌 헤~ ^ ^;)
다시 성당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대체로 큰 성당은 그 도시와 역사를 같이 한다. 이 성당도 예외는 아니다. 1892년 처음 머릿돌을 세운 이 후 백년 넘게 건축을 지속하다가 또 중단하다가 하기를 몇 차례. 결국 아직도 신문기사가 말해주듯 이 성당은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공황과 세계대전, 그리고 뉴욕의 경제 불황이 올 때마다 이 성당의 공사는 중단되었다. 무려 106년이 지난 현재에도 계속 공사를 해야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성당 내부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잠시 이 성당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크겠다. 1887년 헨리 코드맨 포터(Henry Codman Porter)라는 주교가 뉴욕의 세인트 패트릭 성당에 버금가는 대 성당을 건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으며 이에 감독교회 집안의 후원자였던 밴더빌트(Vanderbilt)나 애스토(Astor) 집안은 많은 금액을 기부하였다. 새로운 성당의 보금자리로는 그 당시 뉴욕의 아크로폴리스가 될 것이라고 해 한참 "떴던" 모닝사이드 하잇츠의 앰스털댐 에베뉴의 110가에서 113가까지 약 13.5에이커의 땅을 85만불을 주고 사들였다.
1891년 68개 건축사가 경합한 끝에 Heinz & La Farge라는 건축회사가 선택되어 청사진을 보였을 때 성당의 외형은 고딕식으로 그리고 내부는 비잔틴과 로마니스크식으로 설계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1892년 12월 27일 세례 요한 축일에 머릿돌을 세웠다. 1893년부터 기초공사가 시작되어 땅을 깊게 파기 시작하였는데 맨하튼이 돌섬이라 기초가 탄탄할 줄만 알았던 이곳에서 soft stone이 발견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한 블럭 더 남쪽으로 이동을 할 것이냐 아니냐에 대한 검토를 하였으나 머릿돌을 다시 움직이는 것은 나쁜 징조가 될 수 있다라는 것 때문에 약 3년에 걸쳐 50만불을 들여 무른 돌을 파내고 다시 콘크리트로 덮어 공사를 계속 진행하게 되었다.
1907년 이 성당을 설계한 건축가 하인즈가 갑자기 죽게 되어 그의 파트너인 라 파지가 공사의 책임을 맡게 되었고 성당의 중심인 합창단 부분과 십자모양의 크로스를 완성 하게 되었다. 그러나 1911년, 여러 루머와 논란 끝에 라 파지는 성당으로부터 추방(?)을 당하였고 대신 랄프 아담스 크램(Ralph Adams Cram)이라는 새로운 건축가가 고용되었으며 이로 인해 초기 비잔틴/로마식 내부의 설계가 완전히 고딕형식으로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처음 거두었던 기부금은 바닥이 나기 시작하여 공사를 거의 중단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1914년 또 다른 후원자인 J.P 모간(J.P. Morgan)이 거대한 금액을 기부하여 공사는 다시 진행되었으나 불과 2년만에 다시 기부금이 모자라 공사는 중단이 되었고 또한 세계1차대전이 시작되어 1924년까지 세인트 존 성당은 세기의 아픔을 같이 한 채 긴잠을 자게 되었다. 1925년 그당시 부자 변호사였던 프랭클린 D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가 기부금 모집을 시작하여 겨우 1941년 성당의 모습을 완성하게 되었다. 처음 미사를 지낸 11월 30일로부터 딱 일주일 후 진주만 공격으로 인해 미국은 전쟁에 가담을 하게 되었고 또 다시 32년간 성당은 다시 기나긴 잠에 들어 가게 되었다.

1978년 성당의 주임사제 제임스 모튼(Dean James Parks Morton)은 재건축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근처 학생/실직자 등을 모아 돌깎는 기술을 익히게 한다. 석공들을 미국에서 찾기 힘들었으며 겨우 이태리나 스페인 등에서 모셔와야 하는데 이는 너무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렇게 기술을 가르치게 함으로써 사회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이 프로그램은 많은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이렇게 성당의 남쪽 타워를 올리기 시작했고 또한 성당 중앙 column의 조각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1992년 돌깍는 프로그램은 끝이 나고 남쪽 타워가 약 50피트정도 올라감을 마지막으로 다시 긴잠을 자게 될 지 모르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이유는 내부의 의견차이며 더 궁극적으로는 역시 "돈"이다. 1996년 딘 모튼의 후계자인 주임사제 헨리 프리셋(발음?) (Henry H. Pritchett Jr.)이 바톤을 넘겨 받으면서 재 완공에 대한 견해를 달리했기 때문이다. 딘 프리셋은 그 많은 돈을 들여 완공 하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 물론 완공하는 것도 좋겠지만 몇백만불을 들여 집을 짓는 것 보다 그 돈을 더 긴급한 보수 공사 및 사회 봉사에 사용하는 것이 교회가 해야하는 우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남쪽 타워에 뚜껑을 덮어 일단 물이 세는 것 등을 막고 미완성이라는 표시를 하고 구조 철근을 없애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전 주임사제 모튼의 말이 재미있어 아래 옮겨 본다.)
여러차례 수난(?)을 겪어온 세인트 존 더 디바인. 이 성당은 이 세기에 St. John The Finished라는 별명을 얻기 힘들어 보인다. 아마 앞으로 영영 St. John The Unfinished로 남을지도 모른다. 한 세기를 거쳐 아직도 미완으로 남을 이 성당의 미래에 대해 과연 많은 돈을 들여 이 세기의 위대한 건축물로 종지부를 찍게 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그 돈을 가지고 정말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는 나도 확신이 안간다. 단지 이 건물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의 하나로 누군가 돈을 많이 기부해 완성된 모습을 보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순진한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성당 내부의 선물코너에 있는 원래 완성되야 하는 조감도를 보면 아마도 이 건물은 앞으로 몇백년이 지나도 완성하기 힘들지 않겠나 할 정도의 복잡/웅장성을 띠고 있다. 이제는 돈이 있어도 기술자가 없을테니 말이다. 결국 St. John The Unfinished로 남을 것 같은 이 성당에 커다란 미련을 두게 된다...
"Repairing sidewalks and removing scaffolding is hardly earth shattering...It's hard to raise money for that kind of thinking. In fact, I think it's a downer. Forgive me for saying so, but putting a cap on the tower, that's not an upper. That's a downer. Obviously, they're putting a lid on construction. I suppose you can turn that around into a positive thing, but it's not a very sexy thing... Cathedrals are monsters. They are big, heavy and very expensive. They've got to be maintained. If not, you're in deep trou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