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 링크들의 제목과 Key Words 등을 요약해서 다시 리스트하였다.
황제 내경을 공부하기에 앞서, 인류 아니 동북아시아에서 4 대문명 중의 하나인 황하 문명이 있었다. 그 황하를 중심으로 우리 선조는 중원이라 불리우는 땅을 차지하며 살았던 민족이다. 황하문명이 서쪽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야 있건 말건 우리 나라은 중국의 역사와 뗄래야 뗄 수 없이 동고동락 하는 가까운 사이이다. 중국의 역사책을 읽을 순 없지만, 사마천이 쓴 사기에는 중국의 삼황시대를 제외하고 기술한 오제 시대부터의 고대 역사를 우리나라도 매우 지대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예로써, 사기에 기술된 문자가 없었던 시절의 전래되어 온 약 천년간의 은 나라의 역사가 은나라 시대의 갑골 문자에 발견, 번역으로 그 정확성이 확인 되는 것으로 보아도 그저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아직도 하나라는, 역사가들이 전설 속의 나라였다고 말하고 있지만 아마 신석기 시대쯤의 나라였고 은나라는 청동기 시대의 나라로 생각한다. 중국 신화 시대인 " 3황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3황은 천황, 지황, 인황이다. 역에서 우주를 구성하는 3재, 즉 천, 지, 인에 3황을 기계적으로 갖다 붙인 것이다. 너무도 인위적이다. 가장 일반적인 견해는 복희, 여왜, 신농, 이 세 명을 3황으로 보는 것이다. 복희는 수인을 대신해 천위에 올랐다. 신화에서 수인은 인간에게 불 사용법을 가르쳐준 존재이다. 유소를 3황 중 한 명으로 포함시키는 학설도 있다. 유소는 나무 위에 집 짓는 법을 가르쳐줘 인류를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구원해 낸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복희는 팔괘, 문자, 혼인 제도를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망을 연결해 그물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게 했고 소, 양, 돼지 같은 가축 키우는 법을 알려주었다. 또 35현의 슬이라는 악기를 만들었다. 인류가 자연스럽게 습득한 다양한 것들을 고대의 한 성인이 가르쳐주었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소위 '인간주의'의 발현이다. 여왜는 새 문명을 가르쳐주지도, 복희의 제도를 발전시키지도 않았다. 단지 생황이라는 악기를 만들었을 뿐이다. 복희가 가르쳐준 기존 제도에 여왜가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은, 여왜와 복희가 부부 신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두 명의 신 모두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을 한 인수사신이었다. 복희와 여왜 두 신의 꼬리가 뒤엉킨 디자인은, 실크로드 둔황에 있는 옛무덤에서 발견된 관을 덮는 천에도 그려져 있다. 두 신은 손에 컴퍼스와 자를 갖고 있다. 토지 창조의 신이기도 했던 것 같다. 신농은 머리는 소, 몸은 사람이었다. 나무를 잘라 가래를 만드는 등, 사람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또 1백 가지 약초로 약을 만들었고, 시장을 만들어 물물 교환하는 법을 가르쳤다. 일본에서도 신농은 의약의 신 혹은 노점 상인의 수호신이다. 3황은 모두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불의 사용, 주거, 어업, 목축, 농경, 의약, 음악, 교역 등 고대에서 시작된 소박한 생활의 발명자로서 3황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사마천이 3황을 무시한 것은 이를 깜찍한 '설명 신화'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사기'의 '5제본기'는 황제부터 시작된다. 황제에 이어 제 전욱고양, 곡고신, 요, 순으로 이어진다. 중국인은 지금도 자신들을 5제 중 첫 번째인 황제의 자손이라 부르며, 황제를 민족의 시조로 여기곤 한다. 사람 머리에 몸은 뱀인 특이한 존재이다. 염제의 자손과 판천 벌판에서 전투 할 때는 곰이나 표범 같은 맹수를 동원해 대승을 거두었다는 매우 신화적인 인물이다. 신화적 색채는 아직 남아 있으나 역사 시대 인물의 성격이 강해지는 것이 요, 순이다. - 중국 오천년 1 저자 진순신 에서 인용" 2003 8/20
단군왕검이 태어나기 300년 전인 BC 2700년 동북아 지역은 크게 오늘날의
중국민족계열의 종족과(화하족 : 華夏族) 한족(桓族)이
있었다.(환족이라고도 한다)
한족은 한웅이 건국한 신시(神市)에(신불 이라고도 읽는다) 속해있었다.
한(桓)족은 우리 민족의 조상뿐 아니라 오늘날의 중국민족 상당수와 과거
역사책에 나와있는 만리장성 이북지역의 많은 종족들의 조상이 된다.
이때 한족계열에 자부(紫府) 선생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태백일사 마한세가에 보면
「 때마침 자부선생께서 칠회제신(七回祭神)의 책력을 만드시고
삼황내문(三皇內文)을 지어 천폐(天陛)께 진상하니 천왕께서 이를
칭찬하였다.
삼청궁(三淸宮)을 세우고 그 곳에 거하시니 공공(共工),
헌원(軒轅), 창힐(倉 ), 대요(大撓)의 무리가 모두와 여기 서 배웠다 」
란 글이 나온다.
천왕이라는 표현이 일본식 표현 같지만 채옹이라는 학자에
의하면 그 임금을 '하늘' 로써 표현하는 것은 동이(東夷)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한웅 할 때의 '한' 은
'하늘' 에서 나온말이라 생각된다. 지금의 한자 개념으로써만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부선생은 신시 5대째의 천왕인 태우의 한웅 때의 인물인
발귀리("밝힐이"곧 무엇인가를 밝힐 사람이라는 뜻 의
후손으로써 발귀리는 역(易)의 8괘를 처음으로 창안해낸 태호 복희(밝해 곧
밝은해란 뜻일 것이다) 씨와 같이 학문을 하였다 한다.
칠회란 오행의 木,
火, 土, 金, 水에 天, 日 혹은 日, 月이 더해진 것이다.
칠회제신이란 첫날에는 天神 (혹은 日神), 둘째 날에는 月神의 순서로 水,
火, 木, 金, 土의 순서로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오늘날의 일주일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는 일주일의 단위는 기독교
성경에서 구약에서 유래한다. 본격적인 구약의 출발점은 아브라함
부터이다.
문정창씨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서양문며의 뿌리라는 "슈메르" 의
후손이다. 문정창씨는 슈메르 민족이 소호금천씨 계열이었다 하는데
소호금천씨는 신라를 세운 주력세력이었기도하다.
한단고기에 의하면 아주
오랜 옜날 우리민족은 12개의 나라로 되어 있었다.
그 중에 "수밀이"국이
있는데 임승국 교수는 이 "수밀이" 국이 슈메르를 말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는 일주일은 어떤것일까?
대요는 중국 고대의 성인이라는 요임금의 선조를 말하는 것 같다.
창힐은
오늘날의 중국문자의 시조라 한다.
여기서의 3황이란 천·지·인을 말하고 있으며, 중국인들이 말하는 3황은
복희, 신농, 헌원을 말한다.
그러나 한단고기에서는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선조라고 하는 헌원도 한(桓)족 계통의 인물이라고 한다. 치우천왕은
오늘날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시조라고 하는 황제 헌원과 전쟁을 오랫동안
하였었다.
탁록이라는 벌판에서의 결전 후 이 전쟁은 치우의 승리로 끝나고
헌원은 치우를 만나러가다 자부선생이 살고 있는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 이때의 결전을 산해경 등의 중국 측의 사서에서는 헌원의 승리로 끝났다 한다. - 단기고사(檀奇古史)에는 이때의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 그때에 자부선생이라는 도가 높은 분이 있었다. 위로는 천문을 두루
통하고 아래로는 지리를 살피며 특히 도덕이 고상하였다.
이에 황제 헌원이
와서 수학한 후에 삼황내문경을 받아서 귀국 하였다. "
이때의 상황은 중국 진나라 시대 갈홍(葛弘 : AD 283∼343)의 '
포박자(抱朴子) ' 란 책의 기록에도 보인다.
_옛날에 황제 헌원이 있었다. 그가 동쪽으로 청구에 이르러 풍산을 지나
자부선생을 만나 삼황내문을 받아 이를 가지고 온갖 만가지 신을 부렸다._
- 임승국 역 한단고기에서 요약 -
이때의 실제 상황이 어떠했는지는 이 곳에서는 판단을 하지 않기로 하겠다.
다만 자부선생이라는 인물에게서 헌원에게 ' 삼황내문경 ' 이라는 책이
전해진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럼 三皇內文이란 책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그리고 또하나
평범한 기록 같지만 위의 글은 이후 동북아시아의 문화적인 판도가
점진적으로 그리하여 나중에는 대대적으로 자리 바뀜하게 되는 실마리가
되는 단서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다.
즉 고대 한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문물이 지금의 중국땅에서 더욱 발전한 것이다.
삼황내문이란 책은 정확한 그 내용을 고증할 수는 없으나 제목으로 추론해
볼 때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삼황이란 천·지·인을 말하고, 內란
안·속·참을 뜻하며 형이상학의 용어로 하면 본체·본질을 말하는 것일 것
같다.
文은 글자나 문체라는 뜻 이전에는 무늬, 모양, 꾸밈 등의 뜻이였다.
「 說文解字注에 보면 文이라는 것은 사물의 현상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文者物象之本) 」
- 최영애 한자학 강의 中 -
文이란 글자, 문체 등의 뜻 외에 理(리)자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理(리)자
역시 무늬, 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文이 겉모양을 뜻한다면,
理는 내적인 것, 더 본질적인 것을 말한다.
그러기에 내문(內文)이라하면
理와 거의 같은 뜻이 된다.
삼황내문이란 천·지·인의 이면에 담겨있는 모습, 무늬, 모양이
어떠한가를 말하고 있는 책인 것이다.
천지인의 이치를 담고있는 책일
것이란게 추리된다. 이른바 역(易)과 오행의 사상이 담겨있는 책인 것이다.
- 이때의 易은 단순히 유가에서 말하는 것으로만(특히 주역) 판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도가적인 내용이 많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삼황내문경은 당시 神市의 문자였던 녹서(鹿書)로 기록되어 셋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하는데 그 내용이 어떠한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
태백일사 中 ' 의 소도경전 본훈 속에 어렴풋이나마 그 내용이 수용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황제내경과 소도경전 본훈, 특히 그 중의 천부경과 삼일신고 등의 내용을
볼 때, 삼황내문경은 세가지의 주된 내용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우주론
- 자연과학적 이론 - 과 의학적인 내용, 그리고 도덕이나 윤리, 혹은
종교적인 사상 등과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위의 견해를 수용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의문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자부선생을 통해 헌원에게 넘어간 삼황내문경속에 황제내경의 내용이
있었는가?
즉 황제내문경이 황제내경이거나 황제내경의 뿌리인가 하는 것과
둘째, 이 당시 황제내경의 방대한 사상과 학문적인 이론이 실제 있었고 또
그것을 기록할 문자가 그 정도로 풍부하였는지 의문으로 남는다.
설사 필자의 추리대로 황제내경이 삼황내문경 중의 우주론과 의학적인
부분에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그 정도는 지금 전해지는 내경의 내용보다는
완전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내경은 이후 수천 년을 두고 발전해 나온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삼황내문이라는 단어에 易과 오행의 의미가
있음은 - 점과 상수해석, 의리해석 등의 주역식의 易이 아니다 - 분명할 것
같다.
- 내경은 크게 素問과 靈樞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황제내경은 양나라때의 전원기기 처음으로 간략하게 저술하여
내려오면서 많은 저자들이 보완, 주석, 주해를 하여 동양의학의 원전으로
추앙받는 경전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동양의학을 연구하는 이들은
반드시 이것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황제내경을 익힘으로 해서 동양의학의 학문적 배경과 원리와 이론을 알 수가
있고, 양생과, 섭생, 진단과 치료에 까지 이용할 수가 있다.